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후기

혼자 떠난 호치민, 두려움 반 설렘 반

작성자 최유정
베트남 VPV14-12 · SOCI/ KIDS 2012. 08 호치민

Vinh Son School

참가 전 준비와 마음가짐

처음 워크캠프를 알게 된 건 친구가 함께 워크캠프에 참가해보지 않겠냐는 제안 때문이었다. 친구와 함께 어느 나라로 갈지 어떤 프로그램에 참가할지 결정한 다음 신청서를 작성하고 합격통지가 오기만을 기다렸다. 처음 신청하는 그 순간부터 떠나기 직전까지 걱정했던 것은 영어로 의사 소통하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처음에 함께 가기로 한 친구가 함께 신청한 프로그램에서 탈락하고 나만 합격했기 때문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낯선 사람들과 적극적으로 어울리려고 노력했던 중요한 계기가 되었지만 당시에는 정말 당황했던 게 사실이었다.

설레는 마음을 안고 처음 비행기에 오르는 순간까지도 내가 정말 워크캠프에 참가하는 게 맞는지 실감하지 못했다. 하루 일찍 친구와 호치민시에 도착해서 호텔에 짐을 풀고 호치민이 어떤 도시인지 맛보기로 조금 둘러보았다. 베트남에서 현지인 없이는 대부분 택시를 타고 이동했는데 베트남 물가가 워낙 저렴해서 베트남에 있는 동안 크게 돈을 써야하는 상황은 없었다. Wifi가 거의 모든 카페에서 제공되고 있었기 때문에 카카오톡으로 한국에 있는 가족, 친구들과 연락하는 것도 편리했다.
호텔에서 자고 일어난 아침 호텔에서 제공해주는 조식을 먹고 친구와 나는 각자의 미팅포인트로 떠나야했다.
베트남에 머무는 동안 그 순간만큼 긴장되는 순간은 없었던 것 같다. 호텔 택시로 미팅포인트인 봉사자 숙소까지 갔는데 내가 전혀 모르는 곳에서 택시기사만 믿고 가야 한다는 것이 혹시나 하는 마음이 자꾸 생겨서 불안했다.

다행히도 택시기사는 안전하게 나를 숙소 앞까지 데려다 주었다. 봉사를 하기 위한 숙소이기 때문에 큰 기대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기대도 실망도 없었다. 다만 신발을 벗어 놓고 들어가는 장소가 우리나라처럼 분명하게 구분되어 있지 않아서 아무것도 모르고 신발을 신고 그냥 숙소 안으로 들어가는 실수를 범하기도 했다. 처음 숙소에 도착했을 때 나보다 먼저 도착한 몇몇 사람들이 있었는데 떨리는 맘으로 앉아서 짧은 영어로 대화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워크캠프의 첫발을 내디디면서 외국인 친구들과 2주 동안 함께 지내기 시작했다. 외국인 친구들과 영어로 의사 소통하는 것이 힘들어서 그렇지 캠프기간 내내 즐겁게 시간을 보냈다. 영어로 말하기 어려울 때 마다 같이 한국에서 참가한 한국언니 2명이 있었는데 두 사람 모두 항상 나를 도와주었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아직도 고맙게 생각하고 있다.

봉사하는 스케줄은 정말 빡빡했다. 자유시간이 너무 없어서 하루하루 피곤에 지친 채로 지내야 했다. 처음 자유시간을 갖게 된 주말 동안 나는 한국인 언니 2명 러시아인 1명과 함께 푹신한 침대가 얼마나 그리웠는지 그 기쁨이란! 매일매일 빈손 스쿨에서 아이들을 만났는데 아이들과 영어로 대화할 수 없어서 매우 아쉬웠다. 단어만 나열하는 짧은 영어라도 아이들과 이야기 하고 싶었지만 베트남 현지 봉사자들을 통해서만 모든 의사소통이 이루어져서 아이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파악하기가 매우 어려웠다. 우리말고도 다른 수많은 봉사자들이 빈손 스쿨에서 봉사활동을 한걸 감안하면 왜 외국인인 우리가 이야기들에게 현지인들도 할 수 있는 봉사를 해야 하는가 하는 의문점에 봉착하기도 했다. 그리고 봉사하는 부분에 있어서는 내가 아이들에게 해줄 수 있는 게 많이 없었기 때문에 미안하기도 했다.

사람 사는 곳은 어느 곳이 나 똑같다고 말 할 수 있게 된 건 아마도 돈 문제게 부딪히면서 시작되었다.
현지 봉사자들은 아무런 비용 없이 워크캠프에 참가했고 외국인이 내는 돈에 관한 사용 내역이 명확하게 안내되지 않으면서 캠프를 2일 남겨두고 갈등이 발생했다. 자꾸 돈은 봉사자를 위한 시설 유지와 기관에 보내진다고 하는데 캠프에 참가한 모두가 우리가 지불한 비용에 비해서 시설 유지는 형편 없었으며 정확하게 어떤 기관이 어떤 절차를 거쳐서 우리의 돈을 기금을 운영하는지 전혀 설명해주지 않았다. 그리고 애초에 우리게 사용하기로 한 50%의 비율도 전혀 지켜지지 않았다. 이때부터 외국인을 봉으로 생각하나? 하는 불신이 생겨났다. 이 돈 문제로 인해서 캠프의 마지막 분위기가 좋았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현지인 봉사자들은 마지막까지도 우리를 실망하게 만들었다. 모두가 떠나는 마지막날 외국인 봉사자들은 아침을 준비하러 가거나 숙소 내부를 청소하고 있었는데 현지인 봉사자들은 모두 함께 아침을 먹으러 가버렸다. 청소가 끝난 후 이미 다른 일정 때문에 새벽에 떠난 사람들도 있었고 청소를 끝낸 후 떠난 사람들도 있었다. 나는 다른 곳에서 봉사하고 있는 친구와 만나기로 되어 있어서 친구가 호치민에 도착할 때까지 숙소에서 기다렸다. 그때 일본에서 온 봉사자들은 대부분 늦게 일정이 잡혀 있어서 저녁비행기를 타거나 하루 더 숙소에 머물 예정이었다. 그래서 나는 일본인 봉사자인 유리와 함께 점심을 먹고 마지막 떠나기 전에 아쉬운 인사를 나누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