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후기
프랑스, 텐트에서 피어난 우정
Aurillac
참가 전 준비와 마음가짐
# 떠나기 전
1년 조금 더 남은 대학생활, 몇 번 남지 않은 방학을 어떻게 활용하면 좋을 지 생각하던 차에
얼떨결에 유럽 여행을 계획하게 되었고, 아무런 준비 없이 방학 내내 유럽에 머무르게 되는 비행기표를 구매해버렸다. 2달이라는 긴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할 지 고민하던 내게, 워크캠프를 다녀온 친구의 추천은 생각할 겨를도 없이, 바로 워크캠프에 대해 알아보고 신청하게 만들었다.
국제워크캠프기구 사이트에 들어와 무슨 캠프가 있는지 알아볼 무렵은 7월로, 이미 인기 있는 캠프는 대부분 마감되어 있던 차였다. 워캠을 포기해야 하나,하고 다른 여행계획을 짜며 매일매일 홈페이지를 들락거렸는데,,
캠프가 추가로 몇 개 더 올라왔고, 나는 이 기회를 놓칠세라 빠르게 신청서를 접수했다.
캠프의 주제나 구체적인 내용보다는 같이 여행을 가는 친구와의 일정에 맞추느라, 기간과 나라만 선택해서 신청하였다. 그렇게 해서 내가 가게 된 워크캠프는 '프랑스''environment'캠프.
장소는 프랑스에서도 시골인 Aurillac이란 곳이었다.
처음에 이 장소를 어떻게 찾아가야 하나 찾아보는데, 인터넷에도, 가이드북에도 이 지역에 관한 정보는 별로 나와있지 않아서 고민이 되었다.
결국 현장에 가서 부딪히기로 한 나!
여행 중반에 가게 된 워크캠프였기에, 나는 일단 여행계획을 짜는 것을 주로 하고, 캠프를 위해서는 영어에 대한 불안감 조금과 캠프친구들에게 줄 선물을 마련했다.
한국 기념품이 뭐가 좋을 지 고민하다가 ,<반크>라는 곳에 가입해서 한국알리기 신청을 통해 기념품으로 줄 만한 한국의 설명이 담긴 엽서,자료 등을 받았다. 이와 함께 따로 전통 문양의 책갈피도 주문해서 챙겨두었다.
# 출발
그리고 드디어 출국.
프랑스에 도착해 제일 먼저 한 일은 Aurillac으로 가는 교통편 마련!
다행히 열차편이 잘 되어 있어 바로 열차표를 구매할 수 있었다.
파리에서 4일간의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Aurillac으로 향했다.
그렇게 시작된 Aurillac에서의 2주-
돌이켜 생각해보니 2주는 짧은 시간이었던 것 같지만, 막상 당시의 나에게 2주는 굉장히 길게 느껴졌었다.
파리에서 Aurillac으로 가는 길 자체도, 프랑스에서도 시골마을이라 그런지 한참을 달려서야 도착했고(기차에서 내려서 버스로 환승(!)까지 했어야 했다.),
도착한 워크캠프 장소는 camp 지역이라… 숙소가 텐트(…!)였다.
숙소가 텐트라는 사실은 신청할 때부터 알고 있던 사실이었지만, 막상 텐트에 짐을 풀고, 여기에서 2주동안 자야한다니 사실,, 처음에는 굉장히 막막했다.
거기다 날씨까지 우중충하게 비가 오며 흐림.
그래도 사람들 만날 생각에 설레어 하며 캠프리더인 에드와를 만나 어색하게 인사를 나누고, 친구들을 기다렸다.
(다행히, 미팅장소에 도착하자 나와 같은 캠프에 신청한 한국인 여자애를 만날 수 있었다. 든든한 기분!)
그리고 한 명씩, 한 명씩 캠퍼들이 도착하기 시작했다. 국적도 실로 다양했다. 프랑스,스페인,그리고 한국.
아,,,그때의 분위기란!
서로 인사를 나누는데 어색어색열매가 마구마구 열렸다.-거기다 영어로.
상상이 가는가.
처음 만난 사람과,그것도 서로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스페인사람, 프랑스 사람, 한국인이 영어로 얘기를 나누는 상황이라니.
그렇게 우리들의 첫만남이 시작되었다.
