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후기
베트남, 설렘 가득한 첫 워크캠프
International Volunteer Day
참가 전 준비와 마음가짐
워크캠프 가기 바로 전 어학연수를 하고 있던 터라 한국 돌아가기 전 딱 맞는 워크캠프가 개최가 될지 안 될지 워크캠프를 하기 몇 달 전부터 조마조마해하며 꾸준히 워크캠프 발표를 기다리고 있었다. 마침 딱 시간이 맞는 베트남 워크캠프 개최에 가기로 마음을 먹고, 정성들여 자기소개서를 쓰고 다니고 있는 학원선생님께 맞춤법검사까지 받았다. 그렇게 마음을 졸인 2주 뒤.. 워크캠프로부터 연락이 왔고 난 합격통보 소식에 날듯이 기뻤다. 친구들에게 이 기쁜 소식을 알리고, 다국적 학생들로 이루어진 학원에 다니고 있던 터라 베트남에서 온 학생이 있는 지부터 찾았다. 베트남어를 조금이라도 배워두려고 ^^
어학연수 중 인턴십으로 방과 후 활동에서 일했던 터라 워크캠프 때 유용하게 쓰일 게 뭐가 있을까 하면서 인턴십 중 여러 가지 도움 될 만한 자료들을 기록해두기도 하고 어떻게 아이들을 가르칠 지 혼자 상상하며 하루를 어떻게 보냈는지도 모른 채 그렇게 시간은 휘리릭 지나갔다. 미리 여러 사이트 검색을 통해서 베트남사람들이 좋아하는 한국 음식까지 검색 완료!! 한국에 발을 들여놓자마자 마트로 가서 불고기 소스와 당면까지 그리고 고추장까지 만반의 준비를 마쳤다. 드디어 하루 전날 밤에 베트남에 입성! 하노이 공항에 도착하여 현지봉사활동 기관이 봉사자들의 편의를 위해 미리 예약해 준 택시를 타고 사무실에 도착하였다. 택시기사와 안녕하세요, 감사합니다라는 말밖에 안 통하였지만, 기사님은 친절히 말도 건네주시고 안전하게 사무실까지 바래다주셨다. 밖은 어둑어둑하여 베트남의 모습을 잘 볼 수는 없었지만, 내일 아침 맞이할 하노이의 모습을 기대하며 두근반 세근반 떨리는 마음을 가라앉히며 잠을 청했다.
흥이 많은 베트남 사람들.
봉사활동을 가서 처음으로 맡은 임무는 Volunteer Festival에 쓰일 부스를 꾸미는 작업이었다. 베트남 청소년들이나 대학생들에게 봉사활동 참가를 격려하기 위해 매년 이 축제가 열리고 있고, 그 동안 봉사활동 단체가 어떤 업적을 했는지 보여주는 날이기도 했다. 부스 장식을 위해 축제가 열리는 한 공원으로 발걸음을 향하는 도중, 우리는 굉장히 놀라운 문화를 하나 발견했으니… 그것은 바로 남녀노소 따질 것 없이 많은 사람들이 공원에서 삼삼오오 모여 춤을 추고 있었던 것! 지나가는 사람들을 아랑곳 하나 없이 신경 쓰지 않고 자기들의 댄스를 즐기고 있는 베트남 사람들이었다. 춤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축제 당일에도 중간 중간 아는 노래가 나오면 서넛 이서 춤을 추다가 어느 새 큰 무리가 되어 춤을 즐기고 있었다. 옆에 있던 프랑스 친구는 살며시 나에게로 다가와 베트남 사람들은 참 흥이 많은 것 같다며 넌지시 웃어 보였다.
