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후기
우간다, 나눔으로 하나된 우리
NANSANA - WAKISO DISTRICT
참가 전 준비와 마음가짐
내가 언제나 가지고 있었던 생각이 있다. 그 것은 바로 모두가 다 함께 잘 사는 세상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분명 사람들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라고 말할 것이다. 빈부격차, 부익부빈익빈 모두 어쩔 수 없는 것이다라고 말할 것이다. 어쩔 수 없는 것이라고 약자들을 가만히 방치해둘 것인가? 그 것은 요즘 소위 말하는 글로벌 시민의식에 어긋나는 사고이다. 우리는 모두 서로를 도우며 살아가야 한다. 우리는 주로 아프리카라는 곳을 유니세프의 광고 같은 공익 광고를 통해 접한다. ‘불쌍한 어린이들을 도우세요’ ‘그들에겐 100원도 매우 소중합니다’와 같은 문구와 함께 그들의 어려운 삶의 현장을 보여준다. 나는 광고를 보며 ‘내 눈으로 직접 이 모습을 봐야겠다.’라고 생각했고 이 것이 내가 우간다에 가게 된 이유이다. 여행을 좋아한다는 이유도 있었지만 내 눈으로 직접 그들의 삶이 어떠한지 보는 것이 주된 목적이었다
워크캠프에서 가장 만족스러웠던 것은 현지 친구들과의 교류가 많았다는 것이다. 그들의 생각을 공유할 수 있었다는 것이 너무 감사하다. 우리(현지인 외)는 그들과 너무나도 잘 어울렸기에 더욱 더 현실감 있게 우간다를 느낄 수 있었다. 때로는 캠프파이어를 켜놓고 밤하늘의 별을 보며 진지한 대화도 나눴다. 때로는 클럽도 가고 젊은이들만의 음담패설을 나누었다. 3주 내내 우리 캠프는 음악이 끊이질 않았다. 항상 흥겨운 음악이 흘러 나왔고, 그 음악만큼이나 우리는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약15명의 친구들은 정말 다양했다. 대표적으로 몇몇만 얘기하자면 이러하다. 손재주가 좋아서 직접 귀고리, 목걸이 등을 만들며 돈을 모아서 나중에 꼭 가게를 차릴 거라는 친구도 있었고, 가수가 꿈이라고 나중에 빅뱅과 함께 콘서트를 하겠다는 친구도 있었고, 계속 공부를 열심히 해서 IT쪽으로 취직하고 NGO도 설립할 것이라는 친구도 있었다. 첫번째 친구는 8달이 지난 지금 인터넷으로 쥬얼리류를 홍보하고 판매하고 있고, 두번째 친구는 곡도 많이 내고 우간다에서 콘서트도하고 방송에도 가끔 나온다고 한다. 마지막 친구는 방금 소식을 받았는데 이번에 장학금을 받았고, 많은 친구들의 도움을 받아 이번 12월 즈음에 작은 단체를 설립한다고 한다.(이 친구는 캠프기간 동안에도 밤새며 컴퓨터를 공부하곤 했다.) 그래서 나 또한 방금 작은 돈으로 친구를 돕기로 했다. 이렇게 우리는 지금까지도 연락하고 상부상조한다.
물론 불만족스러운 부분들도 있었다. 캠프리더의 태만함, 게으름 등이 캠프리더로써 어울리지 않았던 것 같다. 참여했던 한 현지 친구는 마약을 했었다. 분명 심성이 나쁜 친구는 아니었지만, 술과 마약을 즐겼고 일할 시간만 되면 잠만 자고 있기도 하고 했다. 현지 여자 친구들 두 명이 싸우는 일도 있었다. 이런 것들마저도 괜찮았던 이유는 함께 참여하였던 참가자들이 모두 포용력이 넓은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내가 안 좋은 시선으로 그들을 바라볼 때도 그들은 넓은 마음으로 배려하고 감싸주었다. 한 마디로 말하면 내가 참여했던 캠프는 조화가 잘 이루어졌던 캠프였다. 가족이라는 집단에 엄마, 아빠, 아들, 딸이라는 구성원들이 있다. 그리고 각각은 자신의 위치에 책임감을 갖는다. 사회도 마찬가지이다. 우리 모두는 자신의 위치에 걸맞는 책임이 있다고 생각한다. 3주라는 짧은 시간 동안 나의 책임감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아직 답은 나오지 않았지만 못 먹고 못 입는 사람을 도와야 한다는 1차원적인 개념을 넘어서, 더 깊숙이 타선진국들과의 조화를 위해 그들이 필요로 하는 것은 무엇이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뭐가 있을까 하는 생각을 지금도 하고 있다.