# 2주간의 동거동락
- 사실 캠프기간 초반 나의 감정은 그다지 좋지 않았다. 날씨는 태풍이 왔다 갔다, 우중충해서 당장 시작할 수 있는 활동이 없었던 데다가(더군다나 우리의 워캠은 Environment!) 열악한 환경(텐트에서의 생활은 여느 것은 참을 수 있었지만, 저녁에 잘 때 땅에서부터 올라오는 한기는 참기 힘들었다. 여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지역은 날씨가 추웠을 뿐만 아니라 밤이 되면 너무나도 심한 추위에 잠이 깼다.)은 나의 심신을 지치게 했다. 거기에 더하여 원래 12명이었던 구성인원도 2-3명이 빠진 채 8명 정도로 진행될 것 같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 중 1-2명은 첫 날 오지도 않았다.
그래도 그나마 나에게 위안을 준 건 , 그 때까지 모였던 캠퍼들.
아직 많이 친해진 상태는 아니었지만, 몇 마디 말과 눈빛, 행동만으로도 충분히 그들이 좋은 사람들이라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우리의 캠퍼 구성은 조촐했다.
내가 워캠신청을 할 때 알아보았던 다른 캠프처럼 대여섯국가에서 모인 사람들이 아닌,
프랑스 남자 셋,스페인 여자 셋,한국인 여자 둘, 거기에 늦게 오는 모로코 boy 하나!
모로코boy라는 사람은 국적문제로 프랑스 입국에 어려움이 생겨 도착이 늦어지고 있다고 했다.
(사실 이때 모로코boy라는 말에 어떤 사람일지 엄청난 기대감을 가지고 있었다.)
프랑스와 스페인이 바로 옆에 붙어있어서 그런지 두 나라사람들이 쉽게 친해지는 듯 보였고,
나, 그리고 다른 한국아이 두명은 처음에는 어떻게 친해질지 뻘쭘해하다가 곧 대화에 참여할 수 있었다.
대화는 영어로 진행됬지만, 불행인지 다행인지 영어를 완벽하게 구사하는 사람은 캠프리더 한명 뿐이었다.
프랑스인 한명은 영어를 아예!(정말로 아예!) 하지 못했고, 두명은 어느정도, 스페인 두 명과 나를 포함한 한국은 어느 정도 회화 가능 정도.
오기 전에 영어에 대한 걱정을 많이 한 것에 비하면, 생각보다 영어실력이 다들 비슷비슷(?)해서 안심이 된 부분도 있다. (ㅋㅋㅋ)
- 첫 날에 비해서 둘째날 부터는 그래도 조금씩 친해지기 시작해서, 각자 자기 나라에서 가지고 온 놀잇거리를 꺼내었다. 어차피 태풍 때문에 밖에 나갈 수 없었기 때문에 우리들은 실내에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방법을 하나씩 찾기 시작했다. 그 중 인기 있었던 것이 작대기를 가지고 하는 놀이였다.
놀이라면서 가져온 두 개의 작대기로 막대 하나를 이리 저리 치면서 떨어뜨리지 않는 것으로, 프랑스에도 있고 스페인에도 있는 거라고 한다. 이걸 가지고 온 프랑스의 요요가 이 놀이의 챔피언.
두 막대로 중심 막대를 위로 들어올리는 건 기본이요, 자유자재로 회전까지 시킨다.
같이 놀자고 우리에게 해보라 했는데, 아무래도 나는 역부족이었다.
하지만 이 놀이를 통해서 조금씩 서로가 친해질 수 있었다.
- 서로에 대해 조금씩 친해지면서
캠프리더는 할 거리를 가지고 오기 시작했다.(날씨 때문에 활동계획을 변경했어야 할 캠프리더가 고생이 많았다.)
하루는 캠프지역 가까이에 있는 그 지역 social center(우리나라식으로 마을복지회관정도?)에 놀러 가서 컴퓨터(!)도 쓸 수 있게 해주고(컴퓨터를 이용해서 무슨 음식을 만들어 먹을지,필요한 재료는 무엇인지 검색해보았다) , 거기에 있는 ball게임도 할 수 있게 해주었다.
역시 친해지는 데는 게임이 최고! 팀을 짜서 게임을 하다 보니 다들 활기차졌다.
- 4일쯤 되었을 때, 모로코boy가 도착했고(하지만 boy는 아니었다…. 무려 초등학교 선생님) , 태풍도 물러갔다.
그렇게 드디어, 우리의 본격적인 워캠 활동이 시작되었다.
봉고차를 타고 2분정도 가니 도착한 아주 가까웠던 우리의 활동 지역.
