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후기
에스토니아, 용기가 샘솟는 곳 두려움을 넘어, 에스토니
LEIGO LAKE MUSIC
참가 전 준비와 마음가짐
학교에서 본 워크캠프 모집 공고를 보고 나는 워크캠프를 지원하게 되었다, 언어로 인한 두려움, 혼자 출국 해야 한다는 부담은 생각지도 못한 채, 내가 언제 외국에 나가서 외국인들과 봉사활동을 해볼 수 있을까 라는 생각으로 지원했고, 결과는 합격이었다. 신나는 마음에 워크캠프 OT를 들으러 갔는데 이게 왠걸 정말 모든 걸 다 혼자서 해야 하는 프로그램이었다. 갑자기 두려워졌다. 영어도 잘 못하는 내가 과연 혼자 갈 수 있을까? 국제 미아가 되는 것은 아닐까? 더군다나 내가 가야 될 국가는 ‘에스토니아’. 아무 정보도 없던 내게 주어진 리스트, 모두 다 생소한 국가였고 나에게 선택할 시간은 짧았었기 때문에 그냥 네이버에 쳐보고 예쁜 국가로 고르자 라는 맘으로 검색을 하기 시작했다. SKYPE를 개발한 나라, 한국과 비슷한 역사, IT강국, 이 세 가지의 키워드로 나는 에스토니아를 선택했다.
비행기표 준비부터 어디서 묶을 지에 대한 정보까지 내가 혼자 다 결정 해야 했다. 나는 설레는 맘 반, 걱정되는 맘 반으로 여러 가지 내가 걱정되는 문제를 처리하려고 노력했다. 첫 째는 언어의 문제였고 둘 째는 혼자서 외국을 다녀야 한다는 문제였다. 캠프를 두 세달 즈음 남겨놓고 나는 영어 회화 책 한 권을 구입하고 가방에 넣고 다니며 지하철 등˙하교 길에서 책을 읽곤 했고, 평소 좋아했던 미국드라마도 더 자주 봤다. 호스텔에 예약 메일은 보내고, 비행기표를 구입하고 혼자 여행계획을 세우고 교통편을 알아보는 등 많은 준비를 했다. 난 워크캠프가 끝나고 동유럽을 여행할 계획이었으나 예산문제로 계획을 수정하는 바람에 또 다시 많은 변동이 있었고, 호스텔부터 루트까지 다시 짜면서 정말 힘들었지만, 이 일을 생각하면 다음 번 유럽여행은 얼마든지 혼자서 떠날 수 있을 거 라고 자신한다.
두려웠지만 생각보다 매우 무지 쉬운 공항 환승 과정을 거치고, 에스토니아 공항에 내렸다. 동양인이나 하나 뿐이었다. 쏟아지는 사람들의 시선을 즐기면서 밖으로 나가니 갈매기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2일 전에 미리 도착한 터라 여유롭게 에스토니아를 구경했다. 너무나 아름다운 도시였다. 사실 프랑스가 너무 가고 싶었지만, 에스토니아 올드타운을 구경하면서 이렇게 아름답고 다른 유럽국가들보다 많이 알려지지 않은 도시를 다른 사람들 보다 먼저 와봤다는 사실에 뿌듯함과 내 자신에게 ‘이런 도시를 고르다니 정말 잘했어’라고 칭찬을 해주고 싶었다.
드디어 캠퍼들과 만나는 날, 정말 긴장되었고 되게 떨렸다. 과연 어떤 나라에서 온 사람들이 있을까, 그리고 이제부터 시작되는 본격적인 언어장벽의 문제는 어떻게 해야 되지. 두근거리는 맘으로 미팅포인트에 갔으나 같은 호스텔을 써서 알게 된 스페인에서 온 2명의 여인들뿐이었다. 아무리 기다려도, 미팅시간이 다가와도 사람들은 오지 않았고, 나와 한국인언니, 스페인 여인 2명, 온둘라스에서 온 아이, 에스토니아 캠프리더가 끝이었다. Leigo에 가려면 Tartu에서 버스를 갈아타야 했는데, 결국 우리는 우리 6명이서 Tartu까지 갔다. 캠프 정원이 10으로 알고 있던 나는 이게 뭐지 정말 당황스러웠다. TARTU에 내려서 버스표를 사고 화장실에 갔다 오니 어느새 캠퍼가 2명으로 늘어나 있었다. 대만에서 온 남자, 이탈리아에서 온 남자였다. 어 그러고 보니 저 대만에서 온 남자 어디서 많이 본 얼굴이었는데, 생각하고 있던 차에 탈린 여행을 하다 버스 안에서 밖을 보던 중 동양인이 흔치 않던 탈린에서 본 동양인이라 짧은 손 인사를 했었던 그 남자였다! 우리는 반가운 마음에 중국어로 인사를 했고(내 전공은 중국어 이기 때문에) 캠프에서 중국인을 만나서 너무 기뻤다!
