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후기
프랑스, 두려움을 넘어선 용기
CHATEAU DE BRAMEVAQUE
참가 전 준비와 마음가짐
학교 홈페이지에 Work Camp 참가 공지가 올라 왔을 때에는 마냥 재밌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신청서를 작성하면서 ‘내가 이 camp에 기여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을까?’ 를 생각하게 되었고 신중하게 신청서를 써내려갔다. 그 덕분인지 아무런 경험도 없는 1학년인 내가 뽑히게 되었다. 국가가 선정되고 훈련워크샵에 갔다 오니 한 달이 훌쩍 지나 있었다. 출발하기 전날 밤, 머릿속이 복잡하고 기대도 되면서 후회도 되었다. 내가 과연 낯선 곳에서 잘 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었다. 이런저런 생각으로 밤이 너무 짧았다.
7월 5일, 프랑스로 가는 비행기에 올랐다. 한 달이 넘게 준비만 할 때는 실감이 나지 않았는데 그제야 실감이 났다. 비행기가 이륙하는 순간에 눈물이 터져 나왔다. ‘내가 정말 잘 할 수 있을까?’ 라는 생각만 계속 했었다. 하지만 걱정한다고 해결되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무조건 부딪혀 보자는 결심을 했다.
캠프는 8일에 시작을 했지만 나는 5일에 파리에 도착을 했다. 5,6일은 파리에 있으면서 프랑스에 적응하려고 노력했고 7일은 캠프 근처 도시에서 지냈다.
내가 합격한 캠프의 타입은 Environment, Renovation 이었고 Bramevaque 라는 작은 마을에서 성벽 보수를 해야 했다. 우리 캠프는 다행히도 한국인이 나를 포함해서 세 명이었다. 나보다 오빠, 언니라서 내가 의지를 많이 할 수 있었다. 그리고 몰랐는데 언니가 나랑 같은 학교 바로 옆 학과였다! 어느 학교에서 왔냐고 얘기를 하다가 알게 되었는데 신기해서 “우린 운명 인가봐!” 이 말을 한동안 입에 달고 있었다.
우리 팀은 한국인 세 명, 대만 세 명, 체코 두 명, 스페인 세 명, 러시아 세 명, 프랑스 한 명으로 총 열 다섯 명이었다. 그리고 우리는 성벽 앞, 그러니까 그냥 산에서 지내야했는데 건물은 이미 지어져 있던 부엌뿐이었다. 텐트를 치고 그 안에서 침낭을 덮고 자야했으며 간이화장실과 샤워실을 이용해야했다. 샤워는 아침에 워터백에 찬물을 담아놓고 햇볕에 두면 점심때쯤 따뜻해진다. 그러면 워터백을 샤워실에 가져가서 고리에 걸어놓고 샤워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우리 캠프가 프랑스 남부 중에 제일 열악한 환경이었다고 한다.
첫 날은 저녁 늦게 도착해서 짐 풀 시간도 없이 잠이 들었다. 둘째 날부터 성벽 근처의 풀을 베고 나무 잔가지를 쳐냈다. 셋째 날은 언니가 cook team 이었다. 우리 캠프는 cook team을 두 명씩 짝을 지어서 했는데 첫 주는 리더가 임의로 배정해주었고 둘째, 셋째 주는 각자 하고 싶은 친구랑 할 수 있게 해주었다. 물론 같은 나라끼리는 예외! 아무튼 언니가 우리 세 명중에 처음으로 cook team이어서 어떤 음식을 해줘야 할 지도 모르겠고 더군다나 동양과 서양은 음식 주재료부터가 너무 차이가 나니까 막막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왜 그렇게 허둥댔는지 모르겠지만 그때는 정말 멘탈붕괴가 일어나기 직전이었다. 쌀도 있긴 했지만 우리나라 쌀과는 달라서 요리시간도 훨씬 짧고 밥알이 따로 놀고 모양도 우리나라 쌀보다 가늘고 길었다. 그리고 요리하면서 느낀 건데 우리나라가 아니니까 재료가 없을 수도 있고 조금 다르게 생겼을 수도 있고 맛도 다를 수가 있다. 그러니까 레시피만 준비해 갈 게 아니라 집에서 요리를 한 번 해보고 가는 게 훨씬 나을 것 같다. 나는 레시피만 준비해 가서 막상 그곳에서 처음 하려니까 더 당황하고 어려웠던 것 같다.