다음 날은 하노이에서 가장 빈곤한 지역과 자폐증 아이들을 보육하고 있는 몇몇 아동보호센터를 방문하면서 현지 상황도 알아보고 어떤 도움이 필요한지 답사를 하였다. 누군가 나에게 이번 봉사활동 중에 가장 인상 깊었던 순간을 묻는다면 아무런 주저 없이 이 순간을 꼽고 싶다. 아래가 다 내려다보여서 걸을 때마다 오금이 저리는 롱비엔 다리를 지나, 바나나 나무로 우거진 재배지역을 한참 걸어 도착한 그 곳. 바로 빈민촌이었다. 물가에 임시로 거처를 세워 그곳에서 생활하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은 처참했다. 부력이 될 만한 큰 드럼통을 밑에 받치고 나무로 덧대어 만든 그 집들은 비가 오면 떠내려갈 듯했고, 태풍이라도 오면 다 무너질 듯 했다. 육지와 집까지의 길은 두껍지 않고 그렇다고 얇지도 않은, 세게 밟으면 부서질 것 같은 널판대를 대어 길을 이어놨었다. 생계를 위해 사육하는 듯한 닭 열 댓 마리와 강아지들이 보이고, 그 외에 눈에 띄는 것은 빨랫감 정도였다. 더욱 나의 가슴을 아프게 한 것은 식수와 세안, 세탁, 용변 모두 그 강에서 길어다 쓴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최근에 자원봉사자들의 도움으로 깨끗한 물이 나오는 식수대는 설치한 상황이었다. 점점 더 봉사자들의 도움의 손길이 뻗어지고 있는 듯 하였다. 그 중 한 세대를 방문하여 얘기도 나누고 집안 이곳저곳을 살펴보았는데, 눈물이 덜컥 날 정도였다. 집에 목재로 이루어져있어 화재의 위험 때문에 난방 기구를 두지 못해 두꺼운 이불을 덮고 앉아계셨다. 그래서 마음만은 인자하셔서 차 한 잔을 들라며 6명 모두에게 녹차종류의 차를 내주셨다. 이렇게 열악한 환경에서 생활하시는 분들이 아직도 있다니, 정말 마음 한 구석이 찡해지면서 내가 정말 도움이 될 만한 일을 하고 싶다는 마음이 솟구쳤다. 도움이 될 만한 일이라면 뭐든지 발 벗고 나서리.. 아마 이순간이 봉사자로서 가장 열의를 불태웠던 순간이 아니었을까 싶다. 열의를 다지는 동시에 내가 가지고 있는 것에 대한 고마움을 뒤돌아보게 되었다.
이날 대중교통이용과 발품을 팔며 이곳저곳을 돌아다닌 덕분에 베트남문화를 제대로 알 수 있었는데, 거리에 의자만 놓여있는 간이식당이 일상적이라는 것과 이발소도 거리 곳곳에 있고, 신호등이라는 체계 없이도 그 많은 오토바이와 차량들이 곧잘 다니고, 버스 승차, 하차 시에는 행동을 재빠르게 해야 된다는 것이었다. 실제로 겪은 것이긴 한데 버스에서 하차순서를 양보하다가 내리지도 못한 나를 두고 그냥 버스가 출발해버리는 일이 있었다. 그 일 이후부터는 항상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버스 탈때는 행동을 민첩하게 하는 걸 잊지 않았다. 매일 6시쯤 하루일과를 마친 후에는 현지인들과 동행하여 하노이의 맛집으로 탐방 가서 지역 특식도 맛보고 현지인들만 알 수 있는 노상카페에 가는 등 많은 베트남의 생활을 즐길 수 있었다. 그리고 버스를 타고 지나다니다 보면 길거리에서 개고기를 파는 것을 종종 보았는데, 현지기관의 코디네이터에게 저것이 개고기가 맞느냐고 물었더니, 그렇다면서 개고기가 나쁜 기운을 가져간다고 믿기 때문에 본인의 경우에는 한 달에 한 번씩 꼭 개고기를 먹는다고 알려주었다.
