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후기
하노이, 2011년의 특별한 겨울
Thuy An Center
참가 전 준비와 마음가짐
<1> 준비와 미팅포인트까지
2011년 겨울. 종강을 하기 전 문득 나는 올해 겨울에는 특별한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행? 봉사? 자격증 공부? 아르바이트? 여러 생각이 들 때, 워크캠프를 다녀온 친구 덕분에 ‘워크캠프’를 알게 되었다. 그 길로 바로 사이트에 가입해 올라오는 워크캠프들을 스캔하던 도중, 이미 여러 프로젝트는 올라오기가 바쁘게 신청마감이 되고 있었다. 조급한 마음에 나는 매의 눈으로 탐색한 후 내가 가고자 하는 일정의 프로젝트가 올라오자마자 참가신청서를 쓰게 되었다. 모자란 영어실력 때문에 구글 번역기의 도움까지 받아가며! 사실 합격발표가 나기 전까지는 그렇게 긴장되지 않았던 것 같다. 하지만 출국 날짜가 하루하루 다가올수록 혼자 떠난다는 생각에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혼자, 그것도 여자인 내가 떠나는 길이 영 미덥지 않으셨는지 부모님은 떠나는 당일까지도 잔소리를 잃지 않으셨다. 부모님의 배웅을 받으며 떠난 베트남은 특별했다. 하노이 공항에 내리고 출입국 심사를 기다리는 줄에서 기적처럼 같은 캠프에 참가하는 한국인 언니를 만나게 되었다. 이 언니의 도움으로 공항에서 구시가지로 나와 함께 호텔에 머물고 다음날 미팅포인트까지 안전하게 같이 갈 수 있었다.
<2> Thuy an center 에서의 생활
한국에서 매일 늦잠을 자는 나는 베트남에서 새나라의 일꾼으로도 손색이 없었다. 식사는 늦어도 아침 8시부터 시작하는 강행군이고 이곳에 머무는 동안 아침은 참가자들이 직접 만들어야 했기 때문에 아침을 만드는 팀은 아침 7시 전에 센터 근처에 시장을 다녀와야 했다. 아침식사가 끝난 후에는 오전/오후로 스케줄을 나누어서 가볍게 센터 주변을 청소하고 주변 텃밭을 정리하였다. 처음에는 같은 스케줄의 반복 또 반복이기에 시간이 너무나도 더디게 가는 것처럼 느껴졌다. 미화활동이 없는 날이면 아이들의 수업에 들어가서 수업을 도와주거나 우리가 가르쳐주기도 하였다. 그리고 우리 역시 아이들에게 수화를 배우기도 하였다. 정해진 스케줄이 끝나면 자유시간이 주어졌지만, 센터 주변은 도시와 많이 떨어져있어 우리는 자유시간에도 아이들과 배드민턴을 치거나 축구를 하면서 하루 종일 붙어 있었다. 비록 말이 통하지 않지만 스포츠는 세계 공통어란 말이 실감났다.
센터에 도착한 첫날 미팅포인트에서 센터까지 가는 길에서 쭈뼛거리며 “Where are you from?”을 묻는 나였는데 2주 동안에 어느새 나는 빠른 그들의 말을 (반은) 이해하고 내가 천천히 영어로 답하기를 기다려주는 다른 참가자들의 배려에 감동을 받기도 하였다. 한국에서 ‘식구’의 의미는 한 밥상에서 같이 밥을 먹는 것을 뜻한다. 2주가 넘게 처음 본 각국에서 온 외국인들과 밥을 먹는 것이 처음에는 어색했지만 마지막 날 International day에는 ‘대가족’이 된 기분이였다. 비록 내 야심작 이였던 떡국은 실패하였지만 스튜와 스프링 롤과 떡볶이 각각 나라를 대표하는 한 상이 가득했던 그날 밥상을 잊을 수 없다.
