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후기
국경 없는 우정, 워크캠프의 마법
ALLEGRE
참가 전 준비와 마음가짐
당신은 누구십니까?
자신의 워크캠프가 최고였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워크캠프에서의 일이나 환경보다는 함께한 사람들과 좋은 추억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인지 캠퍼들이 워크캠프를 참가하기 전 숙소가 불편할지도 모른다 혹은 일이 힘들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보다는 “가서 어느 나라에서 온 어떤 친구들을 만나게 될까?” ”영어로 이야기하는 것이 힘들지는 않을까?”하는 생각을 주로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나 역시 인포싯을 통해 알았던 텐트생활의 불편함과 건축 작업의 어려움 보다는 어떤 친구들을 만나게 될까 설레였다. 그나마 조금 알 수 있었던 것은 내가 참가했던 ‘OFAJ 워크캠프’는 프랑스 참가자 4명, 독일 참가자 4명, 한국인 참가자 4명의 쿼터가 배정되어있는 프로젝트라는 점이었다. 워크캠프지에 도착해보니 프랑스 참가자 4명, 독일인 참가자 2명, 한국인 참가자 4명으로 전체 10명 3개국에서 온 친구들이 모여 있었다. 이 후 약간의 문제로 2명의 프랑스 친구가 먼저 캠프를 떠나게 되었고 8명의 캠퍼들이 함께 생활을 하였다. 결국 정말 소규모의 워크캠프가 되었는데 다국적으로 이루어진 15명 이상의 캠퍼들이 모인 캠프가 다양한 문화적 배경과 이야기로 가득차 있다면 소규모 인원의 장점은 친구들 개개인과 시간을 좀 더 보낼 수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인원이 워크캠프에서 종종 벌어지는 마음이 잘 맞는 혹은 문화 별로 비슷한 친구들과 그룹 내의 그룹이 나뉘어지는 일이 없었다.
독일에서 온 캠프리더 ‘아넷’은 열번이 넘는 워크캠프 참가 경험으로 캠퍼들의 의견을 반영하면서 균형있게 그룹을 이끌었고, 나와 함께 유일하게 남자 참가자인 유쾌한 ‘마누엘’과는 정말 많은 추억을 만들었다. 또 중국계 프랑스인 ‘루시아’는 열정적이고 적극적인 성격으로 우리가 할 수 있는 여러가지 재밌는 활동들을 끊임없이 제공하면서 마을사람들과 통역을 담당했었고, 다른 프랑스인 ‘플로렌스’는 대체적으로 조용했지만 속이 깊은 친구였다. 마지막으로 폴란드에서 공부하는 ‘하늬’, 고고학을 공부하는 ‘보람’, 캠프 기간 동안 귀여움을 독차지한 막내 ‘예슬’과 나까지 네명의 한국인이 함께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우리는 그렇게 눈에 띄는 그룹은 아니였지만 ‘모자이크’ 같은 그룹이었다고 생각한다. 개개인의 개성을 가지고 있었고 그리고 그것을 조화롭게 이루어냈던 것 같다. 한가지 아쉬운 점은 캠퍼 구성원들이 다국적이 아니였기 때문에 다양한 문화적 경험이 부부족했었던 것이었다.
워크캠프앓이
워크캠프가 끝나고 돌아온 이후 나는 줄곧 이런 상태였다. 워크캠프를 떠나게 된 이유가 어떻든간 워크캠프는 시기적절하게 나에게 필요한 것을 주었다. 그래서인지 한동안 흔히 말하는 ‘워크캠프앓이’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만나는 친구들이 이해를 하지 못해도 워크캠프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오늘 잠이 들고 다음날이면 워크캠프를 했던 유난히 하늘이 파랗던 프랑스 남부의 마을에서 깨어날 것만 같은 기분들의 연속이었다. 그 곳을 다녀온 지 두 달이 다되어가는 지금 생각해보면 추억으로 남을만한 일들이 많았던 것은 아니다. 중세시대의 길을 보수하는 아침 8시부터 오후 2시까지의 비교적 규칙적인 일과와 소풍 같은 기분이 났던 11시의 짧은 휴식 시간, 하루 일을 모두 마치고 오늘 먹을 점심과 저녁 메뉴에 대한 기대와 늦은 밤까지 이어지던 게임과 소소한 이야기들 그리고 나눠 마신 맥주 한 잔에 대한 기억은 뭔가 앞날에 대한 걱정을 잊게 해주었다. 반드시 모두가 무언가를 해야만 하고 무언가를 이뤄 내야만 한다는 강박에 눌린 현실에서의 생활에서 잠시 나를 떨어뜨려 놓아 주었고, 약간의 취기가 오른 상태에서 무너진 중세시대의 성터로 가는 산책은 항상 일상에서 받던 작은 스트레스들을 생각조차 나지 않게 해주었다. 그래서 현실로 돌아온 지금 워크캠프에 대한 그리움이 커지는 것만 같다.
