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후기

나를 찾아 떠난 3주간의 용기

작성자 황예지
프랑스 SJ30 · RENO 2012. 07 Noyant’d Allier, St.Hilaire

Bocage Sud

참가 전 준비와 마음가짐

25살, 대학교 3학년에 재학중인 저에게 국제워크캠프 참가는 여러모로 모험이었습니다. 특히 올해는 인생에서 시기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몸소 느끼고 있었습니다. 영어에 대한 부담감과 처음 만나는 사람들과 잘 어울릴 수 있을까 하는 걱정에 워크캠프를 지원을 앞두고 많은 고민을 했습니다. 언어나 사람들과의 교류에 자신감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워크캠프를 지원하게 된 계기는 저에게 ‘여행’이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그냥 여행을 가는 것은 별로 내키지가 않았습니다. 유적이나 명소를 구경하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여행 내내 관광만 하는 지루한 여행이 될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또한, 여행 기간이 길어질수록 그에 따른 비용의 부담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무엇보다 저는 그 나라 문화를 체험하고, 일상의 느린 호흡에 몸을 맡겨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3주 간의 워크캠프 프로그램을 선택했습니다.
혼자서 처음 떠나는 유럽여행에 준비할 것이 많았으나 종강을 하고 떠나기까지 일주일이란 시간밖에 없었습니다. 부랴부랴 짐을 꾸렸습니다. 걱정이 앞서다 보니 너무 세세한 것들까지 다 사서 쓸데없이 짐의 무게를 늘리기도 했습니다.(ex 많은 종류의 약.) 가장 후회되는 건 워크캠프에서 체력이 고갈될 것을 염려하여 면세점에서 급하게 산 홍삼액기스입니다. 정작 워크캠프 기간 동안 무리한 일을 전혀 하지 않았기 때문이죠. 팀마다 다른 것 같지만, 저희 팀은 일의 강도가 세지 않았습니다. 캠프 기간 동안 날씨도 좋아서, 일회용 우비를 두 개정도 챙겨갔으나 사용할 일이 없었습니다. 운이 좋았던 거죠! 덕분에 프랑스 시골마을의 파란 하늘을 마음껏 감상할 수 있었으니까요.
저희는 3주 동안 두 곳의 마을회관에서 나누어서 생활했습니다. 두 마을은 이웃한 곳이라 이동하는 데 한 시간도 안 걸렸습니다. 저희는 처음 만났던 Moulins 역에서 멀지 않은-한 시간 정도 떨어진- Noyant’d Allier와 St.Hilaire라는 마을에서 묵었습니다. 처음 묵었던 Noyant’d의 숙소는 마을회관의 2층이었습니다. 그곳에는 넓은 부엌이 있었고, 부엌 안에 긴 테이블과 의자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요리를 하고, 부엌에서 식사를 했습니다. 부엌 옆에 넓은 홀에서 매트릭스를 깔고 가져온 침낭을 덮고 잠을 잤습니다. 그리고 화장실과 샤워실이 우리가 생활하던 홀 안에 함께 있어서 편하게 사용할 수 있었습니다. 샤워실은 지은 지 얼마 되지 않은 것처럼 깨끗했어요. 반면, St.Hilaire에서는 반지하와 같은 곳의 홀에서 우리가 사용하던 매트릭스를 그대로 가져와 생활했어요. 그 곳에서는 부엌도 좁아서 식탁을 아예 밖에다 두고 식사를 했죠. 허나 그것도 나쁘진 않았습니다. 두 마을을 비교하자면.. 시설이나 사람들은 앞선 마을이 더 좋지만, 두번째 마을이 아기자기하고 예쁜 것으로는 더 나았습니다. 두번째 마을에서는 부엌의 문을 열고 뒷마당으로 나가면 작은 호수가 보였습니다. 옆집 아주머니가 기르는 거위와 토끼도 있었구요. 마당은 의자에 앉아 광합성하기에 딱 안성맞춤이었지요.
도착한 날이 토요일이었기 때문에 주말내내 우리는 게임을 굉장히! 많이 했습니다. 우리의 멤버는 리더 Denys와 Flora. 그리고 French man Astone과 Adrien, Spanish girl 이름이 똑 같은 Julia, Julia! 이름만 같지 둘은 아주 다른 스타일이었어요! 둘 중 어리고 키가 작은 애를 이름을 줄여 Juls 라고 불렀어요. 그리고 독일에서 온 Lea와 한국인인 저와 태림! 이렇게 9명으로 구성된 팀이었습니다. 스페인 친구들은 굉장히 활발하고 정말 플라멩고처럼 정열적인(?) 나라에서 왔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우크라이나 리더는 음악세계가 좀 독특했는데, 저는 개인적으로 그가 듣는 음악 스타일이 매우매우 좋았습니다! 한국에서도 자주 듣던 외국음악들을 그들도 많이 들어서 적잖이 놀랐습니다. 또 독일에서 온 lea는 프랑스어, 영어를 굉장히 잘 구사했고, 오페라 성악을 전공하여 목소리가 정말 아름다웠습니다. 생활하면서 정보전달부터 시작해서 이런저런 문화적인 이야기까지 제게 많은 걸 가르쳐 준 친구였죠! 