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후기
인도에서 마주한 새로운 시작
Kundapur
참가 전 준비와 마음가짐
한 번쯤 가보고 싶었던 해외봉사, 한 번쯤 가보고 싶었던 인도. 언제 기회가 오겠지 싶어 미루기만 하다 보니 어느새 대학생활도 한 학기 밖에 안 남은 상황. 대학을 졸업해도 기회야 있겠지만 왠지 더 이상 미루고 싶지 않았다. 정보가 없다, 바쁘다, 정신 없다, 여건이 안 된다 등 그 동안 가려는 걸 막아왔던 핑계거리는 막상 나가기로 마음을 먹고 나니 어렵지 않게 치울 수 있었다.
지인의 소개로 알게 된 국제 워크캠프 사이트에 들어가 가장 관심가는 프로그램을 고르고 바로 신청했다. 합격통보를 받고 곧 바로 비행기 티켓을 결제하고 준비물들도 찾아보고 행여 어영부영하다 계획이 무산되진 않을까 최대한 일을 빠르게 진행시켰다. 일단 큰 틀을 잡아놓으니 세부 계획은 반강제적으로 진행되었고 바쁜 듯 안 바쁜 듯 시간은 흘러 출국 날에 이르렀다. 준비를 한다고는 했지만, 막상 떠날 때가 되니 빼먹은 것도 많은 것 같고 내심 불안하기도 했다. 다행히 그런 불안감은 새로운 경험에 대한 기대감과 대인, 학업, 진로 등 그 동안 나를 옭아매던 것들을 잠시 내려 놓을 수 있어서 느끼는 해방감 덕에 금방 사라졌다.
워크캠프를 하는 곳이 대도시가 아니다 보니 교통편이 썩 좋지 않았다. 길고 긴 이동을 해온 끝에 집결도시 Kundapur에 도착할 수 있었다. 오는 길이 여러모로 만만치 않았기에 도착한 순간 마음이 놓였다. Meeting point에 하나 둘 초췌한 얼굴에 큰 가방을 멘 사람들이 모여든다. 저 사람들이 이제부터 2주간 동고동락 할 사람들. 함께 2주라는 시간을 보내면서 어떻게 지내게 될지 궁금해진다. 참가자는 나를 포함한 한국인 3명, 스페인 2명, 홍콩 1명, 총 6명에 인도인 워크캠프 리더 2명와 코디네이터 1명 이었다.
코디네이터는 환영한다, 오느라 고생 많았다라는 말과 간단한 자기소개를 마치고 우리를 숙소에 데려다 주었다. 다른 워크캠프에서 올리브 밭에 침낭만 깔고 자기도 한다는 얘기도 들은 적이 있어서 단단히 각오를 하고 갔다. 하지만 숙소는 걱정한 만큼 나쁘지 않았다. 봉사자를 위한 전용 게스트 하우스였는데, 2층 집에 침실로 쓰는 방이 셋, 화장실 둘, 취사실, 샤워실 및 거실 같은 넓은 공간이 층 당 하나씩, 바닥은 매끈한 돌로 되어있고 실내에선 맨발로 돌아다녔다. 사실 그래도 이것저것 열악하긴 했지만, 적응하는 데 크게 힘들진 않았다. 첫 날엔 간단한 OT와 참가자들간에 친해지기 위한 시간을 가진 뒤 각자 휴식을 취했다.
