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후기
인도 Mysore, 스펙 이상의 값진 경험
Mysore
참가 전 준비와 마음가짐
워크캠프 2주를 마치고 자유여행 3주를 더하고 귀국한지 5일이 지났지만 20년을 넘도록 살아왔던 한국이 이렇게 이국적으로 느껴지기는 처음인 것 같다. 물론 5주라는 시간이 그리 짧은 시간은 아니지만 인도라는 나라가 색깔이 너무 짙어서인지 쉽사리 몸에서 인도의 냄새가 떨쳐지지 않는다. 인천공항에서 인도로 가는 비행기에 몸을 싣는 순간부터 다시 한국으로 돌아오는 날까지가 마치 어제 일인냥 파노라마처럼 스쳐 지나간다. 처음 워크캠프 약속 장소로 갔을 때 나를 포함한 한국인 3명 뿐이었다. 한시간 정도 기다린 후 다른 나라 참가자들이 늦겠다는 연락을 받고나서야 베이스캠프로 발을 옮겼다. 사실 한국 사람보다는 다른 나라 참가자들이 더 많이 와서 좀 더 많은 문화교류를 하고 싶었기 때문에 외국친구들은 안오나 하면서 걱정이 되는 한편, 다른 한편으로는 한국사람이 약속을 참 잘 지키구나 하는 묘한 뿌듯함도 들었다. 그러고는 워크캠프 장소로 도착, 모든 친구들이 다 모이고 인솔자와 함께 앞으로 해야될 일들과 모든 것을 소개받다가 남자숙소를 보여주는 순간 걱정을 감출 수가 없었다. 여자숙소는 여자들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해서 인솔자의 집의 방 하나를 내서 숙소로 사용했지만 남자숙소는 마을에서도 쓰지 않던 창고 같은 집이었다. 오래전부터 쓰지 않았는지 수북히 쌓인 먼지와 곳곳에 거미줄 그리고 벽을 타고 줄지어 다니는 벌레들, 생긴 것과 다르게 벌레와 불청결한 것에 민감한 나로서는 이번 rural camp는 너무나도 힘든 시간이 될 거 같았다. 첫날은 별다른 일정없이 오리엔테이션과 마을 소개를 받고 남자숙소로 돌아갔다. 잠자리가 낯설기도 하고 내가 견디기 싫어하는 환경도 갖춰진 바람에 날밤을 꼬박 세우고 다음날 아침 우리가 일할 학교로 갔다. 처음 학교에 도착했을 때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열악한 교육환경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부끄럽지만 맨 처음 지인을 통해 워크캠프를 추천 받았을 때 그 지인도 나도 봉사활동이 원래의 목적이 아니었다. 사실 누군가를 돕겠다는 봉사의 목적보다는 나 자신을 위한 스펙과 이력을 위해서 아니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봉사를 한다는 것도 누군가를 돕고싶다는 자발적인 취지가 아니라 남을 위해 봉사할줄 아는 나의 모습을 보고 싶었다. 이런 나의 마음가짐 때문에 문화차이라고도 할 수 있겠지만 모두가 맨발에 다 떨어져가는 교복, 햇빛도 잘 들어오지 않는 교실 사물함이나 책상도 없이 그냥 달랑 하나의 교실을 사용하면서 있는 아이들을 보고 오히려 더 짠한 마음이 들었다. 그런 짠한 마음이 드는 것도 잠시 아이들의 때묻지 않은 미소가 우리를 반겼고 말은 통하지 않지만 만국공통의 바디랭기지와 마음과 마음으로 하나 되는 나를 찾을 수 있었다. 다른 참가국 친구들의 동요나 놀이 중 벨쓰루의 아이들과 가장 친해질 수 있는 계기는 우리나라 놀이인 ‘동대문을 열어라’였다. 어눌하지만 동동동대문을 열어라~ 남남남대문을 열어라~ 하면서 인도의 어느 한 분교에서 우리나라 놀이와 노래가 울려퍼질 때 알 수 없는 자랑스러운 마음이 벅차올랐다. 그렇게 아이들과 친해진 후 우리나라로 따진다면 유치원정도 되는 애들이 다니는 학교에 페인트 칠을 했다. 일과를 마치고 숙소로 돌아왔다. 몸이 고단한 덕인지 하루만에 적응이 된 덕인지 벌레가 득실거리는 방에서도 아무런 뒤척임없이 꿀잠을 잘 수 있었다. 그렇게 되어가는 내 모습을 보고 오히려 이런 계기를 통해서 내가 두려워하던 환경으로부터 극기할 수 있는 내 자신을 찾을 수 있어서 좋았다. 이러한 일과를 반복하면서 일주일이 지났고 칙칙한 벽색깔 탓에 칙칙하기만 했던 어두웠던 유치원은 어느덧 나날이 밝은 페인트로 덧칠한 결과 화사한 파스텔톤으로 변했고 덩달아 우리의 마음도 환하게 , 그 유치원을 사용할 아이들의 얼굴도 환하게 되었다. 또한 학교 교실내부에도 색깔을 알 수 있게 짱구그림에 색색의 풍선을 그려 영어로 색이름을 써주고 하루하루 다르게 자라나는 아이들을 위해 아이들의 키를 잴수 있는 기린도 그려주었다. 그 외에도 전지에 우리나라에 대해 소개하는 프리젠테이션을 준비해 아이들에게 대한민국을 알려주고 다른 참가자들과도 함께 서로의 나라를 알아가면서 유익한 시간을 보냈다.
