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후기
레이캬비크, 낯섦이 설렘으로 바뀐 순간
Visual art in Reykjavik and the south of Iceland
참가 전 준비와 마음가짐
아이슬란드를 떠난 지 딱 두 달 째 되는 날인 오늘에도 그 곳을 생각하면 아직 가슴이 두근댄다.
한 달이 넘는 여행과 워크캠프를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와 한숨 돌리고 나니 정리해야 할 수천 장의 사진도 내 손길을 기다리고 있고, 잊기 싫은 기억 그리고 추억들도 가득하다. 아이슬란드에서 찍은 사진들을 보니 거짓말처럼 그 때로 돌아가 즐거웠던 때의 한가운데에 서 있는 것 같다.
처음, 혼자 힘으로 떠나보는 여행에서 우연히 알게 된 워크캠프를 무작정 신청해놓고 사실은 많이 마음을 졸였었다. 여행도 그렇지만 조금도 알지 못했던 낯설고 편치 않은 곳에서 낯선 이들과 외국어로 대화하면서 나, 잘 할 수 있을까? 라는 큰 걱정 때문이다. 한국에서조차 낯을 많이 가리는 내 성격을 잘 알기에, 내게는 솔직히 워크캠프가 단순한 봉사활동 이상의 두려움을 안겨주었다.
유럽 대륙에서 아이슬란드로 건너가는 비행기 날짜가 점점 다가올수록 내 마음은 죄어드는 것 같았다. 그리고 공항에서 밤을 꼬박 새운 다음 올라탄 비행기에서 정신 없이 잠을 자다 깨서 본 아이슬란드의 하늘은 주홍빛과 푸른빛이 섞인 신비로움 자체였다. 이게 내가 본 아이슬란드의 첫인상이다. 그리고 다른 곳에서는 절대로 볼 수 없는 그런 특별한 신비함이 가득한 곳이 바로 내가 경험한 아이슬란드이다. 독특하고 예술적인 거리 풍경, 여유롭고 다정한 사람들, 깔끔한 시내, 바다, 하늘 그리고 별.
처음에 아이슬란드 워크캠프 사무실에 딸린 집에서 만난 사람들은 대부분 낯을 많이 가렸다. 지금 생각하면 웃음이 난다. 어차피 그들도 나랑 똑같은 처지였던 것이다. 다들 아이슬란드라는 낯선 섬에서 처음 만났으며 나처럼 영어를 잘 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었다.
내가 참여한 Visual Art는 아이슬란드의 모든 것을 사진으로 찍고, 나중에 영상편집을 통해 아이슬란드 워크캠프 기구인 World Wide Friend와 Icelandic 그리고 Volunteer’s life 세 가지 주제의 홍보영상을 만드는 일을 했다. 캠프 구성원은 대부분 유럽 국적의 사람들이었고 아시아인도 조금 있었다. 처음에는 친해지기 위한 게임도 부끄럽기만 하고 서양식 요리도 낯설었으며 이름을 외우기조차 힘들었다. 특히 친해지려면 말을 많이 해야 할 텐데 그리 좋지 않은 나의 영어 실력으로는 유창히 말할 수가 없어서 속만 끓였다. 봉사활동은 각자의 카메라로 사진을 찍는 것이 주가 되어서 활동 자체는 영어실력을 많이 요하진 않았지만 친목을 위해서는 꼭 필요했기 때문에 처음엔 제일 막막하고 답답했다.
