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후기
이탈리아 산골 마을, 낯선 여행의 시작
Gerola Alta
참가 전 준비와 마음가짐
워크캠프 이전에 서유럽 여행을 하고 이탈리아에서도 로마, 아씨시, 피렌체, 밀라노에 들렸다가 가는 길이었기에 기차를 타는 것이 두렵지는 않았다. 한창을 달리는데 옆 좌석 여자애가 등산화를 신고 있는 것이 아까부터 걸렸다. 역시, ‘Morbegno’역. 우리는 종착역이 같았고 서로 미소를 띠며 물었다. “Are you Workcamper??” 여행지에서 늘 낯설던 외국인이 친구로 다가오는 순간이었다. 미팅 포인트, 서로가 서로에게 낯설은 외국인들이었을 우리는 모두가 반갑게 인사하기 보다는 서먹한 미소를 띠고 있었다. 게다가 캠프리더도 외국인중 하나였기에 누군지 알 수 없었다. 그저 갑자기 내리는 비에 정신 없이 봉고차 두 대에 나눠 타 우리의 워크캠프 마을인 ‘Gerola Alta’를 향해 출발하기 시작했다.
역시 산 속 마을이라더니 꼬불꼬불 끝도 없이 산을 올라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참을 가서 도착한 곳은 어느 작은 마을이었다. 이탈리아 마을답게 교회를 중심으로 옹기 종기 집들이 모여 있고 가운데에는 강물이 흐르고 있었다. 한국적으로 표현하면 배산임수에 걸맞는 풍수 좋은 마을이었다. 모두가 어색하게 각자 간이 침대 하나씩을 맡고 짐을 푸르기 시작했다. 그리고선 윗 층, 남자들 방과 부엌이 함께 있는 곳으로 올라가 우리는 간단한 설명을 들었다. 아이러니했던건 인포싯에 기본적 영어 사용 능력을 요구했던 반면에 캠프리더가 영어를 전혀 할 줄 몰랐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의 친구가 늘 동행하며 번역을 해줬다. 그 뒤에 여자애들은 방에 내려가 서로서로 인사를 나누며 이름과 얼굴을 익히기 시작했다. 재미있었던 것은, 나 말고도 한국 여자애가 하나 더 있었는데 외국 아이들은 한국 이름을 발음하기 너무도 어려워한다는 것이었다. 그 다음에 다소 어색했지만 여자애들끼리 함께 마을을 구경하러 다녔다. 조심스럽게 말을 걸고, 모두가 어색한 영어로 대화 나누는 그 모습이 매우 재미있게 느껴졌다. 저녁에는 일종의 마을회관에서 마을 어른들, 청년들이 모인 자리에서 공식적으로 자기 소개를 하고 봉사 단체 티를 받는 진행식이 있었다. 워크캠프 친구들의 국적은 한국을 포함해서 세르비아, 스페인, 터키, 일본, 러시아, 이탈리아, 독일 이며 총 12명이 있었다.
다음날부터 본격적으로 일이 시작되었는데 우리의 주 업무는 산에 길을 정리하는 것이었다. 이 마을 사람들은 모두 산을 통해서 이동하기에 산에 나있는 길이 상당히 중요하다. 우리는 팀을 나눠 돌에 페인트 스프레이로 길임을 표시하는 역할, 빗자루나 그 외 비슷한 연장 등으로 길을 청소하는 역할, 가위와 톱으로 주변 나뭇가지를 정리하는 역할을 맡아 일을 시작했다. 이 일이 2주 내내 지속되었는데 우리의 일상을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다. 아침에 캠프리더가 지정한 시간에 집 앞에 모여 그 날 정리해야 할 산 길을 닦기 시작한다. 정상에 도달하면 대부분 점심시간이 되는데 그럼 캠프리더가 나누어준 파니니를 간단히 먹고 휴식을 취한다. 그 뒤 내려온다. 이러면 보통 오후 3시정도가 되어 있다. 처음에는 경치를 즐길 여력이 있었지만 뒤에 갈수록 정말 매일같이 하이킹을 하려니 체력이 보통 바닥나는 것이 아니었다. 게다가 악조건이었던 것은 워크캠프 일주일이 지나고서 세르비아 남자애들 둘과 이탈리아 남자애 하나가 워크캠프를 떠났다는 것이다. 일손이 줄어드는 상황이었지만 마을 청년들이 때때로 합세했기에 크게 체감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일이 끝나면 늘 작은 재미가 기다리고 있었는데 그것은 이 마을의 특징이기도 한 것 같다. 정말 작은 시골마을이었음에도 이 곳에는 10대를 비롯, 청년들이 매우 많았다. 여름방학마다 고향으로 내려오는 것이라고 했는데 그랬기에 서로에게 늘 익숙한데다가 놀기도 좋아하여 우리들에게 관심이 매우 지대했다. 우리를 위해서 파티를 열고, 댄스 플로어를 만들고, 때때로는 마을 사람들과 함께 연극을 하기도 했다. 그리고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하루 날을 잡아 가정 집에 초대되어 이탈리아식 저녁 식사를 함께 하는 것이었다. 소문처럼 2시간 반에서 3시간 동안 천천히 그리고 많이 식사했는데 맛있고 흥미로웠다. 마지막 주 끝 무렵에는 코모 호수도 놀러 갔다.
