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후기

보르도, 7월의 푸른 장미 아래

작성자 최재선
프랑스 CONC 004 · RENO/ENVI 2012. 07 Saint Caprais de Bordeaux

Saint Caprais de Bordeaux

참가 전 준비와 마음가짐

쏟아지는 한낮의 뜨거운 햇살의 양으로 혹은
눈곱도 떼지 않은 채 부스스 일어나 아침식사 때 주고받은
각국의 인사말을 구성하는 작은 단어들로도
내가 경험한 워크캠프인 7월의 프랑스, 작은 보르도 하늘 아래를 모두 설명할 수 없다.
왜 시간은 빠르고도 모진속성을 가지고 있는 것인지
순간마다 마음으로 찍은 사진들은 그 빛을 바래
더 희미해지기 전에 간절한 마음으로 글을 적어간다.

또한 아침에 들른 작은 꽃집에서 싱싱한 푸른 장미 한 다발을
무심한 척 여러분의 작은 두 손에 선물하는 기분이다.


우리의 미팅장소는 보르도 Gare de Saint jean 기차역 오후 7시였다. 하지만 생각보다 역은 너무 넓고 명확하게 미팅장소를 지정하지 않아 당황스러웠다. 그러나 information 에서 대개 사람들이 만나는 장소를 물어봤고 30kg 짜리 거대한 내 캐리어 가방에 conc 004라고 붙여놓아 다행히 국제미아를 사전 방지했다.
리더자 동료 프랑스 출신의 악튜와 스페인 출신 루이스를 만나고 팀원들 하나 둘 모여 아직은 낯선 기분이 감돌았지만 꿈꾸었던 그림은 그렇게 시작되고 있었다.
다음날 늦게 도착한 지선이를 비롯한 한국인2명, 프랑스, 스페인 , 독일, 캐나다, 러시아, 세네갈까지 다양한 국적의 반가운 얼굴들과 인사를 나누며 그 동안의 시공간을 좁혀갔다.
와인생산지로 유명한 보르도 북서쪽으로 작은 마을 Saint Caprais 이 있고 우리가 할 일은 그 마을에 벤치와 이정표를 세우고 작은 학교의 원주민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는 일이었다.

마을에서 주관한 마라톤 경기의 환영식 및 멀리서 온 우리를 축하하기 위해 저녁식사에 초대되었는데 각자 자기 소개 시간에 예상치 못한 주목을 받았다.
제 이름은 재선입니다. Je m'applle Jaesun.
한국에서 왔습니다. Je suis coreen.
그리고 에디트 피아프를 좋아합니다. Um...Et I love Edith Piaf.
여전히 서먹서먹했던 동료들과 내 소개를 듣고 있던 프랑스동네어른들의 박수와 환호가 쏟아졌다.
먼 나라 한국의 젊은 청년이 우리나라의 이미자 선생님 같은 프랑스의 국민가수를 알고 있으니 신기한 눈으로 볼 수밖에. 스타가 된 나는 우리나라 밴댕이와 모습과 맛이 비슷한 사르디나 라는 구운 생선을 여러분이 계속 권해주셔 10마리 이상은 먹은 듯 접시에 앙상한 뼈만 가득했다.

본격적으로 시내 곳곳에 땅을 파고 벤치를 조합한 후에 파인 부분에 시멘트를 부어 굳힌 뒤 고정시켰다. 또한 돌로 만든 탁구대 역시 비슷한 방법으로 설치했는데 동료 루이스가 도와주다 허리가 아파 멈칫한 모습을 보고 그리스가 며칠 동안 흉내 내며 우리를 즐겁게 했다.

프랑스의 대부분 집들은 거의 전기 인두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성냥갑을 줄줄이 세워놓은 듯 우리나라의 주거환경과 달리 넓은 마당과 뒤뜰이 있으니 나뭇결을 태워 이정표를 만드는 게 흔한 모양이었다.
역시 동시에 진행되는 프로젝트로 참가자 각국의 수도들이 이곳에서 얼마나 떨어져 있는지 그 수와 방향을 나무에 새겨 표지판을 만들었다.
모두들 인두 다루는 솜씨가 서투른 반면 상대적으로 젓가락을 사용해 손재주가 있는 나와 지선이 거의 모든 나무 판에 친구들의 수도 이름을 아로새겼다.
또 한번 장인정신이 빛을 바라던 순간으로 모두들 엄지손가락을 세우며 프로페셔널이라고, 뷰티풀이라고 말해줬다. 세네갈 막내 제제는 처음으로 완성시킨 나무 판에 키스를 퍼부어 순수한 흑인 청년의 모습을 보고 보람을 느꼈다.


한국친구들은 대개 음식을 못한다고 그 누가 말했던가
혹자는 꼭 불고기 양념을 챙겨가라 말했지만 나는 고개를 가로 저었다.
30kg이나 하던 내 커다란 가방에는 고추장, 된장, 혹시 깨질까 수건으로 돌돌 말아온 작은 참기름 병까지 한국의 음식을 소개하고 싶었다. 2명씩 한 조가 되어 그날의 점심과 저녁식사를 도맡아 했고 지선이와 함께 조를 이루어 한국음식을 선보였다.
토마토소스나 크림소스를 곁들인 파스타를 주로 먹는 친구들에게 고추장을 넣어 매콤달콤한 고추장 파스타를 선보였고 초등학교 넓은 잔디운동장에 쑥이 자라는 것을 우연히 보고 한 움큼 뜯어와 우리의 꽃전 처럼 쑥을 얹어 장식한 호박전을 만들었다. 그 작은 호박전도 포크와 나이프를 이용해 먹는 것이 우습 기도했지만 맛있게 먹어주고 맨날 식사를 담당해달라는 말에 조금은 섬뜩했다. 요리하는 것도 힘든 일이지 않은가? 그 다음주에는 고구마를 튀겨 꿀에 버무린 맛탕과 사르디나 생선조림, 짭조름한 닭불고기로 다시 한번 동료들을 사로잡았다.

