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후기

섬, 비움으로 채운 20대의 여름

작성자 이수연
한국 IWO-73 · 환경/세계유산/문화 2022. 07 대한민국 전라남도 신안군 기점소악도

Gijeom Soakdo 기점소악도

참가 전 준비와 마음가짐

국제워크캠프를 처음 알게된 것은 아주 우연한 기회를 통해 이루어졌습니다. 평소에도 걷는 것을 좋아하고, 트래킹하는 것을 좋아하던 저에게 친한 친구가 워크 캠프(walk camp)가 있다며 추천해주었던 것입니다. 그 후 제가 워크캠프를 찾아보다가 자연스레 walk camp가 아니라 work camp라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워크캠프를 알면 알수록 가고싶다는 마음은 더 커져갔습니다. 마을공동체를 위해 할 수 있는 봉사를 위한 캠프라는 점, 또 관심있는 분야인 세계유산, 환경, 생명평화가 키워드라는 점, 순례길을 포함하고 있는 섬이라는 점에 강하게 이끌렸습니다. 평생 한국에서만 살아온지라 외국인 친구를 만날 경험이 극히 드물었기 때문에, 외국인 친구들과 12일동안 함께 생활해야하는 것 또한 워크캠프 참가를 결정하게된 중요한 이유입니다. 하지만 초등학교 때부터 영어를 배웠음에도 영어로 직접 대화해본 경험은 아주 적은 탓에, 11박 12일간 외국인 친구들과 영어로 대화해야한다니 걱정부터 앞섰습니다. 5월에 신청하여 사전OT부터 캠프 참가자들과 함께하는 zoom미팅까지, 아주 기나긴 시간을 기다렸습니다.

현지 활동 및 특별했던 에피소드

캠프를 함께 참가한 사람은 모두 10명으로, 캠프리더를 포함한 3명만 한국인이고 다른 사람들의 국적은 모두 달랐습니다. 역시나 의사소통에 대한 걱정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그 걱정은 섬에 도착하며 사르르 사라졌습니다. 한국어를 잘하는 분들도 많고, 모두가 저의 모자란 영어실력을 알아들어주고 기다려주었기 때문입니다.

기점소악도에서 12일을 보내는 동안, 다양한 봉사와 경험을 해보았습니다. 먼저 순례길을 알리고, 섬을 찾아온 순례객들을 응원하러 물과 사탕, 커피 등을 나누어주는 봉사를 하였습니다. 한여름의 햇빛이 주는 더위에 지칠 수도 있었으나, 다같이 봉사를 하다보니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점심시간을 잊기도 했습니다. 신안갯벌이 세계유산으로 지정되었다는 것을 알리는 설치물을 제작하는 봉사도 진행했는데, 두 작가님과 함께 페인트도 칠하고 스프레이도 뿌리는 작업을 하였습니다. 우리가 함께 작업한 빠뜨리모니또(유네스코 세계유산을 상징하는 캐릭터)가 마을 곳곳에 세워진다니 뿌듯하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섬에 들어온 지 열흘이 되던 날, 우리는 한번도 보러 가지 못한 일출을 보러가기로 하였습니다. 전날 밤늦게 잠에 들었지만 새벽 4시 반에 일어나 8명의 참가자들이 자전거를 타고 길을 나섰습니다. 자전거를 타고 섬의 반대편으로 가서 일출을 보고, 사진도 찍었습니다. 그리고 다음 일정까지 시간이 남아 다른 섬으로 구경을 가기로 하였습니다. 그런데 육지에서는 경험하지 못하는 밀물 때문에, 우리가 살던 섬으로 돌아갈 수 없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고작 10cm 정도 차올랐지만 섬과 섬을 연결하는 노둣길을 건너기에는 위험하기 때문에 꼼짝없이 놀러온 섬에서 물이 빠질 때까지 기다려야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자연으로 둘러싸인 이곳에서 인간도 그 질서에 따르고, 포함된 존재라는 것을 확인하는 순간이었습니다.

놀러갔던 섬 이곳저곳을 둘러보고, 바다구경도 하고 사진도 찍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니 벌써 물이 빠져있었습니다. 다음 일정에 늦지 않도록 서둘러 소악도로 돌아갔습니다. 아침 일찍부터 자전거를 타고 달려야했던 긴 하루였지만, "아, 이게 청춘이지!"하고 감탄할 수 있는 하루이기도 했습니다.

참가 후 변화와 느낀 점, 하고 싶은 이야기

저는 서울에 살고 있습니다. 창 밖을 보면 아파트가 빼곡히 줄지어 들어서있고, 고층건물엔 상가가 번쩍번쩍 빛을 냅니다. 눈을 돌리기만 하면 이것저것 쉽게 구할 수 있습니다. 서울에서는 필요한 것들을 금방금방 구할 수 있습니다. 동시에 필요 없는 것들도 바로 구할 수 있습니다. 이때문에 저의 하루도 "굳이 없어도 되는" 것들로 쌓여있었습니다.

기점소악도는 작은 섬입니다. 집도, 주민들도, 가게도 모두 수가 아주 적습니다. 섬에서 머무는 동안 편의점에 갈 수도, 영화관에서 영화를 볼 수도 없었습니다. 대신 자연과 함께 우리가 필요한 만큼만 하루하루를 채워나갔습니다. 마을주민분이 제공해주시는 식사로 밥을 먹고, 자전거를 타고 갈 수 있는 만큼 나가고, 대가없는 봉사를 하고, 자연을 보고, 느끼고, 미디어에 의존하기 보다는 친구들과 이야기하고 서로를 알아가고. 이렇게 비워내어도 나는 잘 살아갈 수 있고, 혹은 더 잘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섬에서 12일을 보내고 나니, 도시에 가는 날이 걱정되었습니다. 다시 서울로 가면, 또다시 정말 필요한 것에 집중하지 못하게 될 수도 있고, 내게 진정 필요한 것을 찾지 못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섬에서 떠나기 하루 전, 집으로 돌아간다면 나는 비워내는 연습을 하리라 마음먹었습니다. 불필요한 것들을 비워낸 그 빈자리에 생긴 여유는 친구들, 그리고 마을 사람들과의 따뜻한 정으로 채울 수 있다는 것을 배웠기 때문입니다. 내가 살아가는 데에는 많은 것들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오늘 내가 먹을 음식, 입을 옷, 잘 공간과 오늘 할 일이면 충분합니다. 필요한 것들로 채우고 남은 빈자리에는 사람과의 대화, 그리고 자연과의 사색이 자연스레 들어올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