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후기

리투아니아, 잊지 못할 여름날의 추억

작성자 심희정
리투아니아 CYVA 04 · ENVI 2012. 07 Kaunas

BOTANICAL GARDEN II

참가 전 준비와 마음가짐

1년 전쯤 우연히 인터넷을 하던 중 워크캠프에 대해 알게 되었고, 외국인 친구들과 함께 먹고 자고 생활하면서 봉사를 할 수 있다는 멋진 기회에 감탄했었다. 대학시절 가장 큰 꿈이었던 교환학생으로 영국을 가게 되면서, 워크캠프를 꼭 참가해야겠다는 나름의 계획을 짜두었다. 한국에서 유럽으로 워크캠프를 간다는 것이 말처럼 쉬운 게 아니었기 때문에, 이 기회를 절대 놓칠 수 없었다. 솔직히 처음에는 나 역시 프랑스나 독일과 같은 유명하고 잘 알려진 서유럽 국가를 선택하고 싶었다. 하지만 등록을 늦게 하는 바람에 탈락을 했었고, 결국 남은 워크캠프를 찾아보는 수 밖에 없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때 1차 서유럽을 탈락한 것에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 아무튼 그 중에 눈에 띈 리투아니아 워크캠프! 사실 리투아니아 라는 나라는 정말 생소했기 때문에, 우선 인터넷에 검색을 해보았다. 러시아와 국경을 맞닿은, 발트해를 끼고 있는 동유럽 국가, 잘 알려지지 않은 국가라 정보도 거의 없었다. 솔직히 처음에 리투아니아 합격 소식을 듣고 살짝 무섭기도 했다. 인종차별이 유독 심하다고 알려진 러시아에 붙은 나라였기 때문에 두려움을 느꼈던 것 같다. 하지만 리투아니아는 정말 내가 방문한 유럽국가들 중 최고였다고 말할 수 있는 곳이었다.
워크캠프를 갈 때가 유럽여행을 하는 중이었었다. 베니스 여행을 마치고 저가 항공편을 이용해서 리투아니아의 수도 빌뉴스에 도착했다. 인포싯에 적혀있던 것처럼 하루 먼저 그 나라에 도착해 정리를 좀 한 뒤, 그 다음날 나의 워크캠프 지역인 카우나스로 향했다. 빌뉴스에서 카우나스를 가는 버스는 꽤 자주 있었지만 다른 버스와 다르게 아주 조그마했다. 미니 봉고 수준이었는데, 에어컨도 없는 것 같았다. 리투아니아서의 첫 주는 한국의 한여름 못지않게 정말 너무 더웠는데, 그 좁은 봉고 속에서 땀을 줄줄 흘리며 두 시간을 넘게 타고 갔었다. 그래도 좋았던 건 버스비! 리투아니아는 물가가 아주 싼 편이었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정말 더 좋았다. 교통편은 학생할인도 받을 수 있었다.(유럽학생에 한정되어 있는 것 같기도 하다.) 버스에서 내려서 인포싯 설명대로 따라갔는데, 식물원까지 가는 버스 정류장이 잘 못 적혀있던 바람에 반대편 정류장에서 짐 들고 하염없이 버스를 기다렸던 기억이 난다. 버스 기다리는 동안 참 많은 시선을 받았었는데, 2주 동안 카우나스에 있으면서 동양인을 본 적이 있던가 싶을 정도로 완벽한 백인동네였다. 사실 그 때는 좀 무서웠었는데, 점점 2주 동안 생활하면서 생각이 바뀌어갔다. 현지인들에 대해서는 조금 있다 더 쓰도록 하겠다.
