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후기
일본 소도시, 잊지 못할 여름날의 추억
HIigashi shirakawa-mura GIFU
참가 전 준비와 마음가짐
워크캠프라는 단체를 처음 알게 된 것은 작년 여름이었다. 그 당시 나는 일본에서 어학연수를 하기 위해 도쿄에서 생활하고 있었다. 8월경 친오빠가 국제워크캠프라는 단체를 통해 일본 교토로 봉사활동을 간다는 연락을 받았다. 그때까지 내 머릿속에는 국제봉사란 매우 어렵고 힘든 나라 예를 들자면 아프리카와 같은 나라에 가서 하는 의료봉사 따위가 그려졌는데 오빠에게 자세히 들어보니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과 일본, 교토라는 지역에서 마을사람들과 문화교류와 같은 프로그램을 하며 마을 어린이들과 놀아준다는 것이었다. 그런 봉사라면 나도 할 수 있겠다 싶었고, 매우 흥미로워 보였다.
특히 일본에서 봉사하는 거라면 무슨 일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이상한 자신감도 생겼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우선 언어적인 면에서 원활하게 소통할 수 있으니까 그런 자신감이 생긴 것 같다. 일본에서 1년 반 간의 어학연수를 끝내고 지난 2월 귀국한 후 나는 대학교에 복학하였고 여름방학이 되면 워크캠프를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많은 정보는 없었지만 오빠가 다녀온 경험을 들어보니 더욱더 가고 싶은 마음이 강해졌다.
그리하여 지난 여름, 정말 정말 뜨거웠던 8월, 이제껏 경험하지 못한 소중한 경험을 하였다..나는 혼자 여행하는 것이 매우 익숙하였고 특히나 나라가 일본이었기 때문에 거부감이 전혀 없었다. 다만 출국 전부터 단체생활이라는 것이 어떤 느낌일까 궁금하기도하면서 걱정이 앞섰다. 이제껏 살면서 단체생활은 길어봤자 2박3일 정도의 수련회 정도였지 2주간의 합숙이라니 …. 너무 걱정 되었다. 이윽고 출국 당일이 되었다. 나는 8월2일부터 시작되는 봉사활동에 앞서 나고야에서 3일정도 혼자 여행하고 싶었기 때문에 7월31일에 출발하였다. 나에게 있어서 일본이라는 나라는 너무나도 마음이 편해지는 곳이다. 우리나라가 아닌 타국에서만 느낄 수 있는 자유로움이 일종의 해방감을 주어서가 아닐까 싶다.
나고야 공항에서 호텔까지의 이동은 아무런 어려움 없이 무사히 도착했다.. 나고야는 처음 간 곳이 아니었기 때문에 더욱더 수월했을지도 모른다. 아무튼 여기저기 관광을 하고 드디어 워크캠프 집합장소인 기후현 시라가와구치역 으로 향하는 날이 왔다.
오전 11시 20분 집합시간을 맞추기 위해 아침 일찍부터 서둘러 신칸센을 타러 갔다. 혹시라도 신칸센에서 워크캠프 참가자들을 마주치진 않을까 이리저리 둘러보았지만 도무지 알 수 없었다. 그러자 막연한 두려움이랄까 혹시라도 나 혼자 참가하는 것은 아니겠지? 하는 불안감도 생기기 시작했다. 신칸센을 타고 두 시간 여 지났을까 곧 도착한다는 안내방송과 함께 긴장감은 더해갔다. 도착하고 신칸센에서 내리니 굉장히 조용한 시골마을의 어느 역과 다름없는 느낌을 받았다. 내리는 사람들을 보니 다양한 국적의 초록빛 눈을 가진 외국인들이 대 여섯명 이 있었다. 그 때 나는 바로 알아차렸다, 그들이 나와 함께 봉사활동을 할 친구들이라는 것을… 개찰구를 향하는 계단을 오를 때 옆에서 같이 오르는 여자아이를 보았다. 내 직감에 한국인 일 것 같은 느낌이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나와 동갑인 한국여자였다. 