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후기
몽골, 꿈을 현실로 만든 여름
Orphanage farm-6
참가 전 준비와 마음가짐
워크캠프에 참가하겠다는 생각은 친구에게 들은 말 한마디로 시작되었다.
“내가 작년에 프랑스에 워크캠프를 갔는데…”
워크캠프?! 워크캠프라는 말을 생전 처음 듣게 된 순간이었다. 집에 돌아와서 인터넷에 워크캠프라고 검색해보니 수많은 블로그에 온갖 국가들에 워크캠퍼로 다녀온 자신의 경험들을 써 놓은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날부터 나는 부지런히 국제워크캠프기구 사이트에 들어가서 워크캠프들을 검색해보기 시작했고 몽골을 선택하게 되었다. 선택의 이유는 아무래도 혼자 여행하기는 무섭지만 생애 한번쯤은 가고 싶은 곳이 바로 몽골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2012년 3월에 신청을 하고 4개월여간 워크캠프와 몽골에 대한 기대를 하며 보냈다.
드디어 방학, 그러고도 한달. 몽골에 가게 되었다. 혼자 해외로 나가는 것 자체가 처음이었던지라 걱정반 설렘반 두근두근 인천국제공항에 갔고 3시간여의 비행 끝에 몽골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밤11시가 다 되어가고 있었다. 그때까지도 몽골워크캠프 담당 측에서 공항에서 숙소까지 라이드를 해 주는지의 여부를 확실히 전해 받지 못한 나는 ‘만약 공항에 나를 태워다 줄 사람이 없으면 그냥 공항에서 잘까…’라는 고민까지 하고 있었다. 다행히도 딱 입국심사대를 나가 계단을 내려가 주위를 둘러보니 WORKCAMP라고 쓰인 A4용지를 든 바타르를 만날 수 있었다! 또 대만에서 온 2명의 봉사자까지 만나서 무사히 미리 예약하고 온 GOLDEN GOBI라는 숙소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곳에서 2달 동안 몽골을 여행하던 핀란드 사람을 만났는데 내가 몽골의 이상한 점에 대해 이런저런 말을 하자, 그는 “Anything can happen in Mongolia.” 라는 명쾌한 답을 주었다. 운전석이 좌측에 있는 차, 우측에 있는 차가 모두 공존하고, 횡단보도는 무시되며 6차선 도로도 마구 건너고, 거리에 큰 개들이 떠돌아다니는 곳. 정말 어떤 일도 일어날 수 있는 바로 이곳이 몽골인 것이다!
나는 워크캠프가 시작하긴 이틀 전에 울란바토르에 도착해서 도시를 돌아볼 여유가 있었다. 생각보다 그리 복잡하지 않아서 하루 종일 지도를 들고 돌아다니니 대강의 지리를 파악할 수 있었다. 의외로 한국적인 물품, 한글, 회사들이 가득해서 걸어 다닐 때 마다 깜짝깜짝 놀라곤 했다.
드디어 워크캠프 시작 D-DAY. BAYANGOL HOTEL앞이 바로 미팅포인트였고, 나는 그 앞에서 기다렸다. 곧이어 다른 캠퍼들이 오기 시작했다. 얼굴만 봐서는 그들이 아시아인, 서양인이라는 사실 외에 전혀 국적을 예측할 수 없었다. 몽골에 오기 전 나를 제외한 2명의 한국인이 더 온다는 사실을 듣고 나는 열심히 한국인을 찾기 시작했다. 마침내 찾아서 얘기를 하다 보니 동갑! 대학생! 이틀간 나 홀로 있을 뿐 이었는데 한국어로 말할 수 있는 누군가가 있다는 사실 자체가 너무 감사했다. 그렇게 모든 캠퍼가 모이고 노란색 버스가 오더니 짐과 사람들은 모두 실어 도시를 벗어나 내가 상상하던 바로 그 ‘몽골’ 속으로 떠나기 시작했다. 정말 끝도 없이 펼쳐진 초원에 나무 없는 언덕인지 산일지 모를 고개들. 그리고 양, 말, 소떼들.얼마나 달렸을지 모를 시간이 지나니 아무것도 없던 초원에서 마을이라고 부를 수 있을만한 곳으로 풍경이 바뀌었다.
