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후기
낯선 태국에서 피어난 우정, 송클라 워크캠프
Baan Kok Riang, Klong Hoi Khong, Songkhla
참가 전 준비와 마음가짐
처음에는 당혹스러웠다. 워크캠프 집결지인 핫야이 역에 도착했을 때 참가자는 한국인 단 두 명이었기 때문이었다. 거기에 더 참여한 태국 참가자 한 명 더. 시작은 그랬다. 거의 취소될 뻔 한 캠프를 한국인 참가자인 우리들 때문에 시작한 듯 했다. 우리를 맞이하는 그 순간에도 참가자를 장기 캠프 곳곳에서 구하기 위해 안달이 나 있었다. 캠프리더인 무아이와 캠프를 지원하는 조와의 만남도 처음에는 어색했다. 그렇게 시작한 캠프였다. 무슨 영문인치 모른 채 참가자들은 깊이깊이 들어갔고, 챙 아저씨의 집으로 도착했다. 그곳이 우리가 2주간 홈스테이를 할 곳이었다. 마당에 텐트를 깔고 생활해야 했지만 말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며 우리와 함께하는 참가자의 수도 늘어났다. 그리고 우리는 매일 매일 새로운 친구를 만들며, 하나하나 우리만의 특별한 워크캠프를 만들어 나갔다.
처음 한 일은 농사였다. 챙 아저씨의 농장을 가꾸는 일이 주된 일이었다. 땅 파는 일 조차 처음이라 버거웠다. 시골 출신인 나였기에 ‘땅 가꾸는 일’ 자체에 대해 주저함은 없었다. 그러나 태국의 땅은 한국의 그것과는 달랐다. 굳어버린 점토를 파는 느낌은 망치를 돌덩이에 치는 느낌과 다를 바 없었다. 우리는 온종일 땅을 파고, 물을 주며 땅을 부드럽게 만들었다. 거기에 씨를 뿌리고 거름을 덮었다. 파파야 나무를 심으며 우리는 나무 하나 하나에 우리의 이름을 붙였다. 고된 것은 사실이었다. 그럼에도 나에게는 힘들다는 기억보다는 순간 순간이 재미있는 기억으로 남아있다. 오두막에서 나눴던 한국과 태국에 대한 이야기들, 노래들, 서로의 삶에 대한 이야기들이 함께 남아있기 때문이다. 내게는 간간히 찾아오는 순박한 지역 주민들과 젊은 태국의 자원 봉사자들과의 시간,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이 즐거움으로 자리잡고 있다.
뭐니뭐니해도 이 캠프에서 가장 중요한 테마는 ‘음식’이었다. 매일매일 다른 음식을 챙 아저씨와 캠프 리더들이 준비해줬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 재료를 구매하고, 농장에서 채취하고, 음식을 만드는 방법을 하나하나 익히며 태국의 음식문화를 함께 알아갔다. 태국식 ‘대나무 찰밥’을 만들기 위해 대나무를 직접 베고, 거기에 쌀을 집어 넣고, 익히는 작업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나중에 다 만들고 나면 한국의 ‘찰떡’과 같은 모양새가 되는데 그 맛이 퍽 좋았다. 직접 고기를 잡아 생선 요리를 해 먹었던 것 역시 기억에 남는다. 논 웅덩이에 있는 물을 퍼낸 뒤, 진흙에서 뛰어 다니는 물고기를 잡았다. 마치 갯벌에서 바닷고기를 잡듯, 논 웅덩이를 헤집고 다녔다. 서로에게 남은 것은 진흙 범벅이 된 몸뿐이었지만, 그 자체로 즐겁고 행복했다. 우리가 직접 잡은 그 물고기를 가지고 직접 요리도 할 수 있었는데, 그 맛은 가히 일품이었다.