그 때 느꼈던 기분은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기뻤는데 타국에서 한국인을 만났다는 안도감은 정말이지 기쁨 그 이상이었다.역의 개찰구에서 워크캠프 관계자 분을 만났고 미리 와서 기다리고 있던 일본 대학생들과 합류하였다. 참가했던 일본 대학생들은 모두 12명 정도였는데 나고야상과대학 볼란티어 동아리에서 온 학생들이었다. 이 동아리는 매년 히가시 시라가와고에서 국제워크캠프 참가자들과 함께 봉사한다고 하였다. 모두 처음이라 서먹서먹하게 간단한 일본어로 인사를 나누고 차로 20분 정도 우리들의 숙소로 향했다. 나 이외의 한국인은 2명으로 모두 여자여서 차에서 한국어로 굉장한 수다를 떨었는데 며칠 만에 한국어로 대화할 수 있음에 흥분하였던 것 같다.숙소에 도착하고 서로 인사를 하였다. 자기소개 등등 여자들은 모두 일본어가 능숙했지만 유럽에서 온 남자들은 모두 일본어를 거의 못했기 때문에 다소 불편함이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서로 허물없이 간단한 영어와 일본어, 그도 안될 때는 손짓 발짓 이른바 바디랭귀지를 하며 더욱더 친해지게 되었다. 첫날은 마을 이장님?이라는 분이 우리를 마을회관으로 데려가서 간단한 마을 소개와 우리들이 2주간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려주셨다. 그 후 저녁시간이 되어 숙소에 돌아왔는데 여러 음식들을 준비해 주셔서 배불리 먹을 수 있었다.
이튿날부터 본격적인 봉사활동이 시작되었는데, 생각했던 것 보다 쉬운 일들이었다, 처음 했던 일은 마을에서 화가 활동을 하시는 분들이 매년 여름 숲에서 자신들의 그림을 전시하고 마을 사람들이 와서 보는 전시회 준비를 우리들이 하게 되었다. 나무에 그림을 걸거나 그림에 이름을 붙이거나 하는 단순 노동이었지만 그 일이 끝난 뒤에 둘러보니 뿌듯한 보람을 느낄 수 있었다. 가장 기억나는 힘들었던 순간을 생각하자면 마을에 꽤 큰 계곡이 있었는데 그 근처에 가족끼리 오는 캠핑장을 청소하고 잡초를 뽑는 등 정비하는 일들이다. 특히 계곡으로 들어가는 길목에 있는 잡초들을 땡볕아래에서 뽑는 일이 생각했던 것 보다 굉장히 힘든 작업이었다. 그래도 지금 사진을 보며 생각해보면 그 고생했던 일들이 내 인생에서 어떤 식으로든지 도움이 될 것만 같은 기분이 들어 마음 한 켠에서 어떤 자신감이 솟구친다.저녁준비는 무작위로 그룹을 만들어 매일매일 차례를 돌아가면서 그날 저녁메뉴에 따라 장을 보러 갔고 음식을 만들었는데 이러한 방식이 굉장히 친목을 쌓아주는 역할을 톡톡히 하였던 것 같다. 저녁을 먹은 뒤에는 자유시간이 주어졌는데 이 시간에는 모두 모여 술을 마시거나 게임을 한다거나 했다. 이 시간 동안 가장 기억에 남았던 것은 숙소 근처에 별을 볼 수 있는 곳에 가서 하늘을 바라보며 누워 칠흙 같이 어두운 밤하늘에 무한하게 펼쳐진 별들을 보았던 일이다. 일본의 어느 시골마을에서 이러한 감동적인 경험을 했다는 것은 아마 평생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시간은 흘러 어느덧 워크캠프에서의 마지막 날이 찾아왔다. 아침부터 다음날이면 헤어져야 한다는 무거운 분위기 속에서 마지막 일정인 마을 축제에 참가하였다, 일본에서는 매년 여름 마쯔리(축제)를 하는데 일본의 전통의상인 유카타를 입고 참가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외국인인 우리들은 평소와 같은 복장을 하고 가려고 하는데 갑자기 나고야 상과 대학 측에서 우리들을 위해서 서프라이즈로 유카타를 준비하여 주셨는데 입고 반납하는 줄로만 알았던 유카타가 심지어 선물이라는 것이었다. 일본 드라마나 영화에서만 보았던 유카타를 직접 입어 볼 수 있는 기회를 주신 것만으로도 너무 감사한데 내가 가질 수 있다니 꿈만 같았다. 