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후기
코르시카, 충동적인 선택이 준 선물
Iles Lavezzi - Corsica
참가 전 준비와 마음가짐
코르시카에 가겠다고 결심한 것은 순전히 충동적이었다. 참여하고 싶었던 워크캠프가 너무도 많았다. 일정과 거리 등을 생각하며 몇 달을 고민했을 거다. 그러던 중 알게 된 코르시카에서의 워크캠프. 검색해서 나온 단 한 장의 너무도 아름다운 자연 경관의 사진만으로 바다를 좋아하는 나는 돌아보지도 않고 참가를 결정하게 되었다. 이름조차 생소한 그 곳에 어떻게 나 혼자 가게 될 지 걱정하는 것은 나중의 일이었다. 참가 확정을 받고 나서야 자세한 정보를 위해 검색을 해 보았지만 정보가 부족했다. 나폴레옹의 고향, 유럽의 3대 섬 중의 하나라는 것, 그리고 다듬어 지지 않은 자연. 이 것만 알고서 나는 프랑스 행 비행기를 탔다.
미팅포인트까지 가기는 조금 까다로운 편이라고도 할 수 있다. 프랑스의 남단에 있는 섬 코르시카, 그 섬에서도 최 남단에 있는 보니파시오가 미팅포인트였으니 말이다. 프랑스까지 경유를 해 약 20시간 비행, 다시 프랑스 국내선을 타기 위해 오를리 공항으로 버스로 이동하는 시간 약 1시간, 피가리까지 다시 2시간 비행, 보니파시오까지 차를 타고 30분, 여기서 배를 타고 한 2-30분을 더 가면 캠프장소인 라베찌 섬에 도착한다. 실제로는 한국에서 출발한지 거의 이틀에 걸쳐서야 비로소 라베찌에 도착할 수 있었다. 코르시카는 교통편이 용이한 편은 아닌 듯 했다. 공항에서 보니파시오 항구까지 셔틀버스는 하루에 딱 두 번. 하지만 그마저도 거의 다니지 않고 택시도 잘 없는 듯 했다. 프랑스까지 가는 도중 핸드폰이 꺼지고 메일을 확인하지 못해 연락이 되지 않는 상태였는데 너무 감사하게도 현지주민인 조엘과 쟝 루크가 공항까지 픽업을 나와주고, 나를 금방 알아봐주어서 가는데 큰 어려움은 없었다. 나는 다른 캠퍼들 보다 조금 늦게 도착했는데 배 정착지에 몇몇 캠퍼들이 나와있었다. 라베찌는 바위와 돌로 이루어진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한 섬이었다. 그래서 20키로가 넘는 내 트렁크를 다른 남자 캠퍼들이 돌아가며 들고 갔다. 배가 정박한 항구에서부터 숙소인 등대까지는 거리가 조금 있는 편인데 울퉁불퉁한 돌길을 트렁크까지 머리위로 들고 가게 한 것에 대해 매우 미안했다. 만약 이 곳 라베찌의 워크캠프에 참여할 마음이 있다면 당신께는 배낭을 메고 갈 것을 추천한다.
일과는 해도 채 뜨기 전인 여섯 시에 시작된다. 간단하게 밥을 먹고 채비를 해서 일터까지 걸어가서 일이 시작된다. 이렇게 일찍 일과가 시작되는 이유는 지중해의 작열하는 태양을 피하기 위해서였다. 일은 어떻게 보면 쉽다고 할 수 있고, 또 어떻게 보면 어렵다고도 할 수 있다. 바위와 돌은 매우 무겁고, 그것을 옮기는 것 보다 어려운 일은 섬세한 의사소통이 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아무래도 영어로 한 번 변환해서 말 하는 것과 불어로 얘기하는 데에는 차이가 있어서 세프가 원하는 것이 한 번에 전달 되지 않을 때가 있어서 답답했다. 남자들처럼 마냥 힘 쓰는 일을 하기에는 난 힘이 부족했고, 나를 제외하고 처음에 유일한 여자였던 아가트는 프랑스인인데다가 건축을 전공하고 있어서 나와는 다를 수 밖에 없었다. 프랑스 사람들은 ‘마이 페이스’적인 성향이 강한 것 같았다. 일하면서 노래하고, 농담하고, 장난치고, 쉬고 싶을 때 쉬고, 담배피고 싶을 때 담배피고. 그래서 인지 힘든 일도 재미있고 즐겁게 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처음에는 나도 한국인 특유의 성실함으로 쉬라고 해도, 물을 마시라고 해도 괜찮다고만 말하고 열심히 일만 했는데 시간이 지남에 따라 육체적으로 너무 힘들어서 그늘에 가서 물도 마시고 다리도 두들기고 그러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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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와 문화의 차이
앞서 말했듯 일 할 때의 성향도 그렇고 문화가 다름에서 오는 여러 가지 차이점들이 있었다. 프랑스 사람들은 식수를 나눠 마시지 않는다. 일인당 하나씩 개인 물병을 사용했는데 각자에게 어떠한 질병이 있고, 또 전염될지 모르기 때문이라고 했다. 또, 수돗물을 매우 더럽다고 생각해 (석회가 많기 때문에) 설거지 후 자연건조 시키지 않고 헝겊으로 식기를 일일이 다 닦았다. 식사 시에는 먼저 식사를 끝냈더라도 일어나지 않고 모두가 식사를 끝 마칠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예의였다. 식사 시간은 대체로 느긋하고 긴 편이었는데 대다수의 사람들이 불어를 사용하며 담소를 나누었기 때문에 음식을 천천히 먹지 않으면 심심해진다.