우리들이 할 일은 산에 길을 만들어서 저 위에 있는 마을의 유산으로의 통로를 형성..? 이런 류였다.
사실 처음에는 활동의 목적을 정확히 이해하지 못했다. 이 길을 왜 내야 하는 건지에 대해.
그래도 일단 하기로 한 일이니 , 다같이 작업복으로 갈아입고 일을 시작했다.
일은 만만치 않았다. (정말로)
나무들이 우거져 있고, 나뭇잎과 쓰레기들이 쌓여 있어서, 남자들은 나무를 베고, 여자들은 땅에 있는 나뭇잎들을 모으고, 자잘한 나무를 자르며, 쓰레기를 한쪽에 모아서 치우는 작업을 하였다.
처음 일을 시작할 때는 몰랐는데, 하면 할수록 자잘한 나무를 하나하나 자르는 데 소요되는 힘과 시간이 상당했고, 나뭇잎의 양도 꽤 많아서 조금만 모아도 그걸 들고 움직이기가 힘겨웠다.
작업이 진행될수록 나뭇가지나 쓰레기의 양도 많아져서 일은 점점 배가 되었다.
생각했던 것보다 육체적으로 힘든 부분이 많아서, 지치기 시작했고, 그나마 잠깐 잠깐의 휴식이 나를 쉬게 해주었다.
모두들 열심히 작업에 참여했기 때문에 중간에 혼자 쉬거나, 딴 짓을 할 겨를은 없었다.
계속해서 움직여야 했기에, 작업이 끝나고 나면 온 몸이 녹초가 되었다.
끝나지 않을 것만 같던 작업은 그래도 하루하루 조금씩 진행되었고, 1주일정도 지났을 무렵부터는 어느정도 길의 형상이 갖추어 지기 시작했다.
작업이 모두 완성되어 깔끔하게 길이 만들어졌을 때는 모두가 그때까지 한 일들에 대한 회상에 사로잡혀 뿌듯함을 느꼈다. 2주동안 이 길을 어떻게 만들어!라고 생각했지만 결국 우리는 만들어 냈다.
-식사는 두 명씩 짝을 이루어 하루 씩 작업 대신 식사당번을 맡았다.
프랑스 요리의 라따뚜이(!!영화에서나 보던 요리를 실제로), 스페인의 가정식요리(우리나라의 감자전과 비슷했던 요리였는데 굉장히 맛있었다.), 스파게티 등등 다양한 음식이 준비되어 그 날의 식사당번이 누구냐에 따라 기대하게 되는 요리도 달라졌다.
내가 맡은 날에는 저녁에 (미리 준비해간) 불고기 소스와 고기를 절여서 모두에게 한국의 불고기를 맛보여주었다.
미리 듣고 갔던 대로 불고기의 인기는 최고! 모두들 남기지 않고, 맛있게 먹어주어 뿌듯해졌다.
그래서 한 번더 Korea day를 만들어 , 준비해갔던 카레요리도 선보였다.(역시 인기최고, 모두들 매일매일이 Korea day였으면 좋겠다고 했을정도!)
중간에 하루는 social center 사람들을 초대해 간단한 파티도 열었다.
이 때에는 우리의 캠프리더의 훌륭한 요리솜씨가 잘 발휘되었다.
또 하루는 캠퍼 한 명의 생일을 맞아 티라미스케익도 직접 만들어서 우리들만의 조촐한 생일파티도 열었다.
이 때 캠프리더가 하얀색 털모자를 깜짝 선물로 준비해주어 모두가 감동.
- 작업도 마무리되어가고, 우리들은 서로서로 너무너무 친해져 있을 무렵,
그 지역의 한 작은 신문에서 우리를 취재하러 오기도 하고, 라디오에서 인터뷰를 하러 오기도 하였다.
끝나갈 때쯤엔 그 마을 회장(?)님께서 우리를 불러 작은 다과회를 열어주기도 하였다.
- 처음 시작할 때는 텐트에 대한 불만도 이따 만큼 크게 가지고 있었지만, 생활을 하면서 텐트에 대한 불만은 차츰 줄어들었고, 우리 캠퍼들과 친해지면서 헤어짐에 대한 아쉬움만 점점 커져갔다.
결국 헤어지기 전날에는 다같이 모여서 밤늦게까지 한참을 얘기하고, 동영상도 찍으면서 우리의 마지막을 기념했다.
워크캠프를 끝내고 돌아가는 길에 느낀 허전함으로, 2주간의 워캠이 나에게 엄청나게 커다란 추억을 만들어 주었음을 실감할 수 있었다.