우리가 2주일간 머물 곳은 예쁘게 지어진 집이었다. 자원봉사자들이 지낼 건물 하나, 아이들이 지내는 건물 하나로 구성되어있었고, 조금 더 걸어가면 조그만 운동장, 그리고 우리가 일하게 될 밭이 있었다. 그 외는 끝없이 펼쳐진 초원, 또 초원. 그리고, 아마 이 워크캠프에 참가했다면 모두가 잊을 수 없는 화장실도 있다. 나무 판자를 이용해서 만든 화장실 하나가 숙소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있었다. 나무로 벽을 세우고 바닥에 구멍만 하나 뚫어놓은 초간단 화장실^^. 초원에 화장실만 하나 덩그러니 있는 모습은 장관이었다. 샤워의 경우는 샤워실이 있기는 하지만 오직 찬물만 나왔기 때문에 감히 도전하지 않았다. 그냥 수도꼭지에서 나오는 얼음장 같은 찬물로 간신히 이틀에 한번 머리만 감을 뿐. 몽골은 8월임에도 불구하고 때때로 아침마다 잔디에 맺힌 이슬이 얼어붙은 정도의 추위를 보였다. (결국 몸을 씻는 샤워는 투어를 위해 잠시 울란바토르에 돌아갔던 캠프시작 후 5일째가 되서야 처음으로 할 수 있었다.) 이곳은 가로등도 지나다니는 차도 없다 보니 밤이면 말 그대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암흑을 체험할 수 있었다. 그래서 밤에 밖이나 화장실에 갈 때마다 언제나 랜턴을 머리에, 손에 하나씩 들고 두리번거리며 돌아다녀야만 했다. 그리고 별!!! 정말 그렇게 많은 별들을 본건 태어나서 난생 처음이었다. 한국에서처럼 “오늘은 하늘에 별이 5개나 보이네”라고 말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고 그냥 하늘전체가 별이었다. 북두칠성도 그 국자모양 그대로 또렷하게 보였다. 나의 성능 낮은 카메라로는 절대 담아낼 수 없던, 눈으로만 간직해야 했던 풍경이었다.
워크캠프 기간 동안 총 3개의 팀으로 나누어서 일을 했다. Cooking team, Watering team 그리고 farming team. 쿠킹 팀은 나머지 멤버들이 먹을 밥을 짓고 설거지를 하고, 물을 주는 팀은 캠프에서 키우던 나무에 물을 주는 일, 나머지 거의 대부분은 밭일을 하러 나갔다. 봄에 씨 뿌리고 여름에 잡초제거, 가을에 추수, 겨울에 보관. 이렇게 합리적으로 봉사활동은 진행되고 있었다. 여름에 온 우리가 할 일은 자연히 잡초를 뽑는 일이었다. Farming 첫날만 해도 이게 여름이 맞나 싶게 추웠다. 무장을 하고 감자밭에 가서 감자와 잡초의 차이를 듣고 한 고랑씩 맡아 끊임없이 무작정 뽑기에 들어갔다. 가끔 애기 감자를 뽑아버리는 불상사도 발생했지만;; 다시 묻어주고 또 뽑고 버리고… 장장 2-3시간에 걸쳐 이런 작업을 하면 정말 뭘 먹어도 맛있고 감사한 상태가 되었다.
일을 하면서 온갖 국적을 가진 캠퍼들과 이야기 할 기회가 있었다. 대부분의 나와 동갑, 아니면 또래였기 때문에 예상보다 많이 얘기하고 친해질 수 있었다. 사실 내심 모두 친구끼리 와서 같이 어울려지내기 어렵지 않을까라는 걱정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제 만나본 사람들은 그냥 이십대, 대학생이거나 갓 졸업한 나의 친구들과 비슷한 친구들이었다. 영어를 사용하니 존댓말 반말의 걱정도 없고, 참 쉽게 이야기를 시작할 수 있었다. 특히 아시아에서 온 사람들이 왠지 모를 동질감인지, 어떤 이유에서인지 더 친해지기 쉬웠고, 지금 생각하면 프랑스와 스위스에서 온 사람들과 더 친해지지 못한 것이 가장 큰 아쉬움으로 남아있기도 한다.