이번 워크 캠프에서 좋았던 점은 모두가 상당히 사교적이었기에 생각보다 많은 마을 사람들과 친해질 수 있었다는 점이다. 모두가 친절하려고 노력하고 영어를 못해도 도움을 주려고 노력했다. 다만, 우리끼리 소위 이탈리아 식이라고 부르며 다소 불만을 가졌던 점도 있다. 그건 이 나라 사람들 특유의 여유때문인 것 같다. 짜여진 규율이 없어 늘 ‘어디를?’ ‘왜?’ ‘언제까지?’라는 의문을 가지고 따라다녔던 것 같다. 심지어는 ‘다음날 일 안 할거야.’ 라고 했는데 불러서 또 정처 없이 가다 보면 쉬는 날인데 알프스 산을 영문도 모른 채 올라가고 있고, 뭐 이런 것이었다. 열악한 숙소의 여건과 같은 것은 웬만한 워크 캠프의 특징이라고 생각하기에 꼭 이 워크캠프만의 특징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헤어질 때, 다른 이별과 달리 어쩌면 이들은 생애 두번다시는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꽤 울컥했던 것 같다. 특히 많이 친해졌던 러시아 친구 두명과 독일 친구 한명과 헤어질 때는 아쉬움이 더했다. 매일같이 잠들기 전 핸드폰으로 일기를 적었기에 아직도 휴대폰만 켜면 그때의 기억들이 눈 앞에 영상을 틀어놓은 듯 생생하게 펼쳐진다. 그 때 찍은 사진, 그 때 나눈 이야기들…… 당시 아무리 힘들었다 한들 뭐 어떠랴. 지나면 모든 것이 아름답고, 특히 이 경험은 너무도 특별한 것을. 요즘도 친구들과 페이스북 메시지를 통해, 혹은 이메일을 통해 근황을 주고 받으며 그리움을 달랜다. 그 때에도 지금도 미래에도 늘 특별함과 소중함으로 남아있을 ‘Workcamp in Gerola Alta Italy!’
역시 산 속 마을이라더니 꼬불꼬불 끝도 없이 산을 올라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참을 가서 도착한 곳은 어느 작은 마을이었다. 이탈리아 마을답게 교회를 중심으로 옹기 종기 집들이 모여 있고 가운데에는 강물이 흐르고 있었다. 한국적으로 표현하면 배산임수에 걸맞는 풍수 좋은 마을이었다. 모두가 어색하게 각자 간이 침대 하나씩을 맡고 짐을 푸르기 시작했다. 그리고선 윗 층, 남자들 방과 부엌이 함께 있는 곳으로 올라가 우리는 간단한 설명을 들었다. 아이러니했던건 인포싯에 기본적 영어 사용 능력을 요구했던 반면에 캠프리더가 영어를 전혀 할 줄 몰랐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의 친구가 늘 동행하며 번역을 해줬다. 그 뒤에 여자애들은 방에 내려가 서로서로 인사를 나누며 이름과 얼굴을 익히기 시작했다. 재미있었던 것은, 나 말고도 한국 여자애가 하나 더 있었는데 외국 아이들은 한국 이름을 발음하기 너무도 어려워한다는 것이었다. 그 다음에 다소 어색했지만 여자애들끼리 함께 마을을 구경하러 다녔다. 조심스럽게 말을 걸고, 모두가 어색한 영어로 대화 나누는 그 모습이 매우 재미있게 느껴졌다. 저녁에는 일종의 마을회관에서 마을 어른들, 청년들이 모인 자리에서 공식적으로 자기 소개를 하고 봉사 단체 티를 받는 진행식이 있었다. 워크캠프 친구들의 국적은 한국을 포함해서 세르비아, 스페인, 터키, 일본, 러시아, 이탈리아, 독일 이며 총 12명이 있었다.
