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후기
아이슬란드, 낭만은 잠시 접어두세요
Easter Camp – Human rights ambassadors in Reykjavi
참가 전 준비와 마음가짐
영국에서 어학연수를 하며 여행계획을 세우던 중, 친구와 아이슬란드 워크캠프에 대해서 알게 되었고, 지원을 하게 되었다. 다른 나라에 비해 훨씬 비쌌던 항공료를 감수하면서까지 아이슬란드에 대한 열망이 있었고, 큰 꿈과 기대를 가득 안고 그 곳에 가게 되었다. 자유 시간이 많을 거라는 인포싯을 보았기 때문에 Reykjavik 주변 여행 계획을 생각하고 있었다. 가장 저렴한 새벽 비행기를 타고 아침에 도착했다. 피곤한 몸을 이끌고 본부인 듯 보이는 white house를 찾아갔다. 처음 건물을 보는 순간, ‘그래, 봉사활동을 온 거니까,’ 라며 스스로를 끊임없이 합리화할 정도로 형편이 없었다. 그 건물에서 50m 떨어진 곳이 나와 친구와 다른 나라의 친구들이 묵을 숙소였다. 짐을 풀고, white house 에서 리더가 이끄는 자기소개 시간을 갖고, 서로의 얼굴도 그려주고, 그 시간 동안 정말 재미있고 설렜다. 원래 리더는 두 명이지만, 한 명은 다른 나라에 일 때문에 일주일 뒤에 오게 되어 한 명이 두 명의 몫을 해야 했다. 그래서 조금 허술해 보이는 계획도 이해심으로 감싸줄 수 있었다. 팀을 정해서 장을 보고, 요리를 하며 함께 식사를 했다. 다른 나라 음식을 이렇게 직접 먹어보기는 처음 이여서 신기하고 너무 맛있었다.
그 다음날, 인권에 대해 공부하는 친구가 프레젠테이션을 하고 토론하는 시간을 가졌다. 24년의 내 인생 동안, 한번도 나의 인권은 물론이거니와, 남의 인권에 대해 생각을 해본 적이 없어서 새롭고 흥미로웠다. 그리고 각자 샌드위치를 싸서 인권 센터에 가서 인권에 대한 또 다른 프레젠테이션을 듣고, 후에 공원에서 싸온 샌드위치로 점심을 먹었다. 너무 평화로웠다.
다음날, 원래 주 계획은 고등학교에 가서 공연을 하는 거라고 알고 있었는데, 리더의 말대로 비디오 팀, 음악 팀, 프레젠테이션 팀으로 나눠졌다. 난 비디오 팀에 들어갔는데, 인권에 대한 비디오를 어떻게 해야 할지 난감했다. 팀 활동은 하루에 1~2시간 정도 했는데, 우리 팀은 주장 강한 독일 친구의 말대로 상황을 설정해, 이야기를 만들기로 했다. 그러자 프랑스 친구가 자기가 주인공을 한다고, 마지막 장면은 황혼을 배경으로 꼭 하고 싶고, 혼자 나가서 찍고 오겠다고 했다. 얘기하면서 저 나라 친구들은 우리 나라의 토론 방식과 많이 다르구나, 느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팀 활동이 흐지부지되었고, 리더도 아무런 계획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침에는 몇 시에 일어나야 하는지, 점심은 몇 시에 먹는지, 또 저녁은 몇 시에 먹는지, 활동은 몇 시부터 몇 시까지 해야 되는지, 리더는 아무것도 몰랐다. 나는 물론이거니와 구성원들도 점점 무기력 해지기 시작했다. 그 다음날, 한 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 다음날도 역시 한 건 없었다, 뭘 했는지 기억이 안 날 정도로.
또, 참 궁금한 점은, 리더를 보조하는 프랑스 친구가 있었는데, 그 친구와는 영어로 소통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준비가 안 되어 있었다. 그저 프랑스어만 할 줄 알았다. 이 캠프의 기본 언어가 영어라고 해 놓고, 영어도 못하는 보조를 보조로 채용을 한 게 어이가 없었다. 한 번은 야채 위주의 저녁 식사가 나오자, 그 친구가 불평을 했었는데, 이유가 자신은 육식주의자였기 때문이다. 겨우 번역기를 이용해 이야기를 해 본 결과, 그 친구는 봉사 기구의 리더가 되고 싶다고 했다. 저런 친구가 리더가 되면 이런 캠프가 악순환으로 계속 될 것 같은 걱정이 들었다.
그런 할 일없는 하루 하루를 보내고, excursion을 가게 되었는데, 그건 정말 재미있었다. 여러 관광지를 보며, 난 오랜만에 자유로웠다.
캠프의 막바지에 들어섰을 때였다. 이제 학교에 가야 하기 때문에 뭔가를 해야 했다. 급한 대로 음악 팀이 만든 노래를 비디오 팀과 음악 팀이 부르기로 했다. 그 다음날, 학교 급식소에서 나름 성공리에 노래를 부르고, 캠프 활동이 끝났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내가 2주 동안 뭘 했는지 기억이 안 났다. Bonus 마트에서 장보고, 먹고, 가끔 여행간 게 다였다. 나의 시간과 돈이 너무 아까웠다. 이러려고 온 게 아닌데…
팀원들 대부분이 똑똑했고, 그 친구들도 뭔가를 얻고자, 열정을 가지고 왔던 게 분명할 텐데, 아무런 활동도 하지 않으니, 캠프 내내 같이 지겹다, 심심하다, 등 불평만 했다.
