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후기
부바네스와르, 2주간의 웃음 인도 방랑기
Bhubaneswar – Orissa
참가 전 준비와 마음가짐
25일간의 인도 & 홍콩 여행 중 23일을 함께한 인도. Kolkata – Bhubaneshwar(봉사활동) – Varanasi – Agra – Jodphur – Delhi – Kolkata 순으로 이어진 기웅이의 인도방랑기는 2주간의 워크캠프가 있었던 Bhubaneshwar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냈다.
인도에서의 경험담을 쓰려 하니 그 때의 추억 덕분인지 웃음부터 나온다. 자, 그럼 23일간의 인도방랑기 중 2주간의 워크캠프에 대한 추억을 풀어보고자 한다.
동인도 Odisha 주(우리나라의 경상도, 전라도와 비슷한 개념)의 주도인 Bhubaneshwar(부바네스와르)로 봉사를 하러 가게 되었다. 잉?! 주위 친구들은 관광명소로 유명한 Aurangabad, Agra 등 인도에 대해 공부한 사람이라면 ‘우와, 부럽다~!’가 절로 나올 도시로 가는데 정작 나는.. ‘뭐? 부바.. 뭐?!’ 이름도 참 길다.. 일단 부바네스와르 조금 위에 위치한 옛 수도 Kolkata(캘커타)로 도착하면서 나의 인도생활은 시작되었다. 인도에 도착하자마자 닥친 시련, 한국에서 짐가방이 안오는 초유의 사태가 일어나면서 순탄치 않은 인도여행을 예고하였다. 그리고 인도에 가기 전 사기 당하지 않게 조심하라는 말을 많이 들었는데 역시나 가자마자 외국인들을 대상으로 한 현지인들의 사기 행각은 시작되었다. 정말이지 제대로 알지 못하면 바가지란 바가지는 몽땅 씌우게 되는 택시, 오토 릭샤 요금부터 시작해서 방값, 기념품 가격까지.. 인도에서의 잦은 흥정시비 덕분에 인도를 떠날 때 즈음에는 나와 흥정시비를 붙어 이긴 현지인이 없을 정도로 흥정의 달인이 되었다. (봉사 후 자유여행에서 만난 배낭여행 친구들도 나의 흥정 실력을 인정했을 정도니까)
아무튼 2주간 부바네스와르에서의 봉사활동은 충격적인 봉사단원 구성원과의 첫만남으로 시작되었다. 미팅포인트가 공항입구 앞, 기차역내 몇 번 플랫폼 등이 아닌 Rabindra Mandapa이라는 Dancing Hall Gate No.1에서였다. 미팅포인트부터 범상치 않은 냄새를 풍기더니 처음 조우하게 된 봉사단원 구성은 대박이었다. 한국인 3명과 팀 리더 1명으로 인도인 1명, 총 4명이란다.. 미팅포인트에 우리를 데리러 왔는데 달랑 승용차 1대만 와서 우리를 데리고 가면서 인도에 오기 전 한국에서 들었던 이야기와는 많이 다르게 전개가 되어 가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바라던 건 이런 게 아닌데.. (후에 현지 기관에 종사 중인 대학생 1명이 팀원이 아닌 팀원으로 같이 활동하였다).
부바네스와르가 Odisha 주의 주도라지만 다른 도시에 비하면 시골 수준이었다. 어쩌다 내가 이런 곳에 발령(?)받았지? 라는 생각투성이었다. 숙소는 다행히 현지인이 거주하는 3층 주택 중 비어 있는 꼭대기층에서 살게 되었다. 문화충격을 느끼게 해준 화장실과 가끔씩 출몰하는 귀여운 도마뱀과 함께 살아야 한다는 것을 제외하고는 대체적으로 만족할 만한 수준이었다. 우리가 2주간 봉사하는 Nandankanan High School은 숙소에서 그리 멀지 않았다. 자가용으로 5분 정도? (도보로 25분). 번화가와는 좀 떨어진 외곽이었지만 숙소 앞을 지나가는 시내버스가 있어 이동하는데 큰 불편함은 없었다. 아이들은 정말 착하고 순진했다. 거기서 놀란 것은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 ‘강남스타일’을 알고 있다며 노래를 불러 달라는 것이었다. 노래까지는 무리고 스마트폰에 있는 노래를 켜주니 다들 신나서 춤추고 난리였다. PSY는 정말 대단한 업적을 세우고 있다는 생각을 가졌다. 학교에서의 봉사활동은 벽화 페인팅과 한국어 수업으로 이루어졌다. 오전에는 페인팅, 오후에는 한국어 수업으로 구성되었고 수업을 마칠 즈음에는 교실 밖으로 나가 야외에서 뛰놀며 함께 게임을 하였다. 아이들이 사진 ‘찍히는 것’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내가 지쳐서 그만 찍자고 말했을 정도. 급식으로 나오는 점심 역시 먹을 때마다 우리에게 강한 인상을 심어주었다. 매일매일 노란 카레가 나온다. 그런데 매일매일 맛이 다르다. 그리고 손으로 밥을 비벼 먹는다. 손으로 먹다가 줄줄 흘리고, 먹는데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리자 딱하게 바라보던 교장선생님께서 비서를 시켜 숟가락을 구해와 우리에게 건네주셨다. 숟가락, 젓가락을 쓰는 한국이 좋구나 라는 생각이 절실하게 들었다. 배가 터질 때 까지 한 끼 식사를 제공하는 현지인들 덕분에 짜기만 한 카레를 많이도 먹은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다음 끼니때까지 배고픔을 느끼면 안된다는 생각 때문에 배가 터질 때까지 밥을 먹어야 한다는 생각이 박힌 인도인들의 마음가짐.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이해가 가지 않는 것 중 하나인..
