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후기
인도, 15시간 기차 여행 끝에 만난 인연
Kundapur
참가 전 준비와 마음가짐
2012. 1. 1~2 <놀라운 첫 만남>
새해 첫날. 오후 3시20분 뭄바이 Lokmanya역에서 kundapur행 기차를 타고 장장 15시간에 걸친 여정끝에 무사히 미팅포인트에 도착을 했다. AC3석이라서 시원한 에어컨에 잠도 자면서 편하게 왔으나, 아직 인도 음식에 길들여지지 않은 탓에 기차안에서 먹은 음식이라곤 과자가 전부였다.
미팅시간은 오전11시. 나는 오전 6시30분에 미팅포인트에 도착을 했다. 마침 미팅포인트 장소가 Sharon Hotel이여서 나는 호텔 식당에서 아침을 해결하고 호텔로비에서 무작정 사람을 기다렸다. 그때 워크캠퍼로 보이는 사람들이 속속 도착을 했고, 우리는 지루한 시간을 달래기 위해 서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를 제외하고 외국인이 총 5~6명은 있었다. “이 친구들과 2주간 함께 하는구나”라는 설레임은 얼마가지 않았다. 캠프리더가 도착 후 우리에게 이름을 묻더니 양쪽으로 나누는 것이였다. 그렇다. 그들은 장기봉사자였다. 나는 2주의 단기봉사였고, 그들은 최소 한달이상의 장기봉사자여서 우리와 같이 지낼일은 없는 것이였다. 나와 함께 2주간 봉사를 할 사람은 한국인 두명. 그것도 모두 남자. 게다가 경상도 남자.
“설마, 숙소에 가면 다른 사람들이 있을꺼야”, “워크캠프인데 전부 한국인만 있을리가 없잖아. 이런 경우는 절대 없다고 했는데” 숙소로 가는 동안 우리끼리 이런 대화를 나누면서 혹시나 하는 1%의 희망을 놓치지 않았다. 그러나 우리에게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고, 2주간 경상도 남자 3명이서 함께 보내는 일만 기다리고 있었을 뿐이었다.
한 가지 다행인 점은, FSL India의 인턴인 Ana와 장기봉사자인 Julia, Shinthia와 함께 일을 하는 것이였다.
비록 워크캠퍼는 한국인뿐이였지만, 같이 봉사를 하는 외국인이 있어서 다행이었다.
2012. 1. 2 <Indian Welcome>
첫 날. 간단히 오리엔테이션을 한 뒤, 저녁에 인도식 환영식을 했다. 미간에 빨간 것을 바르고, 커리색깔의 가루를 양쪽 볼에 칠한 다음 목에는 꽃을 걸고 식을 치뤘다. 그렇게 우리는 인도인이 될 준비를 마쳤다.
2012. 1. 3 <첫 Work!>
실질적으로 일한 첫 번째 날이다. 우리의 일은 TIC(Turtle Information Center)를 짓는 일이다.
어부들에게 바다거북이의 소중함과 왜 보호를 해야하는지 알려주는 포스터를 붙이기 위함이다. 혹시 바다거북이의 알을 보거든 FSL India 사무실로 연락을 달라는 포스터도 있고, 그림만으로 바다거북이의 중요성을 알리는 포스터도 있다. 뜨거운 태양아래, 코코넛을 잘라 만든 도구를 들고 땅을 열심히 판다. 대나무를 세워 축을 세우기 위함이다. 로프로 대나무끼리 교차된 지점을 묶고, 위에는 지붕을 덮는다.
그렇게 우리의 첫 일은 끝이 났고, 그날 저녁은 Country Presentation 프로그램이 있었다.
우리는 열심히 2절지에 그림도 그리고, 가지고 온 복주머니도 소개했다.
매우 관심을 가져줬으나, 복주머니를 다시 내 주머니로 넣자 사람들의 표정에는 섭섭함이 묻어났다.
워크캠프가 끝나는 날! 한명을 골라서 주자고 결심을 했다.
2012 1. 5 <저절로 소식(小食)하게 만드는 손 맛>
인도에 오기 전 가장 많이 들었던 말로 “인도사람은 왼손으로 X을 닦고, 오른손으로 밥을 먹는다”이다.
