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후기
킬리만자로, 편견을 넘어선 2주
Indigenous Communities
참가 전 준비와 마음가짐
참 길고도 짧게 느껴졌던 2주가 지나갔다. 처음엔 단순히 아프리카에 가보고 싶다는 생각으로 신청 버튼을 눌렀었는데, 참 우습게도 인천을 떠나는 비행기 안에서 갑자기 덜컥 겁이 나기 시작했다. 밤 비행기라 창문 밖으로 새카맣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서 그런지, 계속 덜컹거리는 비행기 때문인지, 처음으로 혼자 해외에 가는 거라 그런지 원인을 알 수 없는 불안감이 지속됐지만, 왠지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는 내가 굉장히 편안한 표정을 짓고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 생각은 들어맞았다! 물론 일주일 내내 호되게 앓은 배탈 때문에 편안하지 않을 때도 있었기는 하지만 말이다.
탄자니아에 도착한 첫 날은 여러모로 진땀이 나는 하루였다. 실제로 습하고 덥기도 했고, 생각 못했던 상황들이 봇물 터지듯 펑펑 터졌기 때문이다. 비자 받는 데 거의 2시간이 걸렸는데, 줄줄이 소시지처럼 다음 일정이 꼬이기 시작했다. 한국에서 부쳤던 짐이 보이지 않아 한참을 찾았는데 알고 보니 구석에 Lost Luggage 쪽에 있었고, 날 픽업하러 와주기로 했던 사람은 진작에 돌아간 듯 했다. 그렇게 또 1시간 동안 공항 근처를 서성이다가 간신히 현지인 관계자와 연락이 닿아 무사히 숙소로 갈 수 있었다. 미리 각오를 하고 왔다고 생각했는데도, 여기저기서 나를 반기는 큼지막한 벌레들과 샤워시설 대신 있는 양동이, 씻어도 씻어도 땀이 나는 날씨는 적응하기가 힘들었다. 온지 하루밖에 안됐는데 한국이 너무 그리웠다. 그렇게 하룻밤을 보내고 다음날 일어났는데, 신기하게도 기분이 되게 상쾌했다. 다레살람도 오전에는 날이 밝고 시원하기도 했고, 간밤에 조금은 적응이 되어 앞으로도 그리 나쁘지 않을 것 같은 느낌이었다. 생각보다 음식도 입에 잘 맞고, 과일도 많고, 비록 찬물이라도 쓰고 싶을 때 쓸 수 있고, 한국에서보다는 충전이 느렸지만 전기도 쓸 수 있었고…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더니 하루 만에 편안해진 마음이 신기했다. 그렇게 Uvikiuta에서 하루를 더 보낸 뒤, 본격적인 활동 장소인 킬리만자로로 이동했다. 다레살람에서 킬리만자로까지는 버스로 8시간 정도 걸렸는데, 같은 탄자니아임에도 두 지역의 날씨가 확연히 다름을 느낄 수 있었다. 킬리만자로는 날씨가 굉장히 청명했다! 햇빛은 내리쬐지만 습기가 없고, 오전과 저녁에는 시원하기까지 했다. 같이 간 캠퍼들 모두 킬리만자로의 날씨를 좋아했다. 내가 참가한 프로그램에는 탄자니아 현지인, 캐나다인, 한국인들이 있었는데, 비교적 적은 나라에서 참가한 이유는 이 프로그램이 탄자니아와 캐나다 장기 교환 프로그램의 일부였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원래 이루어지고 있던 프로그램에 한국인 캠퍼들이 잠시 합류한 것이다. 사실 이 점은 조금 실망스러웠다. 내가 이번 워크캠프에 기대했던 것 중 하나가 각지에서 온 사람들을 만나보고 활발한 문화교류를 하는 것이었는데, 이미 장기 프로젝트를 통해 서로 많이 친해졌으며 이 프로그램에 익숙해진 사람들 사이에서는 그것을 기대하기가 힘들었다. 그래서 워크캠프 초반에는 실망도 좀 했지만, 역시 함께 먹고 자고 생활하는 힘은 대단한 것인지 서서히 다른 캠퍼들과 정이 쌓이기 시작했다. 다른 참가자들은 거의 영어로 자유로운 의사소통이 가능했는데, 내가 서툰 영어로 더듬더듬 무언가를 물어봐도, 짜증 섞인 대답을 하거나 귀찮은 내색을 보이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모두들 내가 무엇 하나를 물어보면 오히려 그것 이외에 다른 것들까지 차근차근 알려줄 정도로 다정했고, 특히 현지인 캠퍼들은 워크캠프 시작부터 끝까지 한국인 캠퍼들을 챙기느라 고생이 많았다.
