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후기
홀로 떠난 유럽, 핸드폰 도난 사건
Saint Caprais de Bordeaux
참가 전 준비와 마음가짐
다시 돌아오지 않을 대학생활의 마지막 여름방학. 학기가 시작되기 전부터 이번 방학을 뜻 깊게 보내겠노라 다짐한터라 워크캠프에 대한 게시글을 보자마자 주저없이 신청했다. 4월 말, 워크캠프 참가가 확정된 후부터 유럽여행과 워크캠프를 위한 준비에 시간가는 줄 몰랐던 것 같다. 꿈에 그리던 유럽에 대한 설레임 반, 언어실력의 부족과 혼자라는 두려움 반을 안고 6월 말, 유럽으로 떠났다.
난 워크캠프 전 후로 자유여행 일정을 세웠다. 런던, 프랑스 파리, 프랑스 보르도에서의 워크캠프, 스위스 그리고 이탈리아가 나의 일정이었다. 첫 여행국가에 도착하여 설렘과 흥분을 가라앉히기도 전에 큰 문제가 생기고 말았다. 여행 셋째날, 한 달간의 유럽생활을 남겨둔 채 핸드폰을 도난 당하고 만 것이다. 지금 생각해도 가슴이 쿵 하고 내려앉는 아찔한 순간이다. 이렇게 일행도, 핸드폰도 없이 오로지 믿을 것이라고는 나 자신뿐인 유럽여행이 시작되었다.
이는 워크캠프 첫 날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없었다. 미팅 포인트에서 만나기로 한 약속 시간은 오후 5시. 하지만 파리에서 보르도로 가는 기차표가 일찍 매진되는 바람에 나는 밤 9시에 도착하는 상황이었다. 출발 전, 핸드폰을 잃어버렸다는 소식과 늦어지는 도착 예정시간을 현지기관과의 메일을 통해 알렸고, 나를 픽업해 줄 캠프 리더의 연락처를 전해 받았다. 유일한 연락망이었기에 연락처를 손에 꼭 쥐고서 해가 어둑어둑해질 무렵 보르도역에 도착했다. 하지만 이게 왠일인가. 전화를 수십 통을 해도 받지 않는 것이다!!!!! 다급한 마음에 무작정 역 안팎을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 워크캠프 한국인 참가자로 추정되는 두 여학생 발견. 혹시 같은 캠프가 아닐까 하는 마음에 그들의 주변을 서성이는데 한 외국인이 워크캠프 참가자냐며 말을 걸었다. ‘아 내가 살았구나, 국제미아는 면했구나’ 하는 기쁨도 잠시. 그는 그 여학생들의 캠프 리더였던 것이다…. 비록 그가 나의 리더는 아니었지만 다행히 나와 같은 워크캠프 기관의 리더로, 나의 리더가 있는 곳으로 안내해 주었다. 이렇게 나의 캠프리더 악튜와의 극적인 상봉이 이루어졌고 나는 국제미아 신세를 면할 수 있었다.
악튜의 차를 타고 약 15분 가량 이동하여 도착한 숙소는 saint capris de Bordeaux 라는 작은 마을에 위치해있었다. 가장 크게 염려했던 부분이 바로 숙소였는데 다행히 우리 캠프의 숙소는 다소 허름하지만 1층에는 거실과 부엌, 2층에는 욕조가 있는 화장실과 넓은 침실 3개가 있는 오래된 건물이었다. 상상했던 열악한 조건의 캠프에 비하면 최상의 조건이었다고 생각한다. 숙소에서는 이미 도착한 친구들이 늦은 시간이지만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나를 반갑게 맞아주었다. 나와 같은 학교 재선오빠를 비롯한 한국인 2명, 프랑스, 스페인 , 독일, 캐나다, 러시아, 세네갈까지 다양한 국적과 나이를 가진 친구들과의 3주가 그렇게 시작되었다.
우리가 맡게 된 봉사활동은 마을 곳곳에 벤치와 쓰레기통을 설치하고, 이정표를 세우고, 마을 축제의 일손이 되어주고, 작은 학교의 아이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일이었다. 숙소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맡은 일 또한 생각했던 것보다 비교적 수월했다. 마을 곳곳에 땅을 파고 벤치와 테이블, 쓰레기통을 조합한 후에 시멘트를 부어 굳혀 고정시키는 작업이었다. 또 다른 작업은 친구들 각국의 수도의 이름과 마을에서부터 떨어진 거리를 나무에 직접 새겨 이정표를 만드는 것이었다. 이 작업은 다른 친구들에 비해 손재주가 능했던 재선오빠와 내가 거의 도맡아 했다. 내가 수도와 거리를 연필로 스케치를 하면, 재선오빠가 인두를 사용하여 스케치를 따라 나무결을 태워 완성시키는 작업이었다. 섬세함과 끈기가 필요한 작업이었기에 다른 친구들과 리더들도 많은 칭찬을 해주었고 완성한 후에는 큰 보람을 느꼈다.
