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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돈만 쓰다 가는 여행자가 되고 싶진 않아서 / 인도워크캠프 참가후기

    2020-01-21
    여행을 좋아하지만, 여행을 할 때마다 항상 지워지지 않는 느낌이 있었어요. '외국인, 외부자, 낯선 사람으로서 제한적인 경험을 하고 왔구나' 하는 느낌이요. 유명 관광지 앞에서 사진만 찍고 돌아오는 그런 여행은 이제 너무 허무했어요.

    제가 정말 원하는 건 그 나라, 그 지역 사람들과 어울리며 그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아는 건데.. 그래야 더 많이 배우고 느낄 수 있을 테니까요. 나아가, 가능하다면 지역사회에 참여할뿐 아니라 작더라도 어떤 도움이 되고 싶었어요. 여행자들의 무분별한 지역 소비로 출입제한이라는 극단적인 조치까지 취해졌던 보라카이 사례를 보며 더욱 생각했죠. '돈만 쓰다가는 외국인 여행자'가 되고 싶진 않다고요. 이런 생각을 하던 차에 워크캠프를 알게 됐어요.



    이거라면 내가 꿈꾸던 진짜 여행에 대한 갈증을 해결해주지 않을까? 



    그렇게 워크캠프에 지원했지만 사실 걱정도 컸어요. 제가 무슨 특별한 능력이 있는 것도 아닌데, 지역사회에 정말 도움이 될 수 있을까 싶어서요. 그런데 막상 제가 선택한 프로그램이 시작되고나니 육체적 노동을 통한 봉사활동보다는 문화교류에 보다 초점이 맞춰져 있더라고요. '고생'을 너무 안 하는 것 같아 오히려 마음이 불편했어요. 그래서 캠프리더에게 프로그램의 의의를 묻기도 했는데요, 싱거운 대답이 돌아오더라고요.

    "기차역에서 몇 시간을 달려서 이런 산골짜기 마을에 외국인들이 온 것만으로도 이 사회에 큰 변화를 가져올 수 있어."

    아, 시골 사람들이 외국인들을 보고 신기해하고 반가워한다는 뜻인가보다, 처음엔 대강 이렇게 이해했는데요, 그런데.. 우리 캠프의 핵심이었던 '홀리 축제'에 직접 참가한 이후에야 그 대답의 진의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었어요.



    축제, 여성은 즐길 수 없는. 



    홀리축제 참가를 위해 캠프 참가자들은 중심가 시장으로 갔어요. 사람들은 시장 한 가운데서 스피커로 크게 음악을 틀어놓고 서로 온갖 색깔의 파우더를 묻히며 춤을 추고 즐기고 있었죠. 저희도 신나게 그 무리에 섞였고요. 그런데 춤을 한창 추다가 문득 깨달았어요. 그곳엔 아빠를 따라온 5살도 안 돼 보이는 여자아이를 제외하고는 인도 여성이 한.명.도. 없다는 사실을요.

    인도사회에서 여성의 권리가 매우 제한적이라는 얘기는 익히 들어왔지만 피부로 느끼는 순간이었어요. 대도시의 경우 그나마 여성들의 권리가 조금씩 높아지고 있지만 시골의 경우 여성들은 연중 가장 큰 축제 하나를 제대로 즐기지 못할 정도라는 것을..



    그런 상황에, 같은 아시안 여성인 제가 공개적인 장소에서 춤을 추며 축제를 즐기는 모습이 그 지역 사람들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졌을까요? 여자는 반드시 '정숙'해야 한다는 인식에 조금의 균열이라도 일으키지 않았을까요? 그제야 캠프리더의 대답이 이해 되었어요.



    전통이라는 이름의 차별을 뛰어넘기 위해

    인도의 아름다운 문화가 '현대화'라는 이름 하여 사라져야 한다는 것은 아니에요. 다만 어쩌면 전통이라는 이름 하에 지속되어온 성, 종교, 계급 등에 의하 차별이 이런 문화교류를 통해 조금씩 희미해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이때의 경험은 한편으로, 너무나도 서구화되어 소중한 전통 문화를 많이 잃어버리면서도, 많은 차별과 굴레는 여전히 남아있는 한국의 상황에 대해서도 돌아보게 된 계기였어요.




    물갈이, 입에 안 맞는 음식, 불편한 화장실... 그럼에도, 

    솔직히 말하면, 이전의 어떤 해외경험보다 힘든 생활이었어요. 물갈이, 입에 맞지 않는 음식, 불편한 화장실 등 힘든 것 투성이었어요. 그럼에도 저는 지금 이 순간에도 인도에 다시 가고 싶다는 생각을 해요. 익숙하고 당연하게 누려왔던 모든 것들에서 벗어나 저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었거든요.



    강박적으로 확인하던 스마트폰을 완전히 잊고 살았던 그때, 매일 아침 산꼭대기 아래로 펼쳐지던 아름다운 자연 풍경, 특유의 미소로 반갑게 맞아주던 지역 주민들, 함께 했던 유쾌한 워크캠프 참가자들...

    최대한 많이 대화하고, 배우고, 느끼며, 행복해하던 제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합니다. 그 기억은 마치 홀리축제 때 서로를 물들였던 컬러 파우더처럼 제 기억의 한 켠을 온갖 색으로 물들여서 잘 지워지지 않을 것 같아요.



    고은민 · 2018년 인도 워크캠프 참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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