우리는 5일동안 캠프에서 일하고 2박 3일간은 신청자를 받아서 little gobi 사막으로 투어를 가게 되었다. 몽골에서 개최된 다른 워크캠프에서 이미 같은 곳을 다녀온 몇몇 캠퍼들을 제외하고는 모두가 함께 투어를 가게 되었다. 가이드는 바로 우리의 캠프리더 짐바~. 짐바는 몽골인으로 동일한 캠프에서 무려 4년동안이나 캠프리더로 생활하고 있다고 했다. 자기가 90년생이라고 했을 때 아무도 믿지 않아서 결국 주민등록증같은 것까지 보여주었다. 정말 나이에 맞지 않게 성숙한 얘기를 해서 듣는 사람들을 부끄럽게 하다가도 아이처럼 장난꾸러기 같은 모습을 보여주는 알 수 없는 짐바;; 이젠 다른 공부를 하기 위해 캠프를 떠난다고 하는데 과연 짐바 같은 캠프리더가 없는 워크캠프는 어떻게 돌아갈지…
하여간 3일간의 투어는 정말 최고였다. 낙타, 말을 타고 돌산은 맨손으로 올라가고 난생처음 모래밖에 없던 사막에서 맨발로 걸어보고… TV에서만 보던 이런 일들은 직접하고나니 매번 매 순간들이 신기하기만 했다. 다만 몽골인 관계로 투어 3일동안은 물티슈 세수로 만족해야 했고 머리 감는 것은 상상도 못했다. 매일매일 먹어야 했던 양고기가 들어간 요리는 어째서인지 나의 입맛에는 맞지 않아 내내 복통을 달고 살기도 했다. 신선한 야채와 김치가 몹시도 그리웠다. 몽골의 대부분의 음식(식당이나 현지인이 직접 해주는 음식)은 기름기가 가득하다. 특히 그냥 ‘고기스프’ 이렇게 적혀있으면 말도 필요없이 100% 양고기이다. ‘비프’라던가 ‘치킨’이라고 쓰여진 경우를 제외하면 말이다. 하지만 한국에서 온 삼인방을 제외한 다른 사람들은 대부분 양고기를 맛있게 먹었기 때문에 아마도 취향의 문제가 아닐까 싶지만 채식주의자라면 엄청난 고생을 할 나라이다. 결국 우리는 나중에는 슈퍼에서 라면을 사서 생라면을 부셔서 먹게 되었다. 이런 사소한 것들만 제외하면 모든 것이 다 잊을 수 없는 기억들이다. 특히 투어 마지막 날 캠프파이어를 놓고 했던 비어파티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각자 자기 나라의 노래를 부르며 마지막에는 캠퍼의 이름을 하나씩 불러주며 끝이 났던 우리들의 캠프파이어.
몽골에서의 워크캠프도 끝나고 울란바토르에서 잠시 머물던 시간도 모두 끝나고 한국으로 돌아가던 날 비행기시간 때문에 다 같이 징키스칸 공항에서 하루 밤 자게 되었다. 5명이 그렇게 공항에서 아침을 맞고, 마지막에 홍콩에서온 언니 2명에게 인사할때까지만 해도 이제 끝이란 느낌이 들지 않았다. 그런데 막상 한국에 도착하고 바로 다음날 개강일에 맞추어 학교로 가는 지하철에 있으니 지난 2주간 만난 많은 사람들과, 2주간 겪은 이야기, 경험 모두 정말 내가 그곳에 있었구나, 라는 이해할 수 없이 갑자기 그리운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사람들과 다시 만날 수는 있어도 그때 그 장소에 같은 상황으로 다시 돌아가 함께 일하고 별을 보고 여행하고 하는 것은 어려우니까.
