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후기

스위스, 3개 국어를 엿보다

작성자 김초롱
스위스 WS12ES03 · EDU/KITCH 2012. 08 Estavayer-le-lac

SUPERBEACH CAMP

참가 전 준비와 마음가짐

스물 다섯살이 넘어가기 전에 유럽 여러 국가 여행을 꼭 해야지 마음먹고 있었던 찰나, 인터넷에서 ‘워크캠프’라는 것을 보고 지원하게 되었다. 불어권 지역인 Neuchatel 근처의 Estavayer-le-lac이라는 작은 마을은 프랑스어 전공자인 나에게 큰 호기심을 유발했다.
Superbeach camp는 4개국어를 사용하는 스위스에서 영어-프랑스어를 가르치는 언어교환 캠프이다. 출국 전부터 영어에 대한 두려움이 너무 컸지만 막상 도착하니 프랑스어와 영어 사용 비율이 비슷했다. 또한 스위스에서 가장 많이 쓰는 언어가 독일어(엄밀히 말하자면 스위스 독일어이지만)라서 무려 3개국어를 동시에 들을 수 있는 재미있는 경험이었다.
사실 나는 3주간의 유럽여행을 끝내고 인터라켄에서 Estavayer로 가는 길이었다. 그런데 중간 환승역에서 금발의 여자아이가 말을 걸며 같은 워크캠프에 참가하는 참가자인 것을 알고 미팅포인트까지 함께 했다! 자원봉사자들이 역에서 만나서 캠프리더 베니, 이그나시오(나쵸)와 함께 캠프장으로 갔다. 우리가 할 일은 캠프에 참가하는 스위스 어린이들을 위해 아침,점심,저녁을 준비하는 일이었기 때문에 요리사 쉐프인 이보와 함께 부엌을 둘러보고 조리기구 위치와 사용방법에 대해 설명을 들었다.
숙소는 자원봉사 선생님들이 자는 건물과 텐트 중 선택 할 수 있었다. 나는 추위를 많이 타서 일교차가 심한 스위스에서 견딜 수 있을까 걱정되어 건물에서 자고싶었지만, 함께 갔던 금발의 여자아이 블라디카가 텐트에서 자는 것을 선호하길래 ‘지금 아니면 언제 텐트에서 침낭 써보겠어? 이게 바로 캠프지!’하는 생각으로 텐트를 선택했다. 그런데 하필이면 내가 도착한 날 저녁무렵부터 비가 와서 밤새 축축하게 젖은 텐트에서 오들오들 떨며 잠을 잤다. 가져간 짐들과 옷이 습해지지 않을까 걱정한 것도 있고, 첫날이라 불편하기도 해서 잠을 설쳤지만 다음날 오전 10시쯤 되자 텐트에 들어갈 수 없을 정도로 해가 쨍하고 더워서 밤새 했던 걱정이 사그라들었다. (자원봉사자들과 이야기 나눌 때마다 밤엔 추워서, 낮엔 더워서 잠을 잘 수 없는데 난 언제 잘 수 있는거냐고 농담처럼 이야기했다.)
우리보다 먼저 시작한 다른 봉사자들까지 총 10명이 3~4명씩 팀을 이루어 각자 아침, 점심, 저녁을 담당하게 되었다. (그런데 나는 총 6주간의 캠프 중 마지막 2주동안 참가했기 때문에 맨 마지막 1주일은 자원봉사자들이 조금 부족해서 아침을 준비한 팀이 저녁을 준비하고, 점심을 준비한 팀이 아이스티와 서빙을 맡는 등 2회의 식사준비를 담당했다.) 아침은 비교적 간단했다. 빵을 썰고, 버터를 준비하고, 요거트와 잼, 씨리얼, 우유등을 준비하는 것이었고, 점심과 저녁은 쉐프인 이보의 보조가 되어 메뉴에 따라 고기, 파스타, 샐러드 등의 준비를 돕는 것이 전부였다. 또한 식사를 마치면 식기들을 모두 워싱머신에 넣고 설거지 한 후 마른 행주로 물기를 닦아 제자리에 정리하는 일까지 한다. 식사 준비 팀은 일주일씩 바뀌고, 매주 수요일이나 목요일에는 미팅을 통해 불만이나 이야기 하고 싶은 점을 나쵸와 이보에게 말하여 피드백 할 수 있었다.