Leigo는 무척 정말 너무나 아름다운, sound of music 의 배경이 되는 알프스 같았다. 푸른 동산에 사이사이 놓여있는 호수들, 그리고 꽃이 가득한 들판과 통나무로 된 집. 아름다운 자연 그 자체였다. 우리 모두는 다 환호성을 금치 못했고, 그 날 집 주인이자 캠프주최측이 던 티오와 그 조카인 야곱에게 축제얘기를 들을 수 있었다. Leigo Music festival, 그 아름다운 곳에서 오케스트라를 들을 생각을 하니, 정말 최고의 캠프라고 생각했다. 나의 워크캠프는 자연과 시설은 매우 좋았지만, 캠퍼들끼리의 교류는 다른 캠프보다 적었다. 아무래도 캠프리더의 첫 번째 캠프였고, 리더는 18살로 매우 어려서 그런지 전달력, 통솔력이 매우 부족했고, 자신 이외의 다른 사람들이 집 주인과 소통하는 것을 매우 꺼려했다. 그것부터 시작해 캠퍼들의 불만은 커졌고 결국 싸움으로 까지 이어졌다.
9시 아침식사 후 일을 했고, 12시~1시쯤 점심식사를 먹고 일을 하고 6시쯤 저녁식사를 먹는 것으로 하루 일과가 끝났고, 축제 준비를 위한 캠프파이어, 짚단 만들기 등 힘든 작업이 이어졌다. 6시 이후에 따른 활동이 없어서 매우 아쉬웠다. 첫째 둘째 날은 스페인 여자의 주장으로 많은 활동을 하며 친목을 다질 수 있었으나, 캠프리더와의 갈등으로 인해 거의 대부분은 날을 개개인이 따로 끼리끼리 보내곤 했다. 휴일에는 TARTU에가서 올드타운을 구경하고 쇼핑을 하는 등 자유롭게 보냈다.
Festival이 끝나고 우리는 청소로 마무리를 하며 캠프가 끝났고, 한 두 명씩 떠나는 걸 통해 진짜로 캠프가 끝이 났구나 실감했다. TARTU까지 같이 이동한 후 헤어졌는데, 정말 눈물이 났다. 2주 동안 함께 밥 먹고 일하고 얘기하고 술 마시고 가족같이 생활한 친구들과 헤어져서 너무 아쉬웠다. 나는 하루를 더 에스토니아에 머물러야 해서, 스페인 친구들과 함께 호스텔에 묶으며 하루를 보냈다. 떠나는 날에 스페인 친구들의 배웅을 받으며 혼자 공항 가는 길에 에스토니아 길을 보며 안녕을 외치고, 다시 꼭 놀러 올 거라고 생각하며 공항으로 들어갔다.