봉사활동을 하지 않는 주말과 학교 자체 시험기간에는 부바네스와르 내의 명소를 둘러보았다. 사원들로 유명한 곳이라 그런지 가는 곳마다 크고 작은 사원들이 즐비하였다. 대표적인 사원 두 군데를 보고 현지인 친구들의 유용한 팁을 받아 봉사활동 후 자유여행을 하며 돌아다닐 기차표 예매까지 어렵지 않게 완료! 인도 기차는 예매하기도 힘들고 타기도 힘들다는 말을 들었는데 그에 비해 나는 전체적으로 편하고 수월하게 기차를 타고 인도를 돌아다닌 듯 하다.
봉사활동을 하면서 아이들이 우리가 그린 페인팅에 관심을 가지고 먼저 다가와 이건 무엇이냐 저 그림에 어떤 게 더 추가되어야 한다는 등 설명해주며 우리에게 도움을 주고 호기심을 가질 때 가장 즐거웠고 보람찬 순간이었다. 인도 지도를 그릴 때 우리가 있는 Odisha 주에 색을 칠하고 있으니 아이들이 우리 여기에 있다고 손가락으로 가리킬 때, 한국을 알릴 수 있는 전통 의상, 국기 등을 그릴 때면 무엇이냐고 먼저 물어보고 특히 한복을 보고는 예쁘다고 말하기까지 한 아이들이 정말 좋았다. 한국어 수업 마찬가지! 기본 인사를 배운 날이었다. 만났을 때 ‘안녕하세요’, 헤어질 때 ‘또 만나요’를 가르쳐 주었는데 수업을 마치고 교문을 나가면서 우리에게 ‘또 만나요~!’라고 바로 응용하던 아이들이 사랑스럽고 한국어를 가르친 나 자신이 자랑스럽고 뿌듯하였다. 봉사활동의 참된 의미를 깨닫는 순간이라고 할까?
2주간의 봉사활동 후 마지막 날 이루어진 피드백 시간에는 헤어질 때를 알아차리고 좀더 남아서 한국어를 배우고 싶고 같이 놀고 싶다는 아이들의 말을 들을 때 아쉽고 아쉬웠다. 정작 우린 많이 해준 것이 없는데 그저 낯선 외국인이 와서 그림을 그려주고 자기 나라에서 쓰는 언어를 가르쳐주었을 뿐인데 아이들에게는 신기하고 재미있었던 시간으로 간직될 것이라는 생각에 떠나는 발걸음이 무거웠다. 봉사활동을 하면서 나를 친하게 따라와준 몇몇 아이들과도 작별인사를 나누고 기념사진도 찍고 즐거웠던 순간을 사진으로나마 남기며 위안을 삼았다.
부바네스와르! 인도에 이런 도시도 있나 싶고 많이 알려진 명소도 아닌 이곳에서 값진 추억을 가지고 올 줄 몰랐다.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나에게 부바네스와르는 관광지로 유명한 여느 도시들만큼 나의 머릿속에 가장 기억 남는 곳으로 자리잡고 있다. 봉사활동 이후에 있었던 1주일 조금 넘는 인도여행에서도 상상 못 할 해프닝을 겪었고 많은 인연을 만났지만 우리 봉사단원들 그리고 아이들과 함께 보냈던 2주의 시간 역시 정말 재미있었고 얘깃거리가 산더미같이 많은 소중했던 때라고 생각한다.