마을 어르신들이 유카타를 잘 입을 수 있도록 도와주셔서 입고나니 정말 일본인들의 특유의 몸가짐, 예절 등이 몸에 베어나는 듯 하였다 . 유카타를 입고 축제에 참여하면서 일본인들의 문화에 한층 더 다가갈 수 있었던 좋은 기회였고 마지막 날이라는 아쉬움을 뒤로 한 채 모두 즐기면서 재미있게 놀았다.축제가 끝난 뒤, 숙소로 돌아온 우리들은 피곤한 기색이 역력하였지만 마지막 날 인 만큼 밤새도록 먹고 마시며 떠들어댔다. 일본 학생들과 무척 친해져 있던 나는 그들이 하는 이야기를 통해 이번 워크캠프는 매년 해왔던 캠프와는 조금 달랐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 이야기인 즉슨 이번만큼 참가자들과 끈끈하게 유대를 다졌던 적이 없었다는 것이다. 솔직히 말해서 나는 참가하기 전부터 아니 참가하고 나서도 몇 일 지나지 않았을 무렵 생각했던 것이 내가 2주 동안 정이 들면 얼마나 들까 하는 의구심 비슷한 그런 마음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2주라는 시간이 결코 짧지만은 않았고 24시간 동안 그들과 마주하며 지내면서 알아채지 못할 정도로 크게 정이 들었음을 깨달아 결국엔 엄청 울고 말았다. 내가 울기 시작하니 모두 우는 상황에 이르렀다. 언젠가 또 만날 날을 기약하며 웃으면서 상황은 마무리 되었다. 모두 떠나는 아침이 되고 우리들은 처음 만났던 시라가와구치 역으로 향했다. 모두 같은 열차를 타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떠나는 사람과 떠나보내는 사람이 뒤엉켜 눈물바다를 이루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서로에게 굉장히 정이 들었었던 것 같다. 그렇지 않고서는 그런 상황은 결코 연출 될 수 없으니까 말이다.. 2012년 여름, 일본에서의 값지고 귀한 경험이 내 인생에 얼마만큼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도움을 떠나서 이 경험은 절대 돈 주고 살 수 없는 소중한 경험으로서 내 젊은 날의 추억으로 깊이 가슴에 새겨 두고두고 아련히 기억으로나마 늘 떠올리고 싶다..
특히 일본에서 봉사하는 거라면 무슨 일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이상한 자신감도 생겼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우선 언어적인 면에서 원활하게 소통할 수 있으니까 그런 자신감이 생긴 것 같다. 일본에서 1년 반 간의 어학연수를 끝내고 지난 2월 귀국한 후 나는 대학교에 복학하였고 여름방학이 되면 워크캠프를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많은 정보는 없었지만 오빠가 다녀온 경험을 들어보니 더욱더 가고 싶은 마음이 강해졌다.
그리하여 지난 여름, 정말 정말 뜨거웠던 8월, 이제껏 경험하지 못한 소중한 경험을 하였다..나는 혼자 여행하는 것이 매우 익숙하였고 특히나 나라가 일본이었기 때문에 거부감이 전혀 없었다. 다만 출국 전부터 단체생활이라는 것이 어떤 느낌일까 궁금하기도하면서 걱정이 앞섰다. 이제껏 살면서 단체생활은 길어봤자 2박3일 정도의 수련회 정도였지 2주간의 합숙이라니 …. 너무 걱정 되었다. 이윽고 출국 당일이 되었다. 나는 8월2일부터 시작되는 봉사활동에 앞서 나고야에서 3일정도 혼자 여행하고 싶었기 때문에 7월31일에 출발하였다. 나에게 있어서 일본이라는 나라는 너무나도 마음이 편해지는 곳이다. 우리나라가 아닌 타국에서만 느낄 수 있는 자유로움이 일종의 해방감을 주어서가 아닐까 싶다.