이번 워크캠프는 나에게 자신감, 용기를 배우게 해줬다. 우물 안 개구리 같았던 나의 삶에 우물 밖 세상을 보여준 계기가 되었으며, 어려운 일, 두려운 일이 닥쳤을 때 두려워하기 보다는 다른 사람이라면 어떻게 했을까 라는 생각으로 나도 할 수 있다는 용기를 줬다. 특히 나는 혼자 비행기를 타기 전 두려운 마음이 들 때 마다 ‘한비야씨도 여자 혼자서 다녀왔는데 나라고 못하겠어?’라는 마음으로 마인드컨드롤을 했다. 또 동양인이라는 것이 단점, 핸디캡이라고만 생각하고 뭔가 위축되는 경향이 있었는데, 다국적 친구들을 만나면서, 한국에 대한 생각이 나쁘지 않다는 걸 알게 되었고, 한국에 대한 애국심도 많이 생겼다. (대만친구 노트북에는 한국노래가 엄청 많았고, 다들 소녀시대 gee를 알고 있었다.) 또 이번 독도 사건에 대한 기사를 볼 때마다, 정부의 대책도 중요하지만 이런 기회를 통해서 외국인들에게 독도가 한국의 영토라는 인식을 자연스럽게 심어줄 수 있는 계기가 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워크캠프 친구들끼리 만든 페이스북 그룹에 독도에 관한 UCC를 업로드 하면서, 이런 식으로 알리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무척 재밌는 것은 당연했고 이런 경험을 언제 또 다시 해볼까 싶다. 그리고 앞으로도 여행을 가게 된다면 꼭 워크캠프를 껴서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비행기표 준비부터 어디서 묶을 지에 대한 정보까지 내가 혼자 다 결정 해야 했다. 나는 설레는 맘 반, 걱정되는 맘 반으로 여러 가지 내가 걱정되는 문제를 처리하려고 노력했다. 첫 째는 언어의 문제였고 둘 째는 혼자서 외국을 다녀야 한다는 문제였다. 캠프를 두 세달 즈음 남겨놓고 나는 영어 회화 책 한 권을 구입하고 가방에 넣고 다니며 지하철 등˙하교 길에서 책을 읽곤 했고, 평소 좋아했던 미국드라마도 더 자주 봤다. 호스텔에 예약 메일은 보내고, 비행기표를 구입하고 혼자 여행계획을 세우고 교통편을 알아보는 등 많은 준비를 했다. 난 워크캠프가 끝나고 동유럽을 여행할 계획이었으나 예산문제로 계획을 수정하는 바람에 또 다시 많은 변동이 있었고, 호스텔부터 루트까지 다시 짜면서 정말 힘들었지만, 이 일을 생각하면 다음 번 유럽여행은 얼마든지 혼자서 떠날 수 있을 거 라고 자신한다.
두려웠지만 생각보다 매우 무지 쉬운 공항 환승 과정을 거치고, 에스토니아 공항에 내렸다. 동양인이나 하나 뿐이었다. 쏟아지는 사람들의 시선을 즐기면서 밖으로 나가니 갈매기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2일 전에 미리 도착한 터라 여유롭게 에스토니아를 구경했다. 너무나 아름다운 도시였다. 사실 프랑스가 너무 가고 싶었지만, 에스토니아 올드타운을 구경하면서 이렇게 아름답고 다른 유럽국가들보다 많이 알려지지 않은 도시를 다른 사람들 보다 먼저 와봤다는 사실에 뿌듯함과 내 자신에게 ‘이런 도시를 고르다니 정말 잘했어’라고 칭찬을 해주고 싶었다.
드디어 캠퍼들과 만나는 날, 정말 긴장되었고 되게 떨렸다. 과연 어떤 나라에서 온 사람들이 있을까, 그리고 이제부터 시작되는 본격적인 언어장벽의 문제는 어떻게 해야 되지. 두근거리는 맘으로 미팅포인트에 갔으나 같은 호스텔을 써서 알게 된 스페인에서 온 2명의 여인들뿐이었다. 아무리 기다려도, 미팅시간이 다가와도 사람들은 오지 않았고, 나와 한국인언니, 스페인 여인 2명, 온둘라스에서 온 아이, 에스토니아 캠프리더가 끝이었다. Leigo에 가려면 Tartu에서 버스를 갈아타야 했는데, 결국 우리는 우리 6명이서 Tartu까지 갔다. 캠프 정원이 10으로 알고 있던 나는 이게 뭐지 정말 당황스러웠다. TARTU에 내려서 버스표를 사고 화장실에 갔다 오니 어느새 캠퍼가 2명으로 늘어나 있었다. 대만에서 온 남자, 이탈리아에서 온 남자였다. 어 그러고 보니 저 대만에서 온 남자 어디서 많이 본 얼굴이었는데, 생각하고 있던 차에 탈린 여행을 하다 버스 안에서 밖을 보던 중 동양인이 흔치 않던 탈린에서 본 동양인이라 짧은 손 인사를 했었던 그 남자였다! 우리는 반가운 마음에 중국어로 인사를 했고(내 전공은 중국어 이기 때문에) 캠프에서 중국인을 만나서 너무 기뻤다!
