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후기

24시간, 낯선 곳에서 살아남기 태국 남부, 17시간

작성자 차대근
태국 VSA1211 · RENO/ENVI 2012. 09 Peace Vilage, Kok Muang, Khlonghoikhong, Songkhla

Renovation/Peace Village Sustainable Camp

참가 전 준비와 마음가짐

지난 9월. 비행기 값을 아껴보겠다고 직항이면 5시간 반을 걸릴 방콕까지 총 24시간이 넘는 비행 스케줄을 거쳐 도착했다. 첫 여행, 첫 워크캠프 참여이다 보니 걱정도 많고 설렘도 많은 가슴을 안고 도착한 방콕에서 태국 남부 핫야이까지의 여정은 한국에서 오는 것 만큼이나 어려웠다. 평소 영어로 수업을 하는 학교에 다니는 터라 최소한 영어를 통한 의사소통에는 큰 무리가 없을 것이란 기대를 깨고 아무도 내 영어를 알아듣지 못하는 상황을 만났다. 메모와 간단한 영어 단어로 공항에서 기차와 지하철을 갈아타며 도착한 장거리 기차를 탈 활람퐁 기차역에서 출발 15분전에 간신히 기차를 탔다. 장장 17시간이나 기차를 타며 앞자리 누나와도 이야기 하고 밖에 비치는 풍경을 보며 이국의 풍경에 눈이 익숙해 질 때 미팅포인트인 핫야이 기차역에 도착했다. 약속 시간까지 시간이 좀 있던 터라 시내를 돌아 다니며 시장 구경을 하고 먹을 것을 사먹으며 기다리다 보니 어느새 사람들이 모였다. 수많은 태국인들 사이에서 한참을 서성이니 서양 사람들의 얼굴이 보였다. 혹시 우리 사람들이 아닐까 했으나 말레이시아로 가는 여행객이 많은 곳이라 망설이고 있으니 태국 현지인 팀장인 바위가 날 알아보고 ‘VSA’라 쓰여진 종이와 함께 손을 흔들었다. 그곳으로 가 무리에 끼니 바위가 인원체크를 하고 팀원들을 소개했다. 홀랜드에서 온 마리엘라, 테레사, 일본에서 온 하야토와 일본 교포인 승연이 누나까지 소개하고 날 소개하는데 옆에서 바위가 날 ‘태국인’으로 소개 하는 것이 아닌가! 윙크를 하는걸 보고 자연스럽게 태국인이라 날 소개 했지만 태국어는 인사 말고는 한마디도 못하는 터라 곧바로 한국인인걸 고백 할 수밖에 없었다.
태국 전통 운송수단인 툭툭을 타고 우리가 머물고 일할 피스 빌리지에 도착했다. 그곳에 가는 동안 그리고 그곳을 처음 봤을 때 느낀 것은 정말 자연친화적이라는 것이었다. 사방에 펼쳐진 숲과 풀들, 그러면서도 우리 나라와는 달리 큰 산이 보이지 않는 풍경은 내가 정말로 태국에 와있음을 느끼게 해주었다. 첫날 이라 큰 일은 없었고 바위와 함께 우리가 지낼 피스 빌리지의 이곳 저곳을 돌아 다니며 설명을 들었다. 재밌었던 것은 화장실이 우리 나라와는 달리 바가지에 물을 담아 붓는 방식으로 넘어가는 변기를 사용한다는 점이었다. 사실 처음에는 내가 있는 피스 빌리지의 특성인줄 알고 넘어갔는데 이후 태국 여기 저기에서 비슷하게 물을 내리는 변기를 발견 할 수 있었다. 도착한날 저녁, 오피스에서 장기 봉사자들과 이전 팀장이신 툼씨를 만나 자기 소개와 우리가 해야 할 일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바로 다음날부터 일이 시작되었다. 눈을 뜨자 마자 오피스앞에 모여 화장실 청소, 오피스 청소, 밭에 물주기, 식당 청소, 부엌 청소 중 하나를 맡아서 해야 했는데, 개인적으로는 화장실 청소가 너무 하기 싫었다.
첫날 시작했던 밭일의 경우 제일 힘들었던 건 역시 삽질이었다. 툼씨가 가르쳐 주시고 하야토와 둘이 하였는데 처음으로 한 일이면서도 손에 익지 않은 농기구들 때문에 손에 물집이 잡히기도 했다. 구체적으로 흙을 모아 둔덕을 만들고 나뭇잎과 유기농 비료를 비료로 주고 아침마다 물을 주는 일이 주된 일이었다. 기억에 남는 것은 유기농 비료를 처음 본 순간이다. 검은 고무통에 흑설탕과 빗물, 과일을 넣어 만드는데, ‘비료’를 영어로 몰라 ‘저 곰팡이 피고 벌레가 기어 다니는걸 혹시 먹는 건가?’란 오해를 했었다. 숲이나 길가에 있는 나뭇잎들 하나 하나를 전부 버리지 않고 비료로 쓰는 모습이 굉장히 인상 깊었다.
태국에서 머물면서 신기했던 풍경 중 하나는 개울이나 저수지같이 ‘물’이 참 많다는 점이었다. 내가 있던 피스 빌리지에도 밭과 기숙사 공터 사이에 큰 수로가 하나 있었다. 우리가 해야 했던 일중 하나는 이 수로에 생긴 수초를 청소하고 이후 그 수초를 비료로 사용하는 것이었다. 양철 바구니가 달린 긴 대나무 바가지로 수초를 퍼서 옆에 쌓는 일이라 크게 어렵지는 않았는데 문제는 이 수초들은 치우면 생기고 치우면 생기고를 반복한다는 것이었다. 정말로 치우면서 혹시 누군가가 수로 위쪽에서 수초를 가득 재배했다가 우리가 치우면 조금씩 내려 보내는 것이 아닐까 의심할 정도로 수초는 끝없이 자랐다.