캠프에 참여하고, 또 유럽을 여행하면서 가장 많이 느낀 것은 아직 우리나라가 세상에 잘 알려지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식사 메뉴 중에 한 번은 파스타가 나왔는데, 프랑스 현지인 중 한 명이 ‘너네 나라에도 이런 게 있니?’라고 물었다. 내가 있다고 대답하니 ‘이것만큼 맛있지는 않지?’하고 물었다. 또 멕시코 친구는 내게 ‘너희 나라도 콜라를 마시니?’하고 물었고 우크라이나 아이는 ‘한국사람들은 개고기를 먹지 않니?’하고 물었다. 그들은 다들 삼성의 전자기기를 쓰고 있으면서 그 것이 우리나라의 브랜드라는 것도 모르고 있었다. 한국의 브랜드 파워는 삼성의 브랜드 파워보다 낮다고 오기 전 누군가 내게 했던 말이 생각나면서 조금 씁쓸했다.
캠퍼 중 우크라이나 아이와 작은 트러블이 있었다. 샤워실에는 잠금장치가 없었는데 내가 샤워하는 도중에 그 아이가 문을 열어젖힌 것이다. 그 애는 아무 것도 못 봤다는 말로 그냥 문을 닫았고,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 넘어가려고 했다. 나는 노크를 하지 않은 것에 대해 사과를 받고 싶었지만 그 애는 남자들끼리는 씻을 때 얘기하고 떠들면서 씻는다며, 아무런 소리도 나지 않아서 문을 연 것이라고 했다. 샤워실은 개인 공간이 아니라는 말과 함께. 전라의 몸을 친하지도 않은 남자에게 보여주고 기분이 좋을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그저 사과 한 마디였으면 끝났을 일은 무의미한 언쟁이 되었고, 이 일로 내 기분은 바닥을 치게 되었다. 캠프 도중에는 매우 예민해져 있던 상태여서 이를 문화의 차이로 받아들일 수 없었다. 만약 그 아이가 사과를 했다면 그냥 웃고 넘어갔을 일이 결국 나한테는 속상한 기억으로 남게 되었다.
캠프를 참여하면서 아쉬웠던 점 몇 가지를 들자면 첫째로는 불어를 못했다는 것이다. 영어를 못하는 프랑스 현지인들이 함께 참여하는 캠프인 만큼 불어를 할 수 있다면 당연히 그들과 더 친밀하게 교감을 나누고 생활 할 수 있을 것이다. 두 번째는 성비가 맞지 않았다는 점이다. 나를 제외하고는 한 명의 여자 캠퍼가 있었는데, 프랑스인 그 아이는 남자친구와 함께 참가해서, 나는 2주 정도의 시간을 숙소에서 혼자 방을 쓰게 되었다. 여럿이서 복닥거리는 분위기를 생각하고 왔는데, 상상과는 다소 차이가 있었다. 그리고 앞에도 말했던 명확한 캠프리더가 없었다는 점. 물론 조엘이 너무 자상하게 현지주민들과 캠퍼들 모두를 챙기며 수고하셨지만, 보통 캠프에 참가하는 캠퍼들과 연령대가 비슷한 현지인 워크캠프 리더가 있다면 캠퍼들끼리의 분위기를 조성하는 데 좀 더 도움이 되었을 것 같다. 물론 이는 이 워크캠프가 코르시카에서 개최하는 첫 워크캠프였기 때문에 발생할 수 있는 아주 소소한 아쉬운 점이다. 이 들 외에는 다양한 경험과 혜택을 많이 받았던 것 같다. 요트를 타고 근처 섬에 가기도 했고, 주말에는 코르시카의 아름다운 곳들로 비용 없이 여행을 가기도 했다. 캠프 기간 동안 환경보호 단체나 신문 등의 매체에서 취재를 하고 찾아오는 일도 잦아서 지역사회의 관심을 많이 받고 있다고 느꼈다.