Center에서 잊을 수 없는 추억 또 한가지는 바로 ‘벽화 그리기’와 ‘크리스마스 연극’이였다. 여러 매체에서 벽화를 그리는 모습을 보며 나도 하고 싶다는 생각만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막상 직접 해보니 처음 벽면을 페인트 칠 하는 것부터 밑그림과 채색까지 어느 것 하나 소홀히 하거나 대충 넘어갈 일이 아니었다. 나보다 두 배는 긴 빗자루를 들고 벽면 위까지 새로 페인트 질을 하고 나면 옷과 신발은 페인트 범벅이 되기 일쑤였다. 도안을 고르는 과정에서도 참가자들의 욕심이 많아서 합의하는데 시간이 걸리긴 하였지만 결과물을 보니 훌륭했다. 한국으로 돌아와서 그 곳에 우리가 다녀간 흔적, 추억이 그대로 남아있다는 생각에 뿌듯하기도 하고 가끔은 그 곳과 아이들이 그리워지기도 한다.
우리가 참가한 기간은 우연히도 크리스마스가 끼어있었기 때문에 주말의 자유일정을 갖기 전에 우리는 아이들을 위해 ‘예수의 탄생’을 주제로 연극을 만들기로 하였다. 각자 배역을 맡은 후, 무대를 꾸미고 소품을 만들면서 시간이 어떻게 가는지 몰랐다. 나는 양치기를 맡아 열연을 하였는데 그날 연극이 끝난 후 분장을 하고 찍은 사진은 다시 봐도 웃는 모습이 행복해 보인다.
<3> 주말여행
보통 워크캠프의 스케줄은 평일은 짜여있고 주말은 자유형식이다. 그래서 참가자들이 함께 주변에 관광지를 함께 다녀오는데 우리는 하노이 근처에 육지의 하롱베이라는 “땀꼭”을 가기로 하였다. 센터가 외곽에 위치하였기 때문에 버스를 타고 오랜 시간이 흘러 관광지 근처 호스텔에 도착하였다. 센터에서는 화장실이 하나에 물의 온도가 일정하지 않아서 제대로 씻지를 못했는데 호스텔에 도착하자마자 나와 한국인 언니들은 신나서 샤워부터 하였다. 깨끗이 씻고 땀꼭 일정을 마친 뒤 마침 그날이 크리스마스 이브였기에 우리는 이브 만찬을 즐기기 위해 근처 음식점으로 나갔다. 흥에 취하고 크리스마스 분위기에 취해 보드카와 베트남의 명물인 하노이 맥주를 마시며 크리스마스를 축하하였다. 외국인들과 함께하는, 아니 이제는 친구가 된 여러 명의 친구들과 함께하는 북적이는 크리스마스 파티는 내 생애 최고였다.
<4> 다녀오고 난 후
여행을 가기 일주일 전 나는 스마트폰을 분실하여 여행 내내 2G폰을 사용하였다. 때문에 센터에 있는 동안 봉사자들끼리 모두 스마트 폰을 이용하여 가족에게 연락을 하거나 친구들과 안부를 나눌 때, 나는 한국에서 잃어버린 내 아이폰 생각이 절실했다. 거기다 베트남 워크캠프가 끝난 후 나는 혼자 하노이에 남아 새해를 보낸 후 홍콩으로 넘어가서 일주일을 보낸 뒤에 한국에 도착하였기 때문에 다른 참가자들보다 집에 늦게 도착하였다. 만났던 사람들과 다시 연락할 길이 없을까 전전긍긍하며 한국에 돌아왔지만 모두 페이스북을 통해서 연락이 가능하게 되었다. 페이스북을 통해 서로 찍었던 사진이나 영상을 공유하고 지금도 안부인사를 물으며 지내고 있다.
다녀오고 난 후 워크캠프를 통해서 겪은 것 들 중 봉사시간, 여행의 경험보다는 나는 내적 성장과 다양한 친구들을 얻은 것을 가장 큰 장점으로 꼽는다. 물론 여행도 즐거웠지만 나 혼자서 헤쳐나가고 부딪친 경험이 20살이 넘어서 처음 이였기에 더 뜻 깊은 것 같다. 중간중간마다 혼자 있는 시간에 내가 하고 싶은 일이나 해야 될 일을 생각하기도 하고 나이도 성별도 국적도 모두 다른 사람들의 다양한 생각들을 들으며 이들이 있었기에 내게 2011년 베트남에서 보냈던 2주는 더 좋은 추억으로 남았다.