다음 날 아침, 우리는 코디네이터가 준비해준 인도 식 아침을 먹었다. 맛 없어 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무난히 식사를 마친 뒤, 우리의 근무지(?)인 초등학교로 향했다. 교통수단은 세 발 오토바이인 오토릭샤와 지역버스를 이용했다. Kundpur라는 마을 자체도 좀 구석진 곳에 있는 느낌이었지만 이 학교는 그 속에서도 더 구석진 곳에 위치했다. 설레는 마음에 도착한 학교, 학교 분위기는 얼핏 영상으로 본 한국에서의 80, 90년대의 분위기 같았다. 크지 않은 건물에 검소한 책상과 의자, 큰 하나의 방에 병풍 같은 것으로 구분되어 있는 교실, 저학년 학생들이 이용하는 칠판 노트, 형광등 없이 자연광을 이용한 조명, 운동장보다는 공터에 가까운 운동장, 천장에 달려 있는 선풍기 등 생소한 듯하면서도 내가 초등학교 1, 2학년 때만해도 이 곳과 비슷한 분위기였던 것 같아 알게 모르게 친숙한 느낌도 들었다. 이 곳 아이들은 우리가 등장하자 마자 외국인이라는 존재를 처음 보는 것처럼(나중에 알았지만 진짜로 처음인 아이들이 많았다) 신기해하고 반가워했다. 전교생은 약 150명 정도, 반 마다 돌아다니며 인사를 하고 서로 소개를 했다. 소개를 마친 뒤, 아이들이 먹는 급식을 우리도 먹었는데, 사실 별로 맛이 없었고 참가자 전원이 표정을 숨기지 못해서 그 다음부터는 코디네이터가 따로 점심을 준비해 주었다. 점심을 먹은 뒤, 앞으로 우리가 무슨 일을 할 지 본격적으로 알려주었다. 우리가 할 일은 크게 두 가지, 오전에 칠 안된 학교 건물에 페인트 칠 하기, 오후에 아이들 간단한 영어 교육과 각종 액티비티였다. 다음 날부터 시작된 페인트 칠은 생각보다 힘들었다. 일단 날씨가 꽤나 덥고 습한데다 의외로 손이 많이 갔다. 특히 날이 갈수록 지겨워져서 더 힘들었다. 하지만 오후에 아이들과 보내는 시간 덕분에 힘든 오전 시간에 대한 보상을 받는 느낌이었다. 아이들은 정말 순수하고 착했으며, 우리들을 많이 좋아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우리가 그 아이들에게 무엇을 해준다는 느낌 보다는 오히려 그 아이들이 우리에게 많은 것을 선물해 준다는 느낌이었다. 아이들과 함께하는 액티비티로는 영어 단어 퀴즈, 참가자들의 각자 나라 소개, 야외 체육활동 등이었고 모두들 큰 관심을 보이며 참여하여 참가자들도 힘든 걸 잊고 함께 즐겼다.
학교에서의 일정이 끝나면 참가자들과 함께 마을 구경을 하고, pc방을 찾아 인터넷을 쓰고(한국의 pc방과는 사뭇 다르다), 간식거리를 사먹으며 시간을 보냈다. 저녁은 코디네이터가 인도 음식을 준비해주었는데, 대부분 아주 맛있었다. 물론, 맛의 개성이 강해서 입에 안 맞아 하는 사람도 있긴 했지만. 기본적인 스케쥴은 학교에서의 일이 끝나면 자유시간이었지만 코디네이터와 캠프리더들은 우리에게 더 다양한 경험을 제공하고자 여러 곳에 우리를 데려가 주었다. 갔던 곳 중에 인상에 남는 곳은 현지인들의 결혼식장(외국인이 많지 않은 곳이라 우리가 등장한 순간 모든 시선은 신랑 신부가 아닌 우리에게로 쏠렸었다), 등대, 보트를 탈 수 있는 강, 부둣가 등이었다. 덕분에 다소 밋밋할 수 있던 생활이 더 재미있었고 참가자들끼리도 더 많이 접할 기회가 있어 좋았다. 특히나 결혼식의 경우, 외국에서의 결혼식은 문화 차이가 느껴져 더 인상 깊었다. 주말엔 완전 자유시간이라 친해진 참가자들과 함께 가까운 도시로 여행을 다녀올 수 있었다. 시골 같은 곳에 살다보니 대단한 여행지가 아니라 도시만 가도 기분 전환이 되는 느낌이었다. 두 번째 주엔 평소에 가던 초등학교 외에도 그 마을에 유일한 장애우 학교에 가서 아이들과 소통도 하고 함께 그림도 그리는 시간을 갖기도 했다. 그 날 봉사활동이 끝난 후에서 학교 설립자의 집으로 초대를 받아 차도 한 잔씩 대접 받을 수 있었다. 시간은 빨리 흘러갔다. 처음엔 다른 나라 사람들과 함께 사는 것이나, 벌레, 익숙치 않은 재래식 화장실들도 다 불편했지만, 곧 이런 굉장히 사소하게 느껴졌고 같은 뜻을 가지고 모인 사람들과 같이 살면서 생활하는데 큰 재미와 행복을 느꼈다. 떠날 때쯤엔 학교에 페인트 칠도 다 완성되었고, 아이들과도 많이 친해졌고, 마을도 거의 다 돌아다녀보고, 동네 주민들 중에서 알고 지내는 사람이 슬슬 생겨가고, 많은 활동과 저녁 먹은 후 같이 게임, 수다 등으로 참가자들과도 많이 친해진 상태였다. 처음엔 워크캠프라는 것이 무엇인지도 잘 모르고, 좋을지 어떨지 몰라 단기 활동을 신청하였고, 막 도착 했을 땐 솔직히 이 생활을 2주간 견뎌내야 한다는 생각에 갑갑했었는데 조금 시간이 지나자 너무 순식간에 끝나가는 것 같아 아쉬웠다.