그리고 이 날은 원래 있던 식탁이 우리 인원에 너무 작아서 좀 더 크게 새로 만들어야한다고 해서 테이블을 만들었다. 최고리더가 구해온 나무판자와 우리가 자른 통나무를 톱질하고 망치질해서 근사한 식탁을 만들었다. 멤버들과 처음으로 합심해서 만든 결과물이라 다들 너무 뿌듯해했고 조금 더 친해질 수 있는 발판이 된 날이었다.
넷째 날은 내가 cook team 이었는데 같이 요리한 Marina가(Russia) 너무너무 착하고 요리도 잘해서 나는 정말 걱정이 없었다. 아침에 늦잠을 자는 바람에 조식준비를 Marina 혼자 해야 했는데 괜찮다면서 자기가 점심메뉴를 생각해봤다고 나중에 요리법을 가르쳐 줄 테니까 같이 해보자고 해서 너무 고마웠다. 사실 그 전 날밤에 어떤 요리를 해야 할지 몰라서 고민하다가 잠을 설쳤었기 때문에 더더욱 고마울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드디어 그 다음날 해가 떴다. 그동안 계속 비가 오고 흐렸기 때문에 처음으로 해를 본 날이었다. 그런데 해가 뜨자마자 너무 더워서 텐트 안으로 들어갈 수조차 없었다. 아무래도 산 속이다 보니까 일교차가 컸는데 특히 새벽 4~5시쯤에 너무 추워서 한 번씩 꼭 깨서 잠을 설치곤 했다.
우리는 점심 먹기 전까지만 일을 했고 점심을 먹은 뒤에는 각자 자유 시간 이었지만 Activity활동이 있을 때에는 다 같이 활동했다. Activity는 캠프 리더인 Viktorya (Russia)가 정했는데 리더가 활동적인 편이라 많은 Activity를 할 수 있어서 너무 좋았고 더 즐거운 추억을 만들 수 있었던 것 같다.
활동한 Activity로는 근처 마을에서 하는 축제를 보러 간 적도 있고 말도 탔었고 계곡에 가서 놀기도 했고 프랑스의 유명한 자전거 대회인 ‘Tour de France'관람도 했고 치즈 만드는 농장도 구경 했었고 당일치기로 스페인도 갔었다.
우리 캠프는 마을 주민들과 교류할 일도 많았고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지역문화를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우리는 마침 마을 축제 기간과 겹쳐서 마을 사람들 뿐 만 아니라 다른 마을에서 온 사람들도 많이 만날 수 있었다.