그런데 몇 번의 팀 프로젝트와 주말 여행이 서먹했던 우리들의 사이를 확 바꾸어 놓았다. 쌀쌀한 아이슬란드의 바람 속에서 서로의 사진을 찍으며 깔깔대고 서툰 영어로 장난도 치면서 조금씩 마음이 열리는 것 같았다. 주말마다 있던 여행은 아직도 너무 아름답고 소중하게 기억된다. 아침 일찍 일어나 소형 밴 두 대를 빌리고 열 명씩 나누어 탄 다음 작디작은 레이캬비크 시내를 벗어나 아이슬란드의 명소들로 달려갔다. 여기는 특히 사람 손을 타지 않은 자연이 많기 때문에 가로등도 없고 닦이지도 않은 길을 지날 때는 세상에 우리뿐인 기분이었다. 그런 캄캄한 차 안에서 노래를 틀어놓고 사진만 주구장창 찍다가 지쳐 잠들고, 또 일어나 비몽사몽하며 사진을 찍으러 나가곤 했다. 너무 추운 아이슬란드 남부에서 나는 마치 다큐멘터리 영상 속에 있는 기분이었다. 엄청난 빙하도 협곡도 폭포도 화산재로 만들어진 바닷가도 너무 신기했고 사람도 거의 없어 더욱더 우리를 가까이 붙게 했다. 보기 힘들다는 오로라도 실컷 보았다. 영하를 훨씬 밑도는 새벽의 추위에도 우리는 언덕에 누워 수다를 떨고 별을 세고 소원을 빌었다.
첫 번째 주말이 지나고 나는 마음을 고쳐 먹었다. 그리고 더 이상 걱정하지 않기로 했다. 이미 우리는 친해져 있었고 그것은 언어나 국적, 문화와는 상관없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그 때부터 우리는 서로를 챙기고 서로의 말을 배웠으며 편지도 써 주고 사소한 여러 가지를 주고 받았다. 그리고 워크캠프를 마친 후에야 비로소 느꼈다. 나는 그들과 많은 말을 했기 때문에 가까워졌다기보다 정말 마음으로 가까워진 것이었다. 그래서 여행 중 타국에서 만난 한국인이 반갑기보다 워크캠프에서 만났던 여러 나라의 친구들이 그리워 꿈에도 나오는 엉뚱한 현상까지 벌어졌다. 사실 나는 내가 외국인들과 친해질 수 있을 거란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은 워크캠프를 통해 나 자신이 많이 바뀌었음을 느낀다. 낯선 곳에서 길 찾기나 그곳에서 생활하는 것을 넘어서 누군가를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게, 그리고 스무 명의 친구를 얻어 어디서든 든든함을 느낄 수 있다는 게 바로 내가 된 것이 신기할 뿐이다.
떠돌아다님이 목적인 여행 중에 오랫동안 있으며 정착을 느끼고 집이라 부를 수 있던 곳. 그래서 더 그럴지 몰라도 아이슬란드 자체는 떠날 때 너무나 아쉬웠던, 나에게 너무 사랑스러운 곳이다. 지금도 연락을 계속 주고받는 친구들을 만나게 해준 곳, 너무나도 어렸던 나를 더 강하게 바뀌게 해준 곳, 쉽게 갈 수 없어 더욱 황홀한 곳. 워크캠프 덕분이다. 나이도 국적도 성별도 그 밖의 어떤 것도 그리 중요하지 않았던 우리들을 생각하면 나의 첫 워크캠프는 정말 완벽했고 행복했으며 덕분에 워크캠프와 아이슬란드에 대해 주변에 많이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헤어질 때 했던 수십 번의 포옹과 끝내 흘렸던 눈물도, 몰래 숨어서 쓰고 남겨 놓고 온 편지도, 내가 받았던 쪽지와 편지들도 다 잊지 않을 거다.
처음 보았던 하늘처럼 그곳을 떠날 때도 아이슬란드는 역시 아름다웠다. 아직 동이 트기 전 새벽, 조용한 레이캬비크의 거리를 지나며 나는 내가 보낸 워크캠프의 2주가 거의 기적과도 같다는 생각을 했다. 아름다운 섬의 작은 도시는 어느 샌가 하나하나 다 추억이 서려 있는 곳이 되었다. 20인분의 요리를 준비하기 위해 몇 개의 카트를 끌어야 했던 큰 슈퍼마켓도, 씻기 위해 갔던 수영장들도, 경치가 끝내주는 교회당도, 곳곳의 예술적인 벽화와 갤러리 같은 깔끔한 가게들, 예쁜 집들 그리고 항상 사람들이 건너기를 기다려주었던 차들까지도 어느 하나 쉽게 잊고 싶은 것이 없다. 비행기 창문에서 바라보며 점점 멀어지는 섬 부두의 불빛에 눈물이 났다. 속으로 외쳤다. 안녕, 안녕 아이슬란드!