이번에 탄 버스 안은 생각보다 훨씬 깔끔하고 좋았고, 버스 앞쪽에 어느 역인지 이름이 떴기 때문에, 어디쯤 온 건지, 어디서 내려야 할 지 긴장할 필요도 없었다. 나의 종착지, 카우나스 보태니컬 가든! 리투아니아 현지명칭은 “Kauno Botanikos Sodas” 사실 처음 버스 내리고는 조금 놀랐었다. 그냥 완벽한 시골이었다. 그리고 사방이 풀밭이라 어디가 입구인지도 전혀 감이 오지 않았다. 그냥 무작정 버스 정류장 맞은편 길로 캐리어 가방을 덜덜 끌면서 걸어 들어갔고, 운이 좋게도 가는 길에 샤워를 마치고 나오던 우리의 워크캠프 리더, 올가를 만났다. 우크라이나에서 온 예쁜 친구였는데, 성격은 남자같이 털털하고 멋있었다. 올가를 따라서 우리가 묵을 숙소로 향했다. 솔직히 처음 숙소를 봤을 때는 좀 놀랐었다. 허름한 창고 2층으로 올라가서 문을 여니까 바닥에 매트리스 7개가 놓여있었고, 그리고… 그게 다였다. 그 옆방이 부엌이었는데, 가스레인지와 가스통, 그리고 식탁과 냉장고가 갖춰져 있었다. 인포싯에서 읽었듯이 역시 물 나오는 곳은 없었다. 창고에서 100 미터쯤 떨어진 메인 빌딩에서 항상 물을 길어와야 했다. 가스레인지도 버튼으로 해결되는 게 아니었다. 가스통에서 가스 밸브를 살짝 연 다음에 성냥으로 불을 붙여서 가스레인지에 불을 지펴야 했다. 거기다 화장실은 창고 건물 밖에 있는 이동식 화장실이었다. 한국에서 계곡 같은데 가면 흔히 볼 수 있는, 변기 아래가 훤히 보이는 그런 곳이었다. 이 화장실은 특별히 이름이 있었는데, Toi Toi라고, 나중에 우리의 고유명사가 되었다. 어디가? 라고 물으면 화장실이 아니라 토이토이 라고 대답할 정도로 우리가 나름 애착을 가지게 된 곳이기도 하다. 물론 정상적인 화장실과 샤워실도 있다. 위에서 말한 물을 길어온다던 그 메인 빌딩은 사실 20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곳으로, 안에 멀쩡한 화장실도 있고, 샤워실도 있었다. 그 건물 지하에는 미니 동물원이라고 많은 종류의 파충류들을 볼 수 있었는데, 거미들이랑 뱀들이 우글우글해서 사실 조금 무서웠다. 그리고 식물원 안쪽으로 들어가면 공중화장실이 하나 있는데 그곳도 그냥 “일반적인” 화장실이었다. 첫 날에는 도저히 토이토이를 쓸 자신이 없어서, 메인 빌딩을 가거나 식물원 안 쪽 공중 화장실을 이용했는데, 화장실 한 번 가자고 그 먼 길을 가려니 너무 귀찮기도 했고, 밤에는 깜깜해서 갈 수 가 없었다. 결국 하루 만에 포기하고 열심히 토이토이를 이용했다.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다. 이렇게 전반적으로 열악해 보였지만, 지금 생각하면 정말 많이 그립다. 처음에는 여기서 어떻게 2주나 버틸까 했었는데, 마칠 때쯤엔 진짜 한달 더 살라고 해도 좋다고 할 정도로 완벽히 적응한 우리들만의 궁전이었다. (우리 워캠 멤버들은 이 창고를 “our Palace”라고 불렀었다.)
숙소를 구경한 뒤, 올가의 소개로 벨라루스에서 온 인가를 만났는데 웃음이 많고 정말 여성스러운 친구였다. 그리고 잠시 뒤 인가와 함께, 식물원 풀밭에서 명상을 즐기던 다른 세 친구들을 만났다. 체코에서 온 이바와 페트라. 둘은 친구 사이였는데, 정말 환상의 콤비였다. 둘이서 얘기를 하면 어찌나 재미있는지 웃음을 멈출 수가 없었다. 그리고 다른 한 명은 파리에서 온 로빈! 영화배우 겸 감독을 꿈꾸는 아주 수줍은 소년 같은 친구였다. 이렇게 여섯 명이 모여서 마지막 멤버, 프랑스 가이 장 폴을 기다리고 있었다. 숙소에서 창문을 내다보던 나는 큰 배낭을 짊어지고 땀을 뻘뻘 흘리며 걸어오는 건장한 남자를 발견했다. 그냥 딱 봐도 장 폴이었다. 이렇게 총 일곱 명의 멤버가 모여서, 숙소 앞 벤치에 둘러앉아 서로 자기 소개를 하고 이야기를 나누며 하루를 보냈다. 식사 당번을 정했었는데, 오늘은 이바와 페트라, 그 내일은 나와 인가, 그 다음날은 올가와 프랑스 가이들, 이렇게 매일 돌아가면서 하기로 했다.