한 주가 시작되기 전, 다같이 모여 한 주의 계획과 식사&청소 당번을 정했다. 두 명이 한 팀이 되어 숙소의 청소와 점심과 저녁식사를 담당했다. 요리와는 거리가 멀었던 나는 재선오빠와 한 팀을 이루어 오빠의 조수 역할을 담당했다. 가장 걱정했던 것이 바로 요리였는데, 다행히 재선오빠의 요리실력이 뛰어나 매운탕, 불고기, 맛탕, 호박전, 호떡, 감자볶음 등등 선보인 요리마다 ‘very very good’ 이라는 친구들의 찬사를 받을 수 있었다. 나는 음식을 가리지 않는 축복받은(?) 입맛을 가진 덕에 다른 친구들의 느끼한 음식도 배불리 소화해낼 수 있었다. 하지만 가끔씩 친구들의 음식이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느끼하거나 싱거울 때는 오빠와 둘이 고추장을 한 스푼씩 비벼 먹기도 했다. 그런 우리를 보며 자신들도 ‘스파이시’ 에 도전해 보겠다며 한 입 먹고는 물을 벌컥벌컥 들이키는 친구들의 모습은 나이를 불문하고 귀여웠다.
주중 오전 내내 땡볕 아래에서 열심히 일을 한 뒤, 오후와 주말에는 여가시간을 가졌다. 여가시간에는 개인적인 시간, 낮잠자기, 와인공장으로의 견학, 근처 강가로 하이킹, 보르도 시내 나들이, 마을 체육관에서 축구하기, 카드게임 등등 다양한 활동을 가졌다. 이러한 활동을 함께하며 웃고 떠드는 동안, 처음에 느낀 친구들과의 거리감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점차 좁혀져 간 것 같다.
길게만 느껴졌던 3주간의 워크캠프도 어김없이 마지막은 찾아왔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언어의 장벽을 무시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유난히 프랑스어를 구사하는 친구들이 많았던 참가자 구성에 유일하게 2개국어 모두를 하지 못하는 건 나 혼자 뿐이었다. 무조건 적극적인 자세로 임하겠다는 다짐과는 달리, 나의 귀와 입이 따라주질 않아 친구들과 더욱 깊은 관계로 나아가지 못한 것이 아쉬울 따름이다.
하지만 부족한 영어실력임에도 불구하고, 서로 작별인사를 나누며 진심 어린 눈물을 흘릴 수 있었던 이유는 각자의 문화와 언어를 뛰어넘어 마음과 마음으로 함께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언어와 나이, 그리고 생김새를 떠나 모두가 ‘친구’ 라는 이름으로 서로를 이해하고 어려움과 기쁨을 공유했던 3주간의 워크캠프. 비록 언제 또다시 만날지 모르는 친구들이지만, 내겐 영원히 소중한 친구들로 남을 것이며, 그들과 함께한 순간들은 오래도록 나를 미소 짓게 만들 것이다.
난 워크캠프 전 후로 자유여행 일정을 세웠다. 런던, 프랑스 파리, 프랑스 보르도에서의 워크캠프, 스위스 그리고 이탈리아가 나의 일정이었다. 첫 여행국가에 도착하여 설렘과 흥분을 가라앉히기도 전에 큰 문제가 생기고 말았다. 여행 셋째날, 한 달간의 유럽생활을 남겨둔 채 핸드폰을 도난 당하고 만 것이다. 지금 생각해도 가슴이 쿵 하고 내려앉는 아찔한 순간이다. 이렇게 일행도, 핸드폰도 없이 오로지 믿을 것이라고는 나 자신뿐인 유럽여행이 시작되었다.
이는 워크캠프 첫 날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없었다. 미팅 포인트에서 만나기로 한 약속 시간은 오후 5시. 하지만 파리에서 보르도로 가는 기차표가 일찍 매진되는 바람에 나는 밤 9시에 도착하는 상황이었다. 출발 전, 핸드폰을 잃어버렸다는 소식과 늦어지는 도착 예정시간을 현지기관과의 메일을 통해 알렸고, 나를 픽업해 줄 캠프 리더의 연락처를 전해 받았다. 유일한 연락망이었기에 연락처를 손에 꼭 쥐고서 해가 어둑어둑해질 무렵 보르도역에 도착했다. 하지만 이게 왠일인가. 전화를 수십 통을 해도 받지 않는 것이다!!!!! 다급한 마음에 무작정 역 안팎을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 워크캠프 한국인 참가자로 추정되는 두 여학생 발견. 혹시 같은 캠프가 아닐까 하는 마음에 그들의 주변을 서성이는데 한 외국인이 워크캠프 참가자냐며 말을 걸었다. ‘아 내가 살았구나, 국제미아는 면했구나’ 하는 기쁨도 잠시. 그는 그 여학생들의 캠프 리더였던 것이다…. 비록 그가 나의 리더는 아니었지만 다행히 나와 같은 워크캠프 기관의 리더로, 나의 리더가 있는 곳으로 안내해 주었다. 이렇게 나의 캠프리더 악튜와의 극적인 상봉이 이루어졌고 나는 국제미아 신세를 면할 수 있었다.