워크캠프에서 참가자들이 가장 중점을 뒀던 프로그램은 역시 아이들을 가르치는 프로그램이었다. 사찰 부설 초등학교에 가서 몇 일 동안 아이들에게 영어를 가르치고, 함께 놀았고, 환경보호 활동을 진행했다. 우리는 오랫동안 이 프로그램을 위해 토의하고 연구했다. 처음에는 다가가기 어려웠던 아이들도 마음의 문을 열고 우리의 프로그램에 즐거이 동참했다. 우리나라로 따지면 초등학교 4학년 수준으로 수업 내용을 준비했었지만, 아이들의 수준이 생각보다 높아서 더 심화된 학습 역시 진행할 수 있었다. 무선인터넷이나 기본 교구재 등 기반 교육 시설 역시 우수해 우리가 수업을 진행하는 데에 무리가 없었다. 아이들은 주말에도 우리 숙소를 찾아와 함께 놀았고, 아이들의 이름을 하나 하나 기억할 수 있을 정도로 친해졌다. 우리가 떠나던 그 날, “Thank you, Teachers!”라고 외치는 아이들의 마지막 눈망울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밤에는 함께 모여 UNO와 홍콩 포커, 그리고 우리가 전해준 ‘홍삼게임’과 ‘007빵’을 함께 즐겼다. 처음에는 느릿느릿해도 잘 따라가지 못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각자는 나름대로 패를 자유로이 읽어낼 수 있는 ‘타짜’가 돼 있었다. 때로는 여름에 일쑤인 스콜 빗물에 샤워도 했다. 일정 중 이틀 정도는 인근에 있는 해수욕장에서 물놀이도 했고, 주변 관광지를 찾기도 했다. 특히 우리 홈스테이 호스트이신 쳉 아저씨가 직접 차로 데리고 다니며, 역사적 명소 이곳 저곳을 친절하게 설명해 주신 덕에 더욱 유익하게 휴일을 즐길 수 있었다. 이 뿐일까? 픽업 트럭을 타고 야외에서 태국 길가를 달리는 기분은 우리가 한 편의 영화를 찍는 것과 같은 착각을 불러 일으키기에 충분했다. 바람을 가르며 보이는 풍경은 가히 장관이었다.
정해져 있는 틀은 없었다. 딱히 대단한 결과물도 없었다. 그럼에도 내 마음 속에는 그것들보다 더 강한 추억과 경험이 남았다. 무언가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보다는, 진짜 ‘삶의 태국’을 느끼고 싶다면, DaLaa의 이 워크캠프 만한 것이 없다. 워크캠프를 하루 하루 밟아나가며 나는 객(客)으로서가 아닌, 스스로 이 곳에 ‘살기 위해 온’ 그저 한 인간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시작은 퍽 불편할 수도 있다. 세련되지 못한 구성과 흐름에 당황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투박함 가운데에 태국인의 삶이 있고, 숨겨진 인간 본연의 삶이 있다. 이번 태국 워크캠프는 내게 겉으로 드러나는 것이 아닌 가슴 속 깊은 곳의 삶의 가치를 깨닫게 해 줬다.
처음 한 일은 농사였다. 챙 아저씨의 농장을 가꾸는 일이 주된 일이었다. 땅 파는 일 조차 처음이라 버거웠다. 시골 출신인 나였기에 ‘땅 가꾸는 일’ 자체에 대해 주저함은 없었다. 그러나 태국의 땅은 한국의 그것과는 달랐다. 굳어버린 점토를 파는 느낌은 망치를 돌덩이에 치는 느낌과 다를 바 없었다. 우리는 온종일 땅을 파고, 물을 주며 땅을 부드럽게 만들었다. 거기에 씨를 뿌리고 거름을 덮었다. 파파야 나무를 심으며 우리는 나무 하나 하나에 우리의 이름을 붙였다. 고된 것은 사실이었다. 그럼에도 나에게는 힘들다는 기억보다는 순간 순간이 재미있는 기억으로 남아있다. 오두막에서 나눴던 한국과 태국에 대한 이야기들, 노래들, 서로의 삶에 대한 이야기들이 함께 남아있기 때문이다. 내게는 간간히 찾아오는 순박한 지역 주민들과 젊은 태국의 자원 봉사자들과의 시간,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이 즐거움으로 자리잡고 있다.
