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후기
오로라처럼 빛난, 아이슬란드의 나
Aurora hunting and renovation in East of Iceland
참가 전 준비와 마음가짐
먼저 아이슬란드의 전압은 한국과 같은 220v라 다른 것을 챙기지 않아도 괜찮았고 기온도 당시에는 서울보다 춥지 않아서 다른 방한용품을 챙겨가지 않았다. 다만 현지돈을 사용하려면 유로를 아이슬란드 국제공항인 케플라비크 공항에서 환전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평소 외국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을만큼 여행으로든 다른 일로든 다른 나라에 가는 것을 좋아했다. 그러한 까닭은 새로운 나를 만날 수 있다는 생각과 기대감에서였다. 그동안 워크캠프를 지원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지만 이번 워크캠프를 준비한 것은 대학 파견생으로 갈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부모님이 주시는 용돈에 간혹 알바해서 사는 가난한 대학생으로서 학교에서 일정부분의 비용을 지원해준다는데 놓칠 수 없었다. 내가 다니는 학교에서는 여러 아시아 국가들과 아이슬란드 프로그램을 지원했고 나는 평소에는 가기 힘들 것 같은 아이슬란드에 지원하게 되었다. 무사히 파견생으로 선발이 되었고 내가 참여할 프로그램을 선정하기 시작했다. 우선 매년 똑같이 지나가던 크리스마스와 새해를 조금 특별하게 보내고 싶어 캠프 기간을 중점으로 찾아보았다. 처음에는 참여하고 싶은 기간의 캠프들은 이미 마감이 되었었으나 며칠 지나고 난 뒤에 새로운 캠프가 열리게 되어 바로 신청하였다. 원하는 캠프에 배정을 받고 나서는 해야 할 일이 더욱 많았다. 내가 지원한 캠프는 따로 컨펌레터와 미팅포인트에서 캠프까지 이용할 미니 버스도 예약해야 했고 캠프를 전후로 혼자만의 여행을 계획하고 있었기 때문에 찾아볼 것도 많았다. 그리고 어지간하면 대부분의 것들은 한국에서 끝내고 가고 싶었다. 무슨 말이냐 하면 항공권이나 숙소 예약과 같은 큰 돈을 사용해야 하는 경우는 한국에서 미리 결제를 하려 했다. 더 짜여진 여행을 원했기 때문이다. 또 미리 찾아보면 더 합리적인 가격을 비교할 수 있기도 했고 현지에서는 기념품을 사거나 밥을 먹거나 하는 돈 이외에는 사용하고 싶지 않았다. 캠프를 앞두고 기대가 되었던 점은 오로라를 만날 수 있냐는 것이었다. 캠프 이름도 오로라 헌팅이었고 아이슬란드까지 가는데 오로라 한 번쯤은 만날 수 있지 않을까 설레는 마음과 궁금한 마음이었다.
평소 외국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을만큼 여행으로든 다른 일로든 다른 나라에 가는 것을 좋아했다. 그러한 까닭은 새로운 나를 만날 수 있다는 생각과 기대감에서였다. 그동안 워크캠프를 지원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지만 이번 워크캠프를 준비한 것은 대학 파견생으로 갈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부모님이 주시는 용돈에 간혹 알바해서 사는 가난한 대학생으로서 학교에서 일정부분의 비용을 지원해준다는데 놓칠 수 없었다. 내가 다니는 학교에서는 여러 아시아 국가들과 아이슬란드 프로그램을 지원했고 나는 평소에는 가기 힘들 것 같은 아이슬란드에 지원하게 되었다. 무사히 파견생으로 선발이 되었고 내가 참여할 프로그램을 선정하기 시작했다. 우선 매년 똑같이 지나가던 크리스마스와 새해를 조금 특별하게 보내고 싶어 캠프 기간을 중점으로 찾아보았다. 처음에는 참여하고 싶은 기간의 캠프들은 이미 마감이 되었었으나 며칠 지나고 난 뒤에 새로운 캠프가 열리게 되어 바로 신청하였다. 원하는 캠프에 배정을 받고 나서는 해야 할 일이 더욱 많았다. 내가 지원한 캠프는 따로 컨펌레터와 미팅포인트에서 캠프까지 이용할 미니 버스도 예약해야 했고 캠프를 전후로 혼자만의 여행을 계획하고 있었기 때문에 찾아볼 것도 많았다. 그리고 어지간하면 대부분의 것들은 한국에서 끝내고 가고 싶었다. 무슨 말이냐 하면 항공권이나 숙소 예약과 같은 큰 돈을 사용해야 하는 경우는 한국에서 미리 결제를 하려 했다. 더 짜여진 여행을 원했기 때문이다. 또 미리 찾아보면 더 합리적인 가격을 비교할 수 있기도 했고 현지에서는 기념품을 사거나 밥을 먹거나 하는 돈 이외에는 사용하고 싶지 않았다. 캠프를 앞두고 기대가 되었던 점은 오로라를 만날 수 있냐는 것이었다. 캠프 이름도 오로라 헌팅이었고 아이슬란드까지 가는데 오로라 한 번쯤은 만날 수 있지 않을까 설레는 마음과 궁금한 마음이었다.