둘 째 날부터는 진짜 일의 시작이었다. 리투아니아에 오기 직전에 계단에서 넘어지는 바람에 꼬리뼈를 꽤 심하게 부딪혀서, 사실 제대로 움직이기 힘들었는데 첫날부터 삽질이었다. 우리 숙소 앞부터 식물원 입구까지 길을 깨끗이 닦아내는 것이었는데, 길이 풀로 거의 다 뒤덮여 있어서, 길을 새로 만드는 거나 다름 없었다. 삽으로 풀을 다 뽑아내는데, 길이 워낙 길어서 끝이 안 보였다. 거기다 날씨까지 너무 더우니 진짜 죽을 맛이었다. 매일 일은 4시 반에서 다섯 시 사이쯤 마쳤던 것 같은데, 첫날부터 너무 힘드니까 그냥 뻗어버렸다. 그 날 밤에 ‘왜 이렇게 멀리까지 와서 사서 고생을 하는 거지?’ 하는 생각이 수백 번도 더 스쳤던 것 같다. 하지만 2주 동안 일하면서 그 첫날이 가장 힘든 날이었던 것 같다. 그 고생들도 지금은 다 좋은 추억으로 머리 속에 남아있다. 셋째 날, 넷째 날은 튤립과의 전쟁이었다. 길다란 튤립 밭에서 튤립 모종을 찾아내는 것이었는데, 남자 멤버들이 살살 흙을 파주면 나랑 다른 친구는 쪼그려 앉아서 튤립 모종을 찾아 내야 했다. 튤립을 다치게 하면 안되므로, 정말 더디고 조심스럽게 진행되었다. 흙을 팔 때마다 나오는 지렁이들과 이름 모를 벌레들과 싸우는 일도 만만치 않았는데, 이것도 며칠 하다 보니 자연스레 적응되었다. 튤립 일을 하면서 가장 좋았던 것은 현지인들과 많은 교류를 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튤립 담당자 분이 현지 아주머니셨는데, 사실 현지인들은 영어를 거의 할 줄 모르기 때문에, 러시아어를 할 줄 아는 올가와 인가의 도움이 컸다. 그래도 힘들지만 우리에게 영어로 열심히 말 걸어주시고, 소통하려고 하셔서 정말 고마웠었다. 하지만 어쨌든 튤립 일은 우리 멤버들에게 기피 노동 1위가 되었다. 그늘 하나 없는 완벽한 땡볕에서 쪼그려서 일하고 나면 얼굴은 시뻘겋게 타고 온몸은 땀이고, 그렇다고 벌레들에 물릴까 봐 짧은 바지를 입을 수도 없었다. 모자는 필수였다. 그렇게 힘들다고 투덜대는 와중에도, 오후에는 또 멀쩡하게 돌아와서 같이 타운센터로 놀러 다녔었다. 카우나스 타운센터에 가보면 중심을 가로지는 가로수길이 있는데, 정말 시원스레 길게 뻗어있다. 주변으로는 식당, 까페들이 쫙 늘어서 있는데, 그 중에 아무 곳이나 골라 들어가서 시원한 리투아니아 맥주와 함께 저녁을 즐겼었다. 하루는 버스 시간이 다 된 것도 모르고 너무 웃고 떠들다가 급하게 정류장까지 뛰어간 적 이 있었는데, 그 날 비가 많이 왔었다. 덕분에 내 다리엔 온통 흙탕물이 튀어서 엉망이 되었었는데, 그 때 정류장에 계시던 어떤 아주머니가 말없이 휴지를 건네주셨다. 순간 진짜 너무 고마워서 고맙다는 말을 몇 번이나 했던 것 같다.