다음날부터 본격적으로 일이 시작되었는데 우리의 주 업무는 산에 길을 정리하는 것이었다. 이 마을 사람들은 모두 산을 통해서 이동하기에 산에 나있는 길이 상당히 중요하다. 우리는 팀을 나눠 돌에 페인트 스프레이로 길임을 표시하는 역할, 빗자루나 그 외 비슷한 연장 등으로 길을 청소하는 역할, 가위와 톱으로 주변 나뭇가지를 정리하는 역할을 맡아 일을 시작했다. 이 일이 2주 내내 지속되었는데 우리의 일상을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다. 아침에 캠프리더가 지정한 시간에 집 앞에 모여 그 날 정리해야 할 산 길을 닦기 시작한다. 정상에 도달하면 대부분 점심시간이 되는데 그럼 캠프리더가 나누어준 파니니를 간단히 먹고 휴식을 취한다. 그 뒤 내려온다. 이러면 보통 오후 3시정도가 되어 있다. 처음에는 경치를 즐길 여력이 있었지만 뒤에 갈수록 정말 매일같이 하이킹을 하려니 체력이 보통 바닥나는 것이 아니었다. 게다가 악조건이었던 것은 워크캠프 일주일이 지나고서 세르비아 남자애들 둘과 이탈리아 남자애 하나가 워크캠프를 떠났다는 것이다. 일손이 줄어드는 상황이었지만 마을 청년들이 때때로 합세했기에 크게 체감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일이 끝나면 늘 작은 재미가 기다리고 있었는데 그것은 이 마을의 특징이기도 한 것 같다. 정말 작은 시골마을이었음에도 이 곳에는 10대를 비롯, 청년들이 매우 많았다. 여름방학마다 고향으로 내려오는 것이라고 했는데 그랬기에 서로에게 늘 익숙한데다가 놀기도 좋아하여 우리들에게 관심이 매우 지대했다. 우리를 위해서 파티를 열고, 댄스 플로어를 만들고, 때때로는 마을 사람들과 함께 연극을 하기도 했다. 그리고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하루 날을 잡아 가정 집에 초대되어 이탈리아식 저녁 식사를 함께 하는 것이었다. 소문처럼 2시간 반에서 3시간 동안 천천히 그리고 많이 식사했는데 맛있고 흥미로웠다. 마지막 주 끝 무렵에는 코모 호수도 놀러 갔다.
이번 워크 캠프에서 좋았던 점은 모두가 상당히 사교적이었기에 생각보다 많은 마을 사람들과 친해질 수 있었다는 점이다. 모두가 친절하려고 노력하고 영어를 못해도 도움을 주려고 노력했다. 다만, 우리끼리 소위 이탈리아 식이라고 부르며 다소 불만을 가졌던 점도 있다. 그건 이 나라 사람들 특유의 여유때문인 것 같다. 짜여진 규율이 없어 늘 ‘어디를?’ ‘왜?’ ‘언제까지?’라는 의문을 가지고 따라다녔던 것 같다. 심지어는 ‘다음날 일 안 할거야.’ 라고 했는데 불러서 또 정처 없이 가다 보면 쉬는 날인데 알프스 산을 영문도 모른 채 올라가고 있고, 뭐 이런 것이었다. 열악한 숙소의 여건과 같은 것은 웬만한 워크 캠프의 특징이라고 생각하기에 꼭 이 워크캠프만의 특징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헤어질 때, 다른 이별과 달리 어쩌면 이들은 생애 두번다시는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꽤 울컥했던 것 같다. 특히 많이 친해졌던 러시아 친구 두명과 독일 친구 한명과 헤어질 때는 아쉬움이 더했다. 매일같이 잠들기 전 핸드폰으로 일기를 적었기에 아직도 휴대폰만 켜면 그때의 기억들이 눈 앞에 영상을 틀어놓은 듯 생생하게 펼쳐진다. 그 때 찍은 사진, 그 때 나눈 이야기들…… 당시 아무리 힘들었다 한들 뭐 어떠랴. 지나면 모든 것이 아름답고, 특히 이 경험은 너무도 특별한 것을. 요즘도 친구들과 페이스북 메시지를 통해, 혹은 이메일을 통해 근황을 주고 받으며 그리움을 달랜다. 그 때에도 지금도 미래에도 늘 특별함과 소중함으로 남아있을 ‘Workcamp in Gerola Alta Ita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