마지막 날, 새벽 비행기를 타기 위해 배낭을 짊어지고 친구들과 공항으로 향했다. 마지막 날, 정말 행복했다. 드디어 아이슬란드를 떠날 수 있구나, 라는 해방감을 느꼈다. 공항에서 헤어지기 전, 독일 친구에게 물어봤다. 다른 캠프 한 번 더 하고 싶으냐고. 그 친구는 안 할 것 같다고 했다. 나도 물론 아이슬란드로는 절대 워크 캠프로 오지 않을 거다. 그리고 누군가가 아이슬란드고 워크캠프에 간다고 하면 한 번 더 고려해 보라고 할 것이다.
그 다음날, 인권에 대해 공부하는 친구가 프레젠테이션을 하고 토론하는 시간을 가졌다. 24년의 내 인생 동안, 한번도 나의 인권은 물론이거니와, 남의 인권에 대해 생각을 해본 적이 없어서 새롭고 흥미로웠다. 그리고 각자 샌드위치를 싸서 인권 센터에 가서 인권에 대한 또 다른 프레젠테이션을 듣고, 후에 공원에서 싸온 샌드위치로 점심을 먹었다. 너무 평화로웠다.
다음날, 원래 주 계획은 고등학교에 가서 공연을 하는 거라고 알고 있었는데, 리더의 말대로 비디오 팀, 음악 팀, 프레젠테이션 팀으로 나눠졌다. 난 비디오 팀에 들어갔는데, 인권에 대한 비디오를 어떻게 해야 할지 난감했다. 팀 활동은 하루에 1~2시간 정도 했는데, 우리 팀은 주장 강한 독일 친구의 말대로 상황을 설정해, 이야기를 만들기로 했다. 그러자 프랑스 친구가 자기가 주인공을 한다고, 마지막 장면은 황혼을 배경으로 꼭 하고 싶고, 혼자 나가서 찍고 오겠다고 했다. 얘기하면서 저 나라 친구들은 우리 나라의 토론 방식과 많이 다르구나, 느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팀 활동이 흐지부지되었고, 리더도 아무런 계획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침에는 몇 시에 일어나야 하는지, 점심은 몇 시에 먹는지, 또 저녁은 몇 시에 먹는지, 활동은 몇 시부터 몇 시까지 해야 되는지, 리더는 아무것도 몰랐다. 나는 물론이거니와 구성원들도 점점 무기력 해지기 시작했다. 그 다음날, 한 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 다음날도 역시 한 건 없었다, 뭘 했는지 기억이 안 날 정도로.
또, 참 궁금한 점은, 리더를 보조하는 프랑스 친구가 있었는데, 그 친구와는 영어로 소통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준비가 안 되어 있었다. 그저 프랑스어만 할 줄 알았다. 이 캠프의 기본 언어가 영어라고 해 놓고, 영어도 못하는 보조를 보조로 채용을 한 게 어이가 없었다. 한 번은 야채 위주의 저녁 식사가 나오자, 그 친구가 불평을 했었는데, 이유가 자신은 육식주의자였기 때문이다. 겨우 번역기를 이용해 이야기를 해 본 결과, 그 친구는 봉사 기구의 리더가 되고 싶다고 했다. 저런 친구가 리더가 되면 이런 캠프가 악순환으로 계속 될 것 같은 걱정이 들었다.
그런 할 일없는 하루 하루를 보내고, excursion을 가게 되었는데, 그건 정말 재미있었다. 여러 관광지를 보며, 난 오랜만에 자유로웠다.
캠프의 막바지에 들어섰을 때였다. 이제 학교에 가야 하기 때문에 뭔가를 해야 했다. 급한 대로 음악 팀이 만든 노래를 비디오 팀과 음악 팀이 부르기로 했다. 그 다음날, 학교 급식소에서 나름 성공리에 노래를 부르고, 캠프 활동이 끝났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내가 2주 동안 뭘 했는지 기억이 안 났다. Bonus 마트에서 장보고, 먹고, 가끔 여행간 게 다였다. 나의 시간과 돈이 너무 아까웠다. 이러려고 온 게 아닌데…
팀원들 대부분이 똑똑했고, 그 친구들도 뭔가를 얻고자, 열정을 가지고 왔던 게 분명할 텐데, 아무런 활동도 하지 않으니, 캠프 내내 같이 지겹다, 심심하다, 등 불평만 했다.
마지막 날, 새벽 비행기를 타기 위해 배낭을 짊어지고 친구들과 공항으로 향했다. 마지막 날, 정말 행복했다. 드디어 아이슬란드를 떠날 수 있구나, 라는 해방감을 느꼈다. 공항에서 헤어지기 전, 독일 친구에게 물어봤다. 다른 캠프 한 번 더 하고 싶으냐고. 그 친구는 안 할 것 같다고 했다. 나도 물론 아이슬란드로는 절대 워크 캠프로 오지 않을 거다. 그리고 누군가가 아이슬란드고 워크캠프에 간다고 하면 한 번 더 고려해 보라고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