사실 처음 리투아니아 사람들에 대한 이미지는 그다지 좋지 않았다. 살짝 불친절하고 차가워 보였다고 해야 할까? 동양인이 워낙 없어서 그런지 인종차별로 느껴질 때도 있었다. 그런데 하루 이틀 지나면서 보니 내가 오해를 했었구나 하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관광객이 많이 없는 곳이라 그런지, 동양인이라서가 아니라 처음 보는 사람에게 경계를 많이 한다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대화를 나눠보거나 같이 있어보니 정말 친절하고 유쾌한 사람들이 많았다. 버스 정류장 아주머니도 그렇고, 보태니컬 가든의 디렉터 아저씨도 정말 좋으셨고(침낭을 가져오지 못한 나에게 흔쾌히 자신의 것을 빌려주셨다.), 우리 숙소 아래층에서 일하시던 정말 유쾌한 아저씨! 항상 날 보면 South Korea! 라고 하시며 Annyong!을 외치셨고. 튤립 담당자 아주머니, 보조 언니, 식물원 안의 작은 섬을 담당하던 언니까지 정말 잊을 수 없는 분들이 많다.
워크캠프 첫 주는 목요일까지가 일하기로 되어있었고, 금요일부터는 주말이었다! 덕분에 목요일에는 설레는 마음으로 즐겁게 일을 마칠 수 있었다. 아침에는 식물원 속의 작은 섬을 관리하는 언니가 자신이 키우는 꽃들을 소개시켜주고 싶다고 하셔서, 다같이 카메라를 들고 따라 나섰다. 정말 많은 종류의 꽃이 있었는데, 설명을 할 때 언니가 얼마나 자신이 키운 꽃들에 애정을 가지고 있는지 느껴져서 참 보기가 좋았다. 꽃구경 후, 오후에는 식물원 안 쪽에 자리한 아주 오래된 다리를 청소했는데, 역사가 깊은 다리이니만큼 훼손되지 않게 조심스레 청소해야 했다. 이 곳은 아침에 본 알록달록 예쁜 꽃밭과는 또 다른 분위기를 가진 울창하고 푸른 숲 속이었다. 프랑스 남자 친구들과 얘기할 기회가 많이 없었는데, 다리 청소 때 같은 팀이 되어서, 일하면서 이야기도 많이 하고 가까워졌다. 특히 장 폴 이라는 친구는 영어를 정말 프랑스어처럼 하는데,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듣느라 진땀 뺏던 기억이 난다. 나중에는 서로 포기하고 미친 듯이 웃으면서 대화 아닌 대화를 했었다.
워크캠프 활동 중 일뿐만 아니라, 정말 기억에 남는 일이 있는데, 바로 요리이다.. 사실 요리를 잘 못하는데다가, 혼자 동양인이어서 뭔가 한국의 맛을 보여 줘야 할 것만 같은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있었다. 영국에서의 자취로 밥은 그나마 잘 할 자신이 있었다. 근데 항상 국이나 반찬이 문제였다. 첫 번째 당번 때는 미역국을 끓였는데, 맛이 뭔가 많이 싱거웠다. 그래서 비장의 무기, 다시다를 꺼내 들었다. 다시다의 힘은 대단했다. 물론 친구들의 건강을 위해 천연재료로 만들었다는… 다시다를 사용했다^^. 그 다음 당번 때는 생선조림을 했었는데, 생선을 다 손질해서 물에 야채와 함께 넣고 같이 끓이면서 고춧가루를 좀 첨가했었다. 물론 이 때도 다시다의 힘을 좀 빌렸지만… 친구들이 맵다고 하면서도 국물까지 싹 다 비워줘서 진짜 고마웠다. 감자와 계란과 양파를 다같이 볶아서 만든 반찬도 내어놓았는데, 진짜 정말 잘 먹어주었다. 이 반찬은 Holly Style이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고(나의 영어이름이 Holly였다.) 그 이후로도 계속 요청이 들어와서 몇 번 더 만들었었다. 워크캠프 시작한 이래로 이렇게 접시를 깨끗하게 비워낸 적이 없었다며, 잘 먹어주는 친구들의 모습을 보면서 정말 너무 뿌듯해서 여기서라도 자랑하고 싶었다. 진짜 안 먹어도 배부르다는 말을 완벽히 이해한 날이었다. 아! 그리고 누군가가 워크캠프를 간다고 하면 꼭! 김을 가져가라고 말하고 싶다. 외국 친구들 정말 김을 잘 먹는다. 다른 양념이 없었는데도, 그냥 밥이랑 같이 먹으니 맛있다면서 산처럼 쌓여있던 김을 다 먹어 치웠다. 이렇게 내가 가져갔던 미역, 김, 그리고 한국 조미료들은 아주, 아주 유용하게 잘 쓰였다.