1년 조금 더 남은 대학생활, 몇 번 남지 않은 방학을 어떻게 활용하면 좋을 지 생각하던 차에
얼떨결에 유럽 여행을 계획하게 되었고, 아무런 준비 없이 방학 내내 유럽에 머무르게 되는 비행기표를 구매해버렸다. 2달이라는 긴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할 지 고민하던 내게, 워크캠프를 다녀온 친구의 추천은 생각할 겨를도 없이, 바로 워크캠프에 대해 알아보고 신청하게 만들었다.
국제워크캠프기구 사이트에 들어와 무슨 캠프가 있는지 알아볼 무렵은 7월로, 이미 인기 있는 캠프는 대부분 마감되어 있던 차였다. 워캠을 포기해야 하나,하고 다른 여행계획을 짜며 매일매일 홈페이지를 들락거렸는데,,
캠프가 추가로 몇 개 더 올라왔고, 나는 이 기회를 놓칠세라 빠르게 신청서를 접수했다.
캠프의 주제나 구체적인 내용보다는 같이 여행을 가는 친구와의 일정에 맞추느라, 기간과 나라만 선택해서 신청하였다. 그렇게 해서 내가 가게 된 워크캠프는 '프랑스''environment'캠프.
장소는 프랑스에서도 시골인 Aurillac이란 곳이었다.
처음에 이 장소를 어떻게 찾아가야 하나 찾아보는데, 인터넷에도, 가이드북에도 이 지역에 관한 정보는 별로 나와있지 않아서 고민이 되었다.
결국 현장에 가서 부딪히기로 한 나!
여행 중반에 가게 된 워크캠프였기에, 나는 일단 여행계획을 짜는 것을 주로 하고, 캠프를 위해서는 영어에 대한 불안감 조금과 캠프친구들에게 줄 선물을 마련했다.
한국 기념품이 뭐가 좋을 지 고민하다가 ,<반크>라는 곳에 가입해서 한국알리기 신청을 통해 기념품으로 줄 만한 한국의 설명이 담긴 엽서,자료 등을 받았다. 이와 함께 따로 전통 문양의 책갈피도 주문해서 챙겨두었다.
# 출발
그리고 드디어 출국.
프랑스에 도착해 제일 먼저 한 일은 Aurillac으로 가는 교통편 마련!
다행히 열차편이 잘 되어 있어 바로 열차표를 구매할 수 있었다.
파리에서 4일간의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Aurillac으로 향했다.
그렇게 시작된 Aurillac에서의 2주-
돌이켜 생각해보니 2주는 짧은 시간이었던 것 같지만, 막상 당시의 나에게 2주는 굉장히 길게 느껴졌었다.
파리에서 Aurillac으로 가는 길 자체도, 프랑스에서도 시골마을이라 그런지 한참을 달려서야 도착했고(기차에서 내려서 버스로 환승(!)까지 했어야 했다.),
도착한 워크캠프 장소는 camp 지역이라… 숙소가 텐트(…!)였다.
숙소가 텐트라는 사실은 신청할 때부터 알고 있던 사실이었지만, 막상 텐트에 짐을 풀고, 여기에서 2주동안 자야한다니 사실,, 처음에는 굉장히 막막했다.
거기다 날씨까지 우중충하게 비가 오며 흐림.
그래도 사람들 만날 생각에 설레어 하며 캠프리더인 에드와를 만나 어색하게 인사를 나누고, 친구들을 기다렸다.
(다행히, 미팅장소에 도착하자 나와 같은 캠프에 신청한 한국인 여자애를 만날 수 있었다. 든든한 기분!)
그리고 한 명씩, 한 명씩 캠퍼들이 도착하기 시작했다. 국적도 실로 다양했다. 프랑스,스페인,그리고 한국.
아,,,그때의 분위기란!
서로 인사를 나누는데 어색어색열매가 마구마구 열렸다.-거기다 영어로.
상상이 가는가.
처음 만난 사람과,그것도 서로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스페인사람, 프랑스 사람, 한국인이 영어로 얘기를 나누는 상황이라니.
그렇게 우리들의 첫만남이 시작되었다.