뭐니뭐니해도 이 캠프에서 가장 중요한 테마는 ‘음식’이었다. 매일매일 다른 음식을 챙 아저씨와 캠프 리더들이 준비해줬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 재료를 구매하고, 농장에서 채취하고, 음식을 만드는 방법을 하나하나 익히며 태국의 음식문화를 함께 알아갔다. 태국식 ‘대나무 찰밥’을 만들기 위해 대나무를 직접 베고, 거기에 쌀을 집어 넣고, 익히는 작업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나중에 다 만들고 나면 한국의 ‘찰떡’과 같은 모양새가 되는데 그 맛이 퍽 좋았다. 직접 고기를 잡아 생선 요리를 해 먹었던 것 역시 기억에 남는다. 논 웅덩이에 있는 물을 퍼낸 뒤, 진흙에서 뛰어 다니는 물고기를 잡았다. 마치 갯벌에서 바닷고기를 잡듯, 논 웅덩이를 헤집고 다녔다. 서로에게 남은 것은 진흙 범벅이 된 몸뿐이었지만, 그 자체로 즐겁고 행복했다. 우리가 직접 잡은 그 물고기를 가지고 직접 요리도 할 수 있었는데, 그 맛은 가히 일품이었다.
워크캠프에서 참가자들이 가장 중점을 뒀던 프로그램은 역시 아이들을 가르치는 프로그램이었다. 사찰 부설 초등학교에 가서 몇 일 동안 아이들에게 영어를 가르치고, 함께 놀았고, 환경보호 활동을 진행했다. 우리는 오랫동안 이 프로그램을 위해 토의하고 연구했다. 처음에는 다가가기 어려웠던 아이들도 마음의 문을 열고 우리의 프로그램에 즐거이 동참했다. 우리나라로 따지면 초등학교 4학년 수준으로 수업 내용을 준비했었지만, 아이들의 수준이 생각보다 높아서 더 심화된 학습 역시 진행할 수 있었다. 무선인터넷이나 기본 교구재 등 기반 교육 시설 역시 우수해 우리가 수업을 진행하는 데에 무리가 없었다. 아이들은 주말에도 우리 숙소를 찾아와 함께 놀았고, 아이들의 이름을 하나 하나 기억할 수 있을 정도로 친해졌다. 우리가 떠나던 그 날, “Thank you, Teachers!”라고 외치는 아이들의 마지막 눈망울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밤에는 함께 모여 UNO와 홍콩 포커, 그리고 우리가 전해준 ‘홍삼게임’과 ‘007빵’을 함께 즐겼다. 처음에는 느릿느릿해도 잘 따라가지 못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각자는 나름대로 패를 자유로이 읽어낼 수 있는 ‘타짜’가 돼 있었다. 때로는 여름에 일쑤인 스콜 빗물에 샤워도 했다. 일정 중 이틀 정도는 인근에 있는 해수욕장에서 물놀이도 했고, 주변 관광지를 찾기도 했다. 특히 우리 홈스테이 호스트이신 쳉 아저씨가 직접 차로 데리고 다니며, 역사적 명소 이곳 저곳을 친절하게 설명해 주신 덕에 더욱 유익하게 휴일을 즐길 수 있었다. 이 뿐일까? 픽업 트럭을 타고 야외에서 태국 길가를 달리는 기분은 우리가 한 편의 영화를 찍는 것과 같은 착각을 불러 일으키기에 충분했다. 바람을 가르며 보이는 풍경은 가히 장관이었다.
정해져 있는 틀은 없었다. 딱히 대단한 결과물도 없었다. 그럼에도 내 마음 속에는 그것들보다 더 강한 추억과 경험이 남았다. 무언가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보다는, 진짜 ‘삶의 태국’을 느끼고 싶다면, DaLaa의 이 워크캠프 만한 것이 없다. 워크캠프를 하루 하루 밟아나가며 나는 객(客)으로서가 아닌, 스스로 이 곳에 ‘살기 위해 온’ 그저 한 인간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시작은 퍽 불편할 수도 있다. 세련되지 못한 구성과 흐름에 당황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투박함 가운데에 태국인의 삶이 있고, 숨겨진 인간 본연의 삶이 있다. 이번 태국 워크캠프는 내게 겉으로 드러나는 것이 아닌 가슴 속 깊은 곳의 삶의 가치를 깨닫게 해 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