또 다른 기억에 남는 것은 바로 우리들만의 영화관이다! 캠프 멤버들이 자는 방 맞은편에는 꽤 큰 강당 같은 곳이 있었는데, 벽에는 큰 스크린이 있고, 그 앞으로 긴 의자 두 개가 놓여있었다. 디렉터 아저씨께서 프로젝터와 스피커 그리고 영화가 들어있는 유에스비를 빌려주셔서, 일과가 다 끝난 뒤 저녁을 먹고 여유롭게 영화 감상을 할 수 있었다. 불을 다 끈 뒤에 의자에 옹기종기 모여서 영화를 보고 있으면 진짜 친구들과 영화관에 와있는 느낌이 들었다.
그렇게 다사다난했던 첫 주 일을 마치고, 금요일 아침! 우리는 올가가 살고 있는 리투아니아의 바닷가 마을 클라이페다로 향했다. 주말에는 봉사활동 일정이 없었기 때문에, 무엇이든 우리끼리 자유롭게 할 수 있었다. 남자 친구들은 카우나스를 좀 더 돌아보고 싶다고 해서 워크캠프 숙소에 남기로 했고, 여자친구들끼리의 여행이 시작되었다. 올가는 워크캠프를 시작 하기 몇 달 전, 리투아니아에서 일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겨 이 곳으로 오게 되었고, 우리 워크캠프 리더로 참가하게 되었던 것이다. 클라이페다는 카우나스와는 또다른 분위기를 가지고 있었다. 동유럽만의 허름한 느낌이 정말 진심으로 좋았다. 리투아니아의 전통 음식인 분홍색 스프도 먹어보고, 클라이페다의 유명한 시장도 구경했다. 각 가게가 흰 천막을 치고 길 가운데 주루룩 늘어서서 이것 저것 다양한 물품들을 많이 팔았는데, 음식부터 시작해서 옷, 가방, 그림, 공예품, 주방용품, 오래된 뱃지들, 골동품들 등등 정말 없는 게 없었다. 다음날은 일찍부터 준비해서 다같이 배를 타고 맞은편에 있는 바닷가로 향했다. 네링가라는 지역이었는데, 3분 정도 배를 타고 건너가서 버스를 타고 들어가면 정말 끝이 없는 발트해가 펼쳐진다. 리투아니아는 ‘호박의 나라’라고도 불리는데, 바닷가에서 보석 호박을 많이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호박은 대표적인 관광상품으로 리투아니아 어딜 가든 호박 관련 기념품을 살 수 있다. 그 날 바닷가를 걸으면서 조그만 호박들을 꽤 많이 주웠었는데, 물론 크기가 아주 작기 때문에 정말 공들여서 찾아야 했지만, 보석들이 내 손에 있다는 생각에, 힘든 줄 모르고 찾았었다. 2시간이 넘도록 바닷가를 걸었던 것 같은데, 정말 거의 사람을 보지 못했다. 부산에 살면서 해운대처럼 북적거리는 곳만 보다가 이렇게 평화로운 바닷가 풍경을 보니까 정말 새로웠다. 거기다 발트해는 신기하게 바다냄새가 전혀 나지 않는다. 심지어 물에서도 소금 맛이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세계에서 가장 염분이 낮은 바다라던데, 그래서 더 깨끗하고 좋았다. 우리의 목적지는 ‘니다’라는 유명한 바닷가였는데, 어디까지 걸어야 도착하는지 몰라서 중간에 다섯 명 모두 그냥 모래밭에서 수영복으로 갈아입고, 바다로 뛰어들었다. 우리 외에는 아무도 없었고, 바닷물도 생각보다 차지 않았다. 그리고 정말 놀랐던 건 수심이 굉장히 얕아서 꽤 멀리 간 것 같은데도 물이 허리까지 밖에 오지 않았다. 