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후기
집순이의 첫 해외여행, 칸차나부리
Education/Creative English camp
참가 전 준비와 마음가짐
나에게 이번 워크캠프는 큰 도전이고 모험이었다. 집에 있기 좋아하고 여행자체를 즐기지 않는 성격을 가진 탓에 이번 워크캠프를 통해 태국에 간 것이 첫 해외여행이기도 했다. 이런 성격 때문에 출발 전부터 부모님께 큰 걱정을 끼쳐드리기도 하고 캠프에 대한 설레임이 출발 전 두려움과 초조함으로 다가왔다. 태국에 처음 도착하여 미리 예약해둔 숙소에 3일간 묵으면서 여행객이라는 이유로 택시기사에게 말도 안되는 교통비를 지불하기도 하고 코끼리 트래킹을 갔다가 팔찌를 거의 반협박에 의해 사기도 했다. 또한 횡단보도 시설이 잘 갖춰져 있지 않은 지역을 여행할 때는 목숨을 걸고 무당횡단을 할 수밖에 없었으며 나름 영어를 구사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현지인들의 발음을 알아듣지 못해 많은 고생을 했다. 워크캠프를 시작하기도 전에 이런 일들을 당하고 나니 캠프를 잘 치를 수 있을지 걱정이 되어 밤새 잠을 이루지 못했다.
다음날 아침 일찍 호텔 체크아웃을 하고 칸차나부리로 가는 버스를 탔다. 워크캠프 전까지 어떤 사람들과 함께 봉사를 하게 될지 전혀 정보가 없었기 때문에 설레이기도 하고 걱정스럽기도 했다. 인포짓에 적혀있는 칸차나부리 기차역에서 사람들을 기다렸지만 두 시가 다되도록 아무도 오지 않자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알고 보니 미팅포인트가 전날 버스터미널로 바뀌어 이메일을 체크하지 못한 나만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다행히 캠프리더가 나를 찾으러 와 겨우 합류할 수 있었다. 그리고 정말 놀랍게도 한국인이 있었다. 외국에서 한국인을 만나다니 우리는 너무 반가워서 처음 본 사이에도 불구하고 바로 친해지게 되었다.
우리가 봉사를 할 학교는 칸차나부리에서도 두 시간 남짓 가야 하는 농푸르라는 지역에 있는 작은 학교였다. 나를 포함한 한국인 두 명, 이탈리아인 두 명, 미국인 한 명 그리고 태국인 캠프리더. 우리는 첫날 저녁식사를 하면서 서로에 대해 알게 되는 시간을 가졌다. 그리고 우리를 도울 태국인 학교 선생님 두 분을 소개받고 함께 숙소로 갔다. 숙소를 처음 보았을 때는 조금 충격이었다. 말라리아와 댕기열모기가 있다는 태국의 시골마을에 창문이 막히지도 않은 숙소라니.. 걱정이 앞섰고 화장실도 물을 퍼서 내려야 하는 시스템이었다. 호텔처럼 편할 것이라 기대하진 않았지만 수많은 벌레들과 도마뱀과 함께 첫날밤을 보내야 했다.
봉사 첫날, 모두가 모여 아침 일찍 교장선생님께 인사를 드렸다. 앞으로 이주 간 학생들을 잘 부탁한다고 우리를 격려해 주셨다. 또 교장선생님께서는 대장금 드라마를 즐겨보셨다며 한국에 대한 큰 관심을 표현하시기도 했다. 한국인임이 자랑스러운 순간이었다. 태국 내에는 한류가 일어서 한국 스타일을 따라하고 싶어하고 실제로 학생들도 한국 아이돌 가수의 팬이라며 직접 내 앞에서 춤을 춰보이기도 하고 한국어를 배우고 싶어했다. 영어를 가르치러 와서 쉬는 시간마다 한국어를 가르쳤던 것 같다.
아이들의 영어실력은 한국에 비해 많이 낮은 편이었다. 고등학생도 아직은 문장을 잘 구사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전날 회의를 통해 준비한 프로그램대로 아이들이 잘 따라와주고 게임에 대한 열의도 가득하여 뿌듯하고 즐거웠다.
어느새 일주일이 흐르고 주말이 되어 캠프사람들과 함께 태국의 명소를 관광하였다. 7개의 폭포를 구경하고 맛있는 식사도 하고 칸차나부리로 가서 태국마사지도 받았다. 태국의 마사지는 정말 저렴한 가격에 최고였던 것 같다. 아이들을 가르치느라 많이 힘들지는 않았지만 그 동안의 여행피로가 풀리는 기분이였다.
다시 학교로 돌아가 초등학교에서 마지막 수업을 한날은 마음이 찡해지기도 했다. 아이들의 눈동자가 너무 맑고 순수했는데 우리가 마지막 수업을 온 것을 알고 우리가 알아듣지도 못하는 태국말로 언제 다시 올 수 있냐고 계속 되물었다. 말은 통하지 않아도 서로가 슬픈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자신의 집 전화번호를 주고 꼭 전화하라는 말을 하기도 하고 자신의 학용품을 선물로 주기도 하는 예쁜 아이들. 언젠가 다시 만날 수 있다면 참 좋을 텐데 아쉬움이 컸다. 고등학생 아이들은 어른이 되어 돈을 벌게 되면 한국에 오겠다고 약속했다. 만남이 있으면 이별이 있는 법인데 이별은 항상 슬픈 것 같다.