“내가 작년에 프랑스에 워크캠프를 갔는데…”
워크캠프?! 워크캠프라는 말을 생전 처음 듣게 된 순간이었다. 집에 돌아와서 인터넷에 워크캠프라고 검색해보니 수많은 블로그에 온갖 국가들에 워크캠퍼로 다녀온 자신의 경험들을 써 놓은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날부터 나는 부지런히 국제워크캠프기구 사이트에 들어가서 워크캠프들을 검색해보기 시작했고 몽골을 선택하게 되었다. 선택의 이유는 아무래도 혼자 여행하기는 무섭지만 생애 한번쯤은 가고 싶은 곳이 바로 몽골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2012년 3월에 신청을 하고 4개월여간 워크캠프와 몽골에 대한 기대를 하며 보냈다.
드디어 방학, 그러고도 한달. 몽골에 가게 되었다. 혼자 해외로 나가는 것 자체가 처음이었던지라 걱정반 설렘반 두근두근 인천국제공항에 갔고 3시간여의 비행 끝에 몽골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밤11시가 다 되어가고 있었다. 그때까지도 몽골워크캠프 담당 측에서 공항에서 숙소까지 라이드를 해 주는지의 여부를 확실히 전해 받지 못한 나는 ‘만약 공항에 나를 태워다 줄 사람이 없으면 그냥 공항에서 잘까…’라는 고민까지 하고 있었다. 다행히도 딱 입국심사대를 나가 계단을 내려가 주위를 둘러보니 WORKCAMP라고 쓰인 A4용지를 든 바타르를 만날 수 있었다! 또 대만에서 온 2명의 봉사자까지 만나서 무사히 미리 예약하고 온 GOLDEN GOBI라는 숙소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곳에서 2달 동안 몽골을 여행하던 핀란드 사람을 만났는데 내가 몽골의 이상한 점에 대해 이런저런 말을 하자, 그는 “Anything can happen in Mongolia.” 라는 명쾌한 답을 주었다. 운전석이 좌측에 있는 차, 우측에 있는 차가 모두 공존하고, 횡단보도는 무시되며 6차선 도로도 마구 건너고, 거리에 큰 개들이 떠돌아다니는 곳. 정말 어떤 일도 일어날 수 있는 바로 이곳이 몽골인 것이다!
나는 워크캠프가 시작하긴 이틀 전에 울란바토르에 도착해서 도시를 돌아볼 여유가 있었다. 생각보다 그리 복잡하지 않아서 하루 종일 지도를 들고 돌아다니니 대강의 지리를 파악할 수 있었다. 의외로 한국적인 물품, 한글, 회사들이 가득해서 걸어 다닐 때 마다 깜짝깜짝 놀라곤 했다.
드디어 워크캠프 시작 D-DAY. BAYANGOL HOTEL앞이 바로 미팅포인트였고, 나는 그 앞에서 기다렸다. 곧이어 다른 캠퍼들이 오기 시작했다. 얼굴만 봐서는 그들이 아시아인, 서양인이라는 사실 외에 전혀 국적을 예측할 수 없었다. 몽골에 오기 전 나를 제외한 2명의 한국인이 더 온다는 사실을 듣고 나는 열심히 한국인을 찾기 시작했다. 마침내 찾아서 얘기를 하다 보니 동갑! 대학생! 이틀간 나 홀로 있을 뿐 이었는데 한국어로 말할 수 있는 누군가가 있다는 사실 자체가 너무 감사했다. 그렇게 모든 캠퍼가 모이고 노란색 버스가 오더니 짐과 사람들은 모두 실어 도시를 벗어나 내가 상상하던 바로 그 ‘몽골’ 속으로 떠나기 시작했다. 정말 끝도 없이 펼쳐진 초원에 나무 없는 언덕인지 산일지 모를 고개들. 그리고 양, 말, 소떼들.얼마나 달렸을지 모를 시간이 지나니 아무것도 없던 초원에서 마을이라고 부를 수 있을만한 곳으로 풍경이 바뀌었다.
