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후기
프랑스, 꿈결 같은 마을에서의 봉사
Festisalle Vaunieres 1
참가 전 준비와 마음가짐
나의 프랑스 워크캠프. 혼자 해외로 떠나는 첫 번째 경험 이였다. 사실 출발하기 전에는 기대감도 있었지만 ‘워크캠프를 취소하고 그냥 한국에 있을까?’라는 생각도 여러 번 했었다. 워크캠프 장소가 프랑스 남부였기 때문에, 홀로 비행기를 타고 파리에 도착해 워크캠프 장소인 Vaunieres에 도착하기 위해 기차를 두 번이나 타야 했기 때문이다. 다행히 무사히 워크캠프 장소에 도착했고, 워크캠프 리더를 만날 수 있었다. 처음 접했던 워크캠프 장소의 이미지는 정말 나의 상상 속에만 존재할 법한 마을과 같았다. 인포싯에 의하면 내가 워크캠프를 하는 마을은 봉사자들에 의해 운영되는 마을이고, 텐트에서 생활한다고 써있었기 때문에 사실 큰 기대는 하지 않았었다. 하지만 알프스 산맥의 아름다운 경관과 옛모습 그대로 보존되어있는 프랑스 전통 가옥들, 그리고 마을 안의 넓은 잔디는 동화 속에서만 존재하던 마을을 그대로 재현한 것 같았다. 인포싯에 의하면 사용할 언어는 영어라고만 적혀 있었기 때문에 의사소통 면에서는 사실 큰 걱정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워크캠프를 주관하는 사람들이 프랑스인들이고, 영어가 모국어인 사람들이 아니였기 때문에 의사소통에서 불편함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만약 내가 불어를 배우고 워크캠프에 참여했더라면 더 큰 좋은 경험이 되었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아직도 워크캠프 첫날의 첫 식사를 잊을 수 없다. 내가 워크캠프를 한 장소에는 이미 다른 워크캠프 팀이 일주일 먼저 도착해 봉사활동을 하고 있었고, 워크캠프 팀 이외에도 long term volunteer인 장기 봉사자들도 있는 상황 이였다. 따라서 처음 도착한 나로써는 어색하고 어리버리 했으며 그 상황이 신기하기도 하였다. 그 당시에는 ‘과연 내가 3주 동안의 워크캠프를 진행하면서 이 어색함을 극복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도 했었다.
우리 워크캠프팀이 진행한 프로젝트는 파티룸의 한쪽 벽을 친환경 적으로 리모델링 하는 것 이였다. 벽을 뚫고 철근을 심어 목재로 지탱하고, 시멘트를 부어 벽을 만드는 과정을 진행하면서 정말 건설현장에서 일하는 것과 같은 느낌을 주었다. 사실 대한민국의 대학생인 나로써 건설현장에서 일할 기회는 한국에서 없을 것이라고 생각되었기 때문에, 이것 또한 새로운 경험이라고 생각하여 즐겁게 일을 하였었다.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모든 일이 순조롭게 이루어졌다고만 한다면 그것은 거짓말 일 것이다. 다른 문화에서 온 서로 다른 사람들이 같은 일을 하는 과정에서 약간의 마찰이 생기기도 하였다. 마찰은 원인은 주로 성실함의 차이였다. 워크캠프는 봉사활동인 만큼 일을 강요하지는 않았다. 따라서 일을 하고자 하는 사람들만 일을 하였는데, 매 주마다 어디까지 프로젝트를 진행해야 하는 목표를 지정되어 있었다. 따라서 자발적으로 일을 찾아서 하기 마련인데, 워크캠프 팀원 중 불성실한 일부 팀원이 working hour에도 책임감 없이 자리를 비운 채 놀거나 힘든 일을 거부하고 쉬운 일만 골라하는 경우도 있었다. 이런 것이 쌓여 마찰이 일어났는데, 잘 해결된 경우도 있고 그냥 포기한 경우도 있었다. 또 한가지는 인포싯의 부족한 설명으로 워크캠프 팀원들이 당황한 경우도 있었다. 워크캠프에 참여한 팀원들은 대부분 프로젝트를 워크캠프 팀만이 진행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하지만, 워크캠프 2주차에는 80여명의 사회적 문제가 있는 프랑스 청소년들이 워크캠프 장소로 찾아왔고, 함께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을 통보 받았다. 처음에는 큰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청소년들이 우리의 프로젝트를 참여한다는 이유로 공구를 가져가고, 건물 내부를 어지르며, 도난 사건이 발생하는 등 여러 문제가 발생하였다. 이 과정에서 워크캠프 팀원들은 불만을 표시했고, 만약 인포싯에 구체적인 내용이 써 있었더라면 자신은 이곳으로 봉사활동을 오지 않았을 것이라고 하는 팀원도 존재했다. 다행히 워크캠프 주최 측에서는 우리의 의견을 조금이라도 반영하려고 노력하였고, 청소년들도 행동을 약간씩 달리하기 시작하였다.
