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후기
낯선 곳에서 피어난 따뜻한 마음들
SULURSARI PROJECT
참가 전 준비와 마음가짐
미팅포인트인 데자바토 사무실에서 만난 우리 그룹은 우연히 다른 나라 참가자들의 참가 포기로 인하여 한국인 5명과 2명의 인도네시아 인으로 구성되었다. 봉사지역으로 이동하는 동안 가벼운 눈병이 심해진 나를 위해 우리 모든 팀원들은 병원으로 이동했다. 토요일이라 문을 연 곳을 찾기 힘들어 큰 병원의 응급실까지 가서 진료를 받느라 시간이 지체되었지만 모두들 나의 건강이 우선이라며 이해해 줬다. 에어컨이 없는 나루토 버스를 타고 5시간을 달렸다. 나중에는 비가 와서 창문도 열지 못했다. 한참을 달려 비포장도로가 나오자 캠프리더인 Novi가 도착을 알렸다. 우리가 머물었던 집은 Varno 가족의 집이었다. 사전 OT에서 이전 참가자들의 숙소보다 훨씬 좋아 보였다. Varno의 가족은 우리의 저녁을 준비해 놓고 기다리셨다. 자정이 다 되어서 도착했기 때문에 첫날은 밥을 먹고 바로 잠이 들었다. 다음 날 Varno 가족의 집은 우리를 보기 위해 온 아이들로 둘러싸였다. 아이들은 호기심이 많아 보였지만 우리에게 쉽게 다가오진 못했다. 우리가 하는 행동 하나하나를 지켜보고, 우리가 하는 말을 따라 하기도 했다. 처음 도착하고 1주일 동안은 방에서 낮잠을 잘 때에도 아이들이 창문을 통해 우리를 지켜봤던 것 같다. 요리, 청소, 설거지 등 2주 동안 각자의 할 일을 나눴다.
처음 학교에 방문하던 날, 교장선생님과 다른 선생님들과 인사를 하고 학생들에게 간단하게 우리를 소개하였다. 그리고 이웃의 farming teacher의 논에서 모내기를 잠깐 체험했다. 아이들과 함께 한 시간이 참 즐거웠다. 비록 서로 말이 통하진 않지만 우리는 눈짓 손짓을 통하여 서로 소통할 수 있었다. 그리고 Novi와 대학생 참가자인 Yogi의 통역을 통해서 많은 대화를 할 수 있었다. Varno의 세 아이들도 처음에는 우리를 경계하고 쉽게 다가오지 못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가벼운 대화도 하고, 페이스북 친구도 했다. 정말 사랑스러운 아이들이다. 가장이신 Varno는 한국에 사는 우리의 삶을 궁금해 하셨다. 우리가 살고 있는 아파트, 전통 옷, 결혼 문화 등을 물어보셨는데 우리나라에 대한 자료들을 챙겨갔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Varno의 부인인 Ibu Varno는 서툴게 칼질하는 우리를 보시며 칼질하는 법을 알려주시기도 하시고 언제나 웃어주시며 보이지 않는 곳에서 많은 도움을 주셨다. 다행히도 Sulursari의 많은 사람들이 우리를 좋게 봐주셔서 우리는 경찰서에서 경찰 서장님을 뵐 수도 있었고, Varno가족의 많~은 친척들을 만났다(정말 많은 친척들). 또 어느 곳엘 가든 인도네시아 사람들은 우리와 사진을 찍고 싶어 해서 3년 동안 찍을 사진을 2주 동안 다 찍은 것만 같다. 주말에 우리 그룹은 족자카르타에 가서 튜브케이빙을 하고 보로부두르에 갔는데, 보로부두르에서 만난 학생들이 우리가 한국인이라는 것을 어떻게 알았는지 같이 사진찍자고 하는 바람에 그 곳에서도 엄청난 사진을 찍었다. 오죽하면 Novi는 우리에게 사진 찍을 때 마다 돈을 받으라며 농담을 했다.
Novi는 많은 워크캠프에 참가 한 경험이 있는데(우리나라, 프랑스, 인도네시아 등) 와이파이가 되는 워크캠프는 이번이 처음이라고 했다. 나도 2주 동안은 휴대전화를 시계로만 사용해야겠다고 생각했지만 Varno의 집에는 무선와이파이가 잡혔다. 10대인 Varno의 첫째 딸 Atika 덕분에 우리는 매우 느리지만 와이파이도 사용할 수 있었다. Varno가족의 집에서 마지막 날엔 Atika가 자신의 친구 약 10명을 데려와 또 한바탕 사진을 찍었다.