내가 참가한 프로그램은 Access 4 All 캠페인에 참가하는 국제워크캠프였다. 나이와 신체, 인종, 정신적 장벽을 허물 수 있도록 다양한 사람들에게 열려있는 봉사활동 프로그램이다. 내가 갔을 땐 크리스토프라는 벨기에 친구가 바로 A4A 참가자였다. 몸이 조금 불편해보이긴 했는데 크리스토프가 떠난지 사흘후에야 알았을 정도로 우리는 거리낌도 불편함도 느낄 수 없었다. 나에게 말도 많이 걸어주고 내가 활동에 어려움을 느낄 때 오히려 나를 도와줬던 멋진 친구였다!
식사 준비시간 2시간, 뒷정리 시간 2시간정도 일 하면 내 일과가 끝난다. 일과시간 외에는 대부분 아름다운 호숫가에서 시간을 보냈다. 나는 수영을 할줄 몰라서 어린이들이 노는 얕은 물에 들어가서 놀다가 잔디에 누워 잠을 자곤 했다. 워크캠프 하기 전에 3개국을 돌아다니면서 살이 타긴 했지만 Estavayer에서 생에 가장 구릿빛 피부를 만들었다. 수영복을 벗었는데 하얀 수영복을 또 입은 것 처럼 살 색의 경계가 뚜렷해질 정도로… 빨래는 호숫가 옆의 세탁기를 이용할 수 있는데 나는 대부분 손빨래를 하고 캠프장 빨랫줄에 걸어 말렸다. 날씨가 좋아 낮시간 반나절이면 마르는데 충분했다. 그리고 다음번에 또 가게 된다면 큰 비치타올을 준비해야 할 것 같다. 부피가 커서 챙기지 않았는데 작은 수건을 깔고 호수에 누워있자니 여간 불편한게 아니었다. 수영복과 선글라스는 필수!
매주 목요일에는 작은 excursion, 토요일에는 좀 더 멀리 가는 excursion이 있다. 캠프에 참가하는 학생들이 근교로 여행을 가는 것인데 자원봉사자들도 희망하는 경우 함께 떠날 수 있다. 나는 첫째주 토요일에 Neuchatel에 갔다. 배를 타고 호수를 건너 도착한 뇌샤텔에서 성, 교회도 가고, 자원봉사 선생님들과 함께 맛있는 젤라또도 먹고, 개인적인 쇼핑시간도 가졌다!
또 좋았던 것은, 자원봉사자들도 불어-영어 수업을 들을 수 있다는 것이다! 나는 캠프의 훈남 선생님 기욤(나랑 동갑인데도 한참 오빠같이 느껴졌다)의 심화반 수업을 들었다. 캠프리더인 에스파뇰 나쵸는 ‘e’발음과 ‘u’발음을 어려워 해서 계속 스페인발음으로 하는데 다들 귀여워했다. 스위스에 살지만 독일어권에 거주하는 얀은 무려 3개국어를 했다. 독일어가 모국어, 영어는 수준급, 프랑스어도 나보다 더 잘하는 것 같다! 이 아이는 일도 잘하고 발리볼도 잘 하고 마음씨도 착하고 참 멋진 친구다. 그리고 나머지 한명은 나의 룸메이트 블라디카! 영어보다 불어가 편하다고 하더니, 영어도 잘하고 불어도 수준급이었다. 난 프랑스어 전공자라 문법엔 강했는데 말하려고만 하면 왜이렇게 입이 안떨어지는지… 그래도 문법시간엔 기욤이 칭찬 많이 해줬다! 대신 기욤은 내 이름이 ‘킴’인줄 알고 1주일 넘게 ‘초롱’이라는 이름을 안불러서 ‘킴’이라고 할때마다 대답을 바로바로 못했다는것만 빼면 우리의 의사소통은 완벽했다!
첫째주 수요일에는 캠프장에서 가라오케를, 목요일에는 진짜 디스코텍을 가는 프로그램이 있었다. 이보와 얀, 레나타, 라나는 버진 칵테일을 만들어주고, 아이들과 자원봉사 선생님들, 자원봉사자들은 신나게 춤을 추며 놀았다. 둘째주에는 시간과 여건이 안되어 가라오케와 디스코를 캠프지에서 동시에 열었다. 매일 밤 11시가 넘으면 캠프에 참가하는 어린이들이 취침해야 할 시간이다. 아이들이 들어가고 난 뒤에 선생님들과 자원봉사자들만이 남아 춤도 추고 술도 마시고 이보가 만들어놓은 초콜릿무스도 마시며 새벽까지 놀았다. 나는 실내가 너무 더워 뒷마당 스모킹존으로 불리는 벤치에 누워 별을 구경하다 자다 깨다를 반복했다. 서울에선 볼 수 없을 만큼 엄청난 양의 밝은 별들이었다. 우연히 별똥별을 보기도 했다. 생에 처음 보는 별똥별이었다. 어찌나 아름다운지 눈물이 날 뻔 했다.
