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후기
프랑스, 혼자 떠나 청춘을 만나다
POMMIERS
참가 전 준비와 마음가짐
평소에 워크캠프 관련 행사에 관심이 많았고, 단체로 국내나 해외를 찾아 다니며 봉사를 한 경험은 많이 있지만 이번 여름방학에는 나홀로 워크캠프를 참여 하고 싶었다. 그동안 국내나 해외를 가더라도 동남아 쪽으로 간터라 이번에는 유럽의 워크캠프를 경험하고 싶었다.
사실 2년전에 홀로 유럽의 워크캠프를 계획하였는데 자신감 결여로, 사정상 후로 미루었지만 이번 학기중 마지막 여름방학에는 나의 남은 대학생활 청춘을 값지게 보내기 위해 결심을 굳혔다.
먼저, 주체측의 실수로 신청한 날짜보다 앞당겨 져서 감정이 약한 상한 상태로 유럽의 문을 두드렸다. 설렘반 기대반으로 드디어 미팅 포인트 장소에 도착~!! 6시까지 역에 도착하는 것이었지만, 영국에서 오는 길이라 2시에 도착하였다. 홀로 6시까지 기다리겠지…했는데 생각보다 많은 아이들이 이른 시간에 기다리고 있었다. 프랑스,터키,슬로바키아,러시아,멕시코, 한국의 국적을 가진 아이들과 스페인 리더가 보여 캠프장으로 행했다. (2명의 캐나다 아이와 한국여자아이 1명은 바뀌기 전 날짜에 참여하기로 하였다.) 생각보다 캠프장 시설도 좋았고, 앞전에 받았던 인포싯에서의 내용과는 달리 자동차도 제공해 주셔서 가는길, 오는길 모두 동네 주민분들이 안전하게 역까지 태워다 주셨다.
시청에서 간단히 소개와, 작업 설명을 듣고 파티장으로 향했다. 정말 캠프 끝날때까지 좋으신 분들의 보살핌으로 매일 저녁 마을 분들의 집에 초대되어 책에서만 배우고 익혔던 프랑스 문화를 뼈속 깊이 느끼고 돌아왔다.(만약 여행이라면 느끼고, 보지도 못할 어마어마한 추억)
우리의 일은 마을 돌담 쌓기였다. 그 전날 마을을 돌아다니며 2007년부터 이행했던 이전 봉사자들의 발자취를 돌아보며 우리가 해야 할 일들에 대하여 이해를 쉽게할 수 있었다. 우리는 8시까지 일터에 나와 12시에 작업을 종료하여 개인 시간을 가지며 월요일에서 금요일까지 하루 4시간 일을 돕기로 하였다. 돌아가면서 음식을 하는 쿠킹팀을 나누었는데 2명씩 짝을 이루어 요리를 하기로 하였다.
드디어 첫날 막노동에 가까운 돌나르기를 몇차례 후 다음날부터 안쓰던 근육을 쓴터라 몸이 정말로 아팠다. 하지만 캠프 아이들보다 더 열심히 하시는 어르신들을 보면서 일을 멈출 수 없었다. 생각보다 참여 하였던 캠프 아이들이 어려서 인지 아니면 국민성 차이인지…문화차이인지,,, 터키아이들과 남자아이들은 정말 게으름 피우지 않고 열심히 하였지만, 몸을 엄청 사리는 여자아이들을 보며 경악을 금치 못하였다. (일을 하면서 이런게 문화차이,,,급 실감 하였다!!!)
4시간동안 고된 노동도 있었던 반면에 저녁마다 초대를 해 주셔서 정말 잘 먹고 잘 지냈었다. 주말에는 마을분들이 주변 유적지 관광도 시켜 주셨다. 캠프장도 생각보다 너무 좋아서 가져온 침낭이 짐이 되어버리는 헤프닝이 있었지만, 열악했던 환경이 있었던 다른 프랑스 지역 워크캠프 후기를 읽었던 처음 걱정과는 달리 오히려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였다.
떠나기 전날 써두었던 한국 엽서를 떠나는 날 친구들에게 선물했고, 눈물이 앞을가려 떠나는 아쉬움이 정말 컸다. 3주동안 섭섭한점, 미웠던점, 고마웠던점, 감동받았던점, 정말 정이 많이 들었나보다…
떠날땐 쿨하게! 다시 못볼껏 처럼 눈물로 청승떨지 말자! 라는 신념을 가진 나는 이번 워크캠프 마지막날 무참히 무너졌다. 서로 포옹하며 마지막을 위로하며 다음을 기약 하였지만, 캠프가 종료된 한달이 지난 지금도 캠프 생활하던 생각이 문득문득 많이 난다.