아쉬웠던 점이 있다면 대나무 의자를 완성하지 못하고 돌아온 것이다. 리랏 선생님의 지도 하에 우리는 한 명당 한 개의 의자를 만들어야 했다. 하지만 친절하게 웃으며 연필 깍듯이 대나무를 자르는 리랏 선생님과는 달리 우리는 한참을 낑낑대고도 깔끔하게 대나무를 다듬지 못했다. 게다가 난 원래 손재주가 좋지 않아 2주 동안 만들었음에도 하나도 만들지 못했다. 하지만 잘린 대나무에서 나는 대나무향이 아직도 잊혀지지 않을 만큼 좋아 즐거웠다.
영어를 가르치던 일은 가장 기대했으면서도 가장 실망했던 일이었다. 한국에 있을 때 중학생들에게 영어를 가르친 기억이 있어서 나름 자신 있게 도전 했으나 어린 아이들에게 가르치는 일은 생각보다 어려웠다. 내 첫 수업은 초등학교에서 했다. 약 10이 조금 넘은 아이들한테 색깔이나 간단한 동사, 신체 같은 주제로 단어를 알려주는 방식으로 수업은 진했 되었다. 나는 색깔을 설명했는데, 아이들과 영어로 게임을 하고 설명을 하는 일은 생각보다 꽤 체력을 소모하는 일이라 더운날 30분정도 말하고 나면 몸이 젖을 정도였다. 심지어 그나마도 어설퍼서 사실상 같이 간 리치와 테레사가 대부분의 수업을 진행하고 난 도와주는 정도밖에 할 수 없어 많이 속상했다. 두번째 수업은 큰 건물에서 진행한 잉글리쉬 캠프였다. 여기에는 정말 어린 아이부터 어르신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와 수업을 들었다. 재밌게도 영어로 우리가 설명을 하면 어린 아이들보다 어르신들이 더 열심히 따라 해주시고 열정적이셨다.
기다리던 토요일에 나와 하야토는 박물관 견학을 갔다. 원래 불교문화라든가 태국 특유의 독특한 문화에 호기심이 많아서 잔뜩 기대하고 갔는데 사실 조금은 실망스러울 정도로 박물관이 작았다. 하지만 작은 크기와는 다르게 알차게 물건들이 많아서 기쁘게 구경을 하고 나니 박물관 마당에서 ‘천연 약제 만들기’강의가 있었다. 태국 전통 방식으로 만드는 마사지 크림, 모기약 등을 직접 만들어 보고 선물 받는 시간이었는데 강의가 다 태국어이고 만든 약들이 약의 목적과는 상관없이 전부 물파스향이 났다. 그날 저녁에는 중학교 학예회(?)같은 곳에 초청받아 갔다. 알아 들을 수는 없었지만 mc들도 재밌게 진행하고 아이들이 다들 너무 잘해서 놀랐다. 우리 봉사자들도 짧은 연극을 하고 같이 어울리니 다들 너무 좋아했었다.
한참 수로 청소를 하고 있던 날이었다. 하야토가 오더니 그림을 잘 그리냐고 물었다. 위에서 말했듯이 난 손재주가 없어 정말로 그림을 못 그린다. 하지만 날은 더웠고 일이 너무 하기 싫어 무작정 원래 하야토가 하던 벽화 작업을 덥석 맡았다. 다른 프로그램에서 온 리타 누나랑 둘이서 벽화를 그리기 위해 오피스로 갔다. 차마 난 그림을 잘 못 그린다는 말을 못해 무작정 한글로 ‘반가워요’란 한국어와 물고기를 오피스 벽에 그려 넣었다. 다행히도 리타 누나가 계속 옆에서 칭찬을 해주었고 덕분에 내가 생각해도 꽤 귀여운 반달가슴곰 그림을 그리는데도 성공했다. 기뻐서 색을 칠하려는데 마침 푸른색 말고는 페이트가 다 떨어져 할 수 없이 다음 봉사자들에게 맡길 수 밖에 없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입구 근처 나무 아래를 청소한 일이다. 피스 빌리지를 들어가는 입구 근처에는 커다란 나무가 있다. 그런데 그 나무 밑에 누군가가 온갖 쓰레기와 폐자재를 쌓아두고는 그냥 플라스틱 천으로 덮어두어 보기가 많이 안 좋았다. 그것들을 치우고 정리하는 일이 우리가 피스 빌리지를 떠나기 전에 해야 할 일중 하나였다. 너무 오래되어 이미 뿌리가 사이사이로 뻗은 매트릭스와 쓰레기들을 치우고 바닥에 쌓여있던 흙과 나뭇잎을 전부 쓸어내 비료로 주었다. 이 과정에서 정말로 많은 동물이 그 사이에 살고 있었음을 알았다. 살아있는 전갈들에 불개미들, 도마뱀들, 이름 모를 벌레들까지 튀어나오는걸 보면서 사실 여기 주인은 이 애들인데 우리가 침입 한 게 아닐까 란 생각이 들었다. 어쨌든, 모든 자재들을 치우고 깔끔해진 공터를 보면서 굉장히 뿌듯했다.
힘들기도 하고 재미있었던 피스 빌리지의 생활을 떠나 다시 한국으로 돌아오는 여정도 태국으로 갈 때 만큼이나 힘들었다. 기차를 잘못 타 일정에도 없던 말레이시아를 갔는가 하면 말레이시아에 갔던 기록문제로 경찰에 체포되기 까지 했다. 하지만 태국에서 만난 친절한 사람들과 이국적인 모습들을 아직도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