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후기
탈린, 청춘을 물들인 여름날의 기억
DOWN TOWN ENG
참가 전 준비와 마음가짐
대학생활 마지막 방학을 의미 있게 보내고 싶었기 때문에 워크캠프에 지원했다. 국가별로 여러 가지 프로그램이 있었는데 에스토니아에서 열리는 청소년 캠프 프로그램을 보고 이거다 싶었다. 단순한 노동이 아닌 다문화적 교류와 연관된 일이었고, 내가 우리 나라에 대해 알릴 수 있는 동시에 다른 여러 나라들의 문화에 대해 알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해서 흥미로웠다.
핀란드 헬싱키에서 페리를 타고 2시간쯤 걸려서 탈린에 도착했다. 캠프 장소인 down town language school은 올드타운 광장에서 매우 가까운 곳이었는데, 짐이 많아서 대중교통을 이용하기엔 힘들었다. 항구부터 캠프장소까지 택시로 약 7~8유로 정도였다. 건물의 2층에 봉사자들의 숙소가 마련되어 있고 3층에는 language school이 있다. 숙소에서 딱히 불편한 점은 없었지만 샤워를 할 수 있는 공간과 부엌이 3층에 있기 때문에 어학원 직원들이 퇴근한 후에는 이용할 수 없기 때문에 주의해야 한다. 숙소가 있는 2층에는 화장실만 있기 때문에 샤워는 할 수 없다.
캠프의 봉사자들은 나를 포함해 8명이었다. 스페인에서 온 클라라, 파코, 아리아나, 대만에서 온 우쯔, 터키에서 온 시난, 우크라이나에서 온 마리나, 폴란드에서 온 다그마라 그리고 한국에서 온 나. 8명중 6명이 여자였다. 우리 6명은 한 방을 함께 썼고 나머지 2명의 남자 봉사자들은 넓은 방을 둘이서만 썼다. 캠프의 코디네이터는 러시아에서 온 마리아였고 그 외에 인턴십으로 어학원에 온 홍콩 남자애 2명이 있었는데 그들은 우리가 오기 전 2달 동안 캠프를 진행했기 때문에 우리에게 많은 도움을 줬다.
워크캠프가 시작되고 3일간은 봉사자들끼리 회의를 했다. 서로에 대해서 알아가고, 앞으로 어떻게 캠프를 이끌어갈 것인지, 그리고 어떤 활동들을 할지에 대해서 의논했다. 캠프의 큰 틀은 이미 정해져 있었지만 그에 따른 세부적인 활동들(게임 등)은 봉사자들이 아이디어를 내야 했기 때문에 약간의 압박감이 있었다.
3일간의 기나긴 회의가 끝나고 아이들을 만났다. 만 14세~17세인 아이들 약 40명이 캠프에 참가했다.
이들을 나이별로 9~10명씩 총 4팀으로 나누었다. 첫날에는 어색하기도 했고 일부 아이들은 낯을 가리거나 텃새를 부리기도 해서 캠프리더(봉사자들) 모두들 당황했었다. 하지만 그 다음날부터 아이들이 우리에게 익숙해졌는지 친근하게 대했고 캠프는 순조롭게 흘러갔다. 아마도 우리가 아이들에게 ‘친구’로서 다가가고자 노력해서 그들의 마음이 열린 것 같았다. 아이들은 우리에게 자신들의 미래에 대해서 상담하기도 했고 고민거리들을 이야기하기도 했다. 아이들과 우리는 나이차이가 조금 나긴 했지만 선생님과 학생이라기 보다는 친구에 가까운 관계였다. 캠프에 오기 전에는 혹시나 의사소통의 문제가 있을까봐 걱정했었는데, 아이들이 영어를 너무나 잘해서 놀랬다. 러시아어 사용자들은 영어를 못할 것 이라는 나의 편견이 무너졌다.
캠프는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였고 중간에 1시경에 점심시간이 있었다. 5시에 캠프가 끝나고 아이들을 집에 보내고 나면 캠프리더들끼리 모여서 그날에 대해 이야기 하고 다음날을 준비하는 회의를 했다. 회의는 최소 1시간, 최대 2시간 동안 진행되었는데 이 회의가 끝나면 저녁을 먹고 그 후론 자유시간이였다. 사실 Day off도 하루밖에 안됐기 때문에 자유시간은 많이 부족했다. 다른 캠프리더들도 원래 직장에서보다 훨씬 더 많이 일한다고 불평했었다.
캠프 일정 중 하루는 다소 멀리 떨어져 있는 폐 광산으로 당일치기 여행을 떠났었고, 사흘은 오후에 TV tower, open air museum 그리고 해변에 갔었다. 아이들은 야외활동을 더 좋아했고 캠프 리더들 또한 그랬다. 학교 교실 안에만 갇혀있는 것 보다 훨씬 즐거웠다. 광산으로 여행을 간 날 빼고는 오전에 country presentation을 했다. 한 나라씩 돌아가면서 프레젠테이션을 하는 건데 캠프리더들이 총괄하고 아이들에게도 각각 과제를 주어 다 같이 프레젠테이션을 준비하는 형식이었다. 나는 제비뽑기를 잘못 뽑아 마지막으로 프레젠테이션을 했다. 팀1(16세~17세)의 일부에게는 태극기를 그리도록 시켰고 나머지 여자애들과 김밥을 만들었다. 팀2(15세~16세) 에게는 태권도 동영상을 보여주고 기본동작을 시범하도록 했고 팀3(14~15세)에게는 슈퍼주니어의 뮤직비디오를 보여주고 춤을 추게 했다. 그리고 팀4(13~14세) 에게는 단군 신화를 연극으로 하도록 했다.