사실 2년전에 홀로 유럽의 워크캠프를 계획하였는데 자신감 결여로, 사정상 후로 미루었지만 이번 학기중 마지막 여름방학에는 나의 남은 대학생활 청춘을 값지게 보내기 위해 결심을 굳혔다.
먼저, 주체측의 실수로 신청한 날짜보다 앞당겨 져서 감정이 약한 상한 상태로 유럽의 문을 두드렸다. 설렘반 기대반으로 드디어 미팅 포인트 장소에 도착~!! 6시까지 역에 도착하는 것이었지만, 영국에서 오는 길이라 2시에 도착하였다. 홀로 6시까지 기다리겠지…했는데 생각보다 많은 아이들이 이른 시간에 기다리고 있었다. 프랑스,터키,슬로바키아,러시아,멕시코, 한국의 국적을 가진 아이들과 스페인 리더가 보여 캠프장으로 행했다. (2명의 캐나다 아이와 한국여자아이 1명은 바뀌기 전 날짜에 참여하기로 하였다.) 생각보다 캠프장 시설도 좋았고, 앞전에 받았던 인포싯에서의 내용과는 달리 자동차도 제공해 주셔서 가는길, 오는길 모두 동네 주민분들이 안전하게 역까지 태워다 주셨다.
시청에서 간단히 소개와, 작업 설명을 듣고 파티장으로 향했다. 정말 캠프 끝날때까지 좋으신 분들의 보살핌으로 매일 저녁 마을 분들의 집에 초대되어 책에서만 배우고 익혔던 프랑스 문화를 뼈속 깊이 느끼고 돌아왔다.(만약 여행이라면 느끼고, 보지도 못할 어마어마한 추억)
우리의 일은 마을 돌담 쌓기였다. 그 전날 마을을 돌아다니며 2007년부터 이행했던 이전 봉사자들의 발자취를 돌아보며 우리가 해야 할 일들에 대하여 이해를 쉽게할 수 있었다. 우리는 8시까지 일터에 나와 12시에 작업을 종료하여 개인 시간을 가지며 월요일에서 금요일까지 하루 4시간 일을 돕기로 하였다. 돌아가면서 음식을 하는 쿠킹팀을 나누었는데 2명씩 짝을 이루어 요리를 하기로 하였다.
드디어 첫날 막노동에 가까운 돌나르기를 몇차례 후 다음날부터 안쓰던 근육을 쓴터라 몸이 정말로 아팠다. 하지만 캠프 아이들보다 더 열심히 하시는 어르신들을 보면서 일을 멈출 수 없었다. 생각보다 참여 하였던 캠프 아이들이 어려서 인지 아니면 국민성 차이인지…문화차이인지,,, 터키아이들과 남자아이들은 정말 게으름 피우지 않고 열심히 하였지만, 몸을 엄청 사리는 여자아이들을 보며 경악을 금치 못하였다. (일을 하면서 이런게 문화차이,,,급 실감 하였다!!!)
4시간동안 고된 노동도 있었던 반면에 저녁마다 초대를 해 주셔서 정말 잘 먹고 잘 지냈었다. 주말에는 마을분들이 주변 유적지 관광도 시켜 주셨다. 캠프장도 생각보다 너무 좋아서 가져온 침낭이 짐이 되어버리는 헤프닝이 있었지만, 열악했던 환경이 있었던 다른 프랑스 지역 워크캠프 후기를 읽었던 처음 걱정과는 달리 오히려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였다.
떠나기 전날 써두었던 한국 엽서를 떠나는 날 친구들에게 선물했고, 눈물이 앞을가려 떠나는 아쉬움이 정말 컸다. 3주동안 섭섭한점, 미웠던점, 고마웠던점, 감동받았던점, 정말 정이 많이 들었나보다…
떠날땐 쿨하게! 다시 못볼껏 처럼 눈물로 청승떨지 말자! 라는 신념을 가진 나는 이번 워크캠프 마지막날 무참히 무너졌다. 서로 포옹하며 마지막을 위로하며 다음을 기약 하였지만, 캠프가 종료된 한달이 지난 지금도 캠프 생활하던 생각이 문득문득 많이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