2011년 겨울. 종강을 하기 전 문득 나는 올해 겨울에는 특별한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행? 봉사? 자격증 공부? 아르바이트? 여러 생각이 들 때, 워크캠프를 다녀온 친구 덕분에 ‘워크캠프’를 알게 되었다. 그 길로 바로 사이트에 가입해 올라오는 워크캠프들을 스캔하던 도중, 이미 여러 프로젝트는 올라오기가 바쁘게 신청마감이 되고 있었다. 조급한 마음에 나는 매의 눈으로 탐색한 후 내가 가고자 하는 일정의 프로젝트가 올라오자마자 참가신청서를 쓰게 되었다. 모자란 영어실력 때문에 구글 번역기의 도움까지 받아가며! 사실 합격발표가 나기 전까지는 그렇게 긴장되지 않았던 것 같다. 하지만 출국 날짜가 하루하루 다가올수록 혼자 떠난다는 생각에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혼자, 그것도 여자인 내가 떠나는 길이 영 미덥지 않으셨는지 부모님은 떠나는 당일까지도 잔소리를 잃지 않으셨다. 부모님의 배웅을 받으며 떠난 베트남은 특별했다. 하노이 공항에 내리고 출입국 심사를 기다리는 줄에서 기적처럼 같은 캠프에 참가하는 한국인 언니를 만나게 되었다. 이 언니의 도움으로 공항에서 구시가지로 나와 함께 호텔에 머물고 다음날 미팅포인트까지 안전하게 같이 갈 수 있었다.
<2> Thuy an center 에서의 생활
한국에서 매일 늦잠을 자는 나는 베트남에서 새나라의 일꾼으로도 손색이 없었다. 식사는 늦어도 아침 8시부터 시작하는 강행군이고 이곳에 머무는 동안 아침은 참가자들이 직접 만들어야 했기 때문에 아침을 만드는 팀은 아침 7시 전에 센터 근처에 시장을 다녀와야 했다. 아침식사가 끝난 후에는 오전/오후로 스케줄을 나누어서 가볍게 센터 주변을 청소하고 주변 텃밭을 정리하였다. 처음에는 같은 스케줄의 반복 또 반복이기에 시간이 너무나도 더디게 가는 것처럼 느껴졌다. 미화활동이 없는 날이면 아이들의 수업에 들어가서 수업을 도와주거나 우리가 가르쳐주기도 하였다. 그리고 우리 역시 아이들에게 수화를 배우기도 하였다. 정해진 스케줄이 끝나면 자유시간이 주어졌지만, 센터 주변은 도시와 많이 떨어져있어 우리는 자유시간에도 아이들과 배드민턴을 치거나 축구를 하면서 하루 종일 붙어 있었다. 비록 말이 통하지 않지만 스포츠는 세계 공통어란 말이 실감났다.
센터에 도착한 첫날 미팅포인트에서 센터까지 가는 길에서 쭈뼛거리며 “Where are you from?”을 묻는 나였는데 2주 동안에 어느새 나는 빠른 그들의 말을 (반은) 이해하고 내가 천천히 영어로 답하기를 기다려주는 다른 참가자들의 배려에 감동을 받기도 하였다. 한국에서 ‘식구’의 의미는 한 밥상에서 같이 밥을 먹는 것을 뜻한다. 2주가 넘게 처음 본 각국에서 온 외국인들과 밥을 먹는 것이 처음에는 어색했지만 마지막 날 International day에는 ‘대가족’이 된 기분이였다. 비록 내 야심작 이였던 떡국은 실패하였지만 스튜와 스프링 롤과 떡볶이 각각 나라를 대표하는 한 상이 가득했던 그날 밥상을 잊을 수 없다.
