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후기
인도, 2년 만의 워크캠프 도전기
Hampi
참가 전 준비와 마음가짐
2010년 이후 워크캠프 이후 2년이 지났습니다. 처음 인도에 가지고 있던 매우 긍정적인 이미지, 문화봉사활동을 한다는 자부심, 새로운 환경에 대한 호기심 등 많은 요인들로 인해 인도 Hampi를 선택하여 봉사를 신청하게 되었습니다. 모든 것을 저 스스로 혼자 해야 한다는 점들이 조금 불안하기도 하고, 준비하는 과정에서 적지 않은 스트레스를 받기도 했던 것이 사실입니다. 생각보다 값 비쌌던 항공권, 빠듯한 비자 신청 일자, 인도에 관한 수많은 정보 수집, 교통편, 당시 자신 없던 영어 실력 등 때문에 어느 순간 ‘내가 이걸 굳이 정말 가야 하나?’라는 의구심이 들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앞서 언급했듯 유년시절 인도에 가졌던 일종의 환상에 가까운 이미지는 저를 크게 매료시켰고 결국 무사히 인도에 도착하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모든 것이 어색하고 겁도 났습니다. 여자로서 혼자 인도를 여행(Hampi로 가기까지의 여정을 여행이라고 부를 수 있다면)한다는 것이 섣부른 결정이었나 하는 생각은 인도의 기차역과 길거리에 가득한 인도 걸인들과 사나워 보이는 개들을 보고 절실히 하게 되었죠. Bangalore 공항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제 첫 숙소를 예약해두었던 지라 공항에서 픽업을 받아 그곳에 가서 하루 푹 쉬었습니다. 시차적응이 크게 필요한 것은 아니었지만 왠지 모를 피곤함에 그대로 뻗어버렸습니다. 사실 혼자서 하는 제대로 된 해외여행은 그때가 처음이었기 때문이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날은 한번쯤 호화를 누려보자 하는 생각에 비교적 값이 나간 숙소에 머물러 하루 동안 푹 쉰 뒤 다음날 Hampi역으로 향했습니다. 갈 때는 미리 한국에서 예약해둔 기차를 이용하였는데 가장 높은 등급의 2층 침대 칸이었습니다. 돈이 들더라도 안전이 최우선이라는 생각에 2배 이상의 가격 차이가 남에서 불구하고 2, 3등석의 칸보다 굳이 1등석을 택했습니다. 조금 웃겼던 건 이동 중에 짐의 도난 우려로 깊게 잠들지 못할 줄 알았는데, 아주 푹, 깊게 잠들었던 것 같아요. 밑에서 주무시던 인도 아저씨께서 저를 흔들어 깨워주셔야 겨우 일어나 부랴부랴 내렸던 걸 보면 말이에요. 역에서 내려 저희 워크캠프의 리더 Pratap씨를 조우했습니다. 처음 만나는 분임에도 불구하고 낯선 인도에서 저를 인솔해주실 믿음직한 분이라고 생각하니 무척 마음이 놓이더군요. 매우 능숙한 영어로 계속 친절하게 말도 걸어 주셔서 금방 긴장을 풀고 역에서 릭샤로 30분 거리의 작은 마을 Hampi로 갔습니다.
