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후기

파리, 낯선 땅에서 시작된 특별한 여름

작성자 이지영
프랑스 JR12/05 · SOCI 2012. 07 Ile de france

EMMAUS 1

참가 전 준비와 마음가짐

혼자서 어딘가로 떠난다는 것은 언제나 설레고 떨리는 일이다. 약간의 긴장과 부푼 마음으로 나는 프랑스에 도착했다. 홀로 4일 간 파리를 돌아본 후 파리의 매력에 콩깍지가 쓰여 버렸고, 지하철을 타고 워크캠프 장소로 출발했다. 파리에서 지하철을 타고 이동할 수 있는 장소라는 것이 이 캠프의 가장 큰 장점이었던 것 같다. 그 누구도 챙겨주지 않는 낯선 땅에서 짐을 들고 멀리 이동해야 하는 그 기분을 이후 여행에서 느꼈기 때문이다. 나는 캠프 시작 전에 함께 할 한국인 캠퍼를 미리 만났다. 미팅 포인트를 향해 걸어가던 도중 우리 앞에 한 아저씨가 나타나 “EMMAUS?”하고 물었고, 그는 우리를 마중 나온 담당자 아저씨였다. 신나서 차에 올랐는데, 목적지까지의 길이 꽤 복잡했다. 그래서 미팅포인트가 아닌 다른 곳에 미리 나와 계셨던 것 같다. 하지만 순조롭게 이동했던 출발과는 달리 워크캠프의 첫날은 순탄치 못했다. 짐의 일부를 전날 묵었던 숙소에 두고 온 것이다. 나는 다시 파리 중심부에 다녀와야 했고, 오리엔테이션이 끝나고 캠퍼들과 함께 식사를 한 후 다시 파리 행 기차에 올랐다. 작은 보따리 같은 짐을 끌어안고 있는 내 모습은 시골에서 가출하여 갓 상경한 소녀 같았다. 다시 캠프 지역에 도착했을 때는 어두워질 무렵이었고, 나는 길을 잃었다! 처음에 아저씨 차를 타고 간 터라 길을 몰랐기 때문이다. 내가 가진 건 캠프 장소의 주소뿐이었다. 어둠 속을 걷고 있을 때 한 아저씨가 말을 걸어왔다. 주소를 본 그는 걸어가기 멀 거라며 차를 태워주겠다고 했는데, 무서워서 당연히 거절했지만 아저씨의 진심 어린 눈빛에 설득 당해 차에 타게 되었다. 이 동네 사람이 아니라는 그의 말이 조금 의심스러웠지만 나의 걱정이 무색할 정도로 그는 친절하게 네비게이션을 이용해 나를 목적지까지 데려다 주었다. 내가 저녁 시간에 짐을 가지러 갔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면서도 걱정하는 모습 하나 비추지 않았던 캠프 담당자들에게 조금 섭섭하긴 했지만 서구의 개인주의 문화겠거니 하고 넘어갔다. 하지만 나중에 생각해보니 그건 단지 캠프 담당자들이 우리에게 무심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워크캠프의 일은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많이 달랐다. 내가 생각했던 캠프는 캠프 구성원 모두가 함께 일하고 식사하고 쉬고 잠들기 전까지 떠들어대는 것이었다. 보통의 캠프가 그렇다고 들었다. 하지만 이 곳은 우리 캠퍼들을 갈라놓았다. 애초에 캠퍼들은 언어 문제로 친해지기 어려웠다. 사용 언어가 영어와 불어로 표기되어 있었고, 공식 언어는 영어라는 설명이 있었기에 불어를 전혀 하지 못하는 캠퍼들도 여럿 있었던 반면에 영어를 전혀 하지 못하는 캠퍼도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캠퍼 9명이 모두 여자였다. 여자들만의 집단은 크던 작던 간에 어느 정도 나뉘게 마련인데, 소통이 어려워지자 우리는 자연스럽게 나뉘었다. 게다가 일하는 장소마저 세 군데로 나뉘어져서 우리는 낮 동안 서로 마주칠 일이 없었다. 식사를 할 때도 그 곳에서 일하시는 분들과 함께 해야 했기 때문에, 우리는 아저씨들 틈에 골고루 섞여서 먹었다. 저녁 시간에는 그나마 영어, 불어, 한국어를 말할 줄 아는 내가 조금씩 팀원들의 소통을 도왔지만, 전혀 유창하지는 못했기 때문에 많은 대화를 나누지는 못했다. 하지만 서로 그 답답함을 참아가며 조금씩 조금씩 친해질 수 있었다. 그래서 우리에게 18이라는 시간은 너무 짧았다. 게다가 지하철만 타면 파리로 나갈 수 있었기 때문에, 일부 캠퍼들은 거의 매일 밤마다 파리로 나가 새벽에 돌아오곤 했다. 물론 밤마다 따로 외출 했던 캠퍼들과는 거의 친해질 수 없었을 뿐더러 나중에는 트러블마저 생길 뻔했다.