많은 워크캠프 후기를 보면 꼭 한 번씩은 싸운다고 하는데 솔직히 우리 캠프는 서로에게 너무 무관심했다. Activity 활동 하는 경우에도 “오늘은 우리 다 같이 이거 하자.” 이런 분위기가 아니라 “우리 지금 이거 할 건데 할 사람은 하고 하기 싫은 사람은 하지 마라.” 이런 분위기어서 맨날 Activity 하는 사람만 하고 다른 사람들은 각자 하고 싶은 활동을 했다. 어떻게 보면 자유분방하고 좋지만 그래도 다 같이 활동하게끔 리더가 잘 이끌어주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었다. 아무튼 우리는 이런 무신경한 분위기이다 보니 서로 충돌할 일이 없었다. 다들 속으로는 참고 있었겠지만 겉으로 드러내지는 않았다. 그러다가 딱 한 번 의견충돌이 있었다. Elvira 와 Andrea 라는 친구가 스페인에 사는데 캠프가 일주일도 남지 않았는데 집에 간다고 했고, 이 친구들이 갈 때 Catherina(Russia)는 스페인 여행을 하고 싶다며 따라 가겠다고 했다. 우리는 너무 당황해서 세 명을 설득시키느라 진을 뺐고 우리와 다르게 자기주장이 너무 강하다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충분한 대화를 통해 서로의 생각을 알게 되었고 그 일을 통해 조금 더 친해질 수 있었던 것 같아서 좋았다. 너무 잦은 충돌은 오히려 서로의 감정만 상하게 하지만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다른 사람들의 생각을 들을 수 있는 기회는 서로를 더 이해할 수 있는 계기가 되는 것 같다. 헤어지는 날에는 모두 아쉬워서 어쩔 줄을 몰라 했고 유독 나와 친하게 지냈던 대만의 Yuzhu, Yenci와 헤어질 때는 참지 못하고 울었다. 겨울 방학 때 대만에 꼭 놀러간다고 약속을 하고서야 헤어질 수 있었다.
솔직히 말하면 3주 동안 지내면서 많이 힘들었고 외로웠다. 어떤 날은 너무 아파서 펑펑 울면서 ‘내가 왜 타지에 나와서 이렇게 고생을 할까? 내가 대체 왜 프랑스의 성벽을 고쳐주고 있는거지?’ 라는 생각을 수도 없이 했지만 지금 생각하면 참 어린 생각이었다. 나 자신과 내 생각이 ‘한국’에 한정되어 있었다면 난 더 크지도, 크려는 생각도 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리고 혼자 배낭여행을 하는 것 보다는 여럿이서 봉사를 하고, 서로 부딪히기도 하면서 지내는 것이 얻는 게 더 많다. 혼자 다니면서는 느끼지 못하는 많은 것들을 나는 그곳에서 얻어왔다. 한국에 온 지 한 달이 다 되어가지만 가끔씩 내가 한국에 있다는 게 꿈같다.
처음으로 가는 외국이었고 나는 혼자였으며, 프랑스는 너무 먼 나라였다. 그리고 한 달은 결코 짧은 기간이 아니었다. 그래서 많이 두려웠고 불안했었다. 하지만 내 생애 절대 잊을 수 없는 기억들을 만들었고 후회하지 않는다. 많은 사람이 경험할 수 있는 일이 아니기 때문에 순간순간이 소중했고 그만큼 잊지 못할 것이다.
7월 5일, 프랑스로 가는 비행기에 올랐다. 한 달이 넘게 준비만 할 때는 실감이 나지 않았는데 그제야 실감이 났다. 비행기가 이륙하는 순간에 눈물이 터져 나왔다. ‘내가 정말 잘 할 수 있을까?’ 라는 생각만 계속 했었다. 하지만 걱정한다고 해결되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무조건 부딪혀 보자는 결심을 했다.
캠프는 8일에 시작을 했지만 나는 5일에 파리에 도착을 했다. 5,6일은 파리에 있으면서 프랑스에 적응하려고 노력했고 7일은 캠프 근처 도시에서 지냈다.
내가 합격한 캠프의 타입은 Environment, Renovation 이었고 Bramevaque 라는 작은 마을에서 성벽 보수를 해야 했다. 우리 캠프는 다행히도 한국인이 나를 포함해서 세 명이었다. 나보다 오빠, 언니라서 내가 의지를 많이 할 수 있었다. 그리고 몰랐는데 언니가 나랑 같은 학교 바로 옆 학과였다! 어느 학교에서 왔냐고 얘기를 하다가 알게 되었는데 신기해서 “우린 운명 인가봐!” 이 말을 한동안 입에 달고 있었다.
