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후기

인도, 두려움 반 설렘 반 첫 걸음

작성자 정혜림
인도 FSL-SPL-186 · SOCI/KIDS 2013. 01 - 2013. 02 Aurangabad(Maharashtra)

Aurangabad – Maharashtra

참가 전 준비와 마음가짐

1월 19일 새벽 1시 30분, 인천 공항으로 향하는 버스에 올랐다. 새벽인데다 4시간이 넘는 이동 시간 때문에 눈 좀 붙일 법도 했지만 도무지 잠을 청할 수가 없었다. 워크 캠프를 준비하는 기간 동안 읽은 책과 수 많은 인터넷 카페에서 본 인도인들의 사기와 속임수, 강도 사건 사례로 인해서 나는 잔뜩 겁을 먹고 있었고 가족들과 친구들의 지나친 걱정도 나를 더 불안하게 만들었다. ‘지금이라도 아저씨한테 차 세워 달라고 할까? 나 자타공인 슈퍼 울트라 길친데 국제 미아되면 어떡하지? 여행 경험도 별로 없는데…’ 하는 걱정이 가는 내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하지만 그런 나의 마음과는 상관없이 출국 시간은 다가왔고 공항에서 같은 캠프에 배정된 친구를 만나 홍콩으로 향하는 비행기에 올랐다.

7시간의 경유 대기 시간 동안 홍콩 시내를 구경하며 알차게 보내고 자정이 조금 넘은 시간 뭄바이 국제 공항에 도착했다. 밤에 여자 둘이서 숙소를 찾아 나서면 위험할 것 같아 날이 밝으면 이동하기로 하고 공항 안 직원들이 근무하고 있는 가장 안전해 보이는 곳에 자리를 잡아 날이 밝기를 기다렸다. 자다 깨다를 반복하면서 무료하게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내 나이 또래쯤 되어 보이는 흑인 한 명이 어디서 왔냐며 말을 걸었다. 뱅갈루르의 한 대학에서 컴퓨터 공학을 전공하고 있고 이름은 Pharel이었는데 붙임성이 워낙 좋고 말을 재미있게 해서 우리는 배낭에 있던 과자를 하나 둘 꺼내 나눠 먹으며 본격적인 이야기 판을 벌이기 시작했다. 내가 인도에 처음 왔고 봉사 활동하러 아우랑가바드로 가는 길이라니까 여자들끼리 다니기엔 위험하고 복잡하다며 기차역까지 직접 택시 타고 데려다 주겠단다. 결코 가까운 거리가 아니었는데 정말로 역까지 같이 가서 플랫폼 위치와 웨이팅 룸까지 일일이 찾아주고 헤어지는 순간까지도 조심해야 된다며 도착하면 페이스 북에 메시지를 남기라고 신신당부를 했다. 너무 고마운데 보답해 줄게 없어서 Pharel이 엄청 좋아하던 한국 과자를 선물로 주고 마지막 인사를 하고 떠났다. 보호해 줄 사람 하나 없는 낯선 곳에서 고슴도치라도 된 마냥 날이 바짝 서 있었는데 인도 여행 첫날부터 세상에 다시 없을 것 같은 좋은 사람을 만나고 나니 뭔가 일이 술술 잘 풀릴 것 같은 예감에 발걸음이 한결 가벼웠다.

7시간을 기차 타고 달려 드디어 미팅 포인트에 도착했다. 20분쯤 뒤 현지인 리더를 만났고 참가자 명단을 확인했다. 그런데 참가자가 한국인 3명에 타이완인 1명 총 4명이었다. 순간 내 눈을 의심하고 총 인원이 4명이냐고 리더에게 물었더니 그렇다고 했다. 게다가 나를 포함한 한국인 세 명은 캠프에 오기 전 서로 연락을 주고 받던 상황이라 새롭게 만난 사람은 캠프 리더와 타이완 친구 한 명 뿐이었다. 유럽, 아프리카, 미국 등 세계 각국에서 온 친구들과 함께하는, 정말 말 그대로 국제적인 워크 캠프를 기대하며 왔는데 실망이 이만 저만이 아니었다. 하지만 한국인 세 명 틈 바구니에 홀로 끼어있는 타이완 아이는 나보다 얼마나 더 당황스러울까 하는 생각에 아쉬운 마음을 애써 감추고 함께 숙소로 향했다.
숙소는 우리가 봉사 활동을 할 학교 바로 건너 편에 있는 곳이었다. 5명이 생활 하기에 조금 좁은 듯 했지만 깔끔했고 무엇보다 학교와 가깝다는 것이 제일 좋았다. 첫날이라 공식적인 일정은 없어서 우리는 바로 옆에 있는 식당에서 밥을 먹고 저녁에는 리더로부터 캠프 일정에 관한 설명을 들으면서 내일 있을 첫 수업에서 무엇을 할 지에 관해 함께 의견을 나누었다.