하지만 그 곳에서 일하시던 다른 분들은 굉장히 친절했다. 한 작업장에 캠퍼가 두 명씩 들어가게 되었는데, 함께 간 한국인 언니가 불어를 전혀 하지 못해서 언니는 계속 나와 함께 하게 되었다. 프랑스 사람들은 대부분 영어를 잘 하지 못한다. 하지만 우리와 함께 일한 아저씨는 불어를 하지 못하는 언니를 위해 영어도 조금씩 하시려고 노력해 주셨고,우리에게서 작은 문화적 차이들을 발견할 때마다 친절하게 설명해 주셨다. 가끔은 작업장에서 괜찮은 물건들을 가지고 와 선물로 주시기도 하셨다. 한국인들의 효율적으로 일하려는 습성을 파악한 그들은 천천히 일해도 된다며 매일 간식을 사다 주셨고 계속해서 농담을 던지며 휴식시간도 챙겨주셨다.
내가 일한 EMMAUS라는 곳은 대부분의 프랑스인들이 알고 있는 유명한 공동체였다. 그 곳에 대해 알게된 지금은 내가 그 곳에서 일했었다는 사실이 자랑스럽다. 그 곳에 머물러 계신 분들 중 일부는, 아니 대부분은 노숙자와 같은 사회적 약자임과 동시에 상처받은 사람들이었지만 그분들 모두는 내가 지금까지 살면서 만난 그 누구보다도 친절했고 따뜻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나는 거의 다섯 살 아이 수준의 불어를 구사했기 때문에, 아저씨들이 아이 다루듯 귀여워해 주셨던 것 같다. 하지만 그들은 우리와 같은 짧은 만남에 익숙해져 버린 듯했다. 가장 친했던 아저씨는 내가 헤어짐을 아쉬워하자 ‘이것이 인생이다’ 라고 말씀하시며 전혀 슬퍼할 것 없다고 하셨기 때문이다. 이렇게 아저씨들과는 이런저런 얘기도 하며 잘 지냈지만 정작 한 방에서 지내던 캠퍼들과는 좀 더 많은 시간을 보내지 못한 것이 아쉽기도 하다. 이 점은 마지막 날 다 같이 모여 캠프에 대해 한마디씩 하는 시간에 건의했었다. 우린 심지어 다 같이 모여 찍은 단체사진 한 장 남기지 못했다. 또래 외국인 친구들과 함께 일하며 특별한 경험을 공유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컸기에 캠퍼들과 함께 일하지 못한 것이 아쉬웠지만 어른들과 함께 일했다는 것도 우리 각자에게는 소중한 경험이 되었을 것이다.
나는 외국인 친구와 소통하는 방법이 단지 ‘언어’ 하나에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랬다면 워크 캠프 프로그램 또한 존재할 수 없었을 것이다. 가끔은 이해할 수 없는 일도 생기고 서로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도 분명 있지만 이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우리는 성숙한다. 되돌아 보니 어쩌면 우리가 말이 잘 통하지 않기 때문에 서로를 더 배려하고 존중해 줄 수 있었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든다. 나는 고작 2년 배운 프랑스어 때문에 프랑스 워크캠프를 선택했었고, 떠나기 전 언어문제 때문에 조금 걱정도 했었다. 2주에서 3주라는 기간은 결코 짧지 않다. 답답한 일도 생기고 한국이 그리워지기도 한다. 하지만 캠프의 막바지에 이르면 누구나 시간이 참 빨랐다고 느낄 것이다. 말이 유창하지 못하더라도 서로에 대해 이해하며 알아가고 싶어한다면 오히려 한국인과 소통할 때보다 더 진심 어린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고 생각한다. 언어와 의사소통 문제를 걱정하며 워크캠프 지원을 망설이고 있을 수많은 젊음에게 나는 일단 자신을 세상에 내놓아 볼 것을 권하고 싶다. 한 마디도 할 수 없는 정도가 아니라면 누구에게나 기회는 열려있고, 용기 내어 도전한 자만이 그 가치를 맛볼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