워크캠프에서 가장 만족스러웠던 것은 현지 친구들과의 교류가 많았다는 것이다. 그들의 생각을 공유할 수 있었다는 것이 너무 감사하다. 우리(현지인 외)는 그들과 너무나도 잘 어울렸기에 더욱 더 현실감 있게 우간다를 느낄 수 있었다. 때로는 캠프파이어를 켜놓고 밤하늘의 별을 보며 진지한 대화도 나눴다. 때로는 클럽도 가고 젊은이들만의 음담패설을 나누었다. 3주 내내 우리 캠프는 음악이 끊이질 않았다. 항상 흥겨운 음악이 흘러 나왔고, 그 음악만큼이나 우리는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약15명의 친구들은 정말 다양했다. 대표적으로 몇몇만 얘기하자면 이러하다. 손재주가 좋아서 직접 귀고리, 목걸이 등을 만들며 돈을 모아서 나중에 꼭 가게를 차릴 거라는 친구도 있었고, 가수가 꿈이라고 나중에 빅뱅과 함께 콘서트를 하겠다는 친구도 있었고, 계속 공부를 열심히 해서 IT쪽으로 취직하고 NGO도 설립할 것이라는 친구도 있었다. 첫번째 친구는 8달이 지난 지금 인터넷으로 쥬얼리류를 홍보하고 판매하고 있고, 두번째 친구는 곡도 많이 내고 우간다에서 콘서트도하고 방송에도 가끔 나온다고 한다. 마지막 친구는 방금 소식을 받았는데 이번에 장학금을 받았고, 많은 친구들의 도움을 받아 이번 12월 즈음에 작은 단체를 설립한다고 한다.(이 친구는 캠프기간 동안에도 밤새며 컴퓨터를 공부하곤 했다.) 그래서 나 또한 방금 작은 돈으로 친구를 돕기로 했다. 이렇게 우리는 지금까지도 연락하고 상부상조한다.
물론 불만족스러운 부분들도 있었다. 캠프리더의 태만함, 게으름 등이 캠프리더로써 어울리지 않았던 것 같다. 참여했던 한 현지 친구는 마약을 했었다. 분명 심성이 나쁜 친구는 아니었지만, 술과 마약을 즐겼고 일할 시간만 되면 잠만 자고 있기도 하고 했다. 현지 여자 친구들 두 명이 싸우는 일도 있었다. 이런 것들마저도 괜찮았던 이유는 함께 참여하였던 참가자들이 모두 포용력이 넓은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내가 안 좋은 시선으로 그들을 바라볼 때도 그들은 넓은 마음으로 배려하고 감싸주었다. 한 마디로 말하면 내가 참여했던 캠프는 조화가 잘 이루어졌던 캠프였다. 가족이라는 집단에 엄마, 아빠, 아들, 딸이라는 구성원들이 있다. 그리고 각각은 자신의 위치에 책임감을 갖는다. 사회도 마찬가지이다. 우리 모두는 자신의 위치에 걸맞는 책임이 있다고 생각한다. 3주라는 짧은 시간 동안 나의 책임감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아직 답은 나오지 않았지만 못 먹고 못 입는 사람을 도와야 한다는 1차원적인 개념을 넘어서, 더 깊숙이 타선진국들과의 조화를 위해 그들이 필요로 하는 것은 무엇이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뭐가 있을까 하는 생각을 지금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