한 달이 넘는 여행과 워크캠프를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와 한숨 돌리고 나니 정리해야 할 수천 장의 사진도 내 손길을 기다리고 있고, 잊기 싫은 기억 그리고 추억들도 가득하다. 아이슬란드에서 찍은 사진들을 보니 거짓말처럼 그 때로 돌아가 즐거웠던 때의 한가운데에 서 있는 것 같다.
처음, 혼자 힘으로 떠나보는 여행에서 우연히 알게 된 워크캠프를 무작정 신청해놓고 사실은 많이 마음을 졸였었다. 여행도 그렇지만 조금도 알지 못했던 낯설고 편치 않은 곳에서 낯선 이들과 외국어로 대화하면서 나, 잘 할 수 있을까? 라는 큰 걱정 때문이다. 한국에서조차 낯을 많이 가리는 내 성격을 잘 알기에, 내게는 솔직히 워크캠프가 단순한 봉사활동 이상의 두려움을 안겨주었다.
유럽 대륙에서 아이슬란드로 건너가는 비행기 날짜가 점점 다가올수록 내 마음은 죄어드는 것 같았다. 그리고 공항에서 밤을 꼬박 새운 다음 올라탄 비행기에서 정신 없이 잠을 자다 깨서 본 아이슬란드의 하늘은 주홍빛과 푸른빛이 섞인 신비로움 자체였다. 이게 내가 본 아이슬란드의 첫인상이다. 그리고 다른 곳에서는 절대로 볼 수 없는 그런 특별한 신비함이 가득한 곳이 바로 내가 경험한 아이슬란드이다. 독특하고 예술적인 거리 풍경, 여유롭고 다정한 사람들, 깔끔한 시내, 바다, 하늘 그리고 별.
처음에 아이슬란드 워크캠프 사무실에 딸린 집에서 만난 사람들은 대부분 낯을 많이 가렸다. 지금 생각하면 웃음이 난다. 어차피 그들도 나랑 똑같은 처지였던 것이다. 다들 아이슬란드라는 낯선 섬에서 처음 만났으며 나처럼 영어를 잘 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었다.
내가 참여한 Visual Art는 아이슬란드의 모든 것을 사진으로 찍고, 나중에 영상편집을 통해 아이슬란드 워크캠프 기구인 World Wide Friend와 Icelandic 그리고 Volunteer’s life 세 가지 주제의 홍보영상을 만드는 일을 했다. 캠프 구성원은 대부분 유럽 국적의 사람들이었고 아시아인도 조금 있었다. 처음에는 친해지기 위한 게임도 부끄럽기만 하고 서양식 요리도 낯설었으며 이름을 외우기조차 힘들었다. 특히 친해지려면 말을 많이 해야 할 텐데 그리 좋지 않은 나의 영어 실력으로는 유창히 말할 수가 없어서 속만 끓였다. 봉사활동은 각자의 카메라로 사진을 찍는 것이 주가 되어서 활동 자체는 영어실력을 많이 요하진 않았지만 친목을 위해서는 꼭 필요했기 때문에 처음엔 제일 막막하고 답답했다.
그런데 몇 번의 팀 프로젝트와 주말 여행이 서먹했던 우리들의 사이를 확 바꾸어 놓았다. 쌀쌀한 아이슬란드의 바람 속에서 서로의 사진을 찍으며 깔깔대고 서툰 영어로 장난도 치면서 조금씩 마음이 열리는 것 같았다. 주말마다 있던 여행은 아직도 너무 아름답고 소중하게 기억된다. 아침 일찍 일어나 소형 밴 두 대를 빌리고 열 명씩 나누어 탄 다음 작디작은 레이캬비크 시내를 벗어나 아이슬란드의 명소들로 달려갔다. 여기는 특히 사람 손을 타지 않은 자연이 많기 때문에 가로등도 없고 닦이지도 않은 길을 지날 때는 세상에 우리뿐인 기분이었다. 그런 캄캄한 차 안에서 노래를 틀어놓고 사진만 주구장창 찍다가 지쳐 잠들고, 또 일어나 비몽사몽하며 사진을 찍으러 나가곤 했다. 너무 추운 아이슬란드 남부에서 나는 마치 다큐멘터리 영상 속에 있는 기분이었다. 엄청난 빙하도 협곡도 폭포도 화산재로 만들어진 바닷가도 너무 신기했고 사람도 거의 없어 더욱더 우리를 가까이 붙게 했다. 보기 힘들다는 오로라도 실컷 보았다. 영하를 훨씬 밑도는 새벽의 추위에도 우리는 언덕에 누워 수다를 떨고 별을 세고 소원을 빌었다.