오늘 드디어 손으로 밥을 먹는 날이 왔다. 장소는 숙소 근처 temple인데, 마침 그날 축제가 있던터라 마을 주민들이 모두 사원으로 모여들었다. 사원 근처 공터에 많은 테이블을 붙여놓고 사람들이 일렬로 앉아서 함께 식사를 한다. 우리가 들어서자 현지 사람들은 우리를 신기하게 쳐다봤고, 우리가 손으로 밥을 먹자 더욱 놀라는 표정을 짓기도 했다. 생각보다 먹을만했다. 밥에 힘이 없어서 인도사람들은 수저를 쓰지 않고 손으로 밥을 말아서 입안에 넣는다. 나는 아직 서툴러서 제대로 입안에 넣지 못하고 손가락만 빨고 있었다. 신기하게도, 조금만 먹어도 배부른 느낌이 드는 것이었다. 저절로 소식을 하게 되었다.
밥을 다 먹은 후에는 수돗가에 가서 손을 씻는데, 카레나 다른 양념들 향신료가 강해서 비누로 아무리 씻어도 손톱 사이에 파고든 양념과 냄새는 하루 이상을 가곤 했다.
2012. 1. 6 <지역주민들과의 만남>
오늘 프로그램은 지역 주민들과 직접 만나는 것이다. 바다거북이를 보호해야 하는 이유를 나타내는 글귀와 그림이 그려진 포스터를 들고 해변가에 집을 짓고 사는 주민들에게 직접 찾아가, 우리의 프로젝트를 설명하는 일이다. 그들은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했고, 쿤다푸르라는 마을이 시골이라 영어를 잘 하지 못한다. 그래서 우리는 힌디어를 하나씩 배웠다. 내가 배운 말은 “카다라메 락시시”라는 말로써, 영어로는 “Let’s save sea turtle>이다. 현지 코디네이터가 프로젝트 설명이 끝나면 우리는 돌아가면서 배운 힌디어를 말한다. 인도인은 특이하게 잘 알겠다는 의미로 고개를 절래절래 흔든다. 우리가 서툰 힌디어를 하고 나면 그들은 고개를 절래 흔들면서 밝게 웃어준다.
한집도 빼놓지 않고 모두 방문하고 돌아가는 길목에 만나는 사람들에게도 일일이 붙잡아서 우리의 프로젝트를 설명했다. 자전거나 오토바이를 타고 가는 사람들고 관심있게 설명을 들어주니 감사했다. 그냥 지나칠 수도 있을 텐데 인도인은 정말 배려심이 많고 친절하다.
2012. 1. 9 <나는 연예인이다>
워크캠프 둘째 주가 시작되었다. 오늘은 이전과 다른. 색다른 프로그램인 “Poppet show”를 하는 날이다.
손인형을 가지고 연극을 하는 프로그램인데, 초등학교에 가서 손으로만 인형을 움직여서 연극을 하는 것이다. 나의 역할은 엄마 바다거북인 ‘아샤’이다. 아주 중요한 역할이고 시작과 끝을 내가 맺는다.
오전엔 숙소에서 열심히 연습을 한 뒤, 오후에 초등학교를 방문해서 연극을 성황리에 마치고, 단체 컷을 찍고 무대에서 내려가는 중. 한 아이가 나에게 와서 사인(?)을 요청했다. 그 아이는 공책과 볼펜을 들고와서 내 이름을 써달라는 것이었다. 그러자 다른 아이까지 줄줄이 나에게 사인을 요구했다.
나는 한글로 내 이름을 또박또박하게 써주었다. 공책이 없는 아이는 손바닥에다가 써달라고 손을 내밀기도 했다. 한 명씩 사인을 해주고 교실을 나왔다. 나와서 운동장을 가로질러 가는 동안에도 아이들은 우리에게 손을 열심히 흔들었고, 내가 흔들어주면 아이들은 정말 밝게 웃으면서 더 열심히 손을 흔들었다.
인도 아이들의 순수함을 알 수 있는 순간이었다. 아이들은 항상 밝게 웃었고, 특히 사진 찍는 것을 매우 좋아했다. 그 웃음은 아직도 내 기억속에 생생히 남아있다. 그 중에 한 아이는 나에게 직접 만든 꽃을 선물했다. 그 꽃은 Lotus 즉, 인도의 국화였다. 천으로 만든 꽃이였지만, 색깔이 아주 예뻤다.
그 꽃은 아직도 내 서랍속에 잘 간직하고 있다. 봉사자의 입장으로 인도에 왔지만, 순수한 아이들에게서 많은 것을 배우고 돌아가는 기분이 많이 들었다.