라베찌는 무인도다. 상점도, 전기도, 인터넷도 없는 곳. 하지만 라베찌에는 너무나 아름다운 자연이 있다. 고운 모래와 투명한 푸른 빛을 내는 바다에 들어가면 얕은 물인데도 내 바로 옆으로 팔뚝 반 만한 물고기들이 헤엄을 친다. 오후 6시. 라베찌에서 보니파시오 항구로 가는 마지막 배가 관광객들을 다 태우고 떠나면 섬에는 어둠과 고요가 내린다. 이렇게 해가 지고 나면 세상은 온통 어둡고 빛을 내는 것은 우리가 지내고 있는 등대의 불 빛뿐이다. 달 그림자라는 게 무슨 말인지 알게 되었다. 보름이 뜨는 날에는 달이 뜬 바로 위의 바다에만 빛이 난다. 고개를 젖히면 언제든 머리위로 금방이라도 쏟아져버릴 듯 한 많은 별들이 있다. 나는 그렇게 많은 별들을 본 적이 없었다. 첫 날 야외에서 저녁식사를 하다 그 많은 별들을 보고 감탄사를 내 뱉으며 눈을 뗄 수 없었던 내 모습을 보고 현지 주민들은 의아해했다. 하늘에 별이 있는 게 그들에겐 별 일 아닌 당연한 일일 테니까. 일이 끝나고 난 후 거대한 바위에 앉아서 아무 것도 없는 망망대해를 그저 바라보는 일이 내게 큰 위안이 되었다. 하릴없이 바다를 보다가 지나가는 배의 사람들이 손을 흔들면 내킬 땐 나도 손을 흔들어 화답해주기도 하고, 내키지 않을 땐 그냥 쳐다보고만 있기도 했다. 한국에서의 나는 얼굴이 그을리는 게 싫어서 창가에도 앉지 않고 형광등 불빛도 신경 쓰여 했는데, 이 곳에 와서는 하루 만에 따가울 정도로 새카맣게 홀랑 타버려서 그 이후로는 피부 생각 하지 않고 그저 따뜻한 햇볕을 쬐고, 바위에 누워 낮잠을 청하기도 했다. 나는 워크캠프에 참여하면서 아름다운 섬의 자연과, 아름다운 기억을 얻었다. 또 비슷한 전공의 사람들과 좁은 세상에서 살아가던 내게 넓은 시야를 가지게 해주었다. 좋은걸 나누고 싶은 소중한 사람과 다시 꼭 코르시카를 찾고 싶고, 또 기회가 된다면 다시 워크캠프에 참여하고 싶다.
미팅포인트까지 가기는 조금 까다로운 편이라고도 할 수 있다. 프랑스의 남단에 있는 섬 코르시카, 그 섬에서도 최 남단에 있는 보니파시오가 미팅포인트였으니 말이다. 프랑스까지 경유를 해 약 20시간 비행, 다시 프랑스 국내선을 타기 위해 오를리 공항으로 버스로 이동하는 시간 약 1시간, 피가리까지 다시 2시간 비행, 보니파시오까지 차를 타고 30분, 여기서 배를 타고 한 2-30분을 더 가면 캠프장소인 라베찌 섬에 도착한다. 실제로는 한국에서 출발한지 거의 이틀에 걸쳐서야 비로소 라베찌에 도착할 수 있었다. 코르시카는 교통편이 용이한 편은 아닌 듯 했다. 공항에서 보니파시오 항구까지 셔틀버스는 하루에 딱 두 번. 하지만 그마저도 거의 다니지 않고 택시도 잘 없는 듯 했다. 프랑스까지 가는 도중 핸드폰이 꺼지고 메일을 확인하지 못해 연락이 되지 않는 상태였는데 너무 감사하게도 현지주민인 조엘과 쟝 루크가 공항까지 픽업을 나와주고, 나를 금방 알아봐주어서 가는데 큰 어려움은 없었다. 나는 다른 캠퍼들 보다 조금 늦게 도착했는데 배 정착지에 몇몇 캠퍼들이 나와있었다. 라베찌는 바위와 돌로 이루어진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한 섬이었다. 그래서 20키로가 넘는 내 트렁크를 다른 남자 캠퍼들이 돌아가며 들고 갔다. 배가 정박한 항구에서부터 숙소인 등대까지는 거리가 조금 있는 편인데 울퉁불퉁한 돌길을 트렁크까지 머리위로 들고 가게 한 것에 대해 매우 미안했다. 만약 이 곳 라베찌의 워크캠프에 참여할 마음이 있다면 당신께는 배낭을 메고 갈 것을 추천한다.