아담하고 평화로운 전형적인 관광마을이었습니다. 물론 잘 알려져 있는 관광지이다 보니 호객꾼들도 거리에 넘쳐나서 혼자 왔으면 조금 휘둘렸을지도 모르겠네요. 그래도 지나치게 끈질긴 분들은 많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저희가 묵은 곳은 작고 아기자기한 유스호스텔. 총 2층으로 구성되어있고 2층은 부엌과 식당이 위치해 있었고 1층에 방이 몰려있었습니다. 저는 프랑스에서 온 Maya라는 아이와 같은 방을 쓰게 되었는데 이 아이와는 아직도 가끔 안부를 묻는 사이로 아주 좋은 인연이 되었어요. 둘이서 서툰 영어로 다양한 주제에 대해 활발하게 이야기도 하고 필요한 약품이나 옷, 장갑 등을 빌려주거나 선뜻 주기도 하고, 힘들 때는 옆에서 챙겨주기도 하는 등 일하는 동안 짝궁처럼 붙어 다녔습니다. 또한 터키에서 온 대학생 커플, 홍콩에서 온 간호사 언니, 독일에서 온 다부진 대학생 친구 등 다양한 구성의 사람들이 함께 작업을 하게 되었는데, 저희의 작업은 마을 중심에 위치한 사원을 재건하는 작업이었습니다. 사실 ‘재건’이라고 칭하니 무척 거창하게 느껴지지만, 저희의 일은 단순한 노동에 가까웠습니다(!). 인도에 많이 있는 다른 사원들과 마찬가지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될 정도로 역사적, 문화적 가치가 충분한 이 사원은 많은 쓰레기들과 돌 덩어리, 흙더미 등에 덮여 있는 상태였습니다. 저희의 작업은 그것들을 걷어 치워 사원의 본디 모습을 되찾는 것이었습니다. 일 자체는 크게 위험하진 않았으나 확실히 체력을 많이 요구하는 일이었습니다. 9월의 인도 날씨답게 무척이나 더워 가장 더운 낮 시간은 피해서 오전 일찍(때로는 5시부터) 일을 시작해 오후 2시가 되기 전 무조건 일을 파하고 충분한 휴식을 취했어요. 틈틈이 물을 많이 마셔주고 가끔 마을 분들이 제공해 주시는 음료수도 함께 나눠 마셔가면서 즐겁게 일했습니다. 일을 하던 중에는 마을신문에서 취재를 나와서 신문 지면에 저희가 등장하게 되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죠. 그 사진을 못 찍어온 건 무척 아쉽네요.
오후시간에는 인근 공립, 사립 초등학교에 가서 아이들을 가르치기도 했어요. 저는 영어, 한국어와 종이접기를 맡았고 다른 친구들은 지리나 영어, 자국어를 가르치는 등 크게 복잡할 것은 없었고 저희가 할 수 있는 선에서 최선을 다해 아이들을 가르쳤습니다. 아이들의 똘망똘망한 눈빛은 아직도 잊혀지지 않아요. 확실히 공립에 비해 무척 열악한 환경의 사립학교에서 아이들은 바닥에 앉아서 충분한 책상, 의자, 공책, 연필 등이 부족한 상황에서 열심히 공부를 하고 있었는데 우리나라의 전후 과거 모습이 그러하지 않았을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하나라도 더 배우려는 그 모습들이 너무 어여뻐서 칭찬도 많이 해주고, 서로 눈을 맞춰가며 더듬더듬 의사소통을 하려 노력했습니다.
처음 Hampi 도착 후 12일 정도가 지나고 주말에는 Hampi에서 작은 축제가 열려서 이제 일들은 모두 잊고 춤도 추고 사람들 구경도 열심히 해가면서 저희의 마지막 주말을 마음껏 즐겼던 것은 아직까지도 행복한 추억으로 남아있습니다.
한국에서 처리해야 하는 일이 있었기 때문에 일이 끝난 뒤 인도를 자유롭게 여행할 기회를 놓친 것은 아직도 아깝게 생각하는 부분입니다.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도 이미 생각하신 것이겠지만, 새로운 나라, 특히 자신이 아끼고 좋아하는 나라에 워크캠프를 가시게 된다면 반드시 질릴 때까지 즐기다 오시라고 말씀 드리고 싶네요. 저희가 고된 일만 하러 그 나라에 가는 게 아니잖아요? 저는 그래도 살짝 맛이라도 봤다는 것에 만족하고 와야 했지만 주어진 기회, 충분히 누리시다 오셨으면 좋겠습니다.