나고야 공항에서 호텔까지의 이동은 아무런 어려움 없이 무사히 도착했다.. 나고야는 처음 간 곳이 아니었기 때문에 더욱더 수월했을지도 모른다. 아무튼 여기저기 관광을 하고 드디어 워크캠프 집합장소인 기후현 시라가와구치역 으로 향하는 날이 왔다.
오전 11시 20분 집합시간을 맞추기 위해 아침 일찍부터 서둘러 신칸센을 타러 갔다. 혹시라도 신칸센에서 워크캠프 참가자들을 마주치진 않을까 이리저리 둘러보았지만 도무지 알 수 없었다. 그러자 막연한 두려움이랄까 혹시라도 나 혼자 참가하는 것은 아니겠지? 하는 불안감도 생기기 시작했다. 신칸센을 타고 두 시간 여 지났을까 곧 도착한다는 안내방송과 함께 긴장감은 더해갔다. 도착하고 신칸센에서 내리니 굉장히 조용한 시골마을의 어느 역과 다름없는 느낌을 받았다. 내리는 사람들을 보니 다양한 국적의 초록빛 눈을 가진 외국인들이 대 여섯명 이 있었다. 그 때 나는 바로 알아차렸다, 그들이 나와 함께 봉사활동을 할 친구들이라는 것을… 개찰구를 향하는 계단을 오를 때 옆에서 같이 오르는 여자아이를 보았다. 내 직감에 한국인 일 것 같은 느낌이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나와 동갑인 한국여자였다. 그 때 느꼈던 기분은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기뻤는데 타국에서 한국인을 만났다는 안도감은 정말이지 기쁨 그 이상이었다.역의 개찰구에서 워크캠프 관계자 분을 만났고 미리 와서 기다리고 있던 일본 대학생들과 합류하였다. 참가했던 일본 대학생들은 모두 12명 정도였는데 나고야상과대학 볼란티어 동아리에서 온 학생들이었다. 이 동아리는 매년 히가시 시라가와고에서 국제워크캠프 참가자들과 함께 봉사한다고 하였다. 모두 처음이라 서먹서먹하게 간단한 일본어로 인사를 나누고 차로 20분 정도 우리들의 숙소로 향했다. 나 이외의 한국인은 2명으로 모두 여자여서 차에서 한국어로 굉장한 수다를 떨었는데 며칠 만에 한국어로 대화할 수 있음에 흥분하였던 것 같다.숙소에 도착하고 서로 인사를 하였다. 자기소개 등등 여자들은 모두 일본어가 능숙했지만 유럽에서 온 남자들은 모두 일본어를 거의 못했기 때문에 다소 불편함이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서로 허물없이 간단한 영어와 일본어, 그도 안될 때는 손짓 발짓 이른바 바디랭귀지를 하며 더욱더 친해지게 되었다. 첫날은 마을 이장님?이라는 분이 우리를 마을회관으로 데려가서 간단한 마을 소개와 우리들이 2주간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려주셨다. 그 후 저녁시간이 되어 숙소에 돌아왔는데 여러 음식들을 준비해 주셔서 배불리 먹을 수 있었다.