인도를 다녀온 이들은 ‘인도를 다녀오면 꼭 한번 더 가게 될 것이다’라고 하던데..
인도 델리행 비행기 티켓을 끊어 서울행 KTX를 타고 있을 나의 모습이 ‘또’ 그려지는 이유는 뭘까..?
인도에서의 경험담을 쓰려 하니 그 때의 추억 덕분인지 웃음부터 나온다. 자, 그럼 23일간의 인도방랑기 중 2주간의 워크캠프에 대한 추억을 풀어보고자 한다.
동인도 Odisha 주(우리나라의 경상도, 전라도와 비슷한 개념)의 주도인 Bhubaneshwar(부바네스와르)로 봉사를 하러 가게 되었다. 잉?! 주위 친구들은 관광명소로 유명한 Aurangabad, Agra 등 인도에 대해 공부한 사람이라면 ‘우와, 부럽다~!’가 절로 나올 도시로 가는데 정작 나는.. ‘뭐? 부바.. 뭐?!’ 이름도 참 길다.. 일단 부바네스와르 조금 위에 위치한 옛 수도 Kolkata(캘커타)로 도착하면서 나의 인도생활은 시작되었다. 인도에 도착하자마자 닥친 시련, 한국에서 짐가방이 안오는 초유의 사태가 일어나면서 순탄치 않은 인도여행을 예고하였다. 그리고 인도에 가기 전 사기 당하지 않게 조심하라는 말을 많이 들었는데 역시나 가자마자 외국인들을 대상으로 한 현지인들의 사기 행각은 시작되었다. 정말이지 제대로 알지 못하면 바가지란 바가지는 몽땅 씌우게 되는 택시, 오토 릭샤 요금부터 시작해서 방값, 기념품 가격까지.. 인도에서의 잦은 흥정시비 덕분에 인도를 떠날 때 즈음에는 나와 흥정시비를 붙어 이긴 현지인이 없을 정도로 흥정의 달인이 되었다. (봉사 후 자유여행에서 만난 배낭여행 친구들도 나의 흥정 실력을 인정했을 정도니까)
아무튼 2주간 부바네스와르에서의 봉사활동은 충격적인 봉사단원 구성원과의 첫만남으로 시작되었다. 미팅포인트가 공항입구 앞, 기차역내 몇 번 플랫폼 등이 아닌 Rabindra Mandapa이라는 Dancing Hall Gate No.1에서였다. 미팅포인트부터 범상치 않은 냄새를 풍기더니 처음 조우하게 된 봉사단원 구성은 대박이었다. 한국인 3명과 팀 리더 1명으로 인도인 1명, 총 4명이란다.. 미팅포인트에 우리를 데리러 왔는데 달랑 승용차 1대만 와서 우리를 데리고 가면서 인도에 오기 전 한국에서 들었던 이야기와는 많이 다르게 전개가 되어 가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바라던 건 이런 게 아닌데.. (후에 현지 기관에 종사 중인 대학생 1명이 팀원이 아닌 팀원으로 같이 활동하였다).
부바네스와르가 Odisha 주의 주도라지만 다른 도시에 비하면 시골 수준이었다. 어쩌다 내가 이런 곳에 발령(?)받았지? 라는 생각투성이었다. 숙소는 다행히 현지인이 거주하는 3층 주택 중 비어 있는 꼭대기층에서 살게 되었다. 문화충격을 느끼게 해준 화장실과 가끔씩 출몰하는 귀여운 도마뱀과 함께 살아야 한다는 것을 제외하고는 대체적으로 만족할 만한 수준이었다. 우리가 2주간 봉사하는 Nandankanan High School은 숙소에서 그리 멀지 않았다. 자가용으로 5분 정도? (도보로 25분). 번화가와는 좀 떨어진 외곽이었지만 숙소 앞을 지나가는 시내버스가 있어 이동하는데 큰 불편함은 없었다. 아이들은 정말 착하고 순진했다. 거기서 놀란 것은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 ‘강남스타일’을 알고 있다며 노래를 불러 달라는 것이었다. 노래까지는 무리고 스마트폰에 있는 노래를 켜주니 다들 신나서 춤추고 난리였다. PSY는 정말 대단한 업적을 세우고 있다는 생각을 가졌다. 학교에서의 봉사활동은 벽화 페인팅과 한국어 수업으로 이루어졌다. 오전에는 페인팅, 오후에는 한국어 수업으로 구성되었고 수업을 마칠 즈음에는 교실 밖으로 나가 야외에서 뛰놀며 함께 게임을 하였다. 아이들이 사진 ‘찍히는 것’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내가 지쳐서 그만 찍자고 말했을 정도. 급식으로 나오는 점심 역시 먹을 때마다 우리에게 강한 인상을 심어주었다. 매일매일 노란 카레가 나온다. 그런데 매일매일 맛이 다르다. 그리고 손으로 밥을 비벼 먹는다. 손으로 먹다가 줄줄 흘리고, 먹는데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리자 딱하게 바라보던 교장선생님께서 비서를 시켜 숟가락을 구해와 우리에게 건네주셨다. 숟가락, 젓가락을 쓰는 한국이 좋구나 라는 생각이 절실하게 들었다. 배가 터질 때 까지 한 끼 식사를 제공하는 현지인들 덕분에 짜기만 한 카레를 많이도 먹은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다음 끼니때까지 배고픔을 느끼면 안된다는 생각 때문에 배가 터질 때까지 밥을 먹어야 한다는 생각이 박힌 인도인들의 마음가짐.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이해가 가지 않는 것 중 하나인..