나는 파워포인트로 우리나라에 대한 간략한 소개, 한글에 대해서, 유용한 한국어 등을 소개했다. 그리고 5가지 키워드를 정해서 한국과 한국인의 특징에 대해서 설명했다. 한국의 유명한 글로벌 기업들에 대해서도 간략하게 언급했으며 한류열풍에 대해서도 짧게 소개했는데 여자애들이 한국 남자 아이돌에 관심을 가졌다. 몇몇 아이들은 한국 가수들을 알고 있기도 했다. 한국의 역사에 대해서도 설명했는데 일본의 만행과 한국 전쟁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한국은 전쟁 이후 가장 가난한 나라였고 그 후에도 여러 가지 사건들이 있었지만, 한국인들은 희망을 잃지 않고 강한 의지로 모든 것을 극복해내고 결국 지금 이 자리까지 왔다고 소개했고 아이들은 내 프레젠테이션에 크게 감동했다고 했다. 그 순간만큼은 정말 우리나라가 너무나 자랑스러웠다. 런던 올림픽에서 좋은 성적을 거둔 것도 한몫 했다. 나는 프레젠테이션에 최선을 다했고 모두들 최고의 프레젠테이션 이였다고 칭찬해주었다.
10일간의 프로그램이 모두 끝나고 마지막 날 우리는 많이 울었다. 아이들과 헤어지는 것이 너무나 아쉬웠다. 첫날에는 말도 안 듣고 반항하는 아이들이 미웠지만 10일간 함께하면서 정이 많이 들었다. 대부분의 캠프리더들도 캠프가 끝난 다음날 떠나기로 되어 있었기 때문에 더욱 아쉬웠다. 정이 많았던 스페인의 클라라와 대만의 우쯔는 나와 헤어지기 전에 여러 번 울었다. 우리가 함께 했던 시간은 고작 2주였지만 그 시간을 함께하며 우리는 정말로 가까운 친구가 되어 있었다. 비록 얼마나 걸릴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지만 우리가 다시 어디선가 만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각자 아쉬운 발걸음을 옮겼다. 캠프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온 후에도 우리는 계속 페이스북을 통해 연락을 주고받고 있다. 함께 찍었던 수 백장의 사진들을 보며 다시 만날 날을 기다리고 있다.
핀란드 헬싱키에서 페리를 타고 2시간쯤 걸려서 탈린에 도착했다. 캠프 장소인 down town language school은 올드타운 광장에서 매우 가까운 곳이었는데, 짐이 많아서 대중교통을 이용하기엔 힘들었다. 항구부터 캠프장소까지 택시로 약 7~8유로 정도였다. 건물의 2층에 봉사자들의 숙소가 마련되어 있고 3층에는 language school이 있다. 숙소에서 딱히 불편한 점은 없었지만 샤워를 할 수 있는 공간과 부엌이 3층에 있기 때문에 어학원 직원들이 퇴근한 후에는 이용할 수 없기 때문에 주의해야 한다. 숙소가 있는 2층에는 화장실만 있기 때문에 샤워는 할 수 없다.
캠프의 봉사자들은 나를 포함해 8명이었다. 스페인에서 온 클라라, 파코, 아리아나, 대만에서 온 우쯔, 터키에서 온 시난, 우크라이나에서 온 마리나, 폴란드에서 온 다그마라 그리고 한국에서 온 나. 8명중 6명이 여자였다. 우리 6명은 한 방을 함께 썼고 나머지 2명의 남자 봉사자들은 넓은 방을 둘이서만 썼다. 캠프의 코디네이터는 러시아에서 온 마리아였고 그 외에 인턴십으로 어학원에 온 홍콩 남자애 2명이 있었는데 그들은 우리가 오기 전 2달 동안 캠프를 진행했기 때문에 우리에게 많은 도움을 줬다.
워크캠프가 시작되고 3일간은 봉사자들끼리 회의를 했다. 서로에 대해서 알아가고, 앞으로 어떻게 캠프를 이끌어갈 것인지, 그리고 어떤 활동들을 할지에 대해서 의논했다. 캠프의 큰 틀은 이미 정해져 있었지만 그에 따른 세부적인 활동들(게임 등)은 봉사자들이 아이디어를 내야 했기 때문에 약간의 압박감이 있었다.
3일간의 기나긴 회의가 끝나고 아이들을 만났다. 만 14세~17세인 아이들 약 40명이 캠프에 참가했다.