이튿날부터 본격적인 봉사활동이 시작되었는데, 생각했던 것 보다 쉬운 일들이었다, 처음 했던 일은 마을에서 화가 활동을 하시는 분들이 매년 여름 숲에서 자신들의 그림을 전시하고 마을 사람들이 와서 보는 전시회 준비를 우리들이 하게 되었다. 나무에 그림을 걸거나 그림에 이름을 붙이거나 하는 단순 노동이었지만 그 일이 끝난 뒤에 둘러보니 뿌듯한 보람을 느낄 수 있었다. 가장 기억나는 힘들었던 순간을 생각하자면 마을에 꽤 큰 계곡이 있었는데 그 근처에 가족끼리 오는 캠핑장을 청소하고 잡초를 뽑는 등 정비하는 일들이다. 특히 계곡으로 들어가는 길목에 있는 잡초들을 땡볕아래에서 뽑는 일이 생각했던 것 보다 굉장히 힘든 작업이었다. 그래도 지금 사진을 보며 생각해보면 그 고생했던 일들이 내 인생에서 어떤 식으로든지 도움이 될 것만 같은 기분이 들어 마음 한 켠에서 어떤 자신감이 솟구친다.저녁준비는 무작위로 그룹을 만들어 매일매일 차례를 돌아가면서 그날 저녁메뉴에 따라 장을 보러 갔고 음식을 만들었는데 이러한 방식이 굉장히 친목을 쌓아주는 역할을 톡톡히 하였던 것 같다. 저녁을 먹은 뒤에는 자유시간이 주어졌는데 이 시간에는 모두 모여 술을 마시거나 게임을 한다거나 했다. 이 시간 동안 가장 기억에 남았던 것은 숙소 근처에 별을 볼 수 있는 곳에 가서 하늘을 바라보며 누워 칠흙 같이 어두운 밤하늘에 무한하게 펼쳐진 별들을 보았던 일이다. 일본의 어느 시골마을에서 이러한 감동적인 경험을 했다는 것은 아마 평생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시간은 흘러 어느덧 워크캠프에서의 마지막 날이 찾아왔다. 아침부터 다음날이면 헤어져야 한다는 무거운 분위기 속에서 마지막 일정인 마을 축제에 참가하였다, 일본에서는 매년 여름 마쯔리(축제)를 하는데 일본의 전통의상인 유카타를 입고 참가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외국인인 우리들은 평소와 같은 복장을 하고 가려고 하는데 갑자기 나고야 상과 대학 측에서 우리들을 위해서 서프라이즈로 유카타를 준비하여 주셨는데 입고 반납하는 줄로만 알았던 유카타가 심지어 선물이라는 것이었다. 일본 드라마나 영화에서만 보았던 유카타를 직접 입어 볼 수 있는 기회를 주신 것만으로도 너무 감사한데 내가 가질 수 있다니 꿈만 같았다. 마을 어르신들이 유카타를 잘 입을 수 있도록 도와주셔서 입고나니 정말 일본인들의 특유의 몸가짐, 예절 등이 몸에 베어나는 듯 하였다 . 유카타를 입고 축제에 참여하면서 일본인들의 문화에 한층 더 다가갈 수 있었던 좋은 기회였고 마지막 날이라는 아쉬움을 뒤로 한 채 모두 즐기면서 재미있게 놀았다.축제가 끝난 뒤, 숙소로 돌아온 우리들은 피곤한 기색이 역력하였지만 마지막 날 인 만큼 밤새도록 먹고 마시며 떠들어댔다. 일본 학생들과 무척 친해져 있던 나는 그들이 하는 이야기를 통해 이번 워크캠프는 매년 해왔던 캠프와는 조금 달랐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 이야기인 즉슨 이번만큼 참가자들과 끈끈하게 유대를 다졌던 적이 없었다는 것이다. 솔직히 말해서 나는 참가하기 전부터 아니 참가하고 나서도 몇 일 지나지 않았을 무렵 생각했던 것이 내가 2주 동안 정이 들면 얼마나 들까 하는 의구심 비슷한 그런 마음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2주라는 시간이 결코 짧지만은 않았고 24시간 동안 그들과 마주하며 지내면서 알아채지 못할 정도로 크게 정이 들었음을 깨달아 결국엔 엄청 울고 말았다. 내가 울기 시작하니 모두 우는 상황에 이르렀다. 언젠가 또 만날 날을 기약하며 웃으면서 상황은 마무리 되었다. 모두 떠나는 아침이 되고 우리들은 처음 만났던 시라가와구치 역으로 향했다. 모두 같은 열차를 타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떠나는 사람과 떠나보내는 사람이 뒤엉켜 눈물바다를 이루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서로에게 굉장히 정이 들었었던 것 같다. 그렇지 않고서는 그런 상황은 결코 연출 될 수 없으니까 말이다.. 2012년 여름, 일본에서의 값지고 귀한 경험이 내 인생에 얼마만큼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도움을 떠나서 이 경험은 절대 돈 주고 살 수 없는 소중한 경험으로서 내 젊은 날의 추억으로 깊이 가슴에 새겨 두고두고 아련히 기억으로나마 늘 떠올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