생생후기

졸업 전, 용기 내 떠난 동유럽 워크캠프

작성자 조수경
폴란드 FIYE 201 · RENO 2012. 05 - 2012. 06 JANOWICE

JANOWICE 1

참가 전 준비와 마음가짐

4학년 막학기를 남겨두고 막상 졸업하려니 두려움이 컸었다. 그래서 휴학부터 했다.
남들은 영어공부나 자격증, 유학 등 계획을 세우고 휴학을 했지만, 나는 손이 머리보다 빠른 사람이었다.
무계획에 휴학을 신청해놓고보니 잉여도 이런 잉여가 없을 정도로 피폐해질 것 같은 휴학생활이 될 느낌이 들어서 그때부터 뭘 할까 고민을 시작했다.
그러던 중 교환학생을 가있던 친구가 한줄기 빛을 내려주었다.
'워크캠프'
외국에서 생활할 수 있는건 교환학생, 유학, 워킹홀리데이. 이 3가지만 알고 있었는데, 친구의 소개로 '워크캠프'의 존재를 알게 되었고, 친구와 함께 신청을 하게 되었다.
원래는 페스티벌 쪽으로 지원하고 싶었으나, 워크캠프 전 후로 유럽여행을 할 계획을 짜놨었기 때문에 그 일정에 맞춰서 워캠을 신청하다 보니 참여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한정적 일 수 밖에 없었다.
유럽여행일정에서 동유럽 국가는 없었기 때문에, 워크캠프를 가게 될 나라는 동유럽으로 하고 싶었다.
그렇게 해서 신청하게 된 폴란드 야노비체 프로그램.

사실 그전에 다른 프로그램을 지원했었으나 한번 떨어지고나서 다시 신청한 거였기 때문에 정말 간절하게 합격통보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미 비행기표도 끊어놓은 상태였기 때문에 뺴도박도 못했으며, 워크캠프에서 떨어지게되면 2주동안의 계획을 다시 짜야하는 사태가 발생하기 때문에 정말 매일매일 매 시간마다 워캠 사이트를 들낙날락하면서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그렇게 받게된 '합격'
그 글자를 보고 심장이 터져버리는 줄 알았다.
그렇게 나의 워크캠프는 이미 시작되었다.


워크캠프 시작은 5월 21일 이었으나, 12일날 영국으로 출발하여 여행을 하였다.
내가 캠프를 하게 될 장소는 폴란드에서 시골에 속하는 '야노비체'라는 곳이었다.
인터넷으로 아무리 찾아봐도 자세한 정보를 얻을수 없었기 때문에 상당히 궁금하면서 좀많이 두려움도 있었다. 그리고 처음에는 지역이름인 'JANOWICE'를 어떻게 읽는지도 몰랐다.
야노비체로 가기 위해선 브로츠와프에서 이동을 해야했기 때문에, 런던에서 브로츠와프까지 비행기를 타고 3시간 정도 이동, 그리고 브로츠와프에서 야노비체까지 기차타고 4시간 정도 이동을 해야했다.
브로츠와프에서 야노비체까지 이동하는데 정말 지겨웠다.
그리고 야노비체에 도착했을 때는 그곳이 야노비체인지도 몰랐다.
역무원아저씨께서 검표를 하실 때 나의 표를 보고 야노비체로 간다는 걸 기억해 주시고는, 야노비체에 도착했을 때 알려주려고 직접 와 주셨다. 야노비체는 작은 도시 였기 때문에, 역이 크지 않아서 역무원 아저씨가 아니었다면 그대로 폴란드 끝까지 갈 뻔하였다.

역에 내려서 인포싯으로 받은 지도를 펼쳐놓고 어떤 방향으로 갈지 고민을 하고 있었는데, 기차 다른칸에서 누가 큰 배낭을 갖고 내리는걸 발견하였다. 왠지 느낌이 왔다. 아 캠퍼다!

먼저 다가가서 캠프하러 왔냐고 묻자 맞다고 해서 프랑스에서 온 '마틸다'랑 첫 인사를 나누었다.
그리고 워크캠프 장소였던 병원까지 낑낑거리며 오르막길을 오르고 올라 캠프리더이자 슬로바키아에서 온 '주자'와 프랑스에서 온 '조이'를 만나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길을 헤매다 밤에서야 만나게 된 프랑스에서 온 '캐롤라인'까지. 우리 캠프는 이렇게 여자 5명으로 구성되었다.

