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후기
낯선 곳에서 시작된 특별한 이야기
Phu Ninh Community Renovation
참가 전 준비와 마음가짐
나의 워크캠프 이야기
나의 특별한 워크캠프! 여행을 제외하고는 다른 목적으로 다른 나라를 방문해 본 경험이 없기에 기대 반 설램 반으로 모든 준비를 해 나아갔다. 항공편이며 교통편 그리고 숙소에까지 모든 것이 내가 준비해야 했기에 매우 분주했다. 나름의 모든 준비를 마치고 드디어 공항에 갔던 순간을 잊을 수 없다.
나는 워크캠프가 시작하기 이틀 전 밤에 하노이에 도착하였다. 워크캠프에 참가하기 전 시티투어를 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캠프에 같이 간 사촌 동생과 함께 말도 하나 안 통하는 낯선 그 곳에서의 여행은 우리를 긴장하게 만들었고 오토바이와 많은 사람들이 붐비었던 나이트 마켓은 우리의 정신을 혼미해 지도록 만들었다. 이렇게 나름의 신기한 시티투어를 마치고 워크캠프를 맞이하였다.
택시를 타고 하노이에서 꾀 멀리 떨어진 워크캠프 사무실까지 택시로 이동하였다. 그 곳에는 이미 많은 봉사자들이 있었으며 우리의 멤버는 주로 일본인이 많았다. 그 밖에 영국인, 홍콩인, 프랑스인 등이 있었다. 어색했던 첫만남을 시작으로 우리는 잊을 수 없는 경험들을 함께 했다.
먼저 내가 워크캠프에서 했던 봉사는 유치원에서 아이들을 돌보는 것과 초등학교의 화장실을 짓는 일이었다. 유치원 아이들을 볼 생각에 기대감을 가득 안고 간 그곳은 사실 전쟁터였다. 내가 주로 맡았던 교실은 세 살 이하의 아이들이 모인 곳으로 온통 울음 소리뿐이었다. 그곳에서 아이들을 한 명 한 명 안으며 어르고 달래서 재우려 노력했지만 그 것은 쉽지 않았다. 아이들을 놀아주는 것 자체도 쉽지 않았다. 금방 놀이에 관심이 없어지고 울어버리는 아이들 때문에 말 그대로 어쩔 줄 몰라 했다. 하지만 아이들 돌보기가 끝나고 숙소로 돌아가는 때이면 언제나 아쉬웠고 숙소에서도 아이들의 얼굴이 아른거렸다. 그 아이들 중 한 명은 나의 어릴 적 모습과 많이 닮아 나의 어린 시절을 회상해 보기도 했다. 한가지 신기한 것은 어느 나라나 유치원의 모습은 똑같다는 것이다. 순수하고 귀여운 아이들과 아침마다 엄마 혹은 할머니와 헤어지기 싫어하는 아이들의 울음소리, 춤추며 노래하는 아이들 말이다.
이렇게 천국이면 천국이라고 할 수 있고 전쟁터라면 전쟁터라고 할 수 있는 유치원에서의 봉사는 건설봉사에 비하면 누워서 떡 먹기였다. 본래 건설봉사는 오전에 하는 것으로 계획되어 있었으나 오전에는 유치원에 가야 했기에 오후에 할 수 밖에 없었다. 이 오후가 베트남에서 한 여름 오후시간이라고 생각한다면 어느 정도일지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엄청난 햇빛과 더위와의 싸움이 매번 시작됐다. 나에게 있어서 건설 작업은 뭐든지 다 처음 하는 것이었다. 삽질, 벽돌 나르기, 시멘트 나르기, 땅파기 등 한국에서의 나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거기다 평소에 운동도 많이 안 하던 나였기에 이모든 것은 나에게 부담이었고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면 안 된다는 생각도 나를 힘들게 만들었다. 이렇게 정말 일은 못했지만 그저 열심히 하던 나에게 정말 큰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삽질 실력은 날로 늘었으며 힘도 쎄져서 벽돌, 시멘트 등도 처음보다는 훨씬 더 잘 날랐다. 아마도 근육이 생겼었나 보다. 결국 우리는 학교화장실을 완성시키지 못해 써보진 못했지만 얼추 화장실의 모양을 완성시켰다. 너무 고생을 하면서 지은 화장실이기 때문에 누군가 나에게 베트남 가서 뭐했니 라는 질문을 한다면 나는 화장실을 짓고 왔어요 하고 말할 것이다.