Center에서 잊을 수 없는 추억 또 한가지는 바로 ‘벽화 그리기’와 ‘크리스마스 연극’이였다. 여러 매체에서 벽화를 그리는 모습을 보며 나도 하고 싶다는 생각만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막상 직접 해보니 처음 벽면을 페인트 칠 하는 것부터 밑그림과 채색까지 어느 것 하나 소홀히 하거나 대충 넘어갈 일이 아니었다. 나보다 두 배는 긴 빗자루를 들고 벽면 위까지 새로 페인트 질을 하고 나면 옷과 신발은 페인트 범벅이 되기 일쑤였다. 도안을 고르는 과정에서도 참가자들의 욕심이 많아서 합의하는데 시간이 걸리긴 하였지만 결과물을 보니 훌륭했다. 한국으로 돌아와서 그 곳에 우리가 다녀간 흔적, 추억이 그대로 남아있다는 생각에 뿌듯하기도 하고 가끔은 그 곳과 아이들이 그리워지기도 한다.
우리가 참가한 기간은 우연히도 크리스마스가 끼어있었기 때문에 주말의 자유일정을 갖기 전에 우리는 아이들을 위해 ‘예수의 탄생’을 주제로 연극을 만들기로 하였다. 각자 배역을 맡은 후, 무대를 꾸미고 소품을 만들면서 시간이 어떻게 가는지 몰랐다. 나는 양치기를 맡아 열연을 하였는데 그날 연극이 끝난 후 분장을 하고 찍은 사진은 다시 봐도 웃는 모습이 행복해 보인다.
<3> 주말여행
보통 워크캠프의 스케줄은 평일은 짜여있고 주말은 자유형식이다. 그래서 참가자들이 함께 주변에 관광지를 함께 다녀오는데 우리는 하노이 근처에 육지의 하롱베이라는 “땀꼭”을 가기로 하였다. 센터가 외곽에 위치하였기 때문에 버스를 타고 오랜 시간이 흘러 관광지 근처 호스텔에 도착하였다. 센터에서는 화장실이 하나에 물의 온도가 일정하지 않아서 제대로 씻지를 못했는데 호스텔에 도착하자마자 나와 한국인 언니들은 신나서 샤워부터 하였다. 깨끗이 씻고 땀꼭 일정을 마친 뒤 마침 그날이 크리스마스 이브였기에 우리는 이브 만찬을 즐기기 위해 근처 음식점으로 나갔다. 흥에 취하고 크리스마스 분위기에 취해 보드카와 베트남의 명물인 하노이 맥주를 마시며 크리스마스를 축하하였다. 외국인들과 함께하는, 아니 이제는 친구가 된 여러 명의 친구들과 함께하는 북적이는 크리스마스 파티는 내 생애 최고였다.
<4> 다녀오고 난 후
여행을 가기 일주일 전 나는 스마트폰을 분실하여 여행 내내 2G폰을 사용하였다. 때문에 센터에 있는 동안 봉사자들끼리 모두 스마트 폰을 이용하여 가족에게 연락을 하거나 친구들과 안부를 나눌 때, 나는 한국에서 잃어버린 내 아이폰 생각이 절실했다. 거기다 베트남 워크캠프가 끝난 후 나는 혼자 하노이에 남아 새해를 보낸 후 홍콩으로 넘어가서 일주일을 보낸 뒤에 한국에 도착하였기 때문에 다른 참가자들보다 집에 늦게 도착하였다. 만났던 사람들과 다시 연락할 길이 없을까 전전긍긍하며 한국에 돌아왔지만 모두 페이스북을 통해서 연락이 가능하게 되었다. 페이스북을 통해 서로 찍었던 사진이나 영상을 공유하고 지금도 안부인사를 물으며 지내고 있다.
다녀오고 난 후 워크캠프를 통해서 겪은 것 들 중 봉사시간, 여행의 경험보다는 나는 내적 성장과 다양한 친구들을 얻은 것을 가장 큰 장점으로 꼽는다. 물론 여행도 즐거웠지만 나 혼자서 헤쳐나가고 부딪친 경험이 20살이 넘어서 처음 이였기에 더 뜻 깊은 것 같다. 중간중간마다 혼자 있는 시간에 내가 하고 싶은 일이나 해야 될 일을 생각하기도 하고 나이도 성별도 국적도 모두 다른 사람들의 다양한 생각들을 들으며 이들이 있었기에 내게 2011년 베트남에서 보냈던 2주는 더 좋은 추억으로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