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후기
설렘 가득, 유럽 워크캠프 도전기
Isola della Certosa
참가 전 준비와 마음가짐
학창시절부터 대학교에 들어가면 가장 해보고 싶었던 것 중 하나가 유럽배낭여행이었다. 그리하여 친구와 종종 배낭여행에 대한 이야기들을 나눴고, 가고 싶은 나라들을 정하는 등 막연하게나마 계획을 세워뒀었다. 그리고 대학에 입학을 하게 되었는데, 대학교를 다니다 보니 고등학교 때와는 다르게 좀 더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학교가 아닌 곳에서 더 많은 경험을 할 수 있는 환경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리하여 해외 봉사활동과 같은 대외활동을 찾아보다가 유럽에서 봉사활동을 하는 워크캠프라는 프로그램을 알게 되었다. 워크캠프는 해외봉사활동이라는 대외활동, 외국인 친구들과의 교류, 유럽여행 등 나의 여러 욕구들을 충족 시켜줄 수 있는 고마운 프로그램이었다. 그리하여 학창시절 배낭여행의 꿈을 같이 꿨던 친구와 함께 워크캠프에 지원하게 되었다.
처음으로 써보는 영어지원서라 처음엔 많이 서툴렀지만, 한 두 문장 만들어 가다 보니 요령이 생겨 지원지원 쓰는 것마저도 재밌고 설렜다. 마침내 기다리던 워크캠프 참가 합격통보를 받고, 바로 친구와 함께 비행기를 알아보았고, 워크캠프 일정 앞,뒤로 유럽 배낭여행스케줄을 짜기 시작했다. 또 그 스케줄에 맞게 기차와 숙소 등을 예약하였다. 이 때 까지만 해도 우리의 관심은 워크캠프보다는 배낭여행에 쏠려있었던 것 같다. 출국날짜가 하루하루 다가올수록 잠도 안 올 정도로 너무 설레었다.
드디어 출국. 런던-파리-바르셀로나-프라하-뮌헨-잘츠부르크-스위스를 거쳐 마침내 이탈리아 베네치아에 도착하였다. 약 20일간의 여행을 한 후에 캠프에 참가를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와 친구는 왠지 모르게 ‘이제 자유는 끝이구나…’ 라는 생각이 들어 처음엔 워크캠프에 원망을 했었다. 베네치아 산타루치아 역에서 앞으로 2주 동안 함께할 여러 나라의 친구들과 캠프 리더들을 만났다. 첫만남이라서 그런지 아직은 서먹서먹했지만, 친구들 모두 어색함을 풀기 위해 서로에게 말을 걸고 대화를 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눈에 보였다. 그리하여 나와 내 친구도 워크캠프가 우리의 자유를 빼앗아 갔다는 생각을 그만 멈추고, 친구들에게 마음의 문을 차츰 열게 되었다.
캠프 첫째 날과 둘째 날은 가벼운 게임으로 서로의 이름을 외우고 출신지역, 전공, 직업, 나이 등을 공유하였다. 출신국가와 나이 등이 모두 달랐지만, 영어라는 하나의 언어로 소통을 하며 공감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정말 놀라웠다. 이렇게 서로에 대해 알게 되었고, 셋째 날부터는 본격적으로 Certosa섬을 깨끗하게 치우는 봉사활동을 시작하였다. 뜨겁고 습한 베네치아 날씨에서 일을 한다는 게 처음엔 너무나 힘들었지만, 점점 일도 익숙해지고 친구들과 많이 친해지면서 나중에 가서는 힘겨움을 전혀 느끼지 못하고 즐기며 일을 하였다. 일하는 중간중간 외국인 친구들에게 한글을 가르쳐줬는데 가르쳐준 지 십분 만에 읽고 쓸 줄 아는 친구가 있었다. 그 친구를 보면서 한글의 위대함에 대해 다시 한 번 느끼게 되었다.
오전에 봉사활동을 열심히 끝내놓고, 오후에는 베네치아 구석구석을 여행하였다. 베네치아 현지인인 캠프리더는 자신의 집에 우리를 모두 초대하였고, 우리는 그의 집에서 낮잠도 자고 빵도 먹었다. 처음 보는 친구들을 자신의 집에 초대하는 것이 한국정서상으로는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오픈마인드 라는 유럽의 정서를 체험할 수 있어서 재밌고 신기했다.
마지막 봉사활동의 내용은 리도섬에 가서 휴대용 재떨이를 흡연자들에게 나눠주는 것이었다. 지금까지 계속 Certosa섬에서 현지인들은 만날 새도 없이 쓰레기 줍는 일만 하다가, 직접 이탈리아 현지인들과 마주치게 되는 기회가 생겨 너무나도 들떴었다. 리도섬에 도착하여 해변가에서 담배를 피우는 사람들에게 재떨이를 주자 “No thanks” 라고 다들 말했다. 아마도 동양인이다 보니, 잡상인으로 오해를 한 모양이었다. 그래서 캠프리더가 알려준 단어 “Gratis(선물)” 라고 말하자 “OH!! THANK YOU” 이러면서 기분 좋게 받는 것이었다. 이로 인해 전세계 사람들은 다 똑같다라는 것을 또 한 번 느끼게 되었다. 리도섬에서의 봉사활동은 현지인들과 직접 접촉을 하면서 여러 이야기들을 나눌 수 있었던 좋은 경험이었다.