봉사활동 마지막 날 봉사자 전원이 봉사활동에 관한 워크숍을 가지는 시간이 있었는데, 그 시간이 정말로 유익했다. 길지는 않았지만 한 시간 가량 Volunteer 에 대해서 정의도 내려 보고 나라마다 봉사활동은 어떤 차이점이 있는지 참가율을 얼마 정도인지 봉사활동의 내용은 어떤 것으로 이루어져있는지에 대해서 의견을 공유하였다. 그 중에서도 인상 깊었던 것은 코디네이터의 말이었는데, “이번 봉사를 진행하면서 가장 크게 중점을 둔 두 가지 목표가 있다면, 하나는 우리가 이번 봉사활동을 통해 얼마나 사회에 기여를 할 수 있을 것인가? 와 나머지 한 가지는 봉사자들이 무엇을 배우고 갈 것인가?” 이었다. 이상하게도 그 말이 내 가슴에 사무치게 들어왔고, 지나간 워크캠프를 또 한 번 되돌아보는 시간이 되었다. 수료증 증정식과 워크캠프를 끝마친 서로의 소감과 발표 후 눈물과 아쉬움으로 범벅된 워크숍을 뒤로하고 준비해뒀던 저녁을 먹기 위해 장소를 이동했다. 베트남 대표음식인 스프링 롤을 재료구입부터 만드는 과정까지 모두 함께 참여하여 근사한 저녁을 가질 수 있었다.
길을 걸어가면서 봉사자들과 함께 나누었던 대화, 국적은 다르지만 함께 생각하는 마음과 고민은 다 똑같았던 우리들. 봉사자의 생일도 다 함께 축하하고, 때 아닌 이상형 월드컵도 하고, 매일 저녁 기타반주에 맞추어 노래도 부르고, 장기 해외봉사활동을 다녀온 친구의 멋진 경험담도 듣고, 빼놓을 수 없는 연애사도 듣고… 잊을 수 없는 추억들이 너무나도 많다. 매번 봉사활동 후에 느끼는 일이지만 봉사활동에 가서 배우고 오는 것이 더 많은 나. 소중한 나의 첫 번째 국제워크캠프를 가슴에 새기며 ‘다음번에는 더 잘 하고 와야지’ 라는 마음을 다진다. 누군가가 내린 봉사의 정의처럼 대가를 바라지 않고 자신의 시간과 재능, 에너지를 제공하는 일. 더 많은 사람들이 아름다운 나눔을 통해서 세상을 웃음으로 더욱 밝혀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어학연수 중 인턴십으로 방과 후 활동에서 일했던 터라 워크캠프 때 유용하게 쓰일 게 뭐가 있을까 하면서 인턴십 중 여러 가지 도움 될 만한 자료들을 기록해두기도 하고 어떻게 아이들을 가르칠 지 혼자 상상하며 하루를 어떻게 보냈는지도 모른 채 그렇게 시간은 휘리릭 지나갔다. 미리 여러 사이트 검색을 통해서 베트남사람들이 좋아하는 한국 음식까지 검색 완료!! 한국에 발을 들여놓자마자 마트로 가서 불고기 소스와 당면까지 그리고 고추장까지 만반의 준비를 마쳤다. 드디어 하루 전날 밤에 베트남에 입성! 하노이 공항에 도착하여 현지봉사활동 기관이 봉사자들의 편의를 위해 미리 예약해 준 택시를 타고 사무실에 도착하였다. 택시기사와 안녕하세요, 감사합니다라는 말밖에 안 통하였지만, 기사님은 친절히 말도 건네주시고 안전하게 사무실까지 바래다주셨다. 밖은 어둑어둑하여 베트남의 모습을 잘 볼 수는 없었지만, 내일 아침 맞이할 하노이의 모습을 기대하며 두근반 세근반 떨리는 마음을 가라앉히며 잠을 청했다.
흥이 많은 베트남 사람들.