악튜의 차를 타고 약 15분 가량 이동하여 도착한 숙소는 saint capris de Bordeaux 라는 작은 마을에 위치해있었다. 가장 크게 염려했던 부분이 바로 숙소였는데 다행히 우리 캠프의 숙소는 다소 허름하지만 1층에는 거실과 부엌, 2층에는 욕조가 있는 화장실과 넓은 침실 3개가 있는 오래된 건물이었다. 상상했던 열악한 조건의 캠프에 비하면 최상의 조건이었다고 생각한다. 숙소에서는 이미 도착한 친구들이 늦은 시간이지만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나를 반갑게 맞아주었다. 나와 같은 학교 재선오빠를 비롯한 한국인 2명, 프랑스, 스페인 , 독일, 캐나다, 러시아, 세네갈까지 다양한 국적과 나이를 가진 친구들과의 3주가 그렇게 시작되었다.
우리가 맡게 된 봉사활동은 마을 곳곳에 벤치와 쓰레기통을 설치하고, 이정표를 세우고, 마을 축제의 일손이 되어주고, 작은 학교의 아이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일이었다. 숙소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맡은 일 또한 생각했던 것보다 비교적 수월했다. 마을 곳곳에 땅을 파고 벤치와 테이블, 쓰레기통을 조합한 후에 시멘트를 부어 굳혀 고정시키는 작업이었다. 또 다른 작업은 친구들 각국의 수도의 이름과 마을에서부터 떨어진 거리를 나무에 직접 새겨 이정표를 만드는 것이었다. 이 작업은 다른 친구들에 비해 손재주가 능했던 재선오빠와 내가 거의 도맡아 했다. 내가 수도와 거리를 연필로 스케치를 하면, 재선오빠가 인두를 사용하여 스케치를 따라 나무결을 태워 완성시키는 작업이었다. 섬세함과 끈기가 필요한 작업이었기에 다른 친구들과 리더들도 많은 칭찬을 해주었고 완성한 후에는 큰 보람을 느꼈다.
한 주가 시작되기 전, 다같이 모여 한 주의 계획과 식사&청소 당번을 정했다. 두 명이 한 팀이 되어 숙소의 청소와 점심과 저녁식사를 담당했다. 요리와는 거리가 멀었던 나는 재선오빠와 한 팀을 이루어 오빠의 조수 역할을 담당했다. 가장 걱정했던 것이 바로 요리였는데, 다행히 재선오빠의 요리실력이 뛰어나 매운탕, 불고기, 맛탕, 호박전, 호떡, 감자볶음 등등 선보인 요리마다 ‘very very good’ 이라는 친구들의 찬사를 받을 수 있었다. 나는 음식을 가리지 않는 축복받은(?) 입맛을 가진 덕에 다른 친구들의 느끼한 음식도 배불리 소화해낼 수 있었다. 하지만 가끔씩 친구들의 음식이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느끼하거나 싱거울 때는 오빠와 둘이 고추장을 한 스푼씩 비벼 먹기도 했다. 그런 우리를 보며 자신들도 ‘스파이시’ 에 도전해 보겠다며 한 입 먹고는 물을 벌컥벌컥 들이키는 친구들의 모습은 나이를 불문하고 귀여웠다.
주중 오전 내내 땡볕 아래에서 열심히 일을 한 뒤, 오후와 주말에는 여가시간을 가졌다. 여가시간에는 개인적인 시간, 낮잠자기, 와인공장으로의 견학, 근처 강가로 하이킹, 보르도 시내 나들이, 마을 체육관에서 축구하기, 카드게임 등등 다양한 활동을 가졌다. 이러한 활동을 함께하며 웃고 떠드는 동안, 처음에 느낀 친구들과의 거리감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점차 좁혀져 간 것 같다.
길게만 느껴졌던 3주간의 워크캠프도 어김없이 마지막은 찾아왔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언어의 장벽을 무시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유난히 프랑스어를 구사하는 친구들이 많았던 참가자 구성에 유일하게 2개국어 모두를 하지 못하는 건 나 혼자 뿐이었다. 무조건 적극적인 자세로 임하겠다는 다짐과는 달리, 나의 귀와 입이 따라주질 않아 친구들과 더욱 깊은 관계로 나아가지 못한 것이 아쉬울 따름이다.
하지만 부족한 영어실력임에도 불구하고, 서로 작별인사를 나누며 진심 어린 눈물을 흘릴 수 있었던 이유는 각자의 문화와 언어를 뛰어넘어 마음과 마음으로 함께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언어와 나이, 그리고 생김새를 떠나 모두가 ‘친구’ 라는 이름으로 서로를 이해하고 어려움과 기쁨을 공유했던 3주간의 워크캠프. 비록 언제 또다시 만날지 모르는 친구들이지만, 내겐 영원히 소중한 친구들로 남을 것이며, 그들과 함께한 순간들은 오래도록 나를 미소 짓게 만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