워크캠프를 떠나는 마지막 날 밤, 정말 아쉬움을 감출 수 없었다. 이미 워크캠프 장소는 집과 같이 익숙해져 있었기 때문에 떠나는 것 자체가 어색하기도 했던 것 같다. 어쩌면 이 곳을 일생에서 또다시 올 수 없다는 생각과 이 곳에서 친해진 많은 친구들과 다같이 함께 있는 순간은 이제 없을 것임을 알기 때문에 더욱더 아쉬웠다. 그 순간을 잊지 않기 위해 많은 사진과 동영상을 찍고, 페이스북을 교환했으며, 서로의 언어로 편지를 써주었다. 서로의 나라로 돌아가 알아서 해석을 하자고 약속하는 등 많은 추억거리를 남겨두었고, 지금도 그 순간을 회상하고 싶을 때, 꺼내어 보기도 한다. 이번 워크캠프를 통해 기회가 된다면 한국에서 주최하는 워크캠프도 참여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여러나라에서 온 사람들과 한국에서 생활한다면 어떤 느낌이 될까 궁금하기도 하다.
우리 워크캠프팀이 진행한 프로젝트는 파티룸의 한쪽 벽을 친환경 적으로 리모델링 하는 것 이였다. 벽을 뚫고 철근을 심어 목재로 지탱하고, 시멘트를 부어 벽을 만드는 과정을 진행하면서 정말 건설현장에서 일하는 것과 같은 느낌을 주었다. 사실 대한민국의 대학생인 나로써 건설현장에서 일할 기회는 한국에서 없을 것이라고 생각되었기 때문에, 이것 또한 새로운 경험이라고 생각하여 즐겁게 일을 하였었다.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모든 일이 순조롭게 이루어졌다고만 한다면 그것은 거짓말 일 것이다. 다른 문화에서 온 서로 다른 사람들이 같은 일을 하는 과정에서 약간의 마찰이 생기기도 하였다. 마찰은 원인은 주로 성실함의 차이였다. 워크캠프는 봉사활동인 만큼 일을 강요하지는 않았다. 따라서 일을 하고자 하는 사람들만 일을 하였는데, 매 주마다 어디까지 프로젝트를 진행해야 하는 목표를 지정되어 있었다. 따라서 자발적으로 일을 찾아서 하기 마련인데, 워크캠프 팀원 중 불성실한 일부 팀원이 working hour에도 책임감 없이 자리를 비운 채 놀거나 힘든 일을 거부하고 쉬운 일만 골라하는 경우도 있었다. 이런 것이 쌓여 마찰이 일어났는데, 잘 해결된 경우도 있고 그냥 포기한 경우도 있었다. 또 한가지는 인포싯의 부족한 설명으로 워크캠프 팀원들이 당황한 경우도 있었다. 워크캠프에 참여한 팀원들은 대부분 프로젝트를 워크캠프 팀만이 진행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하지만, 워크캠프 2주차에는 80여명의 사회적 문제가 있는 프랑스 청소년들이 워크캠프 장소로 찾아왔고, 함께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을 통보 받았다. 처음에는 큰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청소년들이 우리의 프로젝트를 참여한다는 이유로 공구를 가져가고, 건물 내부를 어지르며, 도난 사건이 발생하는 등 여러 문제가 발생하였다. 이 과정에서 워크캠프 팀원들은 불만을 표시했고, 만약 인포싯에 구체적인 내용이 써 있었더라면 자신은 이곳으로 봉사활동을 오지 않았을 것이라고 하는 팀원도 존재했다. 다행히 워크캠프 주최 측에서는 우리의 의견을 조금이라도 반영하려고 노력하였고, 청소년들도 행동을 약간씩 달리하기 시작하였다.
워크캠프를 떠나는 마지막 날 밤, 정말 아쉬움을 감출 수 없었다. 이미 워크캠프 장소는 집과 같이 익숙해져 있었기 때문에 떠나는 것 자체가 어색하기도 했던 것 같다. 어쩌면 이 곳을 일생에서 또다시 올 수 없다는 생각과 이 곳에서 친해진 많은 친구들과 다같이 함께 있는 순간은 이제 없을 것임을 알기 때문에 더욱더 아쉬웠다. 그 순간을 잊지 않기 위해 많은 사진과 동영상을 찍고, 페이스북을 교환했으며, 서로의 언어로 편지를 써주었다. 서로의 나라로 돌아가 알아서 해석을 하자고 약속하는 등 많은 추억거리를 남겨두었고, 지금도 그 순간을 회상하고 싶을 때, 꺼내어 보기도 한다. 이번 워크캠프를 통해 기회가 된다면 한국에서 주최하는 워크캠프도 참여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여러나라에서 온 사람들과 한국에서 생활한다면 어떤 느낌이 될까 궁금하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