게다가 그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쳐주고, 스와힐리어를 배운 것은 워크캠프가 끝난 지금 생각해도 가장 기억에 남는 일 중 하나다. 안니엉, 사뢍해, 잘쟈 등등 서툰 발음으로 매번 한국어를 시도하는 모습은 정말 너무 귀엽고 사랑스러웠다! 심지어 어떤 한 친구는 수첩에 한글을 적어가서 외우고 응용하곤 했는데, 그 모습을 보면서 뿌듯함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두 번째로 기억에 남는 건 아무래도 내가 주로 했던 작업인 Painting이다. 우리는 인근의 학교에 가서 Tree nursery팀과 Painting팀으로 나뉘어 작업을 했고, Painting 팀은 학교 건물의 지붕을 칠했다. 양철지붕이라 움직일 때마다 철컥철컥거려서 처음엔 무섭기도 했고, 오후가 되어갈수록 장렬하게 내리쬐는 햇볕이 뜨겁기도 했지만, 칙칙한 회색 지붕을 싱그러운 녹색으로 물들이고 내려와서 물을 벌컥벌컥 마실 때면 그렇게 상쾌할 수가 없었다. 페인트칠을 하는 와중이나, 끝낸 후 숙소로 돌아갈 때 몇 번 학생들과 마주치기도 했는데, 그럴 때면 아이들은 하나같이 수줍어서 어쩔 줄을 몰라 했다. 탄자니아에, 그것도 시골 지역에 갔기 때문에 거의 어딜 가든 사람들의 시선을 받았고, 그 시선의 50%가 호기심에 뚫어져라 쳐다보기만 했다면 50%는 하얀 이를 내보이며 ‘맘보!’라고 외치고 말을 걸어왔다. 그런 순수한 호기심과 호의는 나까지 기분 좋게 만들었는데, 특히 아이들을 볼 때 그랬다. 내가 지나가면 수군수군하면서 재미있어 했고, 눈이 마주치면 방긋방긋 웃었고, 맘보! 라고 인사라도 하면 거의 까무러치려고 했다. 어느 날은 우연히 하교시간과 일정이 겹쳐 아이들과 함께 걸어간 적이 있었는데, 이름이 뭐냐고 물어본 후 이름을 불러줬더니 얼굴을 손으로 가리며 어쩔 줄을 몰라 하는 모습에 나까지 쑥스러워졌다. 그리고는 조금 있다가 내 옷소매를 당기더니 껌 하나를 주고 줄행랑을 치는데, 그 귀여움에 진짜 마음 속에서부터 웃음이 터져 나왔다. 물론 이들에 대해 좋은 생각만 했던 건 아니다. 우리가 머무는 숙소 근처에 사는 아이들 무리가 있었는데, 하루는 숙소 옆에서 놀고 있길래 같이 얘기를 한 적이 있다. 이 아이들도 참 귀여웠는데, 다른 한국인 캠퍼가 사탕을 나눠주자마자 갑자기 악동들로 변했다. 서로 가져간 사탕을 뺏으며 숨기고 더 달라고 하는 것까진 그렇다고 치는데, 갑자기 나를 비롯한 주변에 있던 다른 캠퍼들에게도 사탕을 달라고 하며, 집에 사탕이 더 있지 않냐고 더 갖다 달라고 계속해서 떼를 쓰더니 내 주머니를 뒤지는 모습에 경악을 했다. 물론 이건 이들의 잘못이 아니라 이들을 이렇게 만든 어른들의 탓인 건 알지만, 그래도 왠지 놀란 마음을 주체할 수가 없어서 주머니를 뒤지면 안 된다고 혼을 낸 뒤 숙소 안으로 들어왔고, 그 후로도 많은 생각을 하게 된 계기였다.그 다음에 기억에 남는 것은 Korean Cultural Night이다. 워크캠프 마지막 날 하루 전 밤에 진행했는데, 나는 항공일정 때문에 다른 캠퍼들보다 하루 일찍 출발해서 그날 밤이 나의 마지막 밤이 되었다. 길게 해봤자 사람들이 잘 듣지 않고 지루해하길래 우리는 파트를 나누어 짧고 굵게 끝내기로 했다. 먼저 위치, 인구, 수도 등 한국에 대한 기본적인 정보를 설명하고, 그 다음으로 사람들이 궁금해하던 북한과 남한의 관계에 대해 설명했다. 그리곤 마지막으로 우리의 언어와 음식 문화에 대해 간략하게 설명했는데, 다행히도 사람들이 잘 따라와줬다. 원래는 현지인 리더가 음식을 생략하는 게 좋겠다고 하길래 가져간 요리재료들을 못 쓰고 올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Korean Food를 맛보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많길래 양해를 구하고 잠깐 부엌을 사용했다. 남은 밥에 소고기고추장을 비벼서 김치랑 김에 싸먹게 했는데, 결과적으로 대성공이었다! 한 두 명을 제외한 외국인 캠퍼들이 모두 너무 맛있다며 남은 밥알까지 싹싹 긁어먹고, 남은 고추장을 챙겨가는 걸 보며 역시 한국음식은 어딜 가나 통한다며 뛸 듯이 기뻐했던 게 기억난다.