우리 팀은 한국인 세 명, 대만 세 명, 체코 두 명, 스페인 세 명, 러시아 세 명, 프랑스 한 명으로 총 열 다섯 명이었다. 그리고 우리는 성벽 앞, 그러니까 그냥 산에서 지내야했는데 건물은 이미 지어져 있던 부엌뿐이었다. 텐트를 치고 그 안에서 침낭을 덮고 자야했으며 간이화장실과 샤워실을 이용해야했다. 샤워는 아침에 워터백에 찬물을 담아놓고 햇볕에 두면 점심때쯤 따뜻해진다. 그러면 워터백을 샤워실에 가져가서 고리에 걸어놓고 샤워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우리 캠프가 프랑스 남부 중에 제일 열악한 환경이었다고 한다.
첫 날은 저녁 늦게 도착해서 짐 풀 시간도 없이 잠이 들었다. 둘째 날부터 성벽 근처의 풀을 베고 나무 잔가지를 쳐냈다. 셋째 날은 언니가 cook team 이었다. 우리 캠프는 cook team을 두 명씩 짝을 지어서 했는데 첫 주는 리더가 임의로 배정해주었고 둘째, 셋째 주는 각자 하고 싶은 친구랑 할 수 있게 해주었다. 물론 같은 나라끼리는 예외! 아무튼 언니가 우리 세 명중에 처음으로 cook team이어서 어떤 음식을 해줘야 할 지도 모르겠고 더군다나 동양과 서양은 음식 주재료부터가 너무 차이가 나니까 막막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왜 그렇게 허둥댔는지 모르겠지만 그때는 정말 멘탈붕괴가 일어나기 직전이었다. 쌀도 있긴 했지만 우리나라 쌀과는 달라서 요리시간도 훨씬 짧고 밥알이 따로 놀고 모양도 우리나라 쌀보다 가늘고 길었다. 그리고 요리하면서 느낀 건데 우리나라가 아니니까 재료가 없을 수도 있고 조금 다르게 생겼을 수도 있고 맛도 다를 수가 있다. 그러니까 레시피만 준비해 갈 게 아니라 집에서 요리를 한 번 해보고 가는 게 훨씬 나을 것 같다. 나는 레시피만 준비해 가서 막상 그곳에서 처음 하려니까 더 당황하고 어려웠던 것 같다.
그리고 이 날은 원래 있던 식탁이 우리 인원에 너무 작아서 좀 더 크게 새로 만들어야한다고 해서 테이블을 만들었다. 최고리더가 구해온 나무판자와 우리가 자른 통나무를 톱질하고 망치질해서 근사한 식탁을 만들었다. 멤버들과 처음으로 합심해서 만든 결과물이라 다들 너무 뿌듯해했고 조금 더 친해질 수 있는 발판이 된 날이었다.
넷째 날은 내가 cook team 이었는데 같이 요리한 Marina가(Russia) 너무너무 착하고 요리도 잘해서 나는 정말 걱정이 없었다. 아침에 늦잠을 자는 바람에 조식준비를 Marina 혼자 해야 했는데 괜찮다면서 자기가 점심메뉴를 생각해봤다고 나중에 요리법을 가르쳐 줄 테니까 같이 해보자고 해서 너무 고마웠다. 사실 그 전 날밤에 어떤 요리를 해야 할지 몰라서 고민하다가 잠을 설쳤었기 때문에 더더욱 고마울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드디어 그 다음날 해가 떴다. 그동안 계속 비가 오고 흐렸기 때문에 처음으로 해를 본 날이었다. 그런데 해가 뜨자마자 너무 더워서 텐트 안으로 들어갈 수조차 없었다. 아무래도 산 속이다 보니까 일교차가 컸는데 특히 새벽 4~5시쯤에 너무 추워서 한 번씩 꼭 깨서 잠을 설치곤 했다.
우리는 점심 먹기 전까지만 일을 했고 점심을 먹은 뒤에는 각자 자유 시간 이었지만 Activity활동이 있을 때에는 다 같이 활동했다. Activity는 캠프 리더인 Viktorya (Russia)가 정했는데 리더가 활동적인 편이라 많은 Activity를 할 수 있어서 너무 좋았고 더 즐거운 추억을 만들 수 있었던 것 같다.