봉사활동을 가서 처음으로 맡은 임무는 Volunteer Festival에 쓰일 부스를 꾸미는 작업이었다. 베트남 청소년들이나 대학생들에게 봉사활동 참가를 격려하기 위해 매년 이 축제가 열리고 있고, 그 동안 봉사활동 단체가 어떤 업적을 했는지 보여주는 날이기도 했다. 부스 장식을 위해 축제가 열리는 한 공원으로 발걸음을 향하는 도중, 우리는 굉장히 놀라운 문화를 하나 발견했으니… 그것은 바로 남녀노소 따질 것 없이 많은 사람들이 공원에서 삼삼오오 모여 춤을 추고 있었던 것! 지나가는 사람들을 아랑곳 하나 없이 신경 쓰지 않고 자기들의 댄스를 즐기고 있는 베트남 사람들이었다. 춤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축제 당일에도 중간 중간 아는 노래가 나오면 서넛 이서 춤을 추다가 어느 새 큰 무리가 되어 춤을 즐기고 있었다. 옆에 있던 프랑스 친구는 살며시 나에게로 다가와 베트남 사람들은 참 흥이 많은 것 같다며 넌지시 웃어 보였다.
다음 날은 하노이에서 가장 빈곤한 지역과 자폐증 아이들을 보육하고 있는 몇몇 아동보호센터를 방문하면서 현지 상황도 알아보고 어떤 도움이 필요한지 답사를 하였다. 누군가 나에게 이번 봉사활동 중에 가장 인상 깊었던 순간을 묻는다면 아무런 주저 없이 이 순간을 꼽고 싶다. 아래가 다 내려다보여서 걸을 때마다 오금이 저리는 롱비엔 다리를 지나, 바나나 나무로 우거진 재배지역을 한참 걸어 도착한 그 곳. 바로 빈민촌이었다. 물가에 임시로 거처를 세워 그곳에서 생활하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은 처참했다. 부력이 될 만한 큰 드럼통을 밑에 받치고 나무로 덧대어 만든 그 집들은 비가 오면 떠내려갈 듯했고, 태풍이라도 오면 다 무너질 듯 했다. 육지와 집까지의 길은 두껍지 않고 그렇다고 얇지도 않은, 세게 밟으면 부서질 것 같은 널판대를 대어 길을 이어놨었다. 생계를 위해 사육하는 듯한 닭 열 댓 마리와 강아지들이 보이고, 그 외에 눈에 띄는 것은 빨랫감 정도였다. 더욱 나의 가슴을 아프게 한 것은 식수와 세안, 세탁, 용변 모두 그 강에서 길어다 쓴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최근에 자원봉사자들의 도움으로 깨끗한 물이 나오는 식수대는 설치한 상황이었다. 점점 더 봉사자들의 도움의 손길이 뻗어지고 있는 듯 하였다. 그 중 한 세대를 방문하여 얘기도 나누고 집안 이곳저곳을 살펴보았는데, 눈물이 덜컥 날 정도였다. 집에 목재로 이루어져있어 화재의 위험 때문에 난방 기구를 두지 못해 두꺼운 이불을 덮고 앉아계셨다. 그래서 마음만은 인자하셔서 차 한 잔을 들라며 6명 모두에게 녹차종류의 차를 내주셨다. 이렇게 열악한 환경에서 생활하시는 분들이 아직도 있다니, 정말 마음 한 구석이 찡해지면서 내가 정말 도움이 될 만한 일을 하고 싶다는 마음이 솟구쳤다. 도움이 될 만한 일이라면 뭐든지 발 벗고 나서리.. 아마 이순간이 봉사자로서 가장 열의를 불태웠던 순간이 아니었을까 싶다. 열의를 다지는 동시에 내가 가지고 있는 것에 대한 고마움을 뒤돌아보게 되었다.
