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후기

인도에서 마주한 낯선 한국의 모습

작성자 김정민
인도 FSL-SPL-186 · SOCI/KIDS 2013. 01 - 2013. 02 Aurangabad 인도

Aurangabad – Maharashtra

참가 전 준비와 마음가짐

나는 현재 24살이고 곧 4학년에 올라간다. 우리학교 서울여대는 해외봉사프로그램이 잘되어있는데 그 중 하나는 워크캠프이다. 내가 1학년일 때 나의 교내동아리 선배가 독일워크캠프를 다녀오고 강력 추천해주었는데 계속 기회를 잡지 못하다가 3학년 겨울방학이 되어서 워크캠프를 통해 인도로 출발하게 되었다. 사실 인도 말고 다른 여러 나라가 있었지만, 굳이 왜 인도를 택했냐고 물어본다면 내 주변의 익숙한 곳을 떠나 새로운 곳으로 한번 가보고 싶었고 이왕 젊을 때 어려운 곳으로 가보고 싶었다. 태국, 베트남 이런 곳은 나이 들어도 얼마든지 갈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인도를 지원했다. 드디어 출국 날이 금방 다가왔고 인도는 물론이거니와 한국을 떠나는 것은 완전 처음이라서 잠도 잘 못 잤다. 그리고 하도 인도가 위험하다 위험 하다 해서 나 역시도 불안감이 매우 컸다. 그리고 인도에 도착하고 나서 미팅포인트에 갈 때까지 긴장을 놓지 못했다. 물론 나는 운이 좋은 케이스이다. 한국에서부터 우연히 워크캠프 같이하는 한국인언니와 비행기시간이 맞았고 공항에서도 비슷한 또래의 흑인남자와 친해졌는데 그 남자가 기차역까지 택시로 데려다 주고 택시비도 내주고 자기 길을 가서 나는 생각보다 편하게 올 수 있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인도에서 게다가 처음 온 외국인에게 사기 칠까봐 아무나 의심해야하는 판국에 진심으로 도와주고 간 그 흑인이 정말 고마웠고 많은 감동을 받았다. 그 흑인을 본 이후에 한국을 돌아간다면 나도 길 헤매는 외국인 도와주어야겠다고 마음먹었는데 생각보다 그 기회는 일찍 왔다. 후에 한국 가는 비행기에서 옆자리에 중국인여자가 앉아있었는데 한국어를 잘 모르길래 안되는 영어로 알려주기도 하고 승무원에게 중국인이라고 말해주어서 중국어로 의사소통하게끔 그 흑인만큼은 아니어도 내가 할 수 있는만큼 도와주었다. 그러자 나중에 중국인여자가 너무 고맙다고 전하고 가서 행복했었던 기억이 있다. 아무튼 처음으로 인도기차도 타고 겨우 미팅포인트에 도착해서 인도인 리더 바라티를 만나고 다른 한국인언니 현선언니, 대만인친구 애나를 만났다. 그리고 나와 함께 온 혜림언니 그리고 나 이렇게 5명이서 아우랑가바드 워크캠프를 시작하게 되었다. 사실 처음에 참가자구성을 보고 실망했다. 한국인 3명에 대만1명 그리고 봉사자가 4명밖에 안되서 제대로 미스라고 생각했다. 워크캠프가 흐지부지되지 않을까 우려했다. 그리고 한국인셋에 대만한명이니 대만친구 애나가 소외될 가능성이 있겠다는 생각도 하게되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소수의 워크캠프도 대만족이었다. 물론 25명의 워크캠프는 어떠한지는 경험해보지 못해서 모르겠지만 소수였기에 오히려 더 많이 인도문화를 접할 수 있지 않았을 까하다. 그에 대해서는 뒤에 쓰겠다. 하지만 애나가 소외될수있겠다라는 나의 우려는 곧 현실이 되었다. 