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후기
하롱베이, 13명의 마음을 잇다
Interacting with children & conducting environment
참가 전 준비와 마음가짐
나는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새로운 환경을 적응하는 것을 좋아한다.
새로운 경험은 스쳐가는 기억이기도 나의 삶을 바꿔놓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나는 사람들의 에세이를 읽는것을 좋아한다.
워크캠프를 알게된것은 한비야의 에세이'1그램의 용기'라는 책을 만났기 때문이다.
그녀는 국제NGO월드비전 긴급구호팀장이면서 세계시민학교교장이다.
그런 그녀가 책 속에서 나에게 해준말은'길이 있어서 한 발짝 내딛는 게 아니라 한 발짝 내디뎌야 비로소 길이 열린다'였다.
1년전,난 이 글을 읽고 나의 가슴을 뛰게 만드는 1그램의 용기를 찾기위해 무작정 컴퓨터를 켰다.
그러던 중에 운명처럼 워크캠프라는 연관검색어가 눈에 띄었고 여러 사람들의 후기를 보면서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바로 이 경험이 나의 인생의 거름이 될 것이란 확신이 들었다.
그만큼 기대가 됐던 터라 워크캠프 공지가 뜨고난지 2달이되었는데도 어느나라에서 어떤 프로그램을 할지 계속 고민하고 고민했다.
봉사도 봉사지만 다국적 팀원들,현지인들과 추억 두마리 토끼 다 잡고싶었다.
그러던 중에 내 눈에 들어온것은 베트남의 interacting with child&conducting environment라는 프로그램이였다.
일년동안 워크캠프 노래를 불렀기 때문에 당연히 부모님께서 보내주실 줄 알았지만 나의 착각이였다.
엄마는 첫번째로 동남아의 치안걱정을 걱정했으며 두번째로는 워크캠프라는 단체를 불신하셨다.인신매매되는거 아니냐라는 우려를 하실 정도였다.
워크캠프와 나에 대한 믿음을 받기위해 기구도 보여드리고 후기도 보여드리면서 오랫동안 설득했고 허락을 받았다.
처음 합격됬다고 메일이 왔을때의 기분을 잊을 수 없다.
합격의 기쁨은 캠프를 갈 수 있다는 안도감도 있었지만 순전히 내가 노력하고 열망해서 얻은 결과였기 때문에 더욱 값지게 느껴졌다.
그렇게 스무살 인생에서 부모님을 벗어나 첫 도전을 할 준비를 하였다.
새로운 경험은 스쳐가는 기억이기도 나의 삶을 바꿔놓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나는 사람들의 에세이를 읽는것을 좋아한다.
워크캠프를 알게된것은 한비야의 에세이'1그램의 용기'라는 책을 만났기 때문이다.
그녀는 국제NGO월드비전 긴급구호팀장이면서 세계시민학교교장이다.
그런 그녀가 책 속에서 나에게 해준말은'길이 있어서 한 발짝 내딛는 게 아니라 한 발짝 내디뎌야 비로소 길이 열린다'였다.
1년전,난 이 글을 읽고 나의 가슴을 뛰게 만드는 1그램의 용기를 찾기위해 무작정 컴퓨터를 켰다.
그러던 중에 운명처럼 워크캠프라는 연관검색어가 눈에 띄었고 여러 사람들의 후기를 보면서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바로 이 경험이 나의 인생의 거름이 될 것이란 확신이 들었다.
그만큼 기대가 됐던 터라 워크캠프 공지가 뜨고난지 2달이되었는데도 어느나라에서 어떤 프로그램을 할지 계속 고민하고 고민했다.
봉사도 봉사지만 다국적 팀원들,현지인들과 추억 두마리 토끼 다 잡고싶었다.
그러던 중에 내 눈에 들어온것은 베트남의 interacting with child&conducting environment라는 프로그램이였다.
일년동안 워크캠프 노래를 불렀기 때문에 당연히 부모님께서 보내주실 줄 알았지만 나의 착각이였다.
엄마는 첫번째로 동남아의 치안걱정을 걱정했으며 두번째로는 워크캠프라는 단체를 불신하셨다.인신매매되는거 아니냐라는 우려를 하실 정도였다.