이렇게 나의 첫 워크캠프는 막을 내렸다. 처음엔 분명 파리만 봐도 소름이 돋고 찬물샤워가 추워서 오들오들 떨었는데, 2주가 지나는 동안 어느새 나는 손가락만한 벌레를 봐도 그러려니 하게 됐고, 어두워지기 전에 찬물로 빨리 씻은 뒤 상쾌함을 즐기는 것과 전기가 될 때 전자제품을 모조리 충전시켜놓는 게 습관이 되었으며, 별다른 일이 없어도 거실에 나와서 지나다니는 친구들과 노닥거리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지금 한국의 내 방에서 타자를 치면서도, 페인팅을 하느라 새카맣게 탄 손을 볼 때면 탄자니아가 많이 생각난다. 분명 탄자니아는 이 곳과는 많이 다르다.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많은 것을 탄자니아에서는 쉽게 누릴 수 없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 감사하게 되는 것도 많다. 한국에서 정전이 되면 TV를 못 보고, 인터넷을 못하는 그 순간을 못 이겨 짜증이 나지만, 탄자니아에서는 정전쯤이야 하루에도 몇 번씩 일어나는 일상이기 때문에 짜증나고 말 것도 없다. 오히려 정전이 되었다가 전기가 들어오는 순간 여러 방에서 일제히 Yeah~를 외치면 그게 그렇게 웃기고 재미있다. 일상에 감사하게 되는 것 이외에도 탄자니아에는 배울 점이 많다. 이곳 사람들은 참 얼굴 표정이 밝다. 이야기도 좋아하고, 악수나 포옹도 좋아해서 처음 만난 사람과도 5분 이상 대화하는 게 아무렇지 않은 나라다. 부지런하고, 똑똑한 사람도 많고… 탄자니아를 그저 멀리 있는 가난한 나라라고만 생각했던 내가 얼마나 좁은 편견에 사로잡혀 있었는지, 사람들과 이야기하는 순간순간 많이 깨달았다. 그것만으로도, 나의 첫 워크캠프는 참 괜찮은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탄자니아에 도착한 첫 날은 여러모로 진땀이 나는 하루였다. 실제로 습하고 덥기도 했고, 생각 못했던 상황들이 봇물 터지듯 펑펑 터졌기 때문이다. 비자 받는 데 거의 2시간이 걸렸는데, 줄줄이 소시지처럼 다음 일정이 꼬이기 시작했다. 한국에서 부쳤던 짐이 보이지 않아 한참을 찾았는데 알고 보니 구석에 Lost Luggage 쪽에 있었고, 날 픽업하러 와주기로 했던 사람은 진작에 돌아간 듯 했다. 그렇게 또 1시간 동안 공항 근처를 서성이다가 간신히 현지인 관계자와 연락이 닿아 무사히 숙소로 갈 수 있었다. 미리 각오를 하고 왔다고 생각했는데도, 여기저기서 나를 반기는 큼지막한 벌레들과 샤워시설 대신 있는 양동이, 씻어도 씻어도 땀이 나는 날씨는 적응하기가 힘들었다. 온지 하루밖에 안됐는데 한국이 너무 그리웠다. 그렇게 하룻밤을 보내고 다음날 일어났는데, 신기하게도 기분이 되게 상쾌했다. 다레살람도 오전에는 날이 밝고 시원하기도 했고, 간밤에 조금은 적응이 되어 앞으로도 그리 나쁘지 않을 것 같은 느낌이었다. 생각보다 음식도 입에 잘 맞고, 과일도 많고, 비록 찬물이라도 쓰고 싶을 때 쓸 수 있고, 한국에서보다는 충전이 느렸지만 전기도 쓸 수 있었고…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더니 하루 만에 편안해진 마음이 신기했다. 그렇게 Uvikiuta에서 하루를 더 보낸 뒤, 본격적인 활동 장소인 킬리만자로로 이동했다. 다레살람에서 킬리만자로까지는 버스로 8시간 정도 걸렸는데, 같은 탄자니아임에도 두 지역의 날씨가 확연히 다름을 느낄 수 있었다. 킬리만자로는 날씨가 굉장히 청명했다! 햇빛은 내리쬐지만 습기가 없고, 오전과 저녁에는 시원하기까지 했다. 같이 간 캠퍼들 모두 킬리만자로의 날씨를 좋아했다. 