워크캠프 정신
3주의 워크캠프가 시작하기 전에는 짧지 않은 시간 동안 지루하지 않게 그 시간들을 보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앞섰다. 실제로 친구들과 익숙해져 이야기를 나누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하루 하루를 세었지만 친구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시간을 ‘함께’ 보내기 시작하면서 3주의 시간 센다는 것조차 하지 않았다. ‘서로 다른 국가와 문화 서로 다른 언어 그리고 각자각자의 살아온 이야기가 다른 아이들이 모여 친구가 된다는 것 자체가 쉽지 않지 않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하지만 며칠 뒤 친구들과 익숙해진 후에는 그런 걱정이 기우에 불과했음을 알았다. 그리고 3주의 시간이 지루할 것만 같다는 생각도 당장의 오늘 하루하루가 즐거웠기 때문에 다음날을 생각하는 것 자체가 의미가 없어져버렸다. 일상이었던 산책과 맥주와 함께한 카드게임 그리고 밤늦게 까지 이어졌던 이야기들, 주말에 갔던 호수로의 소풍과 수영장, 주변마을로의 여행 그리고 오래된 성당에서 열린 클래식 음악회를 간 일. 지금은 하나하나가 다 기억나지는 않지만 사진들을 보고 있으면 ‘아 그때는 그런 기분이었지’라는 막연한 느낌만이 느껴질 뿐이다.
워크캠프 정신에 대해서 말하는 것이 뭔가 어색해 보이지만, 나에게 워크캠프는 실제보다 책으로 배운 것이 먼저였기 때문에 이것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사람들은 쉽게 요즘이 국제화 시대고 지구촌에서 지구마을 사람들이 국경의 구분 없이 모여 산다고 말하지만, 그것을 실제로 느끼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그 동안 배낭여행도 다녀오고 다른 나라의 문화에 관심을 가졌지만, 나도 막연하게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워크캠프에서 느낀 것은 그 사람이 어느 나라에서 왔던지 하얀 피부를 가지던 까만 피부를 가지던지 어떤 문화에서 살아왔는지에 상관없이 친구가 될 수 있다는 점이었다. 그렇게 생각하고 나니 세계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그냥 그 곳의 문제가 아닌 내 친구의 나라에서 일어나는 일이라는 것이 피부로 와 닿았고 조금만 열린 마음을 가지면 그 사람의 다름이 틀림이 아니라 다름으로 다가온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것이 워크캠프 정신이 아닐까? 당신의 다름을 인정하고 이해한 다음에 친구가 되는 것…
워크캠프 그 이후, 끝나지 않은 꿈
그렇게 워크캠프가 끝이 났다. 3주란 시간이 언제 어떻게 내 생활 속에 들어왔는지도 몰랐던 것 처럼 끝이 나고도 언제 어떻게 끝이 났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대신 워크캠프가 끝난 이후 심하게 나와 친구들이 함께했던 그 시간이 그리워졌다. 이번 워크캠프에서 한 가지 잘못한 점이 있다면 그런 시간들이 끝날 것이라는 것을 대비하지 않았던 것이었다. 캠퍼 친구들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그 시간들이 계속될 것만 같이 3주의 시간을 보냈고 그래서 인지 헤어지는 순간에도 눈물을 보인 친구들이 많지 않았다. 다들 내일이면 다시 볼 것만 같은 기분을 가지고 있었으니까.
그렇게 한국에서 워크캠프에 대해 생각하던 순간에 나와 같은 경험을 혼자 하기에는 너무나 아까운 것이지 않을까 생각했다. 완전히 다른 삶의 배경과 문화를 가진 사람과 친구가 되고 그리고 그 사람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된다는 것 그것이 얼마나 멋진 일인지 알아가는 것을 내가 사랑하는 하는 사람들과 나누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그런 경험을 만들기 위해 노력을 하는 사람들에게 눈을 돌렸고 그들이 하는 일에 매료되었으며 지금은 국제워크캠프 식구들과 함께 하고 있다. 내가 가진 능력은 정말 작고 미약하지만 내 안에서 나온 작은 노력 하나가 누군가에게 정말 값진 경험을 줄 수 있다면 나는 정말 행복한 사람이 될 것이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나의 워크캠프는 나의 꿈은 끝나지 않았다.