워크캠프와 나에 대한 믿음을 받기위해 기구도 보여드리고 후기도 보여드리면서 오랫동안 설득했고 허락을 받았다.
처음 합격됬다고 메일이 왔을때의 기분을 잊을 수 없다.
합격의 기쁨은 캠프를 갈 수 있다는 안도감도 있었지만 순전히 내가 노력하고 열망해서 얻은 결과였기 때문에 더욱 값지게 느껴졌다.
그렇게 스무살 인생에서 부모님을 벗어나 첫 도전을 할 준비를 하였다.
현지 활동 및 특별했던 에피소드
내가 참여한 베트남 워크캠프는 총 6개국의 사람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베트남인(3),한국인(4),스페인인(1),일본인(1),독일인(1),벨기에인(2),이탈리아인(1)으로 구성되어있으며 총 13명이였다.
정말 워크캠프아니였으면 길가다 우연히 마주쳐도 스쳐지나가는 사람들이지 않았을까.
나에게는 시작부터 끝까지 모든 일들이 특별한 에피소드였다.
나는 항상 외국인과 자유롭게 소통하고 싶었다.
하지만 현실은 길을 물어보는 외국인이 오면 주춤주춤 거리는 나의 모습이였다.
유창하게 아니여도 당당하게 말하는 사람이 대단해보였다.
자원봉사도 하고싶었지만 외국인들과도 지내고 싶어 워크캠프를 신청했다.
첫미팅때 목적지로 이동하기 위해 에어컨도 잘 안 나오는 좁은 택시에 낑겨타는 것을 계기로 어색함을 풀어나갔다.
함께 자고 일어나며 모바일게임이 아닌 게임을하고 매 식사를 같이 하면서 나는 이런 상황을 즐길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가장특별한 기억들은 베트남 아이들과의 시간이다,
내가 아는 말이라고 씬짜오(안녕)씬로이(미안해)밖에 없었지만 첫 만남에 한명한명에게 씬짜오라며 웃으며 인사했다.호기심을 가지고 보던 아이들은 이내 함께 베시시 웃어줬다.
하지만 몇몇의 남자아이들은 생각보다 과격했다.나의 때리고 도망가기도 뺨을 치고 도망가기도 했다.하지만 나쁜 아이들은 아니였다.친해지고 싶지만 표현하는 방법을 몰라 손으로 표현하는거 같았다.
그래서 나는 아이들에게 부드러운 표현을 알려주고자했다.뺨을 치고 웃는 애들이 있으면 손으로 X를 만들어 절래절래 고개를 흔들고 손을 가르켜 그 아이들의 볼을 쓰다듬어주었다.
가운데 손가락을 드는 아이들에게도 손가락 하트를 알려주었다.시간이 지날수록 아이들은 내 뺨을 쓰다듬고 손가락 하트를 보내주었다.변화에 가는 모습에 나 또한 사랑해주고 칭찬해주었다.우리는 아이들을 진심으로 대했고 아이들도 유난히 한국사람들을 따랐다.주말에는 마을에서 농장까지 20분을 걸어 올라와 아침부터 모닝콜을 해줬다.
우리는 베트남 사람들에게 호의를 참 많이 받았다.
베트남 선생님께서 팀원 모두를 초대해서 저녁을 해주시기도하고 아이들이 각자의 집으로 초대해서 집에 있는 먹을거란 먹을 것들을 꺼내주기도 했다.어떤 때에는 집에서 김장한 김치를 농장으로 가져오기도 했다.이 마음을 글로 쓴다고 다 표현이 되지는 않지만 순진함과 순수함을 잃어가던 20살 나에게 아이들은 빛이였다.
아이들 뿐만이 아니라 내가 만난 베트남 사람들 모두가 정말 따뜻했고 때 묻지 않았다.
나는 아직도 베트남워크캠프때 사진을 보면서 웃기도 그리워 울기도 한다.
베트남인(3),한국인(4),스페인인(1),일본인(1),독일인(1),벨기에인(2),이탈리아인(1)으로 구성되어있으며 총 13명이였다.
정말 워크캠프아니였으면 길가다 우연히 마주쳐도 스쳐지나가는 사람들이지 않았을까.
나에게는 시작부터 끝까지 모든 일들이 특별한 에피소드였다.
나는 항상 외국인과 자유롭게 소통하고 싶었다.