나도 그걸 미리 눈치챘으면서 잠시 잊어먹고 쉬고 있을 때 한국인언니들과 한국어로 얘기하다가 애나가 “미안한데, 다같이 방에 있을때는 영어로 얘기해줬으면 좋겠다. 너희들이 한국어로 말할 때 알아듣지 못하기 때문에 외로움을 느낀다.” 라고 불만을 얘기했고 그 이후로 나는 한국인언니들보다 리더 바라티나 애나에게 더 말을 걸고 가까이 지냈다. 사실 나는 현선언니나 혜림언니보다 더 영어실력이 형편없고 혼자 못알아듣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그리고 인도아이들 앞에서 수업할때도 나는 영어 때문에 긴장하고 소극적인편이었다. 그래서 인도에 온지 3,4일지날때 영어 때문에 기죽기 시작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내가 인도에 온 동기를 생각하니 ‘나는 이러려고 온게 아니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생각이 딱 드는 순간, 나는 다시 기운을 차리고 내 영어실력에 집중하지 않고 단순하게 나가기로 했다. 바라티와 애나에게 할말이 있으면 말 막던졌다. 단어라도 던졌다. 그런식으로 하다보니 애나와 안되는 영어로 한시간을 떠들고있는 나를 발견했다. 그리고 나 먼저 안되는 영어로 말시키고 묻고 말이다. 그래서 나는 외국인 친구와 즐겁게 잘지냈다. 나중에 봉사끝나고 한국인언니들이 애나가 나와 있을때는 항상 즐거워보였다는 말에 또 감동받고 행복했다. 외국인들을 만날 때 영어실력이 중요한게 아니라 그들에게 마음을 여는 능력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 하는게 워크캠프를 다녀오고 배운 점중에 하나다. 그래서 인도다녀온뒤로 영어사용에 자신감이 늘었다. 비록 실력은 형편없지만..물론 이것이 영어공부의 한 동기가 되었다. 좀 더 시간이 지나도 이 동기가 쉽게 사라지지 않았으면 하다. 또한 위에 소수였기에 인도문화를 많이 체험할 수 있었다고 말했는데 아마 다수였다면 아우랑가바드의 유적지를 모두 돌기 힘들었을 것이다. 우리는 엘로라, 아잔타, 다울라타바드 등 모두 가보았다. 그런데 이 유적지를 가는데 시간도 오래 걸리고 교통수단도 만만치 않다. 특히 아잔타 같은 경우는 아우랑가바드에서 차로 3시간이나 걸린다. 그러니 다수였다면 저기 있는 유적지를 다 가보지 못했을 것이다. 아무튼 유적지 가는 길이 만만치 않았음에도 우릴 이끌고 가느라 수고한 바라티가 너무 고맙다. 엘로라, 아잔타석굴에 많은 부처님상이 있었는데 문득 석굴암부처님이 생각나서 결국 인도 다녀온후에 경주로 여행 가고말았다. 확실히 부처님 상도 각 나라마다 얼굴이 다름을 느꼈다. 그리고 다울라타바드는 꼭대기 산전망대에서 본 풍경을 잊을 수가 없다. 사실 올라가는데 너무 힘들지만 멋있는 풍경에 힘듬을 잊었다. 내가 그렇게 말하니 바라티가 그게 우리 인생과 같다고 말해주었다. 이렇게 유적지도 가보고 인도인의 결혼식도 참석해볼 기회가 있었다. 나에게 찾아오기 힘든 기회였기에 가기전부터 신이 났다. 우리가 봉사하는 학교가 공립학교같은 곳인데 rotary club이라는 곳에서 학교를 지원한다. 그 rotary club 회장님의 자제분이 마침 결혼하게되어서 우린 운좋게도 참석하게 되었다. 인도 전통결혼식은 처음보기 때문에 신기했다. 