우리가 2주일간 머물 곳은 예쁘게 지어진 집이었다. 자원봉사자들이 지낼 건물 하나, 아이들이 지내는 건물 하나로 구성되어있었고, 조금 더 걸어가면 조그만 운동장, 그리고 우리가 일하게 될 밭이 있었다. 그 외는 끝없이 펼쳐진 초원, 또 초원. 그리고, 아마 이 워크캠프에 참가했다면 모두가 잊을 수 없는 화장실도 있다. 나무 판자를 이용해서 만든 화장실 하나가 숙소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있었다. 나무로 벽을 세우고 바닥에 구멍만 하나 뚫어놓은 초간단 화장실^^. 초원에 화장실만 하나 덩그러니 있는 모습은 장관이었다. 샤워의 경우는 샤워실이 있기는 하지만 오직 찬물만 나왔기 때문에 감히 도전하지 않았다. 그냥 수도꼭지에서 나오는 얼음장 같은 찬물로 간신히 이틀에 한번 머리만 감을 뿐. 몽골은 8월임에도 불구하고 때때로 아침마다 잔디에 맺힌 이슬이 얼어붙은 정도의 추위를 보였다. (결국 몸을 씻는 샤워는 투어를 위해 잠시 울란바토르에 돌아갔던 캠프시작 후 5일째가 되서야 처음으로 할 수 있었다.) 이곳은 가로등도 지나다니는 차도 없다 보니 밤이면 말 그대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암흑을 체험할 수 있었다. 그래서 밤에 밖이나 화장실에 갈 때마다 언제나 랜턴을 머리에, 손에 하나씩 들고 두리번거리며 돌아다녀야만 했다. 그리고 별!!! 정말 그렇게 많은 별들을 본건 태어나서 난생 처음이었다. 한국에서처럼 “오늘은 하늘에 별이 5개나 보이네”라고 말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고 그냥 하늘전체가 별이었다. 북두칠성도 그 국자모양 그대로 또렷하게 보였다. 나의 성능 낮은 카메라로는 절대 담아낼 수 없던, 눈으로만 간직해야 했던 풍경이었다.
워크캠프 기간 동안 총 3개의 팀으로 나누어서 일을 했다. Cooking team, Watering team 그리고 farming team. 쿠킹 팀은 나머지 멤버들이 먹을 밥을 짓고 설거지를 하고, 물을 주는 팀은 캠프에서 키우던 나무에 물을 주는 일, 나머지 거의 대부분은 밭일을 하러 나갔다. 봄에 씨 뿌리고 여름에 잡초제거, 가을에 추수, 겨울에 보관. 이렇게 합리적으로 봉사활동은 진행되고 있었다. 여름에 온 우리가 할 일은 자연히 잡초를 뽑는 일이었다. Farming 첫날만 해도 이게 여름이 맞나 싶게 추웠다. 무장을 하고 감자밭에 가서 감자와 잡초의 차이를 듣고 한 고랑씩 맡아 끊임없이 무작정 뽑기에 들어갔다. 가끔 애기 감자를 뽑아버리는 불상사도 발생했지만;; 다시 묻어주고 또 뽑고 버리고… 장장 2-3시간에 걸쳐 이런 작업을 하면 정말 뭘 먹어도 맛있고 감사한 상태가 되었다.
일을 하면서 온갖 국적을 가진 캠퍼들과 이야기 할 기회가 있었다. 대부분의 나와 동갑, 아니면 또래였기 때문에 예상보다 많이 얘기하고 친해질 수 있었다. 사실 내심 모두 친구끼리 와서 같이 어울려지내기 어렵지 않을까라는 걱정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제 만나본 사람들은 그냥 이십대, 대학생이거나 갓 졸업한 나의 친구들과 비슷한 친구들이었다. 영어를 사용하니 존댓말 반말의 걱정도 없고, 참 쉽게 이야기를 시작할 수 있었다. 특히 아시아에서 온 사람들이 왠지 모를 동질감인지, 어떤 이유에서인지 더 친해지기 쉬웠고, 지금 생각하면 프랑스와 스위스에서 온 사람들과 더 친해지지 못한 것이 가장 큰 아쉬움으로 남아있기도 한다.