첫 날, 학교에 도착하니 전교생이 운동장에 모여서 조회를 하고 있었는데 우리가 들어서니 아이들의 시선이 일제히 우리에게 쏠렸다. 그리고 아이들 특유의 꾸밈 없는 환한 미소로 박수를 치며 환영해 주었다. 간단한 자기 소개를 마친 뒤 학교 선생님들께도 인사를 드리고 떨리는 마음으로 교실에 들어섰다. 인도는 주마다 비중을 두고 배우는 언어가 다른데 이 지역의 아이들은 마라티어를 제 1 언어로 사용해서 우리가 수업을 할 때 마다 영어와 마라티어를 유창하게 하시는 선생님께서 통역을 맡아 주셨다. 오전에는 2시간동안 교실에서 수업이 진행됐는데 주로 기초적인 영어 표현과 위생 및 환경 교육, 한국과 타이완 문화 소개를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영어 수업은 자기 소개하기, 출신지 및 나이 묻기와 같은 간단한 영어 회화를 대화 형식으로 만들어서 가르쳐 주었는데 간단한 표현이라 한국어와 중국어 표현도 가르쳐 주었더니 예상 외로 아이들의 반응이 폭발적이었다. 수업이 끝난 후 우르르 몰려와 공책과 펜을 내밀며 한국어와 영어로 자신의 이름을 어떻게 쓰는지 가르쳐 달라고 하더니 마지막에는 내 싸인을 해달라고 해서 마치 유명 인사가 된 기분이었다. 나 역시 마치 그림을 그려 놓은듯한 마라티 글자가 아주 예뻐서 아이들에게 내 이름도 써달라고 했더니 거기에 보태서 1부터 10까지 숫자 헤아리는 법, 상대방 이름을 묻고 대답하는 법 등을 아주 열성적으로 가르쳐 주었다. 그 뒤로 내가 배운걸 외웠는지 못 외웠는지 확인하고 싶었는지 만날 때마다 마라티어로 이름을 묻곤 해서 아직도 “ 마자 나우 리아 헤 (내 이름은 Li A입니다)” 는 내 머리 속에 남아 있다. 나보다 아이들이 선생님 자질이 더 뛰어난 것 같았다.

위생과 환경 보호에 관한 수업에서는 아이들에게 양치질과 손 씻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언제, 어떻게, 몇 분 동안 해야 하는지 단계를 세분화해서 알려주고 끝난 뒤에는 다 함께 환경 보호를 주제로 밑그림을 그리고 모자이크를 만들면서 즐겁게 수업을 이어나갔다.

야외 활동 시간에는 그 전날 회의 시간에 미리 준비한 단체 게임 2,3가지 정도를 함께 하면서 놀았는데 인도에 한국의 전통 놀이와 똑같거나 비슷한 것들이 너무 많아서 깜짝 놀라기도 했다. 어렸을 때 친구들과 함께 했던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 ‘수건 돌리기’ 같은 놀이는 한국에만 있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나의 착각이었다. 특히, 운동장에 앉아서 함께 쉬고 있을 때 공기 놀이 하기에 적당한 크기의 돌멩이 몇 개가 보이길래 한국의 전통 놀이라며 보여주었는데 그 고사리 같은 가느다란 손으로 나보다 더 화려한 기술을 선보이는 것이 아닌가. 이런 놀이들이 인도에서도 한국의 아이들처럼 어릴 때부터 하는 것이라 하니 신기하기도 하고 인도가 더 가깝게 느껴지는 것 같았다.

야외활동이 끝나면 점심을 먹고 좀 쉬다가 페인트 칠을 하러 갔다. 우리가 칠해야 할 것은 학교 정문과 교실 문 4개였는데 팀원들 모두 빨리 끝낼 수 있겠다며 다 끝나면 벽화도 그리자고 야심찬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우리의 계획은 며칠 지나지 않아 무색해지고 말았다. 작은 페인트 붓으로 색깔 예쁘게 내겠다고 여러 번 덧칠하며 작업하다 보니 생각보다 진도가 나가지 않았다. 결국 우리는 캠프 일정 마지막 날에야 겨우 작업을 다 마칠 수 있었다. 항상 가장 더울 시간에 일하느라 힘들기도 하고 전문가가 한 것 처럼 깔끔한 페인트 칠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선생님들과 아이들이 좋아하는 모습을 보니 뿌듯했다.

주말에는 일정이 없어 아우랑가바드에 오면 꼭 들러야 한다는 아잔타,엘로라에 다녀왔고 그 외의 쉬는 시간에는 숙소 주변의 시장에서 군것질도 하고 현지인과 직접 흥정을 하며 장을 보기도 했다. 리더의 말에 의하면 아우랑가바드에 외국인이 자원 봉사를 온 게 우리가 처음이라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주변의 많은 분들이 우리 팀원의 활동에 관심을 갖고 지켜봐 주셨다. 결혼식에 초대를 받아 다녀왔고 집에 직접 초대해 주신 분도 있어서 사먹는 밥과 우리가 묵고 있는 숙소와는 다른, 실제 현지인들이 사는 모습과 음식 문화를 볼 수 있어서 뜻 깊었다. 공립학교를 후원하는 단체의 모임에도 초대 받아 좋은 호텔에서 인도 현지인 뿐만 아니라 멕시코 사람들과도 이야기할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혼자서 여행했다면 누리지 못했을 것들이었다고 생각한다. 주변의 친구들에게도 꼭 도전해 보라고 말해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