# 2주간의 동거동락
- 사실 캠프기간 초반 나의 감정은 그다지 좋지 않았다. 날씨는 태풍이 왔다 갔다, 우중충해서 당장 시작할 수 있는 활동이 없었던 데다가(더군다나 우리의 워캠은 Environment!) 열악한 환경(텐트에서의 생활은 여느 것은 참을 수 있었지만, 저녁에 잘 때 땅에서부터 올라오는 한기는 참기 힘들었다. 여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지역은 날씨가 추웠을 뿐만 아니라 밤이 되면 너무나도 심한 추위에 잠이 깼다.)은 나의 심신을 지치게 했다. 거기에 더하여 원래 12명이었던 구성인원도 2-3명이 빠진 채 8명 정도로 진행될 것 같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 중 1-2명은 첫 날 오지도 않았다.
그래도 그나마 나에게 위안을 준 건 , 그 때까지 모였던 캠퍼들.
아직 많이 친해진 상태는 아니었지만, 몇 마디 말과 눈빛, 행동만으로도 충분히 그들이 좋은 사람들이라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우리의 캠퍼 구성은 조촐했다.
내가 워캠신청을 할 때 알아보았던 다른 캠프처럼 대여섯국가에서 모인 사람들이 아닌,
프랑스 남자 셋,스페인 여자 셋,한국인 여자 둘, 거기에 늦게 오는 모로코 boy 하나!
모로코boy라는 사람은 국적문제로 프랑스 입국에 어려움이 생겨 도착이 늦어지고 있다고 했다.
(사실 이때 모로코boy라는 말에 어떤 사람일지 엄청난 기대감을 가지고 있었다.)
프랑스와 스페인이 바로 옆에 붙어있어서 그런지 두 나라사람들이 쉽게 친해지는 듯 보였고,
나, 그리고 다른 한국아이 두명은 처음에는 어떻게 친해질지 뻘쭘해하다가 곧 대화에 참여할 수 있었다.
대화는 영어로 진행됬지만, 불행인지 다행인지 영어를 완벽하게 구사하는 사람은 캠프리더 한명 뿐이었다.
프랑스인 한명은 영어를 아예!(정말로 아예!) 하지 못했고, 두명은 어느정도, 스페인 두 명과 나를 포함한 한국은 어느 정도 회화 가능 정도.
오기 전에 영어에 대한 걱정을 많이 한 것에 비하면, 생각보다 영어실력이 다들 비슷비슷(?)해서 안심이 된 부분도 있다. (ㅋㅋㅋ)
- 첫 날에 비해서 둘째날 부터는 그래도 조금씩 친해지기 시작해서, 각자 자기 나라에서 가지고 온 놀잇거리를 꺼내었다. 어차피 태풍 때문에 밖에 나갈 수 없었기 때문에 우리들은 실내에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방법을 하나씩 찾기 시작했다. 그 중 인기 있었던 것이 작대기를 가지고 하는 놀이였다.
놀이라면서 가져온 두 개의 작대기로 막대 하나를 이리 저리 치면서 떨어뜨리지 않는 것으로, 프랑스에도 있고 스페인에도 있는 거라고 한다. 이걸 가지고 온 프랑스의 요요가 이 놀이의 챔피언.
두 막대로 중심 막대를 위로 들어올리는 건 기본이요, 자유자재로 회전까지 시킨다.
같이 놀자고 우리에게 해보라 했는데, 아무래도 나는 역부족이었다.
하지만 이 놀이를 통해서 조금씩 서로가 친해질 수 있었다.
- 서로에 대해 조금씩 친해지면서
캠프리더는 할 거리를 가지고 오기 시작했다.(날씨 때문에 활동계획을 변경했어야 할 캠프리더가 고생이 많았다.)
하루는 캠프지역 가까이에 있는 그 지역 social center(우리나라식으로 마을복지회관정도?)에 놀러 가서 컴퓨터(!)도 쓸 수 있게 해주고(컴퓨터를 이용해서 무슨 음식을 만들어 먹을지,필요한 재료는 무엇인지 검색해보았다) , 거기에 있는 ball게임도 할 수 있게 해주었다.
역시 친해지는 데는 게임이 최고! 팀을 짜서 게임을 하다 보니 다들 활기차졌다.
- 4일쯤 되었을 때, 모로코boy가 도착했고(하지만 boy는 아니었다…. 무려 초등학교 선생님) , 태풍도 물러갔다.
그렇게 드디어, 우리의 본격적인 워캠 활동이 시작되었다.
봉고차를 타고 2분정도 가니 도착한 아주 가까웠던 우리의 활동 지역.
우리들이 할 일은 산에 길을 만들어서 저 위에 있는 마을의 유산으로의 통로를 형성..? 이런 류였다.