기회가 닿는다면 반드시 다시 국제워크캠프에 참가하고 싶습니다. 다시 인도에 갈지, 새로운 나라를 체험할지는 온전히 저에게 달려있지만 그것이 그다지 먼 미래에 일어날 일이 아니라는 것만은 확실합니다. 새로운 문화, 새로운 사람들, 새로운 경험 이 모든 것들을 국제워크캠프를 통해 느끼고 (다시 한 번 더 말씀 드리겠지만) 마음껏 즐기시다 오시길 바랄게요.
감사합니다!
처음에는 모든 것이 어색하고 겁도 났습니다. 여자로서 혼자 인도를 여행(Hampi로 가기까지의 여정을 여행이라고 부를 수 있다면)한다는 것이 섣부른 결정이었나 하는 생각은 인도의 기차역과 길거리에 가득한 인도 걸인들과 사나워 보이는 개들을 보고 절실히 하게 되었죠. Bangalore 공항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제 첫 숙소를 예약해두었던 지라 공항에서 픽업을 받아 그곳에 가서 하루 푹 쉬었습니다. 시차적응이 크게 필요한 것은 아니었지만 왠지 모를 피곤함에 그대로 뻗어버렸습니다. 사실 혼자서 하는 제대로 된 해외여행은 그때가 처음이었기 때문이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날은 한번쯤 호화를 누려보자 하는 생각에 비교적 값이 나간 숙소에 머물러 하루 동안 푹 쉰 뒤 다음날 Hampi역으로 향했습니다. 갈 때는 미리 한국에서 예약해둔 기차를 이용하였는데 가장 높은 등급의 2층 침대 칸이었습니다. 돈이 들더라도 안전이 최우선이라는 생각에 2배 이상의 가격 차이가 남에서 불구하고 2, 3등석의 칸보다 굳이 1등석을 택했습니다. 조금 웃겼던 건 이동 중에 짐의 도난 우려로 깊게 잠들지 못할 줄 알았는데, 아주 푹, 깊게 잠들었던 것 같아요. 밑에서 주무시던 인도 아저씨께서 저를 흔들어 깨워주셔야 겨우 일어나 부랴부랴 내렸던 걸 보면 말이에요. 역에서 내려 저희 워크캠프의 리더 Pratap씨를 조우했습니다. 처음 만나는 분임에도 불구하고 낯선 인도에서 저를 인솔해주실 믿음직한 분이라고 생각하니 무척 마음이 놓이더군요. 매우 능숙한 영어로 계속 친절하게 말도 걸어 주셔서 금방 긴장을 풀고 역에서 릭샤로 30분 거리의 작은 마을 Hampi로 갔습니다.
아담하고 평화로운 전형적인 관광마을이었습니다. 물론 잘 알려져 있는 관광지이다 보니 호객꾼들도 거리에 넘쳐나서 혼자 왔으면 조금 휘둘렸을지도 모르겠네요. 그래도 지나치게 끈질긴 분들은 많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저희가 묵은 곳은 작고 아기자기한 유스호스텔. 총 2층으로 구성되어있고 2층은 부엌과 식당이 위치해 있었고 1층에 방이 몰려있었습니다. 저는 프랑스에서 온 Maya라는 아이와 같은 방을 쓰게 되었는데 이 아이와는 아직도 가끔 안부를 묻는 사이로 아주 좋은 인연이 되었어요. 둘이서 서툰 영어로 다양한 주제에 대해 활발하게 이야기도 하고 필요한 약품이나 옷, 장갑 등을 빌려주거나 선뜻 주기도 하고, 힘들 때는 옆에서 챙겨주기도 하는 등 일하는 동안 짝궁처럼 붙어 다녔습니다. 또한 터키에서 온 대학생 커플, 홍콩에서 온 간호사 언니, 독일에서 온 다부진 대학생 친구 등 다양한 구성의 사람들이 함께 작업을 하게 되었는데, 저희의 작업은 마을 중심에 위치한 사원을 재건하는 작업이었습니다. 