2012. 1. 10 <오늘은 내가 요리사>
이날은 우리가 직접 음식을 해서 먹는 날이었다. 우리가 가진 것은 라면 하나 뿐이었다.
결국 우리는 계란말이를 하기로 결정했고, 마트에 들러서 달걀과 소금, 설탕, 캐첩을 샀다.
지금까지 요리라곤 라면말고는 해본적이 없어서 인터넷으로 열심히 계란말이 만드는법을 공부했다.
3번의 연습을 통해 적절한 소금양을 도출해냈고, 우리는 당근까지 넣어서 계란말이를 완성했다.
반응은 아주 좋았다. 맛도 아주 좋았고, 처음 해보는 솜씨치고는 괜찮았다.
그리고 라면!! 라면을 너무 먹고 싶었는데 정말 맛있었다. 하지만, 인도인의 특성상 스프에 쇠고기가 들어있어서 우리만 먹게되었다. 멕시코인인 Ana는 멕시코 음식과 스파게티까지 함께 했다.
맛은 별로 없었다. 지금 생각하면 미안하다. 너무 많이 남았기 때문이다.
2012. 1. 11~12 <아주 색다른 경험>
모든 프로그램이 끝나고. 우린 저녁식사를 하던 도중. 전화 한통을 받았다.
내일(12일) 새벽에 새끼거북이가 부화를 할 예정이라는 전화였다. 우리는 9시 막차 버스를 타기 위해서 침낭, 세면도구, 베개를 챙기고 막차 버스에 간신히 올라탔다. 베개를 들고 버스를 타기는 처음이었다.
우리의 가장 중요한 일인. 정말 real work는 새끼거북이를 안전하게 바다로 내보내는 일이다.
캠프 코디네이터는 자원봉사자중 새끼거북이가 알을 깨고 나오는 모습을 보는 사람은 극소수라고 했다.
그렇다. 우리는 비록 한국인 워크캠퍼 3명이지만, 기막힌 행운을 가진 럭키가이들이였다.
그날 밤 우리는 해변에 침낭을 깔고 하늘을 지붕삼아 잠을 잤다. 이른 새벽. 우리는 깨어나 새끼거북이들이 나오는 것을 목격했다. 아직 힘이 없어서 직접깨서 모래밖으로 나오지 못해서 직접 손으로 꺼내줘야 한다. 그렇게 총 86마리가 새벽에 깨어났다. 새로운 생명의 탄생을 직접 눈으로 목격하니 감회가 새로웠다. 이게 진짜 우리의 일이구나 하는 것을 깨달았다. 이제 하루밖에 남지 않은 워크캠프에서 마지막에 아주 특별한 경험을 했다.
우리는 오후 5시. 햇볕이 약해질 때쯤, 새끼거북이들을 바다로 내보냈다. 이 작은 거북이들이 저 드넓은 바다속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하는 걱정도 들고, 부디 죽지 말고 건강히 자라길 바랐다.
2012. 1. 13 <아쉬움>
2주간의 워크캠프가 끝이 났다. 매일 매일 하던 daily meeting도 오늘이 마지막이다. 15일까지 워크캠프 기간이지만 13일날 떠나도 된다는 허락을 받았고, 우리는 짐을 싸고 정들었던 게스트하우스를 나올 준비를 했다. 거실에 둘러 앉아 마지막 meeting을 했다. 나는 아쉬움이 가장 많이 남았다. 2주가 너무 짧고, 그저 일한 기억밖에는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내가 좀 더 적극적으로 다가갔으면 더 좋았을 거라는 후회가 남고, 2주간 정도 들고 같이 생활하면서 웃고 게임도 같이 하고, 서로에 대해서 알기에는 부족한 시간이었지만, 이렇게 헤어지려니 몹시 아쉬웠다.
우리는 서로 페이스북 아이디를 주고 받고, 아쉬움을 뒤로한 채, 다시 만나자는 약속을 하고 그렇게 숙소를 나섰다. 이 2주간의 경험이 내 인생에 있어서는 절대 잊지 못할 소중한 추억이고, 그동안 만났던 사람들 하나하나가 나에겐 아주 중요한 인연이다. 서투른 영어로 의사소통에 문제도 있었지만, 손짓 발짓으로 서로를 조금씩 이해하려고 노력했던 모습들이 기억에 많이 남는다.