이들을 나이별로 9~10명씩 총 4팀으로 나누었다. 첫날에는 어색하기도 했고 일부 아이들은 낯을 가리거나 텃새를 부리기도 해서 캠프리더(봉사자들) 모두들 당황했었다. 하지만 그 다음날부터 아이들이 우리에게 익숙해졌는지 친근하게 대했고 캠프는 순조롭게 흘러갔다. 아마도 우리가 아이들에게 ‘친구’로서 다가가고자 노력해서 그들의 마음이 열린 것 같았다. 아이들은 우리에게 자신들의 미래에 대해서 상담하기도 했고 고민거리들을 이야기하기도 했다. 아이들과 우리는 나이차이가 조금 나긴 했지만 선생님과 학생이라기 보다는 친구에 가까운 관계였다. 캠프에 오기 전에는 혹시나 의사소통의 문제가 있을까봐 걱정했었는데, 아이들이 영어를 너무나 잘해서 놀랬다. 러시아어 사용자들은 영어를 못할 것 이라는 나의 편견이 무너졌다.
캠프는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였고 중간에 1시경에 점심시간이 있었다. 5시에 캠프가 끝나고 아이들을 집에 보내고 나면 캠프리더들끼리 모여서 그날에 대해 이야기 하고 다음날을 준비하는 회의를 했다. 회의는 최소 1시간, 최대 2시간 동안 진행되었는데 이 회의가 끝나면 저녁을 먹고 그 후론 자유시간이였다. 사실 Day off도 하루밖에 안됐기 때문에 자유시간은 많이 부족했다. 다른 캠프리더들도 원래 직장에서보다 훨씬 더 많이 일한다고 불평했었다.
캠프 일정 중 하루는 다소 멀리 떨어져 있는 폐 광산으로 당일치기 여행을 떠났었고, 사흘은 오후에 TV tower, open air museum 그리고 해변에 갔었다. 아이들은 야외활동을 더 좋아했고 캠프 리더들 또한 그랬다. 학교 교실 안에만 갇혀있는 것 보다 훨씬 즐거웠다. 광산으로 여행을 간 날 빼고는 오전에 country presentation을 했다. 한 나라씩 돌아가면서 프레젠테이션을 하는 건데 캠프리더들이 총괄하고 아이들에게도 각각 과제를 주어 다 같이 프레젠테이션을 준비하는 형식이었다. 나는 제비뽑기를 잘못 뽑아 마지막으로 프레젠테이션을 했다. 팀1(16세~17세)의 일부에게는 태극기를 그리도록 시켰고 나머지 여자애들과 김밥을 만들었다. 팀2(15세~16세) 에게는 태권도 동영상을 보여주고 기본동작을 시범하도록 했고 팀3(14~15세)에게는 슈퍼주니어의 뮤직비디오를 보여주고 춤을 추게 했다. 그리고 팀4(13~14세) 에게는 단군 신화를 연극으로 하도록 했다.
나는 파워포인트로 우리나라에 대한 간략한 소개, 한글에 대해서, 유용한 한국어 등을 소개했다. 그리고 5가지 키워드를 정해서 한국과 한국인의 특징에 대해서 설명했다. 한국의 유명한 글로벌 기업들에 대해서도 간략하게 언급했으며 한류열풍에 대해서도 짧게 소개했는데 여자애들이 한국 남자 아이돌에 관심을 가졌다. 몇몇 아이들은 한국 가수들을 알고 있기도 했다. 한국의 역사에 대해서도 설명했는데 일본의 만행과 한국 전쟁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한국은 전쟁 이후 가장 가난한 나라였고 그 후에도 여러 가지 사건들이 있었지만, 한국인들은 희망을 잃지 않고 강한 의지로 모든 것을 극복해내고 결국 지금 이 자리까지 왔다고 소개했고 아이들은 내 프레젠테이션에 크게 감동했다고 했다. 그 순간만큼은 정말 우리나라가 너무나 자랑스러웠다. 런던 올림픽에서 좋은 성적을 거둔 것도 한몫 했다. 나는 프레젠테이션에 최선을 다했고 모두들 최고의 프레젠테이션 이였다고 칭찬해주었다.
10일간의 프로그램이 모두 끝나고 마지막 날 우리는 많이 울었다. 아이들과 헤어지는 것이 너무나 아쉬웠다. 첫날에는 말도 안 듣고 반항하는 아이들이 미웠지만 10일간 함께하면서 정이 많이 들었다. 대부분의 캠프리더들도 캠프가 끝난 다음날 떠나기로 되어 있었기 때문에 더욱 아쉬웠다. 정이 많았던 스페인의 클라라와 대만의 우쯔는 나와 헤어지기 전에 여러 번 울었다. 우리가 함께 했던 시간은 고작 2주였지만 그 시간을 함께하며 우리는 정말로 가까운 친구가 되어 있었다. 비록 얼마나 걸릴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지만 우리가 다시 어디선가 만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각자 아쉬운 발걸음을 옮겼다. 캠프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온 후에도 우리는 계속 페이스북을 통해 연락을 주고받고 있다. 함께 찍었던 수 백장의 사진들을 보며 다시 만날 날을 기다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