정말 말 그대로 파도에 몸을 맡기는데, 진짜 행복하다 싶었다. 그렇게 짧게나마 파도를 즐긴 뒤에 “니다”를 거쳐 리투아니아의 또 다른 명물 모래언덕까지 찍고! 다시 올가네 집으로 돌아왔다. 이렇게 3일 동안의 여행은 서로에게 한층 더 가까워질 수 있었던 계기가 되었던 것 같다. 다시 카우나스로 가는 길, 버스 밖 풍경은 정말 너무 예뻤다. 그 때 버스를 타고 오면서 쓴 일기가 있는데, ‘어떻게 내가 여기까지 오게 된 걸까. 참 신기하다. 그냥 여기 리투아니아에 워크캠프 친구들과 함께 있을 수 있다는 것에 정말 감사하다. 고작 며칠 떠나있었다고, 보태니컬 가든이 꽤 많이 그립다. 벌써 4일밖에 안 남았는데, 끝나면 많이 아쉽겠지?’ 대충 이런 내용이다. 읽어보니 그날의 느낌이 떠오르는 것 같아서, 진짜 일기 쓰는 것의 중요성을 다시금 느끼게 되었다.
우리들의 궁전으로 다시 복귀한 뒤! 월요일부터 다시 일이 시작되었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둘째 주에는 비가 꽤 많이 내렸다. 덕분에 기온도 좀 내려가고 실내에서 일을 할 수 있게 되어 우리는 정말 행운이었다. 월요일엔 맑았기 때문에 울타리 페인팅을 했고, 화요일에는 위에서 말했던 튤립 일을 하던 중간에 비가 와서 실내 창고에서 튤립 씨앗을 분류하는 일을 했다. 땡볕에서 일하는 것보다 훨씬 나았기 때문에 즐겁게 일했다. 생각해보니 내가 살면서 또 언제 이렇게나 많은 종류의 튤립 씨앗을 만져보겠나 싶어서 괜히 뿌듯했던 것 같기도 하다. 분류가 다 끝나고, 튤립 아주머니는 우리에게 선물로 씨앗들을 신문지에 싸서 주셨다. 정말 너무 좋았는데, 생각해보니 비행기에는 씨앗을 들고 탈 수가 없었다. 내 손으로 열심히 캐온 씨앗이라 정말 가져오고 싶었지만… 리더 올가에게 맡기기로 했다. 올가가 예쁘게 꽃을 피워줄 것이라 믿는다.
수요일에는 비가 많이 와서 온실에서 일할 수 있게 되었다. 온실 일은 우리 일곱 멤버들의 자그마한 소원이었다고 해야 할까? 사실 온실 내부에서는 크게 할 일이 없었고, 그냥 넓은 풀잎들을 닦아주는 정도였다. 그래도 안에서 여러 종류의 식물들과 부엉이도 구경하고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목요일은 우리 워크캠프 멤버들이 일을 하는 마지막 날이었다. 그 날은 우리 숙소 반대편에 있는 식물원에서 오레가노를 잘라서 다듬는 일을 하였다. 오레가노는 복통에 효능이 있다는 허브였는데, 향이 진짜 강했다. 처음에는 계속 재채기가 나고 코가 시큰시큰 했었는데, 그것도 조금 있으니 금방 적응되었다. 앉아서 열심히 오레가노를 다듬으면서, 노래를 들었다. 저번에 페인팅 할 때 한국 노래를 한 번 틀었을 때 꽤 반응이 좋았는데, 이번에도 친구들의 요청으로 다시 한국 노래를 틀었다. 발라드보다는 확실히 신나는 템포의 곡이 훨씬 반응이 좋았다. 이렇게 뭔가 한국적인 것을 보여주었을 때 반응이 좋으면 정말 기분이 좋아진다. 혹시 워크캠프를 떠나는 친구들이 있다면, 신나는 음악이나, 짐이 많지 않다면 가볍게 들고 갈 수 있는 기본적인 음식은 준비해가기를 적극 추천한다.