나에게 다시 한번 워크캠프에 참여할 기회가 생긴다면, 그때는 결코 후회가 남지 않도록 적극적으로 먼저 다가가고 싶다.
새해 첫날. 오후 3시20분 뭄바이 Lokmanya역에서 kundapur행 기차를 타고 장장 15시간에 걸친 여정끝에 무사히 미팅포인트에 도착을 했다. AC3석이라서 시원한 에어컨에 잠도 자면서 편하게 왔으나, 아직 인도 음식에 길들여지지 않은 탓에 기차안에서 먹은 음식이라곤 과자가 전부였다.
미팅시간은 오전11시. 나는 오전 6시30분에 미팅포인트에 도착을 했다. 마침 미팅포인트 장소가 Sharon Hotel이여서 나는 호텔 식당에서 아침을 해결하고 호텔로비에서 무작정 사람을 기다렸다. 그때 워크캠퍼로 보이는 사람들이 속속 도착을 했고, 우리는 지루한 시간을 달래기 위해 서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를 제외하고 외국인이 총 5~6명은 있었다. “이 친구들과 2주간 함께 하는구나”라는 설레임은 얼마가지 않았다. 캠프리더가 도착 후 우리에게 이름을 묻더니 양쪽으로 나누는 것이였다. 그렇다. 그들은 장기봉사자였다. 나는 2주의 단기봉사였고, 그들은 최소 한달이상의 장기봉사자여서 우리와 같이 지낼일은 없는 것이였다. 나와 함께 2주간 봉사를 할 사람은 한국인 두명. 그것도 모두 남자. 게다가 경상도 남자.
“설마, 숙소에 가면 다른 사람들이 있을꺼야”, “워크캠프인데 전부 한국인만 있을리가 없잖아. 이런 경우는 절대 없다고 했는데” 숙소로 가는 동안 우리끼리 이런 대화를 나누면서 혹시나 하는 1%의 희망을 놓치지 않았다. 그러나 우리에게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고, 2주간 경상도 남자 3명이서 함께 보내는 일만 기다리고 있었을 뿐이었다.
한 가지 다행인 점은, FSL India의 인턴인 Ana와 장기봉사자인 Julia, Shinthia와 함께 일을 하는 것이였다.
비록 워크캠퍼는 한국인뿐이였지만, 같이 봉사를 하는 외국인이 있어서 다행이었다.
2012. 1. 2 <Indian Welcome>
첫 날. 간단히 오리엔테이션을 한 뒤, 저녁에 인도식 환영식을 했다. 미간에 빨간 것을 바르고, 커리색깔의 가루를 양쪽 볼에 칠한 다음 목에는 꽃을 걸고 식을 치뤘다. 그렇게 우리는 인도인이 될 준비를 마쳤다.
2012. 1. 3 <첫 Work!>
실질적으로 일한 첫 번째 날이다. 우리의 일은 TIC(Turtle Information Center)를 짓는 일이다.
어부들에게 바다거북이의 소중함과 왜 보호를 해야하는지 알려주는 포스터를 붙이기 위함이다. 혹시 바다거북이의 알을 보거든 FSL India 사무실로 연락을 달라는 포스터도 있고, 그림만으로 바다거북이의 중요성을 알리는 포스터도 있다. 뜨거운 태양아래, 코코넛을 잘라 만든 도구를 들고 땅을 열심히 판다. 대나무를 세워 축을 세우기 위함이다. 로프로 대나무끼리 교차된 지점을 묶고, 위에는 지붕을 덮는다.
그렇게 우리의 첫 일은 끝이 났고, 그날 저녁은 Country Presentation 프로그램이 있었다.
우리는 열심히 2절지에 그림도 그리고, 가지고 온 복주머니도 소개했다.
매우 관심을 가져줬으나, 복주머니를 다시 내 주머니로 넣자 사람들의 표정에는 섭섭함이 묻어났다.
워크캠프가 끝나는 날! 한명을 골라서 주자고 결심을 했다.
2012 1. 5 <저절로 소식(小食)하게 만드는 손 맛>
인도에 오기 전 가장 많이 들었던 말로 “인도사람은 왼손으로 X을 닦고, 오른손으로 밥을 먹는다”이다.