이렇게 봉사 이외에도 절대로 잊을 수 없는 것이 하나 있다. 그것은 호스트 패밀리이다. 우리 캠프는 직접 취사를 한 것이 아니라 학교 근처의 한 가정집에서 모든 끼니를 해결했었다. 그곳에 베트남 엄마 아빠는 정말 최고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의 끼니를 위해 정성껏 음식을 준비하셨고 정말 부모님같이 우리를 맞아주셨다. 누군가가 아프면 엄마처럼 보살펴 주셨고 정말 모두의 엄마 아빠 같았다. 이런 집 같이 편하고 따뜻한 곳이 있었기에 베트남에서의 봉사에 더 어려움을 느끼지 않았었나 생각된다. 지금도 마지막 날 밤 울음바다가 되었던 집이 생각난다. 너무나도 그분들께 감사하다.
마지막으로, 잊지 못할 것이 있다면 이제는 가족 같은 봉사자들이다. 처음의 어색함은 어디 가고 서로의 고삐 풀린 모습까지 보여주며 즐겁게 지냈었다. 워크캠프에 참가하였던 친구를 통해 들은 말이 있다. 워크캠프는 고생할수록 봉사자들끼리 더욱 더 가까워 진다는 것이다. 이 말에 정말 공감이 갔다. 화장실 하나 없는 곳, 숙소도 마땅치 않는 곳에서 모기들과 싸워가며 함께한 시간들이 우리를 더 돈독하게 만들었고 많은 에피소드들이 만들어 지게 하였다. 우리 모두가 이번 워크캠프에 대한 좋은 추억을 만들 수 있었다는 것에 대해 너무 기쁘다.
이렇게, 길면 길고 짧으면 짧다고 말할 수 있는 워크캠프가 끝났다. 사실, 첫날은 마음이 너무 힘들었다. 낯선 곳에서 힘들 봉사와 힘든 환경들에 심난했던 것도 사실이지만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니 만큼 모두 엄청난 적응력으로 우리를 환경에 맞추었던 것 같다. 페이스북에 올라온 워크캠프의 사진들을 보고 많은 지인들이 워크캠프에 호기심을 갖는다. 그들에게 자신있게 워크캠프를 추천해 줄 수 있을 것 같다. 살면서 해보지 못할 특별한 봉사와 경험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이다.
나의 특별한 워크캠프! 여행을 제외하고는 다른 목적으로 다른 나라를 방문해 본 경험이 없기에 기대 반 설램 반으로 모든 준비를 해 나아갔다. 항공편이며 교통편 그리고 숙소에까지 모든 것이 내가 준비해야 했기에 매우 분주했다. 나름의 모든 준비를 마치고 드디어 공항에 갔던 순간을 잊을 수 없다.
나는 워크캠프가 시작하기 이틀 전 밤에 하노이에 도착하였다. 워크캠프에 참가하기 전 시티투어를 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캠프에 같이 간 사촌 동생과 함께 말도 하나 안 통하는 낯선 그 곳에서의 여행은 우리를 긴장하게 만들었고 오토바이와 많은 사람들이 붐비었던 나이트 마켓은 우리의 정신을 혼미해 지도록 만들었다. 이렇게 나름의 신기한 시티투어를 마치고 워크캠프를 맞이하였다.
택시를 타고 하노이에서 꾀 멀리 떨어진 워크캠프 사무실까지 택시로 이동하였다. 그 곳에는 이미 많은 봉사자들이 있었으며 우리의 멤버는 주로 일본인이 많았다. 그 밖에 영국인, 홍콩인, 프랑스인 등이 있었다. 어색했던 첫만남을 시작으로 우리는 잊을 수 없는 경험들을 함께 했다.
먼저 내가 워크캠프에서 했던 봉사는 유치원에서 아이들을 돌보는 것과 초등학교의 화장실을 짓는 일이었다. 유치원 아이들을 볼 생각에 기대감을 가득 안고 간 그곳은 사실 전쟁터였다. 내가 주로 맡았던 교실은 세 살 이하의 아이들이 모인 곳으로 온통 울음 소리뿐이었다. 그곳에서 아이들을 한 명 한 명 안으며 어르고 달래서 재우려 노력했지만 그 것은 쉽지 않았다. 아이들을 놀아주는 것 자체도 쉽지 않았다. 금방 놀이에 관심이 없어지고 울어버리는 아이들 때문에 말 그대로 어쩔 줄 몰라 했다. 하지만 아이들 돌보기가 끝나고 숙소로 돌아가는 때이면 언제나 아쉬웠고 숙소에서도 아이들의 얼굴이 아른거렸다. 그 아이들 중 한 명은 나의 어릴 적 모습과 많이 닮아 나의 어린 시절을 회상해 보기도 했다. 한가지 신기한 것은 어느 나라나 유치원의 모습은 똑같다는 것이다. 순수하고 귀여운 아이들과 아침마다 엄마 혹은 할머니와 헤어지기 싫어하는 아이들의 울음소리, 춤추며 노래하는 아이들 말이다.