목요일 일과를 다 마치고, 디렉터 아저씨께서 사무실로 우리를 초대해주셨다. 디렉터는 내가 생각한 것 보다 훨씬 유쾌하고 멋진 사람이었다. 다 함께 둘러앉아서 아이스크림과 차를 즐기면서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내가 꼭 다시 오겠노라고, 그 때도 저 창고에서 지내도록 허락해달라고 했더니, 언제든 환영이라고 꼭 오라는 말씀을 해주셨다. 그리고 우리가 줄기차게 요구했던 certificate도 받았다. 원래 이런 건 존재하지 않았지만, 디렉터 아저씨께서 특별히 만들어주신, 우리 각자의 이름과 도장이 찍힌 보태니컬 가든 활동증명서 덕분에 괜히 어깨가 으쓱해졌다. 그렇게 다시 숙소로 돌아와서 우리의 마지막 밤을 보냈다. 딱히 특별할 것 없었지만 그게 더 좋았다. 프랑스 친구들의 한밤의 몸개그로 다들 숨 넘어 가듯이 웃으면서, 그렇게 마지막 날 밤이 저물었다. 나와 이바, 페트라, 인가는 금요일 아침에 빌뉴스로 떠나야 했다. 나머지 올가와 장 폴, 로빈은 숙소에서 하루 더 머물기로 하였다. 한 명씩 안으면서 이별을 맞이했다. 정말 많이 아쉽고 섭섭했지만, 떠나는 장면을 많이 생각해와서 인지 우리는 아무도 울지 않았다. 다들 웃으면서 헤어졌다. 우리 멤버들은 쿨하니까!! ^^ 여전히 우리는 페이스북이나 이메일을 통해 안부를 주고 받고 있고, 사진을 공유하면서 그 때를 추억하곤 한다. 사진이든 글이든 언제나 이 친구들 연락은 나를 하루 종일 기분 좋게 만든다.
워크캠프를 포함해서, 이번 해에는 해외를 많이 돌면서 참 많은 것을 느꼈는데, 그 중에서도 자신감을 많이 찾았다는 것이 나에게는 큰 재산이 되었다. 항상 내가 뭔가를 선택하면 그게 딱히 좋은 결과를 가져온다고 생각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래서인지 선택을 한다는 것에 약간은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다. 근데 외국에서의 생활은 온통 선택의 연속이었다. 여행만 봐도 루트, 숙소, 교통수단 등 아주 사소한 것부터 내가 다 선택해야 할 것이 참 많았다. 그래도 이번에는 내가 선택했던 많은 것들이 좋은 결과를 가져와 주었던 것 같다. 그 중에서도 최고의 선택은 워크캠프로 리투아니아를 택했다는 것. 정말 내가 리투아니아 “카우나스”라는 생소한 도시에서, 이렇게 멋진 친구들과 봉사활동을 할 수 있었다는 것 그 자체에 아주 많이 감사하다. 처음에는 일이 힘들다고 투덜거렸었는데, 그런 것도 워크캠프가 아니었다면 어떻게 느낄 수 있었겠나. 정말 내 생애 그렇게 빨리 흘러간 2주는 없었던 것 같다. 진짜 노동의 참됨을 제대로 느끼고 온 워크캠프이기도 했다. 그리고 리투아니아라는 그 나라 자체에 대해서도 정말 좋은 것을 많이 느끼고 왔다. 서유럽과는 상반된, 뭔가 살짝 낡고 허름한 느낌의 건물들과 거리들은 진짜 동유럽만의 독특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고, 서유럽에 절대 뒤지지 않는 엄청난 매력으로 다가왔다.
보고서를 쓰다 보니 그 때 모든 일들이 새록새록 떠올라서 어느 것 하나도 빠뜨리고 싶지 않았다. 그냥 멍하게 떠올리기만 해도 행복해지는, 그런 2주를 만들 수 있었다는 것에 진짜 다시 한번 감사한다. 오늘따라 그 시간들이 아주 많이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