캠프 마지막 날, 헤어지는 날이 다가왔다. 아마 유럽에 온 이후 캠프에서의 시간이 가장 빨리 갔던 것 같다. 2주라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외국인 친구들과 너무나 정이 많이 들어버려서 떠날 때 눈물이 났다. 실패한 비빔밥을 맛있게 먹어준 친구들, 2주 동안 꼭 붙어 다녔던 멕시칸 Andrea와 프랜치 Sabine, 캠프멤버들을 살뜰히 챙겨준 부리더 그리고 Certosa섬에서 유일하게 와이파이가 터져 정들어 버린 Bar 그리고 Bar 주인님과 강아지… 매일 아침마다 잠을 깨웠던 닭들과 섬을 돌아다니다 마주쳐 깜짝깜짝 놀라게 했던 고양이들과 염소 떼.. 낮엔 덥고 밤에 추웠던 텐트 그리고 좁디좁은 샤워장 등등 캠프에 있을 때는 가끔씩 싫기도 했지만, 캠프장을 떠난다는 것을 실감한 때부터 모든 것이 그리워지고 모든 것이 좋았던 기억으로 미화되어 갔다.
캠프가 모두 끝나고 일주일 동안 이탈리아의 다른 도시들을 여행하고 한국으로 귀국하였다. 인천공항에 도착하고 집으로 가는 공항버스를 탔다. 정말 이런저런 생각을 많이 하였다. 유럽여행을 하면서 만났던 수많은 사람들, 올림픽을 보러 온 수많은 영국인들과 외국인들, 안티모스키토를 바르지 않아 다리에만 모기를 60방 넘게 물렸던 기억 등등 많은 추억들이 스쳐 지나갔지만, 내 생각을 멈추게 했던 것은 바로 워크캠프의 추억이었다. 생김새도 언어도 국적도 나이도 모두 다 다른 사람들이 한 데 모여 그 짧은 기간 동안에 정이 들고 정서적으로 공감을 할 수 있었다는 것이 다시 한 번 너무나 신기하게 느껴졌고, 워크캠프에 와서 정말 많은 것을 얻어간다는 생각이들었다.
유럽배낭 여행과 워크캠프를 갔다오면서 나 자신에 대해 생각할 시간도 많았고, 경험도 많이 하여 나 자신이 한 층 더 성숙해졌다는 것을 스스로 느꼈다. 이 좋은 프로그램을 후배들, 친구들에게 많이 알리고 싶고 또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그것이 유럽이 되었든, 동남아가 되었든지 간에 반드시 한 번 더 참여하고 싶다.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새로운 경험을 하는 것은 언제나 설레고 값진 일이니까.
처음으로 써보는 영어지원서라 처음엔 많이 서툴렀지만, 한 두 문장 만들어 가다 보니 요령이 생겨 지원지원 쓰는 것마저도 재밌고 설렜다. 마침내 기다리던 워크캠프 참가 합격통보를 받고, 바로 친구와 함께 비행기를 알아보았고, 워크캠프 일정 앞,뒤로 유럽 배낭여행스케줄을 짜기 시작했다. 또 그 스케줄에 맞게 기차와 숙소 등을 예약하였다. 이 때 까지만 해도 우리의 관심은 워크캠프보다는 배낭여행에 쏠려있었던 것 같다. 출국날짜가 하루하루 다가올수록 잠도 안 올 정도로 너무 설레었다.
드디어 출국. 런던-파리-바르셀로나-프라하-뮌헨-잘츠부르크-스위스를 거쳐 마침내 이탈리아 베네치아에 도착하였다. 약 20일간의 여행을 한 후에 캠프에 참가를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와 친구는 왠지 모르게 ‘이제 자유는 끝이구나…’ 라는 생각이 들어 처음엔 워크캠프에 원망을 했었다. 베네치아 산타루치아 역에서 앞으로 2주 동안 함께할 여러 나라의 친구들과 캠프 리더들을 만났다. 첫만남이라서 그런지 아직은 서먹서먹했지만, 친구들 모두 어색함을 풀기 위해 서로에게 말을 걸고 대화를 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눈에 보였다. 그리하여 나와 내 친구도 워크캠프가 우리의 자유를 빼앗아 갔다는 생각을 그만 멈추고, 친구들에게 마음의 문을 차츰 열게 되었다.