사실 처음에는 활동의 목적을 정확히 이해하지 못했다. 이 길을 왜 내야 하는 건지에 대해.
그래도 일단 하기로 한 일이니 , 다같이 작업복으로 갈아입고 일을 시작했다.
일은 만만치 않았다. (정말로)
나무들이 우거져 있고, 나뭇잎과 쓰레기들이 쌓여 있어서, 남자들은 나무를 베고, 여자들은 땅에 있는 나뭇잎들을 모으고, 자잘한 나무를 자르며, 쓰레기를 한쪽에 모아서 치우는 작업을 하였다.
처음 일을 시작할 때는 몰랐는데, 하면 할수록 자잘한 나무를 하나하나 자르는 데 소요되는 힘과 시간이 상당했고, 나뭇잎의 양도 꽤 많아서 조금만 모아도 그걸 들고 움직이기가 힘겨웠다.
작업이 진행될수록 나뭇가지나 쓰레기의 양도 많아져서 일은 점점 배가 되었다.
생각했던 것보다 육체적으로 힘든 부분이 많아서, 지치기 시작했고, 그나마 잠깐 잠깐의 휴식이 나를 쉬게 해주었다.
모두들 열심히 작업에 참여했기 때문에 중간에 혼자 쉬거나, 딴 짓을 할 겨를은 없었다.
계속해서 움직여야 했기에, 작업이 끝나고 나면 온 몸이 녹초가 되었다.
끝나지 않을 것만 같던 작업은 그래도 하루하루 조금씩 진행되었고, 1주일정도 지났을 무렵부터는 어느정도 길의 형상이 갖추어 지기 시작했다.
작업이 모두 완성되어 깔끔하게 길이 만들어졌을 때는 모두가 그때까지 한 일들에 대한 회상에 사로잡혀 뿌듯함을 느꼈다. 2주동안 이 길을 어떻게 만들어!라고 생각했지만 결국 우리는 만들어 냈다.
-식사는 두 명씩 짝을 이루어 하루 씩 작업 대신 식사당번을 맡았다.
프랑스 요리의 라따뚜이(!!영화에서나 보던 요리를 실제로), 스페인의 가정식요리(우리나라의 감자전과 비슷했던 요리였는데 굉장히 맛있었다.), 스파게티 등등 다양한 음식이 준비되어 그 날의 식사당번이 누구냐에 따라 기대하게 되는 요리도 달라졌다.
내가 맡은 날에는 저녁에 (미리 준비해간) 불고기 소스와 고기를 절여서 모두에게 한국의 불고기를 맛보여주었다.
미리 듣고 갔던 대로 불고기의 인기는 최고! 모두들 남기지 않고, 맛있게 먹어주어 뿌듯해졌다.
그래서 한 번더 Korea day를 만들어 , 준비해갔던 카레요리도 선보였다.(역시 인기최고, 모두들 매일매일이 Korea day였으면 좋겠다고 했을정도!)
중간에 하루는 social center 사람들을 초대해 간단한 파티도 열었다.
이 때에는 우리의 캠프리더의 훌륭한 요리솜씨가 잘 발휘되었다.
또 하루는 캠퍼 한 명의 생일을 맞아 티라미스케익도 직접 만들어서 우리들만의 조촐한 생일파티도 열었다.
이 때 캠프리더가 하얀색 털모자를 깜짝 선물로 준비해주어 모두가 감동.
- 작업도 마무리되어가고, 우리들은 서로서로 너무너무 친해져 있을 무렵,
그 지역의 한 작은 신문에서 우리를 취재하러 오기도 하고, 라디오에서 인터뷰를 하러 오기도 하였다.
끝나갈 때쯤엔 그 마을 회장(?)님께서 우리를 불러 작은 다과회를 열어주기도 하였다.
- 처음 시작할 때는 텐트에 대한 불만도 이따 만큼 크게 가지고 있었지만, 생활을 하면서 텐트에 대한 불만은 차츰 줄어들었고, 우리 캠퍼들과 친해지면서 헤어짐에 대한 아쉬움만 점점 커져갔다.
결국 헤어지기 전날에는 다같이 모여서 밤늦게까지 한참을 얘기하고, 동영상도 찍으면서 우리의 마지막을 기념했다.
워크캠프를 끝내고 돌아가는 길에 느낀 허전함으로, 2주간의 워캠이 나에게 엄청나게 커다란 추억을 만들어 주었음을 실감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