마지막으로 여러 명이 조금씩 음식을 준비하는 파티에서는 비빔밥을 준비했다.
따뜻한 밥 위에 각종채소들을 얹고 고추장과 노른자가 살아있는 계란부침으로 마무리하고 싶었지만 부족한 식 재료와 매운 음식을 싫어하는 친구들에게는 부담스러운 식사가 되고 싶지 않았다.
마침 익힌 쌀도 샐러드의 재료가 되는 그들에게 영감을 얻어 큰 볼에 잘된 밥을 한 가득 담고 소고기 대신 참치를, 옥수수와 올리브 당근등으로 각종 나물을 대신하고 고추장 대용의 알싸한 겨자 약간, 샐러드의 새콤한 느낌을 살리기 위해 발사믹 식초, 마지막으로 올리브유를 넣어 비볐다.
혹시 해서 토마토소스와 고추장, 양파를 이용한 조금 매콤한 소스를 추가했는데 남아있는 다른 팀의 음식과 달리 밥과 매콤한 소스 모두 매진, 브라보!
참고로 이런 내 진심과 노력이 그들에게 전달되었는지 헤어지기 전날 각 분야에서 각 분야의 시상식을 진행 했는데 쿠킹왕에 선발되어 사르디나 통조림을 부상으로 받았다.

스페인 출신의 마누 역시 자국음식을 소개했다.
감자를 익혀 계란부침안에 숨어 들어간 또띠야와, 레드와인과 레몬에이드, 몇 가지 싱싱한 과일을 한데 담아 건네준 샹그리아는 입안의 기름기를 씻어주기에 충분했다.
독일출신의 라우라는 울상이었다.
요리책을 준비해왔지만 본인은 요리에 소질이 없고 미안하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물론 나 역시 처음 보는 음식과 맛에 조금 당황스러웠지만 열심히 한 그녀를 생각하니 먹을만했다. 팀의 리더이자 연장자인 마릴린은 그녀에게 우리에게 이야기 했다.
“정말 그 음식이 맛있어야 한다면 우린 레스토랑에 갔어야 한다.
하지만 우리는 숙련된 요리사가 아니고 여기는 레스토랑도 아니며 서로를 위해 해주는 그것만으로 충분하다.”
그녀와 우리모두 서로의 미안함이 치유되는 작은 메시지 한 조각!

터키 출신의 볼칸의 생일이 워크캠프 일정 중에 겹쳤다. 전날 조금씩 돈을 모아 선물을 준비하고 각국의 언어로 생일축하 노래를 불러줬다.
행복한 그의 표정, 일주일 전의 냉랭함과 거리감은 사랑과 우정으로 충만했다.


뮤지컬공연전공이었던 나는 1학년 때 전공과목으로 스포츠댄스, 발레를 배웠다. 워낙 몸치라 기본 정도 혹은 그것마저 가물가물해진 상황에서 유용하게 쓰일 줄은 몰랐다. 발레자세를 알려주며 첫만남 때 서먹함을 좁히고 일이 없던 주말 음악을 크게 틀어 다같이 춤을 추고 웃었다.
우리가 묵었던 숙소조명은 참 어둡고 남루한 것이었는데 왜 그리 빛나는 순간으로 남아있는 건지.
그 순간 “나랑 함께 차차차 출사람?”
건강한 그녀 마릴린의 우렁찬 소리와 함께 자동적으로 신사가 되어 그녀의 손을 잡고 스텝을 밟았다. 한국에서 레드카펫을 못 가져와서 미안하다는 나의 농담과 함께 가물가물한 스텝을 밟았다. 그리고 동료들의 우레와 같은 박수소리.

3주라는 시간은 워크캠프 시작 전 굉장히 긴 여정으로만 생각했다. 그러나 서로를 이해하고 알아가는 시간으로는 너무 빠르게 지나갔음을 헤어지는 날이 되어서야 느끼게 되었다.

오지 않을 것만 같았던 마지막 날, 못내 서운했는지 스페인 출신의 마누, 리더이자 든든한 정신적 지주 캐나다 출신의 마릴린, 세네갈 출신의 제제는 조금 이른 나의 출발에 눈물을 흘렸다.
각기 다른 얼굴과 언어로 완전한 의도를 알아채진 못해도 가슴으로 함께 한 시간이었으니!

헤어지기 위한 나의 마지막 한마디.
“한국에서는 그 혹은 그녀가 나이가 많으면 마치 서열처럼 순서가 정해져. 나는 물론 한국 사람이니까 그런 문화에 익숙해있었지. 그런데 너희들과 함께 하면서 물론 나의 친형제임은 물론이고 나의 친구임을 헤어지면서 깨 닿게 되었네. 사랑해 모두들!”

이런 소중한 경험을 도와주신 명지대학교, 국제워크캠프기구에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