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후기
아이슬란드, 나를 발견한 용기의 땅
Photo Marathon in Reykjavik
참가 전 준비와 마음가짐
때는 2016년. 고단했던 임용고시를 드디어 마치고 발령이 나기 전 대기기간이었다. 시험도 합격했겠다, 취직도 보장이 된 상황이었고 내 나이 또래가 성취해야 할 큰 숙제 하나가 끝난 이 타이밍, 내 인생 타임라인에서 다신 오지 않을 방학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이 시간을 가장 의미있게 쓰고 싶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다채로운 경험을 하고 싶었다. 그 와중 세계 여러 나라 친구들과 한 곳에서 동고동락하며 프로젝트성 활동을 할 수 있는 워크캠프를 접하게 되었고 주저없이 신청했다.
참가 전 목표했던 것은 나다움을 찾는 것이었다. 생경한 장소에서 생소한 사람들과 만나다보면 내가 당연하게 생각했던 사고방식과 습관들을 새로운 관점에서 직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숨 쉬듯 익숙했던 공간과 사람들을 떠나 완전히 새로운 곳으로 날 던지는 경험. 그 속에서 내 성격, 내 가치관, 사고방식들을 오롯이 알아가고 싶었다.
참가 전 목표했던 것은 나다움을 찾는 것이었다. 생경한 장소에서 생소한 사람들과 만나다보면 내가 당연하게 생각했던 사고방식과 습관들을 새로운 관점에서 직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숨 쉬듯 익숙했던 공간과 사람들을 떠나 완전히 새로운 곳으로 날 던지는 경험. 그 속에서 내 성격, 내 가치관, 사고방식들을 오롯이 알아가고 싶었다.
현지 활동 및 특별했던 에피소드
나는 활동 앞 뒤로 4-5일씩을 각각 추가하여 SEEDS 숙소에 머물렀다. 그 기간동안 SEEDS 에 속한 다른 활동에 참여하는 워크캠프 멤버들을 더 만나기 위함이었는데, 개인적으로 매우 잘 한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이 기간동안 대략 10개국에서 온 사람들을 만나 대화해보고 친해지는 경험을 할 수 있었는데 잠깐 만나 대화하고 친해지는 과정도 내겐 생소했고 소중한 경험이었다.
내가 참여했던 Photo Marathon 활동은 자율성이 많이 주어지는 활동이었다. 팀원들과 사진 관련 워크숍을 진행하면서 기본적인 촬영기법과 카메라 원리에 대해 함께 나누고, 사진을 찍는 행위에 대해 각자의 관점을 나누는 시간도 가졌다. 그리고 Reykyavik 시내를 돌아다니고 주말에는 Golden Circle의 일부분을 여행하면서 자기만의 작품사진을 촬영했다. 촬영기간이 끝나고 우리는 모여 사진에 대해 코멘터리를 나누는 시간을 가졌고, 선정된 사진들을 시내의 한 영화관에서 전시하는 기회도 얻었다.
아이슬란드는 놀랍게도 착한 도시였다. 이렇게 순진하게 살아도 되나 싶었는데 그래도 되는 곳. 사람들이 정말 순박했다. 용무가 급했던 한 멤버가 피자가게에 급히 들어가 화장실을 찾았는데, 주문도 않은 그를 위해 지하에 있는 화장실까지 친절하게 데려다주고 두런두런 팀원들과 어디에서 왔냐 여기에서의 시간은 어떻냐 얼마나 따뜻하게 물어보던지. 한 번은 화산 근처를 말을 타고 돌아다니는 여행을 갔는데, 텅 빈 공터가 있는 작은 컨테이너 건물이 있길래 '저 건물은 무엇이냐' 물었더니 교도소라고 했다. 워낙 잡혀가는 사람이 없어서 수도의 교도소가 한가할 정도. 또 그 당시 아이슬란드 역사상 최대규모의 시위가 있었는데 시민들이 바나나 껍질을 동상에 던지는 귀여운(?) 저항을 하는걸 보며 이 도시가 더 좋아졌다.