마지막날 밤은 절대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먼저 떠났던 유쾌하고 귀여운 토마가 마지막 밤을 위해 돌아와 다 함께 술을마시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능글맞고 유머러스한 루벤도 토요일에 온다고 해서 기다렸는데 사정이 있어서 못온다기에 너무 아쉬웠다. 유러피언들이 술을 많이 마신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정도인줄은 몰랐다. 하루가 멀다하고 맥주캔을 따고, 다음날 아침엔 대략 40여개의 맥주캔이 비워져있다. 맥주 뿐 아니라 아니스주 같은 독한 술 ‘파스티스’도 마구 마시던데 난 맛만 보고도 오만상 찌푸렸다. 마치 빨래세제를 풀어놓은 것 같은 냄새와 엄청 독한 알코올향의 조합이었다. (맨 마지막날 밤엔 다른지역의 co-camp leader 티모테가 파스티스를 밤새 잔뜩 마시고, 아침에 떠나는 나쵸와 얀을 역까지 바래다 주는데 동네를 네발로 기어다니다시피 했다.)
자원봉사 선생님들은 매년 이 캠프에 참가하는 것 같았다. 독일어 선생님이자 감자칩을 좋아해서 ‘마담 칩스’라는 별명을 가진 예쁜 사라, 우리 캠퍼들의 프랑스어 선생님이자 잘생긴 철학전공 파리지앵 기욤, 나와 같이 무용을 전공하는 영어선생님 베스나, 일주일 남짓 캠프리더였던 베니와 후임이었던 아시아음식 러버 바네사, 캠프의 총 리더인 젠틀맨 루, 잊을 수 없는 우리 최고의 쉐프 이보, 랩도 잘하고 술도 잘 마시는 유쾌한 티모테, 스위스에 살면서 프랑스어를 싫어하는 능구렁이 루벤, 마지막날 다시 와서 분위기 띄워준 귀여운 토마, 프랑스에서 태어나 스위스가 맘에들어 스위스에 살고있는 막심, 그리고 막심의 여자친구이자 나에게 ‘마담 까까웨뜨’라는 별명을 지어준 쿨한 성격의 마고… 하나도 빼놓지 않고 다들 멋진 선생님들이다! 그리고 나와 함께 일했던 천덕꾸러기 데이빗, 쥐와 고양이를 무서워하는 페르난도, 한국의 동방신기를 무척 좋아하는 러시아의 라나, 일도 열심히 하고 영어와 불어가 유창한 레나타, 기욤의 동생 드렁큰 댄싱머신 스케이터보이 귀염둥이 젠틀맨 떼오, 모로코에서 선생님 일을 하는 압둘, 영어도 불어도 중간수준이지만 친화력만큼은 최고였던 올가, 온리 일본어만 할 줄 아는데도 인기인이 되었던 쥬도보이 타쿠지, 친절하고 일도 잘하고 모든 캠퍼들과 친한 얀, 몸은 불편하지만 마음만은 순수하고 친절한 크리스토프, 웃음이 많은 기욤의 귀여운 여자친구 엘로나, 그리고 우리 캠프의 최고의 캠프리더 나쵸!! 모두가 나에게 잊을 수 없는 기억을 선물 해 준 것 같아 정말 고맙다. 2년 전 교환학생으로 프랑스에서 공부 했을 땐 4개월이 40년 같았는데, 이번 워크캠프에서는 2주가 2분같이 흘러갔다. 기회가 된다면, 아니 기회가 되지 않더라도 꼭 다시 한번 Estavayer에 가서 이 친구들을 다시 만나고싶다!
이번 워크캠프 덕분에 막연하게 ‘선생님’이 되고 싶다던 내 장래 희망에 대해 다시한번 생각하게 되었다. 물론 선생님도 좋은 직업이겠지만, 나는 프랑스어라는 전공을 살려 불어권 스위스쪽에 취업을 하는 쪽으로 더욱 마음이 기울게 되었다. 왜냐하면 유럽 여행을 하면서 스위스만큼 아름다운 풍경들은 본적이 없고, 사회기반도 튼튼하며, 만났던 현지인들 중에 스위스 사람들이 가장 친절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스위스인 캠퍼들에게 항상 얘기했던 거지만 물가만 비싸지 않다면 정말 스위스에서 살고싶다. 또한 이 워크캠프가 학업에 대해서도 큰 자극제가 되었다. 더 열심히 영어와 불어를 공부해서 다음엔 더 활발한 의사소통으로 수줍은 한국인의 모습이 아닌 적극적이고 유쾌한 한국인의 모습을 보여줘야겠다고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