이날 대중교통이용과 발품을 팔며 이곳저곳을 돌아다닌 덕분에 베트남문화를 제대로 알 수 있었는데, 거리에 의자만 놓여있는 간이식당이 일상적이라는 것과 이발소도 거리 곳곳에 있고, 신호등이라는 체계 없이도 그 많은 오토바이와 차량들이 곧잘 다니고, 버스 승차, 하차 시에는 행동을 재빠르게 해야 된다는 것이었다. 실제로 겪은 것이긴 한데 버스에서 하차순서를 양보하다가 내리지도 못한 나를 두고 그냥 버스가 출발해버리는 일이 있었다. 그 일 이후부터는 항상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버스 탈때는 행동을 민첩하게 하는 걸 잊지 않았다. 매일 6시쯤 하루일과를 마친 후에는 현지인들과 동행하여 하노이의 맛집으로 탐방 가서 지역 특식도 맛보고 현지인들만 알 수 있는 노상카페에 가는 등 많은 베트남의 생활을 즐길 수 있었다. 그리고 버스를 타고 지나다니다 보면 길거리에서 개고기를 파는 것을 종종 보았는데, 현지기관의 코디네이터에게 저것이 개고기가 맞느냐고 물었더니, 그렇다면서 개고기가 나쁜 기운을 가져간다고 믿기 때문에 본인의 경우에는 한 달에 한 번씩 꼭 개고기를 먹는다고 알려주었다.
봉사활동 마지막 날 봉사자 전원이 봉사활동에 관한 워크숍을 가지는 시간이 있었는데, 그 시간이 정말로 유익했다. 길지는 않았지만 한 시간 가량 Volunteer 에 대해서 정의도 내려 보고 나라마다 봉사활동은 어떤 차이점이 있는지 참가율을 얼마 정도인지 봉사활동의 내용은 어떤 것으로 이루어져있는지에 대해서 의견을 공유하였다. 그 중에서도 인상 깊었던 것은 코디네이터의 말이었는데, “이번 봉사를 진행하면서 가장 크게 중점을 둔 두 가지 목표가 있다면, 하나는 우리가 이번 봉사활동을 통해 얼마나 사회에 기여를 할 수 있을 것인가? 와 나머지 한 가지는 봉사자들이 무엇을 배우고 갈 것인가?” 이었다. 이상하게도 그 말이 내 가슴에 사무치게 들어왔고, 지나간 워크캠프를 또 한 번 되돌아보는 시간이 되었다. 수료증 증정식과 워크캠프를 끝마친 서로의 소감과 발표 후 눈물과 아쉬움으로 범벅된 워크숍을 뒤로하고 준비해뒀던 저녁을 먹기 위해 장소를 이동했다. 베트남 대표음식인 스프링 롤을 재료구입부터 만드는 과정까지 모두 함께 참여하여 근사한 저녁을 가질 수 있었다.
길을 걸어가면서 봉사자들과 함께 나누었던 대화, 국적은 다르지만 함께 생각하는 마음과 고민은 다 똑같았던 우리들. 봉사자의 생일도 다 함께 축하하고, 때 아닌 이상형 월드컵도 하고, 매일 저녁 기타반주에 맞추어 노래도 부르고, 장기 해외봉사활동을 다녀온 친구의 멋진 경험담도 듣고, 빼놓을 수 없는 연애사도 듣고… 잊을 수 없는 추억들이 너무나도 많다. 매번 봉사활동 후에 느끼는 일이지만 봉사활동에 가서 배우고 오는 것이 더 많은 나. 소중한 나의 첫 번째 국제워크캠프를 가슴에 새기며 ‘다음번에는 더 잘 하고 와야지’ 라는 마음을 다진다. 누군가가 내린 봉사의 정의처럼 대가를 바라지 않고 자신의 시간과 재능, 에너지를 제공하는 일. 더 많은 사람들이 아름다운 나눔을 통해서 세상을 웃음으로 더욱 밝혀줬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