현지 활동 및 특별했던 에피소드
워낙 낯을 가리는 성격이기도 하고 한국에서 영어를 사용하다가 캠프를 참여한 것이 아니기에 이야기 나누는 것이 조금은 불편했다. 그러나 감사하게도 한국 분이 나를 제외하고도 두 분이 더 계셔서 빠르게 적응할 수 있었다. 이야기가 전부 통하지는 않지만, 내 생각을 온전히 전할 수는 없지만 다른 캠퍼들이 이야기하는 것을 가만히 듣고 있는 시간도 소중했다. 우리가 참여했던 캠프가 있던 마을에는 크리스마스 트리를 보러 모든 캠프리더들과 캠퍼들이 저녁에 같이 산책을 하러 갔었다. 특별한 크리스마스를 기대한 것만큼 화려하고 풍성한 크리스마스는 아니었지만 잊지 못할 일이 있었다. 길을 잘못가서 돌아오던 중 아이슬란드 현지 사람들이 어떻게 크리스마스를 보내는 지 궁금해졌다. 캠퍼 한 명이 창밖 테라스에서 저녁을 보내고 있던 현지 분에게 혹시 궁금해서 그러는데 집에 들어가서 이야기를 나누어도 괜찮냐고 여쭈었다. 그들은 열댓명의 우리 모두를 갑작스럽게 초대했고 아이슬란드 음식, 그들의 문화 등을 소개해 주었다. 이들과의 인연은 캠프가 끝날 때까지 계속되어 서로의 이웃이 되었다.
참가 후 변화와 느낀 점, 하고 싶은 이야기
나는 종강을 하자마자 떠나는 일정이었고 사실 성격이 해야할 일, 내가 즐거워하는 일조차 미루는 경향이 있어 출국날이 3주 정도 남았을 때 출국 티켓을 결제하였다. 게다가 각막 손상으로 출국이 가능할지조차 의문인 상황에 힘들수도 있다는 진단을 받았다. 캠프를 취소해야 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속상하기도 했지만 오히려 그렇게 된다면 입국할 때의 항공권, 캠프 전후로의 숙소를 예약하지 않은 상황이라 날리는 돈이 적으니 다행인가 싶었다. 다행히 금방 나았고 촉박하게 숙소를 비롯한 예약을 마쳤다. 준비과정이 조금 흔들리나 싶었지만 막상 출발하고 나서는 아무 일없이 순조로웠다. 캠프를 참여하면서 때로는 놀기만 좋아하고 남들을 배려하지 않는 캠퍼때문에 불편하기도 했지만 그냥 무시하면 됐고 크게 거슬리게 행동하지 않았다. 다만 모두가 조금만의 희생, 아니 도움만으로 쉽게 끝내고 빨리 해낼 수 있는 것들인데 누군가 하겠지, 누군가는 하니까 라는 마음으로 끝까지 참여하지 않은 캠퍼때문에 어딜가나 남의 수고에 묻어가려는 사람이 있음을 새삼 느끼게 되었다. 의견 충돌이 있거나 그러한 것들은 아니었다. 아이슬란드는 해가 늦게 뜨고 일찍 지는 현지 사정상 밖에 나가 활동하기 어려웠다. 따라서 숙소 안에서 청소를 하고 고치는 일이 우리 일이었는데 청소 또는 설거지와 같은 귀찮은 일들을 하지 않았던 것이 불만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것들은 캠프가 아닌 개인에게 느끼는 것들이다. 캠프에서 아쉬웠던 점은 쉬는 시간에 딱히 정해져있는 것이 없다는 것이다. 자유시간을 보장해줘서 고맙지만 워낙 그 양이 많았고 시골이어서 대부분의 시간을 한국에서처럼 시간을 때우게 되어 아쉬웠다. 그래도 그 시간들이 여유로웠고 쉼이 되는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