Leigo는 무척 정말 너무나 아름다운, sound of music 의 배경이 되는 알프스 같았다. 푸른 동산에 사이사이 놓여있는 호수들, 그리고 꽃이 가득한 들판과 통나무로 된 집. 아름다운 자연 그 자체였다. 우리 모두는 다 환호성을 금치 못했고, 그 날 집 주인이자 캠프주최측이 던 티오와 그 조카인 야곱에게 축제얘기를 들을 수 있었다. Leigo Music festival, 그 아름다운 곳에서 오케스트라를 들을 생각을 하니, 정말 최고의 캠프라고 생각했다. 나의 워크캠프는 자연과 시설은 매우 좋았지만, 캠퍼들끼리의 교류는 다른 캠프보다 적었다. 아무래도 캠프리더의 첫 번째 캠프였고, 리더는 18살로 매우 어려서 그런지 전달력, 통솔력이 매우 부족했고, 자신 이외의 다른 사람들이 집 주인과 소통하는 것을 매우 꺼려했다. 그것부터 시작해 캠퍼들의 불만은 커졌고 결국 싸움으로 까지 이어졌다.
9시 아침식사 후 일을 했고, 12시~1시쯤 점심식사를 먹고 일을 하고 6시쯤 저녁식사를 먹는 것으로 하루 일과가 끝났고, 축제 준비를 위한 캠프파이어, 짚단 만들기 등 힘든 작업이 이어졌다. 6시 이후에 따른 활동이 없어서 매우 아쉬웠다. 첫째 둘째 날은 스페인 여자의 주장으로 많은 활동을 하며 친목을 다질 수 있었으나, 캠프리더와의 갈등으로 인해 거의 대부분은 날을 개개인이 따로 끼리끼리 보내곤 했다. 휴일에는 TARTU에가서 올드타운을 구경하고 쇼핑을 하는 등 자유롭게 보냈다.
Festival이 끝나고 우리는 청소로 마무리를 하며 캠프가 끝났고, 한 두 명씩 떠나는 걸 통해 진짜로 캠프가 끝이 났구나 실감했다. TARTU까지 같이 이동한 후 헤어졌는데, 정말 눈물이 났다. 2주 동안 함께 밥 먹고 일하고 얘기하고 술 마시고 가족같이 생활한 친구들과 헤어져서 너무 아쉬웠다. 나는 하루를 더 에스토니아에 머물러야 해서, 스페인 친구들과 함께 호스텔에 묶으며 하루를 보냈다. 떠나는 날에 스페인 친구들의 배웅을 받으며 혼자 공항 가는 길에 에스토니아 길을 보며 안녕을 외치고, 다시 꼭 놀러 올 거라고 생각하며 공항으로 들어갔다.
이번 워크캠프는 나에게 자신감, 용기를 배우게 해줬다. 우물 안 개구리 같았던 나의 삶에 우물 밖 세상을 보여준 계기가 되었으며, 어려운 일, 두려운 일이 닥쳤을 때 두려워하기 보다는 다른 사람이라면 어떻게 했을까 라는 생각으로 나도 할 수 있다는 용기를 줬다. 특히 나는 혼자 비행기를 타기 전 두려운 마음이 들 때 마다 ‘한비야씨도 여자 혼자서 다녀왔는데 나라고 못하겠어?’라는 마음으로 마인드컨드롤을 했다. 또 동양인이라는 것이 단점, 핸디캡이라고만 생각하고 뭔가 위축되는 경향이 있었는데, 다국적 친구들을 만나면서, 한국에 대한 생각이 나쁘지 않다는 걸 알게 되었고, 한국에 대한 애국심도 많이 생겼다. (대만친구 노트북에는 한국노래가 엄청 많았고, 다들 소녀시대 gee를 알고 있었다.) 또 이번 독도 사건에 대한 기사를 볼 때마다, 정부의 대책도 중요하지만 이런 기회를 통해서 외국인들에게 독도가 한국의 영토라는 인식을 자연스럽게 심어줄 수 있는 계기가 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워크캠프 친구들끼리 만든 페이스북 그룹에 독도에 관한 UCC를 업로드 하면서, 이런 식으로 알리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무척 재밌는 것은 당연했고 이런 경험을 언제 또 다시 해볼까 싶다. 그리고 앞으로도 여행을 가게 된다면 꼭 워크캠프를 껴서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