모기가 참 많다. 혹시나 다음에 Sulursari를 가시는 분이라면 가능하면 잘 때는 긴 옷을 입기를.. 2주 동안의 수많은 기억들을 쏟아내고 싶지만 생각만으로도 행복해지고 또 다른 좋은 기억들이 떠올라 순서대로 정리하는 것이 쉽지가 않다. 2주 동안 함께한 우리 모든 조원들, Varno의 가족들, 옆집 주민들, SDN4 학교 학생, 선생님들, 정말 소중했다.
떠나기 전날, 우리는 마을 사람들을 초대해 닭볶음탕을 대접했다. 그때 Ibu Varno의 동생분이 말씀하셨다. ‘Don’t forget me’. 듣자마자 가슴이 먹먹해졌다. Yogi에게 절대 잊지 않겠다고 전해달라고 했다. 그들이 나를 잊지 못하듯, 나도 절대 그들을 잊지 못할 것이다.
나중에 시간이 흘러 아이들이 자란 것도 보고 싶다.
학생들을 위해 봉사하러 간 것이었지만 결과적으로 내가 많은 것을 배우고, 느꼈다.
처음 학교에 방문하던 날, 교장선생님과 다른 선생님들과 인사를 하고 학생들에게 간단하게 우리를 소개하였다. 그리고 이웃의 farming teacher의 논에서 모내기를 잠깐 체험했다. 아이들과 함께 한 시간이 참 즐거웠다. 비록 서로 말이 통하진 않지만 우리는 눈짓 손짓을 통하여 서로 소통할 수 있었다. 그리고 Novi와 대학생 참가자인 Yogi의 통역을 통해서 많은 대화를 할 수 있었다. Varno의 세 아이들도 처음에는 우리를 경계하고 쉽게 다가오지 못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가벼운 대화도 하고, 페이스북 친구도 했다. 정말 사랑스러운 아이들이다. 가장이신 Varno는 한국에 사는 우리의 삶을 궁금해 하셨다. 우리가 살고 있는 아파트, 전통 옷, 결혼 문화 등을 물어보셨는데 우리나라에 대한 자료들을 챙겨갔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Varno의 부인인 Ibu Varno는 서툴게 칼질하는 우리를 보시며 칼질하는 법을 알려주시기도 하시고 언제나 웃어주시며 보이지 않는 곳에서 많은 도움을 주셨다. 다행히도 Sulursari의 많은 사람들이 우리를 좋게 봐주셔서 우리는 경찰서에서 경찰 서장님을 뵐 수도 있었고, Varno가족의 많~은 친척들을 만났다(정말 많은 친척들). 또 어느 곳엘 가든 인도네시아 사람들은 우리와 사진을 찍고 싶어 해서 3년 동안 찍을 사진을 2주 동안 다 찍은 것만 같다. 주말에 우리 그룹은 족자카르타에 가서 튜브케이빙을 하고 보로부두르에 갔는데, 보로부두르에서 만난 학생들이 우리가 한국인이라는 것을 어떻게 알았는지 같이 사진찍자고 하는 바람에 그 곳에서도 엄청난 사진을 찍었다. 오죽하면 Novi는 우리에게 사진 찍을 때 마다 돈을 받으라며 농담을 했다.
Novi는 많은 워크캠프에 참가 한 경험이 있는데(우리나라, 프랑스, 인도네시아 등) 와이파이가 되는 워크캠프는 이번이 처음이라고 했다. 나도 2주 동안은 휴대전화를 시계로만 사용해야겠다고 생각했지만 Varno의 집에는 무선와이파이가 잡혔다. 10대인 Varno의 첫째 딸 Atika 덕분에 우리는 매우 느리지만 와이파이도 사용할 수 있었다. Varno가족의 집에서 마지막 날엔 Atika가 자신의 친구 약 10명을 데려와 또 한바탕 사진을 찍었다.
모기가 참 많다. 혹시나 다음에 Sulursari를 가시는 분이라면 가능하면 잘 때는 긴 옷을 입기를.. 2주 동안의 수많은 기억들을 쏟아내고 싶지만 생각만으로도 행복해지고 또 다른 좋은 기억들이 떠올라 순서대로 정리하는 것이 쉽지가 않다. 2주 동안 함께한 우리 모든 조원들, Varno의 가족들, 옆집 주민들, SDN4 학교 학생, 선생님들, 정말 소중했다.
떠나기 전날, 우리는 마을 사람들을 초대해 닭볶음탕을 대접했다. 그때 Ibu Varno의 동생분이 말씀하셨다. ‘Don’t forget me’. 듣자마자 가슴이 먹먹해졌다. Yogi에게 절대 잊지 않겠다고 전해달라고 했다. 그들이 나를 잊지 못하듯, 나도 절대 그들을 잊지 못할 것이다.
나중에 시간이 흘러 아이들이 자란 것도 보고 싶다.
학생들을 위해 봉사하러 간 것이었지만 결과적으로 내가 많은 것을 배우고,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