그러고 다음 한주는 다른 학교로 가게 되었는데, 이 학교에서는 교실 밖 벽에 큰 숲을 그려줬는데 4일에 걸쳐그림을 완성했는데 우리가 그려놓고도 전문가가 그린 것처럼 잘 그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그림때문인지 우리 참가자들을 취재하러 왔던 지역신문기자도 있었다. 그래서 워크캠프 기간 중에 인도의 한 지역신문 2면에 사진과 함께 기재되는 영광도 맛봤다. 그렇게 길기만 할 줄 알았던 2주의 시간은 2초의 쏜살 같은 시간처럼 지나갔고 헤어짐의 시간이 왔다. 짧지 않은 시간동안 서로 너나할 것 없이 궂은 일을 도맡아가면서 하고 땀흘려가며 피부 맞대고 봉사한 까닭에 어느새 정이 너무 많이 들어있었다.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도 있는 법이라며 서로를 위로해가며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헤어졌다.
워크캠프를 통해서 나 자신을 극기하는 법도 배우게 되었고 그리고 사실 아직도 남을 위한다는 마음, 누군가를 봉사한다는 마음이 제대로 뭔지는 모른다. 그마음에 대하여 배워갈 길이 먼건 사실이지만, 처음 워크캠프를 신청한 목적이 나를 위한 봉사였다면 지금은 내가 할 수 있는 한도내에서라도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조금이라도 도움되는 무언가를 해주고 싶다는 생각이 먼저 들게 되었다. 이것이 내가 바라던 스펙을 위한 경험보다 훨씬 더 값진 성과물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러고 다음 한주는 다른 학교로 가게 되었는데, 이 학교에서는 교실 밖 벽에 큰 숲을 그려줬는데 4일에 걸쳐그림을 완성했는데 우리가 그려놓고도 전문가가 그린 것처럼 잘 그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그림때문인지 우리 참가자들을 취재하러 왔던 지역신문기자도 있었다. 그래서 워크캠프 기간 중에 인도의 한 지역신문 2면에 사진과 함께 기재되는 영광도 맛봤다. 그렇게 길기만 할 줄 알았던 2주의 시간은 2초의 쏜살 같은 시간처럼 지나갔고 헤어짐의 시간이 왔다. 짧지 않은 시간동안 서로 너나할 것 없이 궂은 일을 도맡아가면서 하고 땀흘려가며 피부 맞대고 봉사한 까닭에 어느새 정이 너무 많이 들어있었다.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도 있는 법이라며 서로를 위로해가며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헤어졌다.
워크캠프를 통해서 나 자신을 극기하는 법도 배우게 되었고 그리고 사실 아직도 남을 위한다는 마음, 누군가를 봉사한다는 마음이 제대로 뭔지는 모른다. 그마음에 대하여 배워갈 길이 먼건 사실이지만, 처음 워크캠프를 신청한 목적이 나를 위한 봉사였다면 지금은 내가 할 수 있는 한도내에서라도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조금이라도 도움되는 무언가를 해주고 싶다는 생각이 먼저 들게 되었다. 이것이 내가 바라던 스펙을 위한 경험보다 훨씬 더 값진 성과물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