하지만 현실은 길을 물어보는 외국인이 오면 주춤주춤 거리는 나의 모습이였다.
유창하게 아니여도 당당하게 말하는 사람이 대단해보였다.
자원봉사도 하고싶었지만 외국인들과도 지내고 싶어 워크캠프를 신청했다.
첫미팅때 목적지로 이동하기 위해 에어컨도 잘 안 나오는 좁은 택시에 낑겨타는 것을 계기로 어색함을 풀어나갔다.
함께 자고 일어나며 모바일게임이 아닌 게임을하고 매 식사를 같이 하면서 나는 이런 상황을 즐길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가장특별한 기억들은 베트남 아이들과의 시간이다,
내가 아는 말이라고 씬짜오(안녕)씬로이(미안해)밖에 없었지만 첫 만남에 한명한명에게 씬짜오라며 웃으며 인사했다.호기심을 가지고 보던 아이들은 이내 함께 베시시 웃어줬다.
하지만 몇몇의 남자아이들은 생각보다 과격했다.나의 때리고 도망가기도 뺨을 치고 도망가기도 했다.하지만 나쁜 아이들은 아니였다.친해지고 싶지만 표현하는 방법을 몰라 손으로 표현하는거 같았다.
그래서 나는 아이들에게 부드러운 표현을 알려주고자했다.뺨을 치고 웃는 애들이 있으면 손으로 X를 만들어 절래절래 고개를 흔들고 손을 가르켜 그 아이들의 볼을 쓰다듬어주었다.
가운데 손가락을 드는 아이들에게도 손가락 하트를 알려주었다.시간이 지날수록 아이들은 내 뺨을 쓰다듬고 손가락 하트를 보내주었다.변화에 가는 모습에 나 또한 사랑해주고 칭찬해주었다.우리는 아이들을 진심으로 대했고 아이들도 유난히 한국사람들을 따랐다.주말에는 마을에서 농장까지 20분을 걸어 올라와 아침부터 모닝콜을 해줬다.
우리는 베트남 사람들에게 호의를 참 많이 받았다.
베트남 선생님께서 팀원 모두를 초대해서 저녁을 해주시기도하고 아이들이 각자의 집으로 초대해서 집에 있는 먹을거란 먹을 것들을 꺼내주기도 했다.어떤 때에는 집에서 김장한 김치를 농장으로 가져오기도 했다.이 마음을 글로 쓴다고 다 표현이 되지는 않지만 순진함과 순수함을 잃어가던 20살 나에게 아이들은 빛이였다.
아이들 뿐만이 아니라 내가 만난 베트남 사람들 모두가 정말 따뜻했고 때 묻지 않았다.
나는 아직도 베트남워크캠프때 사진을 보면서 웃기도 그리워 울기도 한다.
참가 후 변화와 느낀 점, 하고 싶은 이야기
나는 사람과 소통하는데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언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베트남 워크캠프를 통해 소통하는데 중요한 것은 마음이라는 것을 배웠다.
다양한 나라 사람들을 만나면서 각 나라의 언어와 표현 배울 수 있었고
서로 알수있는 기회가 없더라면 주의 깊게 보지 못 했을 기사나 이야기들에 귀 기울이게 되었다.
동남아시아다 보니 벌래도 모기도 참 많았다.
하지만 그런불편함을 감수할만큼 내가 2주동안 겪었던 추억들은 이 전의 내 삶과 비교가 되지않았다.
고민하는 누군가가 있다면 나는 당당히 말할 수 있다.
망설히는 당신!넓은 세상으로도 나아가세요!
하지만 베트남 워크캠프를 통해 소통하는데 중요한 것은 마음이라는 것을 배웠다.
다양한 나라 사람들을 만나면서 각 나라의 언어와 표현 배울 수 있었고
서로 알수있는 기회가 없더라면 주의 깊게 보지 못 했을 기사나 이야기들에 귀 기울이게 되었다.
동남아시아다 보니 벌래도 모기도 참 많았다.
하지만 그런불편함을 감수할만큼 내가 2주동안 겪었던 추억들은 이 전의 내 삶과 비교가 되지않았다.
고민하는 누군가가 있다면 나는 당당히 말할 수 있다.
망설히는 당신!넓은 세상으로도 나아가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