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후기

무계획으로 떠난 바르샤바 워크캠프

작성자 고영식
폴란드 FIYE 202 · DISA 2012. 07 Warsaw

PRZEDWIOSNIE 1

참가 전 준비와 마음가짐

가장 치명적인 경험_ 고영식/FIYE 202/PRZEDWIOSNIE 1/

무계획
캠프는 7월 1일에 시작하지만 비행기 티켓을 구하지 못해서 가장 가까운 날짜인 6월 28일 비행기를 타고 인천을 떠났다. 다른 친구들은 미리 현지에서 캠프준비를 한다고 생각했지만 내 손엔 비행기 티켓만 있을 뿐, 준비라는 건 없었다. 그래도 다 잘될 것 같았다.

나는 무엇인가를 계획한다는 게 우스워 보였다. 아무리 준비해도 현장에 닥치게 되면 부족한 것이 생기게 될 걸 알았기 때문이다. 다른 친구들은 나와 생각이 달랐다. 다들 캠프 가기 1주일 전부터 짐을 싸는데 요란을 폈고 자꾸 내 안전을 걱정했다. 내 후배만해도 자꾸 “이거 챙겼냐? 저거 챙겼냐?”하면서 날 귀찮게 했다. 그럴 때마다 후배에게 “오지로 탐험가는 거 아니니까 짐 좀 버릴래?”라는 말을 하면서 후배를 답답해했다.

첫인사
첫인사는 언제 해도 부끄럽다. 지금 생각하면 아무렇지도 않은 일이지만, 모두에게 첫인사는 힘들다. 그건 외국인도 그렇고 한국인도 마찬가지다. 서투른 영어로 용기 내어 ‘Hi’라고 첫인사했을 때, 캠프 친구들은 모두 박장대소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하지만 전혀 기분 나쁘지 않은 웃음이었다. 단 한마디 나눴지만 뭔가 재미있는 일들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는 예감이 들었고, 그건 친구들도 그랬을 것이다.

워크캠프
어색한 첫인사와 서로에 대한 기본적인 이야기를 마치고 다음 날 아침부터 본격적인 봉사활동을 시작했다. 폴란드의 수도, 바르샤바 교외지역에 있는 사회복지센터에서 지적장애인을 돌보는 일을 하게 되었는데, 생각보다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들은 옷을 갈아입지만 자주 씻지 못하기 때문에 그들과 처음 만나는 사람들은 표정이 일그러지기 마련이다. 나와 친구들도 반사적으로 얼굴이 일그러졌고 첫 하루 동안의 표정은 모두 비슷했다.
캠프 활동에 대한 오리엔테이션이 끝나자 앞으로 2주 동안 해야 할 일이 분명해졌다. 우리는 하루 일과 동안 크게 두 가지를 해야 했다. 아침, 저녁으로 장애인들의 음식을 먹여주고 그 이외의 시간에는 여러 재활치료활동에 도움을 주는 활동이었다. 일과가 이틀에서 사흘이 지났을 때, 나와 친구들은 캠프의 전반적인 그림을 볼 수 있었다. 먼저, 이 센터가 굉장히 잘 조직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환자 수와 비교해서 관리자의 수가 생각보다 많았고 센터장은 항상 책임감 있는 모습으로 활동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원봉사자와 센터를 관리하는 사람들이 언제나 행복한 모습이었다. 모든 친구들은 장애인을 돌보는 봉사자의 행동에서 소명의식을 가지고 성의껏 활동하는 모습을 발견했다. 이 모습은 캠프 참가인원이 아닌 어느 누구라도 현장에서 그 감정을 느낄 수 있었을 것이다.
사회복지시설에 일하는 동안, 한국사람이라면 최근에 흥행했던 영화 ‘도가니’의 한 장면이 생각났을 것이다. 철저하고 투명하게 이루어지는 폴란드의 사회복지센터와는 반대인 대한민국의 사회복지시설의 얼룩진 비리와 임원들의 반인륜적인 행위를. 물론 우리나라의 보이지 않는 곳에서 땀 흘리는 분들이 많다는 것은 알고 있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지방의 여러 사회복지시설의 비리와 아동을 상대로 한 성범죄에 대한 신고는 암묵적이고 불편한 진실을 떠오르게 한다.

친구들
우리 캠프는 9명이었는데 남자는 2명이었다. 숙소 들어서는 순간, 내가 굳은 일을 다 할거라는 사실쯤은 알고 있었다.

설거지가 문제였다. 그리고 문제는 단순했다. 아무도 하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첫 날부터 서로 얼굴 붉히기 싫은 마음 때문에, 설거지를 하면서도 2주 동안 내가 계속하겠다는 마음을 먹었다. 또 동생들 챙겨주는 마음으로 시작하니 오히려 기분이 좋아졌다. 다시 말하지만 캠프 시작부터 난 내가 이런 일을 할거라 생각했다. 이틀 째 되던 날에 설거지로 숙소에 늦게 들어왔을 때, 친구들과 주방을 관리하던 아주머니가 고맙다면서 작은 파티를 열어줬다. 기쁘면서도 설거지 하나에 박수 보내는 게 재미있었다.



시간 날 때마다 운동이나 놀이를 통해서 서로의 거리를 좁혀나가는 게 재미있었다. 그렇게 가까워질수록 시간은 더 빨리 가는 것처럼 느껴졌다. 시계바늘이 캠프 1주일이 지나고 2주일의 주말로 향하고 있을 때는 서로 아쉬움이 묻어져서 한 시간도 아까워하면서 보냈다. 주말에 마지막 여행을 떠나고 기차역으로 향할 때, 그 누구도 이야기하지 않았다. 우리는 이야기할 수 없었다. 시간이 가는 것만 보고 있었을 뿐, 당장이라도 눈물이 터져버릴 것 같아서 침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