첫 번째 주말이 지나고 나는 마음을 고쳐 먹었다. 그리고 더 이상 걱정하지 않기로 했다. 이미 우리는 친해져 있었고 그것은 언어나 국적, 문화와는 상관없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그 때부터 우리는 서로를 챙기고 서로의 말을 배웠으며 편지도 써 주고 사소한 여러 가지를 주고 받았다. 그리고 워크캠프를 마친 후에야 비로소 느꼈다. 나는 그들과 많은 말을 했기 때문에 가까워졌다기보다 정말 마음으로 가까워진 것이었다. 그래서 여행 중 타국에서 만난 한국인이 반갑기보다 워크캠프에서 만났던 여러 나라의 친구들이 그리워 꿈에도 나오는 엉뚱한 현상까지 벌어졌다. 사실 나는 내가 외국인들과 친해질 수 있을 거란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은 워크캠프를 통해 나 자신이 많이 바뀌었음을 느낀다. 낯선 곳에서 길 찾기나 그곳에서 생활하는 것을 넘어서 누군가를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게, 그리고 스무 명의 친구를 얻어 어디서든 든든함을 느낄 수 있다는 게 바로 내가 된 것이 신기할 뿐이다.
떠돌아다님이 목적인 여행 중에 오랫동안 있으며 정착을 느끼고 집이라 부를 수 있던 곳. 그래서 더 그럴지 몰라도 아이슬란드 자체는 떠날 때 너무나 아쉬웠던, 나에게 너무 사랑스러운 곳이다. 지금도 연락을 계속 주고받는 친구들을 만나게 해준 곳, 너무나도 어렸던 나를 더 강하게 바뀌게 해준 곳, 쉽게 갈 수 없어 더욱 황홀한 곳. 워크캠프 덕분이다. 나이도 국적도 성별도 그 밖의 어떤 것도 그리 중요하지 않았던 우리들을 생각하면 나의 첫 워크캠프는 정말 완벽했고 행복했으며 덕분에 워크캠프와 아이슬란드에 대해 주변에 많이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헤어질 때 했던 수십 번의 포옹과 끝내 흘렸던 눈물도, 몰래 숨어서 쓰고 남겨 놓고 온 편지도, 내가 받았던 쪽지와 편지들도 다 잊지 않을 거다.
처음 보았던 하늘처럼 그곳을 떠날 때도 아이슬란드는 역시 아름다웠다. 아직 동이 트기 전 새벽, 조용한 레이캬비크의 거리를 지나며 나는 내가 보낸 워크캠프의 2주가 거의 기적과도 같다는 생각을 했다. 아름다운 섬의 작은 도시는 어느 샌가 하나하나 다 추억이 서려 있는 곳이 되었다. 20인분의 요리를 준비하기 위해 몇 개의 카트를 끌어야 했던 큰 슈퍼마켓도, 씻기 위해 갔던 수영장들도, 경치가 끝내주는 교회당도, 곳곳의 예술적인 벽화와 갤러리 같은 깔끔한 가게들, 예쁜 집들 그리고 항상 사람들이 건너기를 기다려주었던 차들까지도 어느 하나 쉽게 잊고 싶은 것이 없다. 비행기 창문에서 바라보며 점점 멀어지는 섬 부두의 불빛에 눈물이 났다. 속으로 외쳤다. 안녕, 안녕 아이슬란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