일과는 해도 채 뜨기 전인 여섯 시에 시작된다. 간단하게 밥을 먹고 채비를 해서 일터까지 걸어가서 일이 시작된다. 이렇게 일찍 일과가 시작되는 이유는 지중해의 작열하는 태양을 피하기 위해서였다. 일은 어떻게 보면 쉽다고 할 수 있고, 또 어떻게 보면 어렵다고도 할 수 있다. 바위와 돌은 매우 무겁고, 그것을 옮기는 것 보다 어려운 일은 섬세한 의사소통이 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아무래도 영어로 한 번 변환해서 말 하는 것과 불어로 얘기하는 데에는 차이가 있어서 세프가 원하는 것이 한 번에 전달 되지 않을 때가 있어서 답답했다. 남자들처럼 마냥 힘 쓰는 일을 하기에는 난 힘이 부족했고, 나를 제외하고 처음에 유일한 여자였던 아가트는 프랑스인인데다가 건축을 전공하고 있어서 나와는 다를 수 밖에 없었다. 프랑스 사람들은 ‘마이 페이스’적인 성향이 강한 것 같았다. 일하면서 노래하고, 농담하고, 장난치고, 쉬고 싶을 때 쉬고, 담배피고 싶을 때 담배피고. 그래서 인지 힘든 일도 재미있고 즐겁게 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처음에는 나도 한국인 특유의 성실함으로 쉬라고 해도, 물을 마시라고 해도 괜찮다고만 말하고 열심히 일만 했는데 시간이 지남에 따라 육체적으로 너무 힘들어서 그늘에 가서 물도 마시고 다리도 두들기고 그러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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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와 문화의 차이
앞서 말했듯 일 할 때의 성향도 그렇고 문화가 다름에서 오는 여러 가지 차이점들이 있었다. 프랑스 사람들은 식수를 나눠 마시지 않는다. 일인당 하나씩 개인 물병을 사용했는데 각자에게 어떠한 질병이 있고, 또 전염될지 모르기 때문이라고 했다. 또, 수돗물을 매우 더럽다고 생각해 (석회가 많기 때문에) 설거지 후 자연건조 시키지 않고 헝겊으로 식기를 일일이 다 닦았다. 식사 시에는 먼저 식사를 끝냈더라도 일어나지 않고 모두가 식사를 끝 마칠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예의였다. 식사 시간은 대체로 느긋하고 긴 편이었는데 대다수의 사람들이 불어를 사용하며 담소를 나누었기 때문에 음식을 천천히 먹지 않으면 심심해진다.
캠프에 참여하고, 또 유럽을 여행하면서 가장 많이 느낀 것은 아직 우리나라가 세상에 잘 알려지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식사 메뉴 중에 한 번은 파스타가 나왔는데, 프랑스 현지인 중 한 명이 ‘너네 나라에도 이런 게 있니?’라고 물었다. 내가 있다고 대답하니 ‘이것만큼 맛있지는 않지?’하고 물었다. 또 멕시코 친구는 내게 ‘너희 나라도 콜라를 마시니?’하고 물었고 우크라이나 아이는 ‘한국사람들은 개고기를 먹지 않니?’하고 물었다. 그들은 다들 삼성의 전자기기를 쓰고 있으면서 그 것이 우리나라의 브랜드라는 것도 모르고 있었다. 한국의 브랜드 파워는 삼성의 브랜드 파워보다 낮다고 오기 전 누군가 내게 했던 말이 생각나면서 조금 씁쓸했다.
캠퍼 중 우크라이나 아이와 작은 트러블이 있었다. 샤워실에는 잠금장치가 없었는데 내가 샤워하는 도중에 그 아이가 문을 열어젖힌 것이다. 그 애는 아무 것도 못 봤다는 말로 그냥 문을 닫았고,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 넘어가려고 했다. 나는 노크를 하지 않은 것에 대해 사과를 받고 싶었지만 그 애는 남자들끼리는 씻을 때 얘기하고 떠들면서 씻는다며, 아무런 소리도 나지 않아서 문을 연 것이라고 했다. 샤워실은 개인 공간이 아니라는 말과 함께. 전라의 몸을 친하지도 않은 남자에게 보여주고 기분이 좋을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그저 사과 한 마디였으면 끝났을 일은 무의미한 언쟁이 되었고, 이 일로 내 기분은 바닥을 치게 되었다. 캠프 도중에는 매우 예민해져 있던 상태여서 이를 문화의 차이로 받아들일 수 없었다. 만약 그 아이가 사과를 했다면 그냥 웃고 넘어갔을 일이 결국 나한테는 속상한 기억으로 남게 되었다.