너무나 익숙해져 버린 일상을 벗어나 새로운 세상에 새로운 사람들과 모여서 대가를 바라지 않고 남을 도울 수 있는 일을 하는 건 매우 귀중한 경험이었던 것 같다. 다음에 또 기회를 만들어 워크캠프에 참가해보고 싶고, 아직 시도해보지 않은 사람들에게도 한 번쯤은 도전해보라고 권해주고 싶다.
지인의 소개로 알게 된 국제 워크캠프 사이트에 들어가 가장 관심가는 프로그램을 고르고 바로 신청했다. 합격통보를 받고 곧 바로 비행기 티켓을 결제하고 준비물들도 찾아보고 행여 어영부영하다 계획이 무산되진 않을까 최대한 일을 빠르게 진행시켰다. 일단 큰 틀을 잡아놓으니 세부 계획은 반강제적으로 진행되었고 바쁜 듯 안 바쁜 듯 시간은 흘러 출국 날에 이르렀다. 준비를 한다고는 했지만, 막상 떠날 때가 되니 빼먹은 것도 많은 것 같고 내심 불안하기도 했다. 다행히 그런 불안감은 새로운 경험에 대한 기대감과 대인, 학업, 진로 등 그 동안 나를 옭아매던 것들을 잠시 내려 놓을 수 있어서 느끼는 해방감 덕에 금방 사라졌다.
워크캠프를 하는 곳이 대도시가 아니다 보니 교통편이 썩 좋지 않았다. 길고 긴 이동을 해온 끝에 집결도시 Kundapur에 도착할 수 있었다. 오는 길이 여러모로 만만치 않았기에 도착한 순간 마음이 놓였다. Meeting point에 하나 둘 초췌한 얼굴에 큰 가방을 멘 사람들이 모여든다. 저 사람들이 이제부터 2주간 동고동락 할 사람들. 함께 2주라는 시간을 보내면서 어떻게 지내게 될지 궁금해진다. 참가자는 나를 포함한 한국인 3명, 스페인 2명, 홍콩 1명, 총 6명에 인도인 워크캠프 리더 2명와 코디네이터 1명 이었다.
코디네이터는 환영한다, 오느라 고생 많았다라는 말과 간단한 자기소개를 마치고 우리를 숙소에 데려다 주었다. 다른 워크캠프에서 올리브 밭에 침낭만 깔고 자기도 한다는 얘기도 들은 적이 있어서 단단히 각오를 하고 갔다. 하지만 숙소는 걱정한 만큼 나쁘지 않았다. 봉사자를 위한 전용 게스트 하우스였는데, 2층 집에 침실로 쓰는 방이 셋, 화장실 둘, 취사실, 샤워실 및 거실 같은 넓은 공간이 층 당 하나씩, 바닥은 매끈한 돌로 되어있고 실내에선 맨발로 돌아다녔다. 사실 그래도 이것저것 열악하긴 했지만, 적응하는 데 크게 힘들진 않았다. 첫 날엔 간단한 OT와 참가자들간에 친해지기 위한 시간을 가진 뒤 각자 휴식을 취했다.
다음 날 아침, 우리는 코디네이터가 준비해준 인도 식 아침을 먹었다. 맛 없어 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무난히 식사를 마친 뒤, 우리의 근무지(?)인 초등학교로 향했다. 교통수단은 세 발 오토바이인 오토릭샤와 지역버스를 이용했다. Kundpur라는 마을 자체도 좀 구석진 곳에 있는 느낌이었지만 이 학교는 그 속에서도 더 구석진 곳에 위치했다. 설레는 마음에 도착한 학교, 학교 분위기는 얼핏 영상으로 본 한국에서의 80, 90년대의 분위기 같았다. 크지 않은 건물에 검소한 책상과 의자, 큰 하나의 방에 병풍 같은 것으로 구분되어 있는 교실, 저학년 학생들이 이용하는 칠판 노트, 형광등 없이 자연광을 이용한 조명, 운동장보다는 공터에 가까운 운동장, 천장에 달려 있는 선풍기 등 생소한 듯하면서도 내가 초등학교 1, 2학년 때만해도 이 곳과 비슷한 분위기였던 것 같아 알게 모르게 친숙한 느낌도 들었다. 이 곳 아이들은 우리가 등장하자 마자 외국인이라는 존재를 처음 보는 것처럼(나중에 알았지만 진짜로 처음인 아이들이 많았다) 신기해하고 반가워했다. 전교생은 약 150명 정도, 반 마다 돌아다니며 인사를 하고 서로 소개를 했다. 소개를 마친 뒤, 아이들이 먹는 급식을 우리도 먹었는데, 사실 별로 맛이 없었고 참가자 전원이 표정을 숨기지 못해서 그 다음부터는 코디네이터가 따로 점심을 준비해 주었다. 점심을 먹은 뒤, 앞으로 우리가 무슨 일을 할 지 본격적으로 알려주었다. 우리가 할 일은 크게 두 가지, 오전에 칠 안된 학교 건물에 페인트 칠 하기, 오후에 아이들 간단한 영어 교육과 각종 액티비티였다. 다음 날부터 시작된 페인트 칠은 생각보다 힘들었다. 일단 날씨가 꽤나 덥고 습한데다 의외로 손이 많이 갔다. 특히 날이 갈수록 지겨워져서 더 힘들었다. 하지만 오후에 아이들과 보내는 시간 덕분에 힘든 오전 시간에 대한 보상을 받는 느낌이었다. 아이들은 정말 순수하고 착했으며, 우리들을 많이 좋아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우리가 그 아이들에게 무엇을 해준다는 느낌 보다는 오히려 그 아이들이 우리에게 많은 것을 선물해 준다는 느낌이었다. 아이들과 함께하는 액티비티로는 영어 단어 퀴즈, 참가자들의 각자 나라 소개, 야외 체육활동 등이었고 모두들 큰 관심을 보이며 참여하여 참가자들도 힘든 걸 잊고 함께 즐겼다.
