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후기

프랑스 시골, 낯섦에서 찾은 특별한 만남

작성자 김태림
프랑스 SJ30 · RENO 2012. 07 Aurvenue Noyant and St.Hiliaire

Bocage Sud

참가 전 준비와 마음가짐

2012년 7월 2일 아침 9시 드디어 예술의 나라 프랑스!!로 출발하였다. 처음나간 외국이기때문에 기대반 걱정반이었다.
파리에서 일주일간 정말 멋진 여행을 하였고, 드디어 7월 7일 오후1시 리옹역옆에 베르시역에서 워크캠프로 향하는 기차를 탔다.
처음 프랑스의 작은 시골마을 역인 moulins역에 내렸을때만 해도, 여기가 인포싯에서 미팅포인트라고 한 곳이
맞는지 잘 몰랐다. 생소하였고, 시골역이라서 그런지 사람도 별로 없어서, 혹시 내가 잘못내렸나 하는 불안감도
들었다. 왜냐하면 여기는 한국이아니라, 먼 유럽나라인 프랑스 그것도 시골마을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곧 같이
참가하는 한국인 누나 예지누나를 만났고, 곧 지나지 않아, 상냥하게 워크캠프 참가한게 맞냐고 물어본 스페인여자
julia와 juls를 만날수 있었다. 그리고 곧 참가한 워크캠프의 리더인 한국계 프랑스인 flora를 볼수 있었다.
먼저 참가자를 소개하자면, 리더인 flora와 Denys(우크라이나인). flora는 매우 생각이깊고, 사려깊은 여자리더였다.
처음에는 되게 어려보였지만, 85년생 나보다 4살많다고 해서 깜짝놀랐다. 그녀는 동양인인 나와 예지누나를 많이 챙겨주고
물어봐준 정말 고마운 사람이다. 그리고 Denys는 우크라이나에서 왔고, 요리를 굉장히 잘했다. 이 남자도 언어가 안통한
나와 예지누나에게 항상 그윽한 미소로 답변해주고, 물어봐준 고마운 리더였다. 또 성격도 재밌고, 배려심이 많은 사람이었다.
그리고 스페인 여자인 또 이름이 같은 Julia와 Juls는 친절하고, 역시 스페인 라틴계 특유의 정열적이고, 활기찬 성격을
내보였다. 항상 음악을 틀고, 노래를 부르고, 가끔 어색한분위기를 띄어주는 그런 역할을 하였다. 처음에는 다가가기가
어려웠지만, 차츰 그들의 성격에 매료되고, 스페인의 문화에 끌려, 나중에는 많이 친해지게 되었다. 그리고 캠프기간동안에
얘기를 잘 못한 프랑스 남자애인 Astone은 실제로 캠프기간동안에 많은 이야기를 나누지못했다. 왜냐하면, 그는 영어를 거의
하지 못했고, 오직 프랑스어만 할수 있었기 떄문이다. 나 또한 영어를 잘 구사하는편이 아니었고, 프랑스어는 아예하지 못했기
때문에 대화하기가 무척 힘들었다. 그러나, 언어는 통하지 않지만, 온갖 바디랭귀지를 통해 약간의 의사소통을 했을때에는
정말 친절한사람이구나 라고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지금도 페이스북으로 항상 연락을 하고있다. 또 다른 프랑스인인 Adrien은
뭔가 개방적이고, 나랑 많은 이야기를 한 사람이었다. 처음에는 Adrien의 개방적인 행동에 놀랐지만, 그들의 나라에서 그들의
문화를 존중해야 한다는 생각에 금방 적응이되었다. 마지막으로 독일여자인 Lea는 지혜롭고 똑똑한 여자였다. 독일에서 음악을
전공하였던 그녀는 노래실력도 일품이었고, 독일사람 특유의 남에게 피해를 끼치지않는 성품을 가지고 있었다. 영어, 프랑스어를
잘했고, 스페인어도 어느정도 이해할수 있는 실력을 가진 Lea가 많이 부러웠다...일단 우리 캠프는 다른캠프와는 달리 소수의 정원
이 있었기 때문에, 금방 친해질 수 있었다. 물론 동양인보다 자신의 독특한 개성을 갖고있는 서양인들이다 보니 서로 충돌할
기회도 많았다. 우리는 두개의 장소에서 일정을 반반 나누어서 생활을 하였다. 처음에는 Noyant라고 하는 작은 마을이었는데,
여기는 유럽의 프랑스마을에서 동양문화가 접합된 곳이기도 하였다. 왜냐하면, 베트남에서 옛 통치국가인 프랑스로 많이 이주한
베트남인이 처음 정착한 곳이 이 마을이었기 때문에 유럽나라인 프랑스에서 불교의 문화를 엿볼수 있어서, 놀라웠다.
또 이 마을은 광산도시로 굉장히 유명한 곳이었기 때문에, 엄청 큰 광산 채굴 공장이 있었다. 우리는 이곳에 낡은 기계들을
보수하고 페인트작업을 하였다. 또 인근의 초등학교 보수작업을 맡아서 진행해였는데, 이곳의 아이들을 위해 이 먼나라까지 와서
일을 하였다는 것이 매우 보람된 일이었다. 이 곳에서는 캠프 구성원뿐만 아니라, 마을사람들과 이 마을에서 캠프중인 여러나라의
아이들까지 볼 수 있었다. 정말 굉장히 나 자신이 지금껏 경험해보지 못한 일이었기 때문에 감회가 새로웠고, 지금도 그 아이들 하나하나 기억에 남는 일이었다. 그리고 일정 반이 지났을무렵, 우리들은 10km정도 떨어진 곳으로 장소를 이동하였다. St.Hiliaire 이라는
Noyant보다 더 작은 도시였는데, 정말 유럽의 농촌에 온것같은 그러한 정말 아름다운 도시였다. 이 마을에서는 마을묘지옆에 조그만한
벽돌을 부셔서 다시 시멘트를 발라 보수하는 작업이었는데, 처음에는 벽에 남아있는 잔돌이나, 남은 페인트를 제거하는 작업이었다.
물론 나는 그때 식사당번이어서, 다행히 빠졌지만 그 일을 한 멤버 모두 힘들었다고 한다. 휴 다행;;ㅋㅋ 일이 힘들줄 알았는데
휴식과 업무의 조화와 리더들의 적절한 리드로 그렇게 생활이 힘들지 않았다. 너무나 먼 나라이기때문에 문화 언어 성격 다 달라서
솔직히 걱정이 되었었다. 하지만, 지구가 많이 좁아진것 같다. 적극적인 행동과 배려심으로 무장한 나를 반겨주는 것을 보니
다 똑같은 것 같다.
정말 긴 한달일 수도 있겠지만, 나에게는 너무 짧았다. 헤어지는 순간 울음을 터트린 프랑스 남자애를 보니 나도 눈물이 났다.
지금도 페이스북으로 연락을 하는 친구들도 있다. 나중에 다시 유럽을 가게된다면 꼭 만나고 싶다. 정말 이 캠프를 통해
다른문화에 대한 닫혀진 내마음이 열리는 긍정적인 효과를 얻었다. 다시 기회가 된다면 꼭 가고싶고, 안가본 이들에게도 추천하고싶은
프로그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