이렇게 천국이면 천국이라고 할 수 있고 전쟁터라면 전쟁터라고 할 수 있는 유치원에서의 봉사는 건설봉사에 비하면 누워서 떡 먹기였다. 본래 건설봉사는 오전에 하는 것으로 계획되어 있었으나 오전에는 유치원에 가야 했기에 오후에 할 수 밖에 없었다. 이 오후가 베트남에서 한 여름 오후시간이라고 생각한다면 어느 정도일지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엄청난 햇빛과 더위와의 싸움이 매번 시작됐다. 나에게 있어서 건설 작업은 뭐든지 다 처음 하는 것이었다. 삽질, 벽돌 나르기, 시멘트 나르기, 땅파기 등 한국에서의 나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거기다 평소에 운동도 많이 안 하던 나였기에 이모든 것은 나에게 부담이었고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면 안 된다는 생각도 나를 힘들게 만들었다. 이렇게 정말 일은 못했지만 그저 열심히 하던 나에게 정말 큰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삽질 실력은 날로 늘었으며 힘도 쎄져서 벽돌, 시멘트 등도 처음보다는 훨씬 더 잘 날랐다. 아마도 근육이 생겼었나 보다. 결국 우리는 학교화장실을 완성시키지 못해 써보진 못했지만 얼추 화장실의 모양을 완성시켰다. 너무 고생을 하면서 지은 화장실이기 때문에 누군가 나에게 베트남 가서 뭐했니 라는 질문을 한다면 나는 화장실을 짓고 왔어요 하고 말할 것이다.
이렇게 봉사 이외에도 절대로 잊을 수 없는 것이 하나 있다. 그것은 호스트 패밀리이다. 우리 캠프는 직접 취사를 한 것이 아니라 학교 근처의 한 가정집에서 모든 끼니를 해결했었다. 그곳에 베트남 엄마 아빠는 정말 최고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의 끼니를 위해 정성껏 음식을 준비하셨고 정말 부모님같이 우리를 맞아주셨다. 누군가가 아프면 엄마처럼 보살펴 주셨고 정말 모두의 엄마 아빠 같았다. 이런 집 같이 편하고 따뜻한 곳이 있었기에 베트남에서의 봉사에 더 어려움을 느끼지 않았었나 생각된다. 지금도 마지막 날 밤 울음바다가 되었던 집이 생각난다. 너무나도 그분들께 감사하다.
마지막으로, 잊지 못할 것이 있다면 이제는 가족 같은 봉사자들이다. 처음의 어색함은 어디 가고 서로의 고삐 풀린 모습까지 보여주며 즐겁게 지냈었다. 워크캠프에 참가하였던 친구를 통해 들은 말이 있다. 워크캠프는 고생할수록 봉사자들끼리 더욱 더 가까워 진다는 것이다. 이 말에 정말 공감이 갔다. 화장실 하나 없는 곳, 숙소도 마땅치 않는 곳에서 모기들과 싸워가며 함께한 시간들이 우리를 더 돈독하게 만들었고 많은 에피소드들이 만들어 지게 하였다. 우리 모두가 이번 워크캠프에 대한 좋은 추억을 만들 수 있었다는 것에 대해 너무 기쁘다.
이렇게, 길면 길고 짧으면 짧다고 말할 수 있는 워크캠프가 끝났다. 사실, 첫날은 마음이 너무 힘들었다. 낯선 곳에서 힘들 봉사와 힘든 환경들에 심난했던 것도 사실이지만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니 만큼 모두 엄청난 적응력으로 우리를 환경에 맞추었던 것 같다. 페이스북에 올라온 워크캠프의 사진들을 보고 많은 지인들이 워크캠프에 호기심을 갖는다. 그들에게 자신있게 워크캠프를 추천해 줄 수 있을 것 같다. 살면서 해보지 못할 특별한 봉사와 경험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