첫날에는 서로 통성명하고 스케줄을 확인. 그리고 우리가 지내게 될 병원과 앞으로 하게 될 일에 대해서 설명을 들었다.






우리는 병원에서 머물게 되었고, 하는 일은 병원 주변에 환경정리 같은 걸 주로 하게 되었다.
병원에서 제공해준 잠자리는 병실.
2인용 병실과 3인용 병실을 제공해 주어서 주자와 조이가 한방을 쓰고, 나와 캐롤라인, 그리고 마틸다가 한방을 쓰게 되었다.
첫날에는 다들 병원까지 올라오느라 힘들었는지 일찍 다들 잠자리에 들었다.

그리고 다음날, 8시에 일어났는데 병실창문으로 햇빛이 너무 예쁘게 들어왔다.




워크캠프 훈련 워크샵에서 설명을 들을 때 숙소가 복불복이라는 말이 있었는데, 우리 숙소는 정말 좋았다.
우리는 4층에 한쪽 복도를 썼는데, 오로지 우리만 썼다. 그리고 화장실은 4층 우리 복도에 있는 화장실을 써도 되었지만 거긴 자주 쓰지 않았었기때문에 1층에 좋은 화장실과 샤워실을 이용할 수 있었다. 하지만 1층까지 가기 귀찮아서 그냥 복도 화장실과 샤워실을 이용하였다. 불편건 느끼지 못했다.

식사는 병원에서 환자들에게 제공할 때 함께 카페테리아에서 먹었다.
여긴 어딜 다쳐서 오거나 하는 그런 병원이 아니라 재활병원이었기 때문에, 병원밥이라 해도 매끼마다 다른 음식에 영양소가 골고루 잡히고, 특히나 우리식탁에는 반찬(?)이 더 올라왔다. 아침에는 폴란드 전통 스프(국같은 느낌)와 빵, 치즈와 햄이 나왔고, 점심에는 고기가 포함된 만찬. 그리고 저녁에는 빵과 치즈 그리고 빵에 넣어 먹을 수 있는 무언가가 나왔다.

아침을 먹고나서 방에 있으니, 앞으로 2주동안 우리에게 일거리를 주실 '디렉'이 왔서 앞으로 하게 될 일에 대해 폴란드어로 설명을 해주셨다. 그러면 캠프리더 '주자'가 영어로 번역을 해주었고, 그렇게 해서 알아들었다.

보통은 아침 9시부터 1시까지 정도 일을 하고, 오후에는 오전에 끝내지 못한 일을 하거나 자유시간이 주어졌다.

오후에 무엇을 할 것인가는 그날그날에 따라 달랐으며, 주 5일제로 일이 진행되어기 때문에 주말을 어떻게 보낼 것인가를 상의하였다. 결론은 브로츠와프로 여행가기.


처음 3일정도는 아침에 일어날 때마다 놀랐다.
자다가 깨면, '여기가 어디지?' 하는 생각부터 들었다. 외국에서 내가 눈을 뜨고 있다는 사실이 매일 놀라웠다. 그리고 눈을 뜨고 눈을 감을 때 까지 한국말은 한마디도 ('배고파'를 제외한) 하지않고 영어나 폴란드어만 사용되는 이곳에서 있다는 사실이 매시간마다 신기했다. 그 신기함은 4일뒤쯤부터 익숙함으로 바뀌었다.

우리는 병원 주변 가로등이나 쓰레기통, 그리고 벤치와 탁자들을 페인트칠 하거나, 야외 체육시설을 뒤덮은 자연을 정리하는 일 등을 하였다. 병원으로 사용되기 이전에는 학교였었고, 병원으로 바뀐 지는 그리 오래 되지 않았었다. 그리고 우리가 캠프를 시작하기 얼마전에 또다른 자원봉사자들이 왔다 갔었기 때문에 병원 주변정리가 대부분 다 되어있는 상태여서 사실 그렇게힘든일은 하지 않았다. 그리고 우리 캠프구성원들이 모두 여자였기 때문에 그리 힘든일을 시키지도 않았다.

오후에는 바베큐파티를 하거나, 20분쯤 걸어가면 나오는 야노비체 마을을 산책하거나, 주변에 유적지를 탐방하러 갔다.




폴란드는 물가가 정말 쌌기 때문에, 거의 매일 마트에 갔던 것 같다.
밤마다 주전부리를 먹으며 수다를 떨기에 최적의 장소였다.