내가 참가한 프로그램에는 탄자니아 현지인, 캐나다인, 한국인들이 있었는데, 비교적 적은 나라에서 참가한 이유는 이 프로그램이 탄자니아와 캐나다 장기 교환 프로그램의 일부였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원래 이루어지고 있던 프로그램에 한국인 캠퍼들이 잠시 합류한 것이다. 사실 이 점은 조금 실망스러웠다. 내가 이번 워크캠프에 기대했던 것 중 하나가 각지에서 온 사람들을 만나보고 활발한 문화교류를 하는 것이었는데, 이미 장기 프로젝트를 통해 서로 많이 친해졌으며 이 프로그램에 익숙해진 사람들 사이에서는 그것을 기대하기가 힘들었다. 그래서 워크캠프 초반에는 실망도 좀 했지만, 역시 함께 먹고 자고 생활하는 힘은 대단한 것인지 서서히 다른 캠퍼들과 정이 쌓이기 시작했다. 다른 참가자들은 거의 영어로 자유로운 의사소통이 가능했는데, 내가 서툰 영어로 더듬더듬 무언가를 물어봐도, 짜증 섞인 대답을 하거나 귀찮은 내색을 보이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모두들 내가 무엇 하나를 물어보면 오히려 그것 이외에 다른 것들까지 차근차근 알려줄 정도로 다정했고, 특히 현지인 캠퍼들은 워크캠프 시작부터 끝까지 한국인 캠퍼들을 챙기느라 고생이 많았다.
게다가 그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쳐주고, 스와힐리어를 배운 것은 워크캠프가 끝난 지금 생각해도 가장 기억에 남는 일 중 하나다. 안니엉, 사뢍해, 잘쟈 등등 서툰 발음으로 매번 한국어를 시도하는 모습은 정말 너무 귀엽고 사랑스러웠다! 심지어 어떤 한 친구는 수첩에 한글을 적어가서 외우고 응용하곤 했는데, 그 모습을 보면서 뿌듯함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두 번째로 기억에 남는 건 아무래도 내가 주로 했던 작업인 Painting이다. 우리는 인근의 학교에 가서 Tree nursery팀과 Painting팀으로 나뉘어 작업을 했고, Painting 팀은 학교 건물의 지붕을 칠했다. 양철지붕이라 움직일 때마다 철컥철컥거려서 처음엔 무섭기도 했고, 오후가 되어갈수록 장렬하게 내리쬐는 햇볕이 뜨겁기도 했지만, 칙칙한 회색 지붕을 싱그러운 녹색으로 물들이고 내려와서 물을 벌컥벌컥 마실 때면 그렇게 상쾌할 수가 없었다. 페인트칠을 하는 와중이나, 끝낸 후 숙소로 돌아갈 때 몇 번 학생들과 마주치기도 했는데, 그럴 때면 아이들은 하나같이 수줍어서 어쩔 줄을 몰라 했다. 탄자니아에, 그것도 시골 지역에 갔기 때문에 거의 어딜 가든 사람들의 시선을 받았고, 그 시선의 50%가 호기심에 뚫어져라 쳐다보기만 했다면 50%는 하얀 이를 내보이며 ‘맘보!’라고 외치고 말을 걸어왔다. 그런 순수한 호기심과 호의는 나까지 기분 좋게 만들었는데, 특히 아이들을 볼 때 그랬다. 내가 지나가면 수군수군하면서 재미있어 했고, 눈이 마주치면 방긋방긋 웃었고, 맘보! 라고 인사라도 하면 거의 까무러치려고 했다. 어느 날은 우연히 하교시간과 일정이 겹쳐 아이들과 함께 걸어간 적이 있었는데, 이름이 뭐냐고 물어본 후 이름을 불러줬더니 얼굴을 손으로 가리며 어쩔 줄을 몰라 하는 모습에 나까지 쑥스러워졌다. 그리고는 조금 있다가 내 옷소매를 당기더니 껌 하나를 주고 줄행랑을 치는데, 그 귀여움에 진짜 마음 속에서부터 웃음이 터져 나왔다. 물론 이들에 대해 좋은 생각만 했던 건 아니다. 우리가 머무는 숙소 근처에 사는 아이들 무리가 있었는데, 하루는 숙소 옆에서 놀고 있길래 같이 얘기를 한 적이 있다. 이 아이들도 참 귀여웠는데, 다른 한국인 캠퍼가 사탕을 나눠주자마자 갑자기 악동들로 변했다. 