그리고 프랑스인 리더 Flora는 국적은 프랑스인이지만 인종은 한국인이었기 때문에 한국 문화를 잘 알고 있었죠. 영어가 서툰 저에게 타국에서의 어려움을 도와주고자 항상 먼저 손을 내밀어 주었습니다. 그녀는 무언가를 잘 정리하고, 잘 만들고, Denys와 함께 리더로서 우리를 잘 이끌어 주었습니다. 시크하고 키가 큰 Julia! 쉴 새 없이 떠들지만 남을 배려할 줄 아는 Juls! 그리고 Fireman 매니아 Astone~ 프랑스 사람들은 왜 이렇게 소방관에게 열광하는 걸까요? 한국으로 떠나기 전 묵었던 호텔에서 티비를 켰는데 Astone이 좋아할 만한 Fireman 프로그램을 보고 기겁을 했습니다. 우리나라로 치자면 119구조대 격인데 아주 블록버스터 영화처럼 만들었더군요! 그리고 반항적이고 사람들과 이야기하길 좋아하는 Adrian! 두 프랑스 남자애들은 건강하고 항상 밝게 뛰어다녔어요. 특히 Adrian은 몸관리에 굉장히 신경을 많이 썼죠. 난데없이 물구나무 서기를 해서 팔굽혀펴기를 하고;; 저에게는 살짝 컬쳐쇼크였지만요.
우리의 리더인 Denys와 Flora는 우크라이나와 프랑스에서 온 남자와 여자였습니다. 이튿날 일요일, 그들은 우리에게 다음 월요일부터 시작될 일과에 대해서 이야기해 주었고, 일정표를 만들었습니다. 일을 하는 주중에는 아침 9시부터 점심을 먹기 전인 한시 반까지했습니다. 일은 주로 인포메이션에 소개된 대로 페인트칠을 위주로 했습니다. 학교의 책걸상에 다시 페인트칠을 하는 일과 광산박물관에서 오래된 광산에서 사용하던 차를 사포로 문질러 부드럽게 하고 다시 페인트칠을 하는 일이었죠. 그리고 오후에는 리더들이 생각한 활동들이나 마을의 곳곳을 방문하기로 계획을 세웠습니다.
Noyant’d 마을은 여러모로 재미있는 곳이었습니다. 그 곳에는 광산 박물관과 절이 있었습니다. 절이 있는 이유는 20세기 후반에 국가의 강제 이주 정책으로 프랑스에 이주한 베트남인들이 이 마을에 정착하였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베트남 2세, 3세인 아시아인들이 여전히 마을에 거주하고 있었습니다. 아시아인과 어우러져 사는 마을이었기 때문인지 아시아인인 저희를 보는 시선이 어색하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또한, 그 마을 사람들은 낯선 이들, 손님에게 열려 있었습니다. 또한 이 마을이 특별했던 것은 저희가 묵었던 마을회관 옆 들판에서 야영을 하고 있는 어린이 캠프 팀과의 만남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세네갈이나 마다가스카르와 같은 아프리카 지역에서 온 아이들과 독일과 프랑스에서 온 아이들로 섞여 있었습니다. 모두 자기의 모국어와 프랑스어만을 할 수 있었기 때문에 영어만을 조금 구사할 줄 아는 저와 한국인 태림에게는 그들과 소통하기가 처음에 무척 당황스러웠습니다. 그러나 탁구를 하고, 축구를 하고 같이 게임을 하면서 그들과 시간을 보냈고, 서로의 언어를 가르쳐 주면서 먼저 다가오는 어린이들에게 오히려 제가 더 고마움을 느꼈습니다. 또한, 저희가 이 마을에서 지내는 기간 안에서 프랑스의 국가기념일이 있었습니다. 그날은 저희가 묵었던 마을회관의 1층 댄스홀이 화려하게 문을 열었습니다! 남녀노소 인종 할 것 없이 사람들이 다같이 흔들흔들~ 신나게 춤을 추었지요. 중간중간 던지는 DJ의 농담은 정말 별로였지만! 신선한 경험이었습니다. ^.^
St.Hiliaire 에서는 전통적인 시멘트 방법으로 오래된 벽의 시멘트를 깨 부수고, 다시 시멘트를 돌 사이에 채워넣는 일을 했습니다. 그 벽 하나를 다 완성하자 마을에서의 생활이 끝났습니다. 일은 하루에 2~3시간 정도 밖에 하지 않았습니다. 시간이 굉장히 많이 남았죠. 앞선 마을에서처럼 아이들과의 만남이나 주민들과의 교류가 많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가까이에 있는 다른 워크캠프 팀을 만나거나 근방에서 열리는 축제에 두 번이나 갔고 전번 마을의 테크니컬 리더의 집에 방문하는 둥 굵직하게 기억에 남는 일들이 많았습니다.
지금 돌이켜보면 아쉬운 점이 정말 많이 남습니다. 조금 더 회화에 능통했다면 깊은 대화를 나눌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입니다. 그래도 마을에서 지냈던 나날들과 그 때 맛있게 먹었던 음식들이 한국에 와서 시간이 지날수록 계속해서 생각날 때면 그 때의 시간들이 많이 그립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익숙해진 프랑스식 인사법과 서운함과 아쉬움을 가진 채 헤어지던 마지막 날을 떠올리면 마음이 시큰거립니다. 아마 앞으로도 계속 이 마을을 방문할 워크캠프 팀들과 그 중 저와 같은 한국인 참가자가 있겠죠? 미래의 참가자들을 응원합니다. 앞으로 두 마을이 지금처럼만 아름답게 남아주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