캠프를 참여하면서 아쉬웠던 점 몇 가지를 들자면 첫째로는 불어를 못했다는 것이다. 영어를 못하는 프랑스 현지인들이 함께 참여하는 캠프인 만큼 불어를 할 수 있다면 당연히 그들과 더 친밀하게 교감을 나누고 생활 할 수 있을 것이다. 두 번째는 성비가 맞지 않았다는 점이다. 나를 제외하고는 한 명의 여자 캠퍼가 있었는데, 프랑스인 그 아이는 남자친구와 함께 참가해서, 나는 2주 정도의 시간을 숙소에서 혼자 방을 쓰게 되었다. 여럿이서 복닥거리는 분위기를 생각하고 왔는데, 상상과는 다소 차이가 있었다. 그리고 앞에도 말했던 명확한 캠프리더가 없었다는 점. 물론 조엘이 너무 자상하게 현지주민들과 캠퍼들 모두를 챙기며 수고하셨지만, 보통 캠프에 참가하는 캠퍼들과 연령대가 비슷한 현지인 워크캠프 리더가 있다면 캠퍼들끼리의 분위기를 조성하는 데 좀 더 도움이 되었을 것 같다. 물론 이는 이 워크캠프가 코르시카에서 개최하는 첫 워크캠프였기 때문에 발생할 수 있는 아주 소소한 아쉬운 점이다. 이 들 외에는 다양한 경험과 혜택을 많이 받았던 것 같다. 요트를 타고 근처 섬에 가기도 했고, 주말에는 코르시카의 아름다운 곳들로 비용 없이 여행을 가기도 했다. 캠프 기간 동안 환경보호 단체나 신문 등의 매체에서 취재를 하고 찾아오는 일도 잦아서 지역사회의 관심을 많이 받고 있다고 느꼈다.
라베찌는 무인도다. 상점도, 전기도, 인터넷도 없는 곳. 하지만 라베찌에는 너무나 아름다운 자연이 있다. 고운 모래와 투명한 푸른 빛을 내는 바다에 들어가면 얕은 물인데도 내 바로 옆으로 팔뚝 반 만한 물고기들이 헤엄을 친다. 오후 6시. 라베찌에서 보니파시오 항구로 가는 마지막 배가 관광객들을 다 태우고 떠나면 섬에는 어둠과 고요가 내린다. 이렇게 해가 지고 나면 세상은 온통 어둡고 빛을 내는 것은 우리가 지내고 있는 등대의 불 빛뿐이다. 달 그림자라는 게 무슨 말인지 알게 되었다. 보름이 뜨는 날에는 달이 뜬 바로 위의 바다에만 빛이 난다. 고개를 젖히면 언제든 머리위로 금방이라도 쏟아져버릴 듯 한 많은 별들이 있다. 나는 그렇게 많은 별들을 본 적이 없었다. 첫 날 야외에서 저녁식사를 하다 그 많은 별들을 보고 감탄사를 내 뱉으며 눈을 뗄 수 없었던 내 모습을 보고 현지 주민들은 의아해했다. 하늘에 별이 있는 게 그들에겐 별 일 아닌 당연한 일일 테니까. 일이 끝나고 난 후 거대한 바위에 앉아서 아무 것도 없는 망망대해를 그저 바라보는 일이 내게 큰 위안이 되었다. 하릴없이 바다를 보다가 지나가는 배의 사람들이 손을 흔들면 내킬 땐 나도 손을 흔들어 화답해주기도 하고, 내키지 않을 땐 그냥 쳐다보고만 있기도 했다. 한국에서의 나는 얼굴이 그을리는 게 싫어서 창가에도 앉지 않고 형광등 불빛도 신경 쓰여 했는데, 이 곳에 와서는 하루 만에 따가울 정도로 새카맣게 홀랑 타버려서 그 이후로는 피부 생각 하지 않고 그저 따뜻한 햇볕을 쬐고, 바위에 누워 낮잠을 청하기도 했다. 나는 워크캠프에 참여하면서 아름다운 섬의 자연과, 아름다운 기억을 얻었다. 또 비슷한 전공의 사람들과 좁은 세상에서 살아가던 내게 넓은 시야를 가지게 해주었다. 좋은걸 나누고 싶은 소중한 사람과 다시 꼭 코르시카를 찾고 싶고, 또 기회가 된다면 다시 워크캠프에 참여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