사실 ‘재건’이라고 칭하니 무척 거창하게 느껴지지만, 저희의 일은 단순한 노동에 가까웠습니다(!). 인도에 많이 있는 다른 사원들과 마찬가지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될 정도로 역사적, 문화적 가치가 충분한 이 사원은 많은 쓰레기들과 돌 덩어리, 흙더미 등에 덮여 있는 상태였습니다. 저희의 작업은 그것들을 걷어 치워 사원의 본디 모습을 되찾는 것이었습니다. 일 자체는 크게 위험하진 않았으나 확실히 체력을 많이 요구하는 일이었습니다. 9월의 인도 날씨답게 무척이나 더워 가장 더운 낮 시간은 피해서 오전 일찍(때로는 5시부터) 일을 시작해 오후 2시가 되기 전 무조건 일을 파하고 충분한 휴식을 취했어요. 틈틈이 물을 많이 마셔주고 가끔 마을 분들이 제공해 주시는 음료수도 함께 나눠 마셔가면서 즐겁게 일했습니다. 일을 하던 중에는 마을신문에서 취재를 나와서 신문 지면에 저희가 등장하게 되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죠. 그 사진을 못 찍어온 건 무척 아쉽네요.
오후시간에는 인근 공립, 사립 초등학교에 가서 아이들을 가르치기도 했어요. 저는 영어, 한국어와 종이접기를 맡았고 다른 친구들은 지리나 영어, 자국어를 가르치는 등 크게 복잡할 것은 없었고 저희가 할 수 있는 선에서 최선을 다해 아이들을 가르쳤습니다. 아이들의 똘망똘망한 눈빛은 아직도 잊혀지지 않아요. 확실히 공립에 비해 무척 열악한 환경의 사립학교에서 아이들은 바닥에 앉아서 충분한 책상, 의자, 공책, 연필 등이 부족한 상황에서 열심히 공부를 하고 있었는데 우리나라의 전후 과거 모습이 그러하지 않았을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하나라도 더 배우려는 그 모습들이 너무 어여뻐서 칭찬도 많이 해주고, 서로 눈을 맞춰가며 더듬더듬 의사소통을 하려 노력했습니다.
처음 Hampi 도착 후 12일 정도가 지나고 주말에는 Hampi에서 작은 축제가 열려서 이제 일들은 모두 잊고 춤도 추고 사람들 구경도 열심히 해가면서 저희의 마지막 주말을 마음껏 즐겼던 것은 아직까지도 행복한 추억으로 남아있습니다.
한국에서 처리해야 하는 일이 있었기 때문에 일이 끝난 뒤 인도를 자유롭게 여행할 기회를 놓친 것은 아직도 아깝게 생각하는 부분입니다.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도 이미 생각하신 것이겠지만, 새로운 나라, 특히 자신이 아끼고 좋아하는 나라에 워크캠프를 가시게 된다면 반드시 질릴 때까지 즐기다 오시라고 말씀 드리고 싶네요. 저희가 고된 일만 하러 그 나라에 가는 게 아니잖아요? 저는 그래도 살짝 맛이라도 봤다는 것에 만족하고 와야 했지만 주어진 기회, 충분히 누리시다 오셨으면 좋겠습니다.
기회가 닿는다면 반드시 다시 국제워크캠프에 참가하고 싶습니다. 다시 인도에 갈지, 새로운 나라를 체험할지는 온전히 저에게 달려있지만 그것이 그다지 먼 미래에 일어날 일이 아니라는 것만은 확실합니다. 새로운 문화, 새로운 사람들, 새로운 경험 이 모든 것들을 국제워크캠프를 통해 느끼고 (다시 한 번 더 말씀 드리겠지만) 마음껏 즐기시다 오시길 바랄게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