내가 참여했던 Photo Marathon 활동은 자율성이 많이 주어지는 활동이었다. 팀원들과 사진 관련 워크숍을 진행하면서 기본적인 촬영기법과 카메라 원리에 대해 함께 나누고, 사진을 찍는 행위에 대해 각자의 관점을 나누는 시간도 가졌다. 그리고 Reykyavik 시내를 돌아다니고 주말에는 Golden Circle의 일부분을 여행하면서 자기만의 작품사진을 촬영했다. 촬영기간이 끝나고 우리는 모여 사진에 대해 코멘터리를 나누는 시간을 가졌고, 선정된 사진들을 시내의 한 영화관에서 전시하는 기회도 얻었다.
아이슬란드는 놀랍게도 착한 도시였다. 이렇게 순진하게 살아도 되나 싶었는데 그래도 되는 곳. 사람들이 정말 순박했다. 용무가 급했던 한 멤버가 피자가게에 급히 들어가 화장실을 찾았는데, 주문도 않은 그를 위해 지하에 있는 화장실까지 친절하게 데려다주고 두런두런 팀원들과 어디에서 왔냐 여기에서의 시간은 어떻냐 얼마나 따뜻하게 물어보던지. 한 번은 화산 근처를 말을 타고 돌아다니는 여행을 갔는데, 텅 빈 공터가 있는 작은 컨테이너 건물이 있길래 '저 건물은 무엇이냐' 물었더니 교도소라고 했다. 워낙 잡혀가는 사람이 없어서 수도의 교도소가 한가할 정도. 또 그 당시 아이슬란드 역사상 최대규모의 시위가 있었는데 시민들이 바나나 껍질을 동상에 던지는 귀여운(?) 저항을 하는걸 보며 이 도시가 더 좋아졌다.
참가 후 변화와 느낀 점, 하고 싶은 이야기
단언컨대 내 20대 중반의 가장 강렬한 기억으로 자리했다.
눈뜨고 있는 동안 영어로 소통해야 하는게 처음엔 걱정되기도 했지만, 생각외로 쉽게 의사소통이 되는걸 보며 언어를 그릇으로 삼고 그 안에 담는 내 마음가짐과 내 생각들이 더 중요함을 느꼈다.
마지막 날 롤링페이퍼를 주고받았는데, 모든 멤버들의 글에 한결같이 "strong"이 등장했다. 나보고 strong girl 이라고 부르던 친구들. 한국에 있는 동안 단 한번도 들어보지 못한 평이었다. 아, 나에게 이런 면이 있구나. 나에게 나도 모르던 단단한 부분이 있었구나. 이것만으로 내 자존감의 주춧돌을 하나 얹은 기분이었다.
오로라를 제대로 보지 못하고 돌아온게 한이다. 팀원들에게 말했듯 5년 이내에 꼭 한번 더 오리라!
눈뜨고 있는 동안 영어로 소통해야 하는게 처음엔 걱정되기도 했지만, 생각외로 쉽게 의사소통이 되는걸 보며 언어를 그릇으로 삼고 그 안에 담는 내 마음가짐과 내 생각들이 더 중요함을 느꼈다.
마지막 날 롤링페이퍼를 주고받았는데, 모든 멤버들의 글에 한결같이 "strong"이 등장했다. 나보고 strong girl 이라고 부르던 친구들. 한국에 있는 동안 단 한번도 들어보지 못한 평이었다. 아, 나에게 이런 면이 있구나. 나에게 나도 모르던 단단한 부분이 있었구나. 이것만으로 내 자존감의 주춧돌을 하나 얹은 기분이었다.
오로라를 제대로 보지 못하고 돌아온게 한이다. 팀원들에게 말했듯 5년 이내에 꼭 한번 더 오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