활동한 Activity로는 근처 마을에서 하는 축제를 보러 간 적도 있고 말도 탔었고 계곡에 가서 놀기도 했고 프랑스의 유명한 자전거 대회인 ‘Tour de France'관람도 했고 치즈 만드는 농장도 구경 했었고 당일치기로 스페인도 갔었다.
우리 캠프는 마을 주민들과 교류할 일도 많았고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지역문화를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우리는 마침 마을 축제 기간과 겹쳐서 마을 사람들 뿐 만 아니라 다른 마을에서 온 사람들도 많이 만날 수 있었다.
많은 워크캠프 후기를 보면 꼭 한 번씩은 싸운다고 하는데 솔직히 우리 캠프는 서로에게 너무 무관심했다. Activity 활동 하는 경우에도 “오늘은 우리 다 같이 이거 하자.” 이런 분위기가 아니라 “우리 지금 이거 할 건데 할 사람은 하고 하기 싫은 사람은 하지 마라.” 이런 분위기어서 맨날 Activity 하는 사람만 하고 다른 사람들은 각자 하고 싶은 활동을 했다. 어떻게 보면 자유분방하고 좋지만 그래도 다 같이 활동하게끔 리더가 잘 이끌어주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었다. 아무튼 우리는 이런 무신경한 분위기이다 보니 서로 충돌할 일이 없었다. 다들 속으로는 참고 있었겠지만 겉으로 드러내지는 않았다. 그러다가 딱 한 번 의견충돌이 있었다. Elvira 와 Andrea 라는 친구가 스페인에 사는데 캠프가 일주일도 남지 않았는데 집에 간다고 했고, 이 친구들이 갈 때 Catherina(Russia)는 스페인 여행을 하고 싶다며 따라 가겠다고 했다. 우리는 너무 당황해서 세 명을 설득시키느라 진을 뺐고 우리와 다르게 자기주장이 너무 강하다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충분한 대화를 통해 서로의 생각을 알게 되었고 그 일을 통해 조금 더 친해질 수 있었던 것 같아서 좋았다. 너무 잦은 충돌은 오히려 서로의 감정만 상하게 하지만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다른 사람들의 생각을 들을 수 있는 기회는 서로를 더 이해할 수 있는 계기가 되는 것 같다. 헤어지는 날에는 모두 아쉬워서 어쩔 줄을 몰라 했고 유독 나와 친하게 지냈던 대만의 Yuzhu, Yenci와 헤어질 때는 참지 못하고 울었다. 겨울 방학 때 대만에 꼭 놀러간다고 약속을 하고서야 헤어질 수 있었다.
솔직히 말하면 3주 동안 지내면서 많이 힘들었고 외로웠다. 어떤 날은 너무 아파서 펑펑 울면서 ‘내가 왜 타지에 나와서 이렇게 고생을 할까? 내가 대체 왜 프랑스의 성벽을 고쳐주고 있는거지?’ 라는 생각을 수도 없이 했지만 지금 생각하면 참 어린 생각이었다. 나 자신과 내 생각이 ‘한국’에 한정되어 있었다면 난 더 크지도, 크려는 생각도 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리고 혼자 배낭여행을 하는 것 보다는 여럿이서 봉사를 하고, 서로 부딪히기도 하면서 지내는 것이 얻는 게 더 많다. 혼자 다니면서는 느끼지 못하는 많은 것들을 나는 그곳에서 얻어왔다. 한국에 온 지 한 달이 다 되어가지만 가끔씩 내가 한국에 있다는 게 꿈같다.
처음으로 가는 외국이었고 나는 혼자였으며, 프랑스는 너무 먼 나라였다. 그리고 한 달은 결코 짧은 기간이 아니었다. 그래서 많이 두려웠고 불안했었다. 하지만 내 생애 절대 잊을 수 없는 기억들을 만들었고 후회하지 않는다. 많은 사람이 경험할 수 있는 일이 아니기 때문에 순간순간이 소중했고 그만큼 잊지 못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