야단법석 보고서 2011년 11월 호 ‘워크캠프 그 이후, 끝나지 않은 꿈’ 를 보고서로 대체합니다.
자신의 워크캠프가 최고였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워크캠프에서의 일이나 환경보다는 함께한 사람들과 좋은 추억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인지 캠퍼들이 워크캠프를 참가하기 전 숙소가 불편할지도 모른다 혹은 일이 힘들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보다는 “가서 어느 나라에서 온 어떤 친구들을 만나게 될까?” ”영어로 이야기하는 것이 힘들지는 않을까?”하는 생각을 주로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나 역시 인포싯을 통해 알았던 텐트생활의 불편함과 건축 작업의 어려움 보다는 어떤 친구들을 만나게 될까 설레였다. 그나마 조금 알 수 있었던 것은 내가 참가했던 ‘OFAJ 워크캠프’는 프랑스 참가자 4명, 독일 참가자 4명, 한국인 참가자 4명의 쿼터가 배정되어있는 프로젝트라는 점이었다. 워크캠프지에 도착해보니 프랑스 참가자 4명, 독일인 참가자 2명, 한국인 참가자 4명으로 전체 10명 3개국에서 온 친구들이 모여 있었다. 이 후 약간의 문제로 2명의 프랑스 친구가 먼저 캠프를 떠나게 되었고 8명의 캠퍼들이 함께 생활을 하였다. 결국 정말 소규모의 워크캠프가 되었는데 다국적으로 이루어진 15명 이상의 캠퍼들이 모인 캠프가 다양한 문화적 배경과 이야기로 가득차 있다면 소규모 인원의 장점은 친구들 개개인과 시간을 좀 더 보낼 수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인원이 워크캠프에서 종종 벌어지는 마음이 잘 맞는 혹은 문화 별로 비슷한 친구들과 그룹 내의 그룹이 나뉘어지는 일이 없었다.
독일에서 온 캠프리더 ‘아넷’은 열번이 넘는 워크캠프 참가 경험으로 캠퍼들의 의견을 반영하면서 균형있게 그룹을 이끌었고, 나와 함께 유일하게 남자 참가자인 유쾌한 ‘마누엘’과는 정말 많은 추억을 만들었다. 또 중국계 프랑스인 ‘루시아’는 열정적이고 적극적인 성격으로 우리가 할 수 있는 여러가지 재밌는 활동들을 끊임없이 제공하면서 마을사람들과 통역을 담당했었고, 다른 프랑스인 ‘플로렌스’는 대체적으로 조용했지만 속이 깊은 친구였다. 마지막으로 폴란드에서 공부하는 ‘하늬’, 고고학을 공부하는 ‘보람’, 캠프 기간 동안 귀여움을 독차지한 막내 ‘예슬’과 나까지 네명의 한국인이 함께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우리는 그렇게 눈에 띄는 그룹은 아니였지만 ‘모자이크’ 같은 그룹이었다고 생각한다. 개개인의 개성을 가지고 있었고 그리고 그것을 조화롭게 이루어냈던 것 같다. 한가지 아쉬운 점은 캠퍼 구성원들이 다국적이 아니였기 때문에 다양한 문화적 경험이 부부족했었던 것이었다.
워크캠프앓이
워크캠프가 끝나고 돌아온 이후 나는 줄곧 이런 상태였다. 워크캠프를 떠나게 된 이유가 어떻든간 워크캠프는 시기적절하게 나에게 필요한 것을 주었다. 그래서인지 한동안 흔히 말하는 ‘워크캠프앓이’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만나는 친구들이 이해를 하지 못해도 워크캠프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오늘 잠이 들고 다음날이면 워크캠프를 했던 유난히 하늘이 파랗던 프랑스 남부의 마을에서 깨어날 것만 같은 기분들의 연속이었다. 그 곳을 다녀온 지 두 달이 다되어가는 지금 생각해보면 추억으로 남을만한 일들이 많았던 것은 아니다. 중세시대의 길을 보수하는 아침 8시부터 오후 2시까지의 비교적 규칙적인 일과와 소풍 같은 기분이 났던 11시의 짧은 휴식 시간, 하루 일을 모두 마치고 오늘 먹을 점심과 저녁 메뉴에 대한 기대와 늦은 밤까지 이어지던 게임과 소소한 이야기들 그리고 나눠 마신 맥주 한 잔에 대한 기억은 뭔가 앞날에 대한 걱정을 잊게 해주었다. 반드시 모두가 무언가를 해야만 하고 무언가를 이뤄 내야만 한다는 강박에 눌린 현실에서의 생활에서 잠시 나를 떨어뜨려 놓아 주었고, 약간의 취기가 오른 상태에서 무너진 중세시대의 성터로 가는 산책은 항상 일상에서 받던 작은 스트레스들을 생각조차 나지 않게 해주었다. 그래서 현실로 돌아온 지금 워크캠프에 대한 그리움이 커지는 것만 같다.