봉사를 마치고 한층 성숙해진 기분이다. 혼자 스스로 하는 법을 배우고 아이들로부터 순수함을 배우고 많은 태국어도 배웠다. 직장인이 되어서도 기회가 된다면 다시 한번 워크캠프에 참여하고 싶다.
다음날 아침 일찍 호텔 체크아웃을 하고 칸차나부리로 가는 버스를 탔다. 워크캠프 전까지 어떤 사람들과 함께 봉사를 하게 될지 전혀 정보가 없었기 때문에 설레이기도 하고 걱정스럽기도 했다. 인포짓에 적혀있는 칸차나부리 기차역에서 사람들을 기다렸지만 두 시가 다되도록 아무도 오지 않자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알고 보니 미팅포인트가 전날 버스터미널로 바뀌어 이메일을 체크하지 못한 나만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다행히 캠프리더가 나를 찾으러 와 겨우 합류할 수 있었다. 그리고 정말 놀랍게도 한국인이 있었다. 외국에서 한국인을 만나다니 우리는 너무 반가워서 처음 본 사이에도 불구하고 바로 친해지게 되었다.
우리가 봉사를 할 학교는 칸차나부리에서도 두 시간 남짓 가야 하는 농푸르라는 지역에 있는 작은 학교였다. 나를 포함한 한국인 두 명, 이탈리아인 두 명, 미국인 한 명 그리고 태국인 캠프리더. 우리는 첫날 저녁식사를 하면서 서로에 대해 알게 되는 시간을 가졌다. 그리고 우리를 도울 태국인 학교 선생님 두 분을 소개받고 함께 숙소로 갔다. 숙소를 처음 보았을 때는 조금 충격이었다. 말라리아와 댕기열모기가 있다는 태국의 시골마을에 창문이 막히지도 않은 숙소라니.. 걱정이 앞섰고 화장실도 물을 퍼서 내려야 하는 시스템이었다. 호텔처럼 편할 것이라 기대하진 않았지만 수많은 벌레들과 도마뱀과 함께 첫날밤을 보내야 했다.
봉사 첫날, 모두가 모여 아침 일찍 교장선생님께 인사를 드렸다. 앞으로 이주 간 학생들을 잘 부탁한다고 우리를 격려해 주셨다. 또 교장선생님께서는 대장금 드라마를 즐겨보셨다며 한국에 대한 큰 관심을 표현하시기도 했다. 한국인임이 자랑스러운 순간이었다. 태국 내에는 한류가 일어서 한국 스타일을 따라하고 싶어하고 실제로 학생들도 한국 아이돌 가수의 팬이라며 직접 내 앞에서 춤을 춰보이기도 하고 한국어를 배우고 싶어했다. 영어를 가르치러 와서 쉬는 시간마다 한국어를 가르쳤던 것 같다.
아이들의 영어실력은 한국에 비해 많이 낮은 편이었다. 고등학생도 아직은 문장을 잘 구사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전날 회의를 통해 준비한 프로그램대로 아이들이 잘 따라와주고 게임에 대한 열의도 가득하여 뿌듯하고 즐거웠다.
어느새 일주일이 흐르고 주말이 되어 캠프사람들과 함께 태국의 명소를 관광하였다. 7개의 폭포를 구경하고 맛있는 식사도 하고 칸차나부리로 가서 태국마사지도 받았다. 태국의 마사지는 정말 저렴한 가격에 최고였던 것 같다. 아이들을 가르치느라 많이 힘들지는 않았지만 그 동안의 여행피로가 풀리는 기분이였다.
다시 학교로 돌아가 초등학교에서 마지막 수업을 한날은 마음이 찡해지기도 했다. 아이들의 눈동자가 너무 맑고 순수했는데 우리가 마지막 수업을 온 것을 알고 우리가 알아듣지도 못하는 태국말로 언제 다시 올 수 있냐고 계속 되물었다. 말은 통하지 않아도 서로가 슬픈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자신의 집 전화번호를 주고 꼭 전화하라는 말을 하기도 하고 자신의 학용품을 선물로 주기도 하는 예쁜 아이들. 언젠가 다시 만날 수 있다면 참 좋을 텐데 아쉬움이 컸다. 고등학생 아이들은 어른이 되어 돈을 벌게 되면 한국에 오겠다고 약속했다. 만남이 있으면 이별이 있는 법인데 이별은 항상 슬픈 것 같다.
봉사를 마치고 한층 성숙해진 기분이다. 혼자 스스로 하는 법을 배우고 아이들로부터 순수함을 배우고 많은 태국어도 배웠다. 직장인이 되어서도 기회가 된다면 다시 한번 워크캠프에 참여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