오늘 드디어 손으로 밥을 먹는 날이 왔다. 장소는 숙소 근처 temple인데, 마침 그날 축제가 있던터라 마을 주민들이 모두 사원으로 모여들었다. 사원 근처 공터에 많은 테이블을 붙여놓고 사람들이 일렬로 앉아서 함께 식사를 한다. 우리가 들어서자 현지 사람들은 우리를 신기하게 쳐다봤고, 우리가 손으로 밥을 먹자 더욱 놀라는 표정을 짓기도 했다. 생각보다 먹을만했다. 밥에 힘이 없어서 인도사람들은 수저를 쓰지 않고 손으로 밥을 말아서 입안에 넣는다. 나는 아직 서툴러서 제대로 입안에 넣지 못하고 손가락만 빨고 있었다. 신기하게도, 조금만 먹어도 배부른 느낌이 드는 것이었다. 저절로 소식을 하게 되었다.
밥을 다 먹은 후에는 수돗가에 가서 손을 씻는데, 카레나 다른 양념들 향신료가 강해서 비누로 아무리 씻어도 손톱 사이에 파고든 양념과 냄새는 하루 이상을 가곤 했다.
2012. 1. 6 <지역주민들과의 만남>
오늘 프로그램은 지역 주민들과 직접 만나는 것이다. 바다거북이를 보호해야 하는 이유를 나타내는 글귀와 그림이 그려진 포스터를 들고 해변가에 집을 짓고 사는 주민들에게 직접 찾아가, 우리의 프로젝트를 설명하는 일이다. 그들은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했고, 쿤다푸르라는 마을이 시골이라 영어를 잘 하지 못한다. 그래서 우리는 힌디어를 하나씩 배웠다. 내가 배운 말은 “카다라메 락시시”라는 말로써, 영어로는 “Let’s save sea turtle>이다. 현지 코디네이터가 프로젝트 설명이 끝나면 우리는 돌아가면서 배운 힌디어를 말한다. 인도인은 특이하게 잘 알겠다는 의미로 고개를 절래절래 흔든다. 우리가 서툰 힌디어를 하고 나면 그들은 고개를 절래 흔들면서 밝게 웃어준다.
한집도 빼놓지 않고 모두 방문하고 돌아가는 길목에 만나는 사람들에게도 일일이 붙잡아서 우리의 프로젝트를 설명했다. 자전거나 오토바이를 타고 가는 사람들고 관심있게 설명을 들어주니 감사했다. 그냥 지나칠 수도 있을 텐데 인도인은 정말 배려심이 많고 친절하다.
2012. 1. 9 <나는 연예인이다>
워크캠프 둘째 주가 시작되었다. 오늘은 이전과 다른. 색다른 프로그램인 “Poppet show”를 하는 날이다.
손인형을 가지고 연극을 하는 프로그램인데, 초등학교에 가서 손으로만 인형을 움직여서 연극을 하는 것이다. 나의 역할은 엄마 바다거북인 ‘아샤’이다. 아주 중요한 역할이고 시작과 끝을 내가 맺는다.
오전엔 숙소에서 열심히 연습을 한 뒤, 오후에 초등학교를 방문해서 연극을 성황리에 마치고, 단체 컷을 찍고 무대에서 내려가는 중. 한 아이가 나에게 와서 사인(?)을 요청했다. 그 아이는 공책과 볼펜을 들고와서 내 이름을 써달라는 것이었다. 그러자 다른 아이까지 줄줄이 나에게 사인을 요구했다.
나는 한글로 내 이름을 또박또박하게 써주었다. 공책이 없는 아이는 손바닥에다가 써달라고 손을 내밀기도 했다. 한 명씩 사인을 해주고 교실을 나왔다. 나와서 운동장을 가로질러 가는 동안에도 아이들은 우리에게 손을 열심히 흔들었고, 내가 흔들어주면 아이들은 정말 밝게 웃으면서 더 열심히 손을 흔들었다.
인도 아이들의 순수함을 알 수 있는 순간이었다. 아이들은 항상 밝게 웃었고, 특히 사진 찍는 것을 매우 좋아했다. 그 웃음은 아직도 내 기억속에 생생히 남아있다. 그 중에 한 아이는 나에게 직접 만든 꽃을 선물했다. 그 꽃은 Lotus 즉, 인도의 국화였다. 천으로 만든 꽃이였지만, 색깔이 아주 예뻤다.
그 꽃은 아직도 내 서랍속에 잘 간직하고 있다. 봉사자의 입장으로 인도에 왔지만, 순수한 아이들에게서 많은 것을 배우고 돌아가는 기분이 많이 들었다.