워크캠프 정신
3주의 워크캠프가 시작하기 전에는 짧지 않은 시간 동안 지루하지 않게 그 시간들을 보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앞섰다. 실제로 친구들과 익숙해져 이야기를 나누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하루 하루를 세었지만 친구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시간을 ‘함께’ 보내기 시작하면서 3주의 시간 센다는 것조차 하지 않았다. ‘서로 다른 국가와 문화 서로 다른 언어 그리고 각자각자의 살아온 이야기가 다른 아이들이 모여 친구가 된다는 것 자체가 쉽지 않지 않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하지만 며칠 뒤 친구들과 익숙해진 후에는 그런 걱정이 기우에 불과했음을 알았다. 그리고 3주의 시간이 지루할 것만 같다는 생각도 당장의 오늘 하루하루가 즐거웠기 때문에 다음날을 생각하는 것 자체가 의미가 없어져버렸다. 일상이었던 산책과 맥주와 함께한 카드게임 그리고 밤늦게 까지 이어졌던 이야기들, 주말에 갔던 호수로의 소풍과 수영장, 주변마을로의 여행 그리고 오래된 성당에서 열린 클래식 음악회를 간 일. 지금은 하나하나가 다 기억나지는 않지만 사진들을 보고 있으면 ‘아 그때는 그런 기분이었지’라는 막연한 느낌만이 느껴질 뿐이다.
워크캠프 정신에 대해서 말하는 것이 뭔가 어색해 보이지만, 나에게 워크캠프는 실제보다 책으로 배운 것이 먼저였기 때문에 이것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사람들은 쉽게 요즘이 국제화 시대고 지구촌에서 지구마을 사람들이 국경의 구분 없이 모여 산다고 말하지만, 그것을 실제로 느끼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그 동안 배낭여행도 다녀오고 다른 나라의 문화에 관심을 가졌지만, 나도 막연하게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워크캠프에서 느낀 것은 그 사람이 어느 나라에서 왔던지 하얀 피부를 가지던 까만 피부를 가지던지 어떤 문화에서 살아왔는지에 상관없이 친구가 될 수 있다는 점이었다. 그렇게 생각하고 나니 세계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그냥 그 곳의 문제가 아닌 내 친구의 나라에서 일어나는 일이라는 것이 피부로 와 닿았고 조금만 열린 마음을 가지면 그 사람의 다름이 틀림이 아니라 다름으로 다가온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것이 워크캠프 정신이 아닐까? 당신의 다름을 인정하고 이해한 다음에 친구가 되는 것…
워크캠프 그 이후, 끝나지 않은 꿈
그렇게 워크캠프가 끝이 났다. 3주란 시간이 언제 어떻게 내 생활 속에 들어왔는지도 몰랐던 것 처럼 끝이 나고도 언제 어떻게 끝이 났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대신 워크캠프가 끝난 이후 심하게 나와 친구들이 함께했던 그 시간이 그리워졌다. 이번 워크캠프에서 한 가지 잘못한 점이 있다면 그런 시간들이 끝날 것이라는 것을 대비하지 않았던 것이었다. 캠퍼 친구들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그 시간들이 계속될 것만 같이 3주의 시간을 보냈고 그래서 인지 헤어지는 순간에도 눈물을 보인 친구들이 많지 않았다. 다들 내일이면 다시 볼 것만 같은 기분을 가지고 있었으니까.
그렇게 한국에서 워크캠프에 대해 생각하던 순간에 나와 같은 경험을 혼자 하기에는 너무나 아까운 것이지 않을까 생각했다. 완전히 다른 삶의 배경과 문화를 가진 사람과 친구가 되고 그리고 그 사람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된다는 것 그것이 얼마나 멋진 일인지 알아가는 것을 내가 사랑하는 하는 사람들과 나누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그런 경험을 만들기 위해 노력을 하는 사람들에게 눈을 돌렸고 그들이 하는 일에 매료되었으며 지금은 국제워크캠프 식구들과 함께 하고 있다. 내가 가진 능력은 정말 작고 미약하지만 내 안에서 나온 작은 노력 하나가 누군가에게 정말 값진 경험을 줄 수 있다면 나는 정말 행복한 사람이 될 것이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나의 워크캠프는 나의 꿈은 끝나지 않았다.
야단법석 보고서 2011년 11월 호 ‘워크캠프 그 이후, 끝나지 않은 꿈’ 를 보고서로 대체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