서로 가져간 사탕을 뺏으며 숨기고 더 달라고 하는 것까진 그렇다고 치는데, 갑자기 나를 비롯한 주변에 있던 다른 캠퍼들에게도 사탕을 달라고 하며, 집에 사탕이 더 있지 않냐고 더 갖다 달라고 계속해서 떼를 쓰더니 내 주머니를 뒤지는 모습에 경악을 했다. 물론 이건 이들의 잘못이 아니라 이들을 이렇게 만든 어른들의 탓인 건 알지만, 그래도 왠지 놀란 마음을 주체할 수가 없어서 주머니를 뒤지면 안 된다고 혼을 낸 뒤 숙소 안으로 들어왔고, 그 후로도 많은 생각을 하게 된 계기였다.그 다음에 기억에 남는 것은 Korean Cultural Night이다. 워크캠프 마지막 날 하루 전 밤에 진행했는데, 나는 항공일정 때문에 다른 캠퍼들보다 하루 일찍 출발해서 그날 밤이 나의 마지막 밤이 되었다. 길게 해봤자 사람들이 잘 듣지 않고 지루해하길래 우리는 파트를 나누어 짧고 굵게 끝내기로 했다. 먼저 위치, 인구, 수도 등 한국에 대한 기본적인 정보를 설명하고, 그 다음으로 사람들이 궁금해하던 북한과 남한의 관계에 대해 설명했다. 그리곤 마지막으로 우리의 언어와 음식 문화에 대해 간략하게 설명했는데, 다행히도 사람들이 잘 따라와줬다. 원래는 현지인 리더가 음식을 생략하는 게 좋겠다고 하길래 가져간 요리재료들을 못 쓰고 올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Korean Food를 맛보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많길래 양해를 구하고 잠깐 부엌을 사용했다. 남은 밥에 소고기고추장을 비벼서 김치랑 김에 싸먹게 했는데, 결과적으로 대성공이었다! 한 두 명을 제외한 외국인 캠퍼들이 모두 너무 맛있다며 남은 밥알까지 싹싹 긁어먹고, 남은 고추장을 챙겨가는 걸 보며 역시 한국음식은 어딜 가나 통한다며 뛸 듯이 기뻐했던 게 기억난다.
이렇게 나의 첫 워크캠프는 막을 내렸다. 처음엔 분명 파리만 봐도 소름이 돋고 찬물샤워가 추워서 오들오들 떨었는데, 2주가 지나는 동안 어느새 나는 손가락만한 벌레를 봐도 그러려니 하게 됐고, 어두워지기 전에 찬물로 빨리 씻은 뒤 상쾌함을 즐기는 것과 전기가 될 때 전자제품을 모조리 충전시켜놓는 게 습관이 되었으며, 별다른 일이 없어도 거실에 나와서 지나다니는 친구들과 노닥거리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지금 한국의 내 방에서 타자를 치면서도, 페인팅을 하느라 새카맣게 탄 손을 볼 때면 탄자니아가 많이 생각난다. 분명 탄자니아는 이 곳과는 많이 다르다.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많은 것을 탄자니아에서는 쉽게 누릴 수 없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 감사하게 되는 것도 많다. 한국에서 정전이 되면 TV를 못 보고, 인터넷을 못하는 그 순간을 못 이겨 짜증이 나지만, 탄자니아에서는 정전쯤이야 하루에도 몇 번씩 일어나는 일상이기 때문에 짜증나고 말 것도 없다. 오히려 정전이 되었다가 전기가 들어오는 순간 여러 방에서 일제히 Yeah~를 외치면 그게 그렇게 웃기고 재미있다. 일상에 감사하게 되는 것 이외에도 탄자니아에는 배울 점이 많다. 이곳 사람들은 참 얼굴 표정이 밝다. 이야기도 좋아하고, 악수나 포옹도 좋아해서 처음 만난 사람과도 5분 이상 대화하는 게 아무렇지 않은 나라다. 부지런하고, 똑똑한 사람도 많고… 탄자니아를 그저 멀리 있는 가난한 나라라고만 생각했던 내가 얼마나 좁은 편견에 사로잡혀 있었는지, 사람들과 이야기하는 순간순간 많이 깨달았다. 그것만으로도, 나의 첫 워크캠프는 참 괜찮은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