정말 충격적이었던건 맥주가 500원이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한번은 마을에 있던 피자집에 피자를 먹으러 갔었는데, 나는 5명이니까 3판 정도 시켜서 나눠먹으면 배부르겠다고 생각을 하였지만, 아이들은 인당 한판의 원칙을 주장하였고 나는 컬쳐쇼크를 받았다.

(피자는 인당 한판의 원칙이 적용됨.)



더군다나 피자 한반은 3000천원 정도였다. 싼데다가 맛있기까지 해서 저 피자집에 일주일에 두번은 갔다.
눌러살고 싶을 정도로 착한 물가의 나라였다.



일을 할때는 햇빛이 너무 뜨거워서 말할 시간 없이 다들 후딱후딱 일을 하였기 때문에 이야기를 별로 나누지않고 개인 플레이를 하였다. 그러다가 휴식을 취할 때는 그늘에 모여서 수다를 떨었다.


사실 처음에는 어색하였다.
다른 친구들은 어땠을지 모르겠으나 나는 좀처럼 마음을 열지 않기 때문에 친구들이랑 이야기할 때에도 내얘기는 하지않고 듣기만 하였다.
그러다 4일쯤부터는 나름 5명이서 한형제처럼 지냈다.
다른 프로그램들은 10명정도에 한국인도 두명정도 되는 것같아서, 처음에 이 프로그램의 구성원을 봤을 때는 좀 걱정되었다. 뿐만 아니라 모두 다른나라에서 온 친구들이고, 처음보는 사람과 2주동안 동거동락을 해야하며, 주변에는 자연친화적인 환경만이 있는 곳에서 내가 2주동안 잘 지낼 수 있을 까 하는 걱정이 들었다. 하지만 그 걱정은 프로그램 중반쯤 되어서는 없어졌다.
처음에는 '아직도 10일 넘게 남았어'였지만, 날이 갈수록 '벌써 8일밖에 안남았어' 식의 사고로 바뀌었다.
이 프로그램이 끝나고 이 친구들과 언제 다시 만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매순간순간이 아깝고 더 잘 보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주말에 친구들과 브로츠와프로 기차를 타고 가서 2박 3일동안 지내며 보냈던 그 순간들도 정말 행복했으며 즐거웠고 또 그리웠다.




워크캠프동안 했던 바베큐파티도 정말 좋았다.
우리가 직접 불을 피우고, '디렉'의 도움을 받아 나뭇가지를 날카롭게 하여 꼬치를 만들고, 거기에 빵이나 소세지, 마시멜로우를 꽂아 구워먹었다.



하루하루가 즐거웠고, 병원에 지내면서 병원분들이나 환자분들도 너무 친절하게 대해주셨다.
그리고 야노비체 주민들은 동양인을 실제로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마을에서 유일한 동양인인 나에게 관심이 쏟아졌다. 그런 관심은 사실 좀 어깨가 무거웠다. 나로 인해 '한국'이라는 이미지가 생성이 될 지도 몰랐기 때문에 한국에 명성에 먹칠하지 않도록 나름 조신하게 주의깊게 행동하고 다녔다.


5일동안 열심히 일하고 놀고 주말에 브로츠와프를 다녀온 뒤, 월요일이 되었을 때 야노비체 지역 신문사에서 우리를 취재하러 왔다.
덕분에 우린 신문에 났다.

워크캠프에 대해서 묻고, 각자 우게 된 이유나 폴란드의 이미지와 야노비체에 대한 느낌 등을 물어보셨다.
비록 기자분께서 나의 이름을 잘 못 적어가는 바람에 SOO가 아닌 SUU로 표기되어서 신문에 나오긴 했지만, 뜻깊은 경험이었다.
그리고 다음날 화요일에는 야노비체에 있는 학교에서 가서 '워크캠프'에 대한 설명회를 개최하였다.
지역주민들의 우리에 대한 관심이 정점을 달렸다.
처음에는 그냥 한 반에 들어가서 그 반 아이들과 소통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으나, 막상 학교에 갔더니 전교생이 강당에 모여 우리의 말을 기다리고 있었다.
다들 다수의 아이들 앞에서 말을 해야한 다는 사실에 떨고 있었지만, 다행히 무대에서 서서 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 앞에 의자에 앉아서 말을 하는 것이라 부담감이 덜하였다. 그래도 떨리긴 마찬가지였던 것 같다.