2012. 1. 10 <오늘은 내가 요리사>
이날은 우리가 직접 음식을 해서 먹는 날이었다. 우리가 가진 것은 라면 하나 뿐이었다.
결국 우리는 계란말이를 하기로 결정했고, 마트에 들러서 달걀과 소금, 설탕, 캐첩을 샀다.
지금까지 요리라곤 라면말고는 해본적이 없어서 인터넷으로 열심히 계란말이 만드는법을 공부했다.
3번의 연습을 통해 적절한 소금양을 도출해냈고, 우리는 당근까지 넣어서 계란말이를 완성했다.
반응은 아주 좋았다. 맛도 아주 좋았고, 처음 해보는 솜씨치고는 괜찮았다.
그리고 라면!! 라면을 너무 먹고 싶었는데 정말 맛있었다. 하지만, 인도인의 특성상 스프에 쇠고기가 들어있어서 우리만 먹게되었다. 멕시코인인 Ana는 멕시코 음식과 스파게티까지 함께 했다.
맛은 별로 없었다. 지금 생각하면 미안하다. 너무 많이 남았기 때문이다.
2012. 1. 11~12 <아주 색다른 경험>
모든 프로그램이 끝나고. 우린 저녁식사를 하던 도중. 전화 한통을 받았다.
내일(12일) 새벽에 새끼거북이가 부화를 할 예정이라는 전화였다. 우리는 9시 막차 버스를 타기 위해서 침낭, 세면도구, 베개를 챙기고 막차 버스에 간신히 올라탔다. 베개를 들고 버스를 타기는 처음이었다.
우리의 가장 중요한 일인. 정말 real work는 새끼거북이를 안전하게 바다로 내보내는 일이다.
캠프 코디네이터는 자원봉사자중 새끼거북이가 알을 깨고 나오는 모습을 보는 사람은 극소수라고 했다.
그렇다. 우리는 비록 한국인 워크캠퍼 3명이지만, 기막힌 행운을 가진 럭키가이들이였다.
그날 밤 우리는 해변에 침낭을 깔고 하늘을 지붕삼아 잠을 잤다. 이른 새벽. 우리는 깨어나 새끼거북이들이 나오는 것을 목격했다. 아직 힘이 없어서 직접깨서 모래밖으로 나오지 못해서 직접 손으로 꺼내줘야 한다. 그렇게 총 86마리가 새벽에 깨어났다. 새로운 생명의 탄생을 직접 눈으로 목격하니 감회가 새로웠다. 이게 진짜 우리의 일이구나 하는 것을 깨달았다. 이제 하루밖에 남지 않은 워크캠프에서 마지막에 아주 특별한 경험을 했다.
우리는 오후 5시. 햇볕이 약해질 때쯤, 새끼거북이들을 바다로 내보냈다. 이 작은 거북이들이 저 드넓은 바다속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하는 걱정도 들고, 부디 죽지 말고 건강히 자라길 바랐다.
2012. 1. 13 <아쉬움>
2주간의 워크캠프가 끝이 났다. 매일 매일 하던 daily meeting도 오늘이 마지막이다. 15일까지 워크캠프 기간이지만 13일날 떠나도 된다는 허락을 받았고, 우리는 짐을 싸고 정들었던 게스트하우스를 나올 준비를 했다. 거실에 둘러 앉아 마지막 meeting을 했다. 나는 아쉬움이 가장 많이 남았다. 2주가 너무 짧고, 그저 일한 기억밖에는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내가 좀 더 적극적으로 다가갔으면 더 좋았을 거라는 후회가 남고, 2주간 정도 들고 같이 생활하면서 웃고 게임도 같이 하고, 서로에 대해서 알기에는 부족한 시간이었지만, 이렇게 헤어지려니 몹시 아쉬웠다.
우리는 서로 페이스북 아이디를 주고 받고, 아쉬움을 뒤로한 채, 다시 만나자는 약속을 하고 그렇게 숙소를 나섰다. 이 2주간의 경험이 내 인생에 있어서는 절대 잊지 못할 소중한 추억이고, 그동안 만났던 사람들 하나하나가 나에겐 아주 중요한 인연이다. 서투른 영어로 의사소통에 문제도 있었지만, 손짓 발짓으로 서로를 조금씩 이해하려고 노력했던 모습들이 기억에 많이 남는다.
나에게 다시 한번 워크캠프에 참여할 기회가 생긴다면, 그때는 결코 후회가 남지 않도록 적극적으로 먼저 다가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