학교에서의 일정이 끝나면 참가자들과 함께 마을 구경을 하고, pc방을 찾아 인터넷을 쓰고(한국의 pc방과는 사뭇 다르다), 간식거리를 사먹으며 시간을 보냈다. 저녁은 코디네이터가 인도 음식을 준비해주었는데, 대부분 아주 맛있었다. 물론, 맛의 개성이 강해서 입에 안 맞아 하는 사람도 있긴 했지만. 기본적인 스케쥴은 학교에서의 일이 끝나면 자유시간이었지만 코디네이터와 캠프리더들은 우리에게 더 다양한 경험을 제공하고자 여러 곳에 우리를 데려가 주었다. 갔던 곳 중에 인상에 남는 곳은 현지인들의 결혼식장(외국인이 많지 않은 곳이라 우리가 등장한 순간 모든 시선은 신랑 신부가 아닌 우리에게로 쏠렸었다), 등대, 보트를 탈 수 있는 강, 부둣가 등이었다. 덕분에 다소 밋밋할 수 있던 생활이 더 재미있었고 참가자들끼리도 더 많이 접할 기회가 있어 좋았다. 특히나 결혼식의 경우, 외국에서의 결혼식은 문화 차이가 느껴져 더 인상 깊었다. 주말엔 완전 자유시간이라 친해진 참가자들과 함께 가까운 도시로 여행을 다녀올 수 있었다. 시골 같은 곳에 살다보니 대단한 여행지가 아니라 도시만 가도 기분 전환이 되는 느낌이었다. 두 번째 주엔 평소에 가던 초등학교 외에도 그 마을에 유일한 장애우 학교에 가서 아이들과 소통도 하고 함께 그림도 그리는 시간을 갖기도 했다. 그 날 봉사활동이 끝난 후에서 학교 설립자의 집으로 초대를 받아 차도 한 잔씩 대접 받을 수 있었다. 시간은 빨리 흘러갔다. 처음엔 다른 나라 사람들과 함께 사는 것이나, 벌레, 익숙치 않은 재래식 화장실들도 다 불편했지만, 곧 이런 굉장히 사소하게 느껴졌고 같은 뜻을 가지고 모인 사람들과 같이 살면서 생활하는데 큰 재미와 행복을 느꼈다. 떠날 때쯤엔 학교에 페인트 칠도 다 완성되었고, 아이들과도 많이 친해졌고, 마을도 거의 다 돌아다녀보고, 동네 주민들 중에서 알고 지내는 사람이 슬슬 생겨가고, 많은 활동과 저녁 먹은 후 같이 게임, 수다 등으로 참가자들과도 많이 친해진 상태였다. 처음엔 워크캠프라는 것이 무엇인지도 잘 모르고, 좋을지 어떨지 몰라 단기 활동을 신청하였고, 막 도착 했을 땐 솔직히 이 생활을 2주간 견뎌내야 한다는 생각에 갑갑했었는데 조금 시간이 지나자 너무 순식간에 끝나가는 것 같아 아쉬웠다.
너무나 익숙해져 버린 일상을 벗어나 새로운 세상에 새로운 사람들과 모여서 대가를 바라지 않고 남을 도울 수 있는 일을 하는 건 매우 귀중한 경험이었던 것 같다. 다음에 또 기회를 만들어 워크캠프에 참가해보고 싶고, 아직 시도해보지 않은 사람들에게도 한 번쯤은 도전해보라고 권해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