주로 리더인 '주자'가 워크캠프에 대해 설명을 하고, 학생들이 질문을 하면 선생님께서 영어로 번역해 주셔서 각자 대답하는 방식으로 진행이 되었다.
각자 나라의 특색을 얘기해 달라고 했는데, 내가 처음에 질문을 이해하지 못하자 주자가 대신 답을 하였는데, 그 대답이 '한국의 고등학생들은 아침 7시에 학교를 가서 10시가 넘어서 집에 돌아가며, 그 시간 내내 학교에서 공부를 하는데 보낸다'하고 전에 내가 해주었던 얘기였다.
그때부터 학생들은 엄청난 리액션과 함께 한국에 대한 폭풍질문을 하였으며, 나는 슈퍼스타가 되었다.
폴란드사람들에게 한국에 대한 얘기를 하게 되어서 왠지 국위선양을 한 것 같은 느낌이 들었지만, 그 질문들에 대한 대답들이 '한국의 아름다움'보다는 '강철체력의 한국'인 것같았다.

다른 워크캠프는 어떤지 모르겠으나 내가 갔었던 프로그램은 정말 주민과의 교류가 이렇듯 활발했다.
덕분에 폴란드어도 좀 많이 배웠던 것같다.
그리고 한번은 전에 우리를 취재하였던 신문사에서 우리를 데리고 야노비체의 유적지나 유명지를 소개시켜주셨으며, 야노비체에 있는 유명한 산에 데려가 등산도 시켜주셨다.


한순간도 병실에 가만히 있었던 적은 없었던 것같다.
그러기엔 시간이 너무 아까웠으며 우리 5명은 잘 지냈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2주가 되었으며 헤어질 토요일 전날에는 늦게까지 수다를 떨며 잠들지 못했다. 보통은 9시 쯤되면 다들 잠이 드는데 그날은 12시가 넘도록 다들 잠들지 못했다.

(마지막 날 밤, 서로가 찍은 사진들을 공유하는 중)





워크캠프가 끝나고 이태리로 갈 비행기를 미리 끊어놓았던 내가 제일먼저 떠나게 되어서 다들 나를 배웅해주러 기차역까지 함께 갔다.

아침에 헤어져서 그런지 아니면 그날 바람이 너무 차게 불어서 정신이 없어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아무도 눈물은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서루 메일주소와 집주로를 주고받으며 그리고 페이스북친구를 해놨기 때문에 인터넷으로나 다시 만나게 되리라 믿고 작별인사를 나누었다.
친구들에게 한국에 놀러오라고 신신당부를 하고 다음에 꼭 언젠간 다시 만나길 바라며 헤어졌다.
요샌 인터넷이 하도 잘 되어 있어서 페이스북으로 얘기할 수 있었기 때문에 헤어진다는 느낌을 크게 받지는 않았다.


혼자 이태리로 가는 비행기에서는 사실 앞으로의 여행때문에 정신이 없어서 워크캠프의 그리움에 대해 고찰할 시간이 없었으나, 한국에 돌아오자마자 사진 정리를 하면서. 그리움에 사무쳤다.
언제 내가 다시 이런 친구들과 만날 수 있으며, 또 바베큐 파티를 할 수 있을 것이며, 물건을 사면서 손이 떨리지 않을 수 있을까.... 정말 그리웠고 그리우며 그리울 것이다.
그리고 이번학기가 끝나고 다시한번 워크캠프를 다녀올 생각이다.




누군가가 워크캠프에 대해서 어땠냐고 물어보면 , 두말할것없이 엄지부터 내민다.
그리고 나는 성격이 내성적이고 영어도 잘 못하는데 그런걸 어떻게 가냐며 묻는다면, 비행기표부터 끊으라고 말할 것이다.
영어실력? 나도 다녀왔다. 영어는 커녕 한국말도 버벅거리는 나지만, 가면 다 하게 되어있다. 사람은 생활에 적응하는 동물이다. 그리고 성격탓을 하며 어떻게 처음보는 사람들이랑 함께 지낼 수 있냐고 걱정한다면, 그건 가서 바뀌게 되어있다. 나만 그런것이 아니라 모두들 그런 걱정을 안고 오기 때문에 더 뭉칠 수 있다.







이렇게 보고서를 쓰면서 다시한번 느낀다.
다시 가고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