캠프 첫째 날과 둘째 날은 가벼운 게임으로 서로의 이름을 외우고 출신지역, 전공, 직업, 나이 등을 공유하였다. 출신국가와 나이 등이 모두 달랐지만, 영어라는 하나의 언어로 소통을 하며 공감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정말 놀라웠다. 이렇게 서로에 대해 알게 되었고, 셋째 날부터는 본격적으로 Certosa섬을 깨끗하게 치우는 봉사활동을 시작하였다. 뜨겁고 습한 베네치아 날씨에서 일을 한다는 게 처음엔 너무나 힘들었지만, 점점 일도 익숙해지고 친구들과 많이 친해지면서 나중에 가서는 힘겨움을 전혀 느끼지 못하고 즐기며 일을 하였다. 일하는 중간중간 외국인 친구들에게 한글을 가르쳐줬는데 가르쳐준 지 십분 만에 읽고 쓸 줄 아는 친구가 있었다. 그 친구를 보면서 한글의 위대함에 대해 다시 한 번 느끼게 되었다.
오전에 봉사활동을 열심히 끝내놓고, 오후에는 베네치아 구석구석을 여행하였다. 베네치아 현지인인 캠프리더는 자신의 집에 우리를 모두 초대하였고, 우리는 그의 집에서 낮잠도 자고 빵도 먹었다. 처음 보는 친구들을 자신의 집에 초대하는 것이 한국정서상으로는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오픈마인드 라는 유럽의 정서를 체험할 수 있어서 재밌고 신기했다.
마지막 봉사활동의 내용은 리도섬에 가서 휴대용 재떨이를 흡연자들에게 나눠주는 것이었다. 지금까지 계속 Certosa섬에서 현지인들은 만날 새도 없이 쓰레기 줍는 일만 하다가, 직접 이탈리아 현지인들과 마주치게 되는 기회가 생겨 너무나도 들떴었다. 리도섬에 도착하여 해변가에서 담배를 피우는 사람들에게 재떨이를 주자 “No thanks” 라고 다들 말했다. 아마도 동양인이다 보니, 잡상인으로 오해를 한 모양이었다. 그래서 캠프리더가 알려준 단어 “Gratis(선물)” 라고 말하자 “OH!! THANK YOU” 이러면서 기분 좋게 받는 것이었다. 이로 인해 전세계 사람들은 다 똑같다라는 것을 또 한 번 느끼게 되었다. 리도섬에서의 봉사활동은 현지인들과 직접 접촉을 하면서 여러 이야기들을 나눌 수 있었던 좋은 경험이었다.
캠프 마지막 날, 헤어지는 날이 다가왔다. 아마 유럽에 온 이후 캠프에서의 시간이 가장 빨리 갔던 것 같다. 2주라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외국인 친구들과 너무나 정이 많이 들어버려서 떠날 때 눈물이 났다. 실패한 비빔밥을 맛있게 먹어준 친구들, 2주 동안 꼭 붙어 다녔던 멕시칸 Andrea와 프랜치 Sabine, 캠프멤버들을 살뜰히 챙겨준 부리더 그리고 Certosa섬에서 유일하게 와이파이가 터져 정들어 버린 Bar 그리고 Bar 주인님과 강아지… 매일 아침마다 잠을 깨웠던 닭들과 섬을 돌아다니다 마주쳐 깜짝깜짝 놀라게 했던 고양이들과 염소 떼.. 낮엔 덥고 밤에 추웠던 텐트 그리고 좁디좁은 샤워장 등등 캠프에 있을 때는 가끔씩 싫기도 했지만, 캠프장을 떠난다는 것을 실감한 때부터 모든 것이 그리워지고 모든 것이 좋았던 기억으로 미화되어 갔다.
캠프가 모두 끝나고 일주일 동안 이탈리아의 다른 도시들을 여행하고 한국으로 귀국하였다. 인천공항에 도착하고 집으로 가는 공항버스를 탔다. 정말 이런저런 생각을 많이 하였다. 유럽여행을 하면서 만났던 수많은 사람들, 올림픽을 보러 온 수많은 영국인들과 외국인들, 안티모스키토를 바르지 않아 다리에만 모기를 60방 넘게 물렸던 기억 등등 많은 추억들이 스쳐 지나갔지만, 내 생각을 멈추게 했던 것은 바로 워크캠프의 추억이었다. 생김새도 언어도 국적도 나이도 모두 다 다른 사람들이 한 데 모여 그 짧은 기간 동안에 정이 들고 정서적으로 공감을 할 수 있었다는 것이 다시 한 번 너무나 신기하게 느껴졌고, 워크캠프에 와서 정말 많은 것을 얻어간다는 생각이들었다.
유럽배낭 여행과 워크캠프를 갔다오면서 나 자신에 대해 생각할 시간도 많았고, 경험도 많이 하여 나 자신이 한 층 더 성숙해졌다는 것을 스스로 느꼈다. 이 좋은 프로그램을 후배들, 친구들에게 많이 알리고 싶고 또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그것이 유럽이 되었든, 동남아가 되었든지 간에 반드시 한 번 더 참여하고 싶다.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새로운 경험을 하는 것은 언제나 설레고 값진 일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