봉사활동을 하지 않는 주말과 학교 자체 시험기간에는 부바네스와르 내의 명소를 둘러보았다. 사원들로 유명한 곳이라 그런지 가는 곳마다 크고 작은 사원들이 즐비하였다. 대표적인 사원 두 군데를 보고 현지인 친구들의 유용한 팁을 받아 봉사활동 후 자유여행을 하며 돌아다닐 기차표 예매까지 어렵지 않게 완료! 인도 기차는 예매하기도 힘들고 타기도 힘들다는 말을 들었는데 그에 비해 나는 전체적으로 편하고 수월하게 기차를 타고 인도를 돌아다닌 듯 하다.
봉사활동을 하면서 아이들이 우리가 그린 페인팅에 관심을 가지고 먼저 다가와 이건 무엇이냐 저 그림에 어떤 게 더 추가되어야 한다는 등 설명해주며 우리에게 도움을 주고 호기심을 가질 때 가장 즐거웠고 보람찬 순간이었다. 인도 지도를 그릴 때 우리가 있는 Odisha 주에 색을 칠하고 있으니 아이들이 우리 여기에 있다고 손가락으로 가리킬 때, 한국을 알릴 수 있는 전통 의상, 국기 등을 그릴 때면 무엇이냐고 먼저 물어보고 특히 한복을 보고는 예쁘다고 말하기까지 한 아이들이 정말 좋았다. 한국어 수업 마찬가지! 기본 인사를 배운 날이었다. 만났을 때 ‘안녕하세요’, 헤어질 때 ‘또 만나요’를 가르쳐 주었는데 수업을 마치고 교문을 나가면서 우리에게 ‘또 만나요~!’라고 바로 응용하던 아이들이 사랑스럽고 한국어를 가르친 나 자신이 자랑스럽고 뿌듯하였다. 봉사활동의 참된 의미를 깨닫는 순간이라고 할까?
2주간의 봉사활동 후 마지막 날 이루어진 피드백 시간에는 헤어질 때를 알아차리고 좀더 남아서 한국어를 배우고 싶고 같이 놀고 싶다는 아이들의 말을 들을 때 아쉽고 아쉬웠다. 정작 우린 많이 해준 것이 없는데 그저 낯선 외국인이 와서 그림을 그려주고 자기 나라에서 쓰는 언어를 가르쳐주었을 뿐인데 아이들에게는 신기하고 재미있었던 시간으로 간직될 것이라는 생각에 떠나는 발걸음이 무거웠다. 봉사활동을 하면서 나를 친하게 따라와준 몇몇 아이들과도 작별인사를 나누고 기념사진도 찍고 즐거웠던 순간을 사진으로나마 남기며 위안을 삼았다.
부바네스와르! 인도에 이런 도시도 있나 싶고 많이 알려진 명소도 아닌 이곳에서 값진 추억을 가지고 올 줄 몰랐다.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나에게 부바네스와르는 관광지로 유명한 여느 도시들만큼 나의 머릿속에 가장 기억 남는 곳으로 자리잡고 있다. 봉사활동 이후에 있었던 1주일 조금 넘는 인도여행에서도 상상 못 할 해프닝을 겪었고 많은 인연을 만났지만 우리 봉사단원들 그리고 아이들과 함께 보냈던 2주의 시간 역시 정말 재미있었고 얘깃거리가 산더미같이 많은 소중했던 때라고 생각한다.
인도를 다녀온 이들은 ‘인도를 다녀오면 꼭 한번 더 가게 될 것이다’라고 하던데..
인도 델리행 비행기 티켓을 끊어 서울행 KTX를 타고 있을 나의 모습이 ‘또’ 그려지는 이유는 뭘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