우리는 5일동안 캠프에서 일하고 2박 3일간은 신청자를 받아서 little gobi 사막으로 투어를 가게 되었다. 몽골에서 개최된 다른 워크캠프에서 이미 같은 곳을 다녀온 몇몇 캠퍼들을 제외하고는 모두가 함께 투어를 가게 되었다. 가이드는 바로 우리의 캠프리더 짐바~. 짐바는 몽골인으로 동일한 캠프에서 무려 4년동안이나 캠프리더로 생활하고 있다고 했다. 자기가 90년생이라고 했을 때 아무도 믿지 않아서 결국 주민등록증같은 것까지 보여주었다. 정말 나이에 맞지 않게 성숙한 얘기를 해서 듣는 사람들을 부끄럽게 하다가도 아이처럼 장난꾸러기 같은 모습을 보여주는 알 수 없는 짐바;; 이젠 다른 공부를 하기 위해 캠프를 떠난다고 하는데 과연 짐바 같은 캠프리더가 없는 워크캠프는 어떻게 돌아갈지…
하여간 3일간의 투어는 정말 최고였다. 낙타, 말을 타고 돌산은 맨손으로 올라가고 난생처음 모래밖에 없던 사막에서 맨발로 걸어보고… TV에서만 보던 이런 일들은 직접하고나니 매번 매 순간들이 신기하기만 했다. 다만 몽골인 관계로 투어 3일동안은 물티슈 세수로 만족해야 했고 머리 감는 것은 상상도 못했다. 매일매일 먹어야 했던 양고기가 들어간 요리는 어째서인지 나의 입맛에는 맞지 않아 내내 복통을 달고 살기도 했다. 신선한 야채와 김치가 몹시도 그리웠다. 몽골의 대부분의 음식(식당이나 현지인이 직접 해주는 음식)은 기름기가 가득하다. 특히 그냥 ‘고기스프’ 이렇게 적혀있으면 말도 필요없이 100% 양고기이다. ‘비프’라던가 ‘치킨’이라고 쓰여진 경우를 제외하면 말이다. 하지만 한국에서 온 삼인방을 제외한 다른 사람들은 대부분 양고기를 맛있게 먹었기 때문에 아마도 취향의 문제가 아닐까 싶지만 채식주의자라면 엄청난 고생을 할 나라이다. 결국 우리는 나중에는 슈퍼에서 라면을 사서 생라면을 부셔서 먹게 되었다. 이런 사소한 것들만 제외하면 모든 것이 다 잊을 수 없는 기억들이다. 특히 투어 마지막 날 캠프파이어를 놓고 했던 비어파티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각자 자기 나라의 노래를 부르며 마지막에는 캠퍼의 이름을 하나씩 불러주며 끝이 났던 우리들의 캠프파이어.
몽골에서의 워크캠프도 끝나고 울란바토르에서 잠시 머물던 시간도 모두 끝나고 한국으로 돌아가던 날 비행기시간 때문에 다 같이 징키스칸 공항에서 하루 밤 자게 되었다. 5명이 그렇게 공항에서 아침을 맞고, 마지막에 홍콩에서온 언니 2명에게 인사할때까지만 해도 이제 끝이란 느낌이 들지 않았다. 그런데 막상 한국에 도착하고 바로 다음날 개강일에 맞추어 학교로 가는 지하철에 있으니 지난 2주간 만난 많은 사람들과, 2주간 겪은 이야기, 경험 모두 정말 내가 그곳에 있었구나, 라는 이해할 수 없이 갑자기 그리운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사람들과 다시 만날 수는 있어도 그때 그 장소에 같은 상황으로 다시 돌아가 함께 일하고 별을 보고 여행하고 하는 것은 어려우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