또한 rotary club 디너파티에도 초대받아서 그 기관에 소속된 칠레인들도 만나서 인사하기도 했다. 또한 그 기관 관계자 분의 가정집도 방문하고 식사도 함께하고 이웃과도 인사하는등 rotary club 분들 덕분에 인도에 베낭여행왔어도 경험해보지 못할 인도의 문화를 느끼게 되는 아주 고마운 기회가 되었다. 그분들께도 감사드린다. 결혼식, 가정집방문등도 아무 다수였으면 힘들었을 것이다. 나중엔 오히려 소수여서 더 좋았다. 이제서야 봉사내용으로 넘어온다. 우리는 인도학생들에게 기초적인 영어와 손 씻는 방법등의 위생에 대해 알려주고 같이 운동장에서 노는 일을 하였다. 그리고 오후에는 학교 문을 페인트질하는 작업을 하였다. 사실 생각해보면 우리가 그들에게 한 것보다 우리가 더 아이들에게 배운 것 같다. 나는 아이들의 순진함과 천진난만함에 즐거웠다. 그리고 수업에 열정적이고 우리들보다도 똑똑했다. 특히나 손 씻는 방법을 우리들보다 더 잘 알아서 많이 놀랬다. 또한 항상 학교에 우리가 올 때마다 반갑게 맞아주어서 기분이 좋았다. 그리고 어디서 따오는지 모르겠는데 늘 꽃을 선물해주었다. 나는 아직도 아이와 손을 잡았을 때의 감촉을 잊지 못한다. 다들 하나같이 이뻤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아이들이 그립다. 난 많이 주질 못하는데 항상 아이들에게만 받기만 한 것 같아서 미안하다. 학교 마지막 날, 우리는 아이들에게 헤나까지 받았다. 나는 일부러 내 팔에 헤나그려주는 애에게 너의 이름을 새겨달라고 말해주었다. 그 아이도 보고싶다. 헤나 정말 잘 그려줬는데. 아이들과 운동장에서 뛰놀던 시간도 생각난다. 그곳에서 우린 한국 게임도 알려주고 했다. 마지막으로 한국 프레젠테이션을 했을 때를 쓰고 싶다. 한국 발표를 준비하면서 먼 타지에서 처음으로 한국에 대해 진심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나는 당연히 내 나라에 대해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실상은 하나도 아는 게 없었다. 그게 너무 부끄러웠다. 이렇게 내 나라에 대해 말 하는게 힘들다니..그리고 급하게 조사하긴 했지만 우리나라가 참 좋은 나라구나를 느꼈다. 물론 인도에서 생활하다보니 느낀 것도 있다. 난 인도에 돌아와서 친구들이 다녀온 소감을 물으면 ‘한국이 최고야!’라고 말했다. 오죽하면 과거에 일본이 우리나라를 탐낼 만하다고 느낄 정도였다. 사계절도 뚜렷하고 산도 있고 바다도 있고 한글도 과학적이고 우수하고 음식도 맛있고(당연한 것처럼 느끼겠지만 한국 돌아와서 나는 이제 한국 밥이 제일 맛있다.) 솔직히 실제로 본 결과, 아잔타의 부처님보다 석굴암 부처님이 더 이쁘고 정교하게 잘 만들어졌다. 거의 애국자가 되서 돌아왔다. 한국 발표 이후 내가 많이 바뀌지 않았나한다. 발표이후 한국돌아가서 할일을 메모했다. ‘한국여행을 간다. 한국역사를 공부한다. 이제부터 나의 영어공부의 목적은 외국인들에게 나를 소개하고 나의 나라를 소개하는 것이 목적이다.’
하지만 아무리 한국이 최고여도 인도에서 부러운 점이 하나 있다. 비록 그들이 발전의 과도기이기 때문일 수 있겠지만 외국인의 눈에 인도여행을 오면 인도의 특징이 보인다. 그들만의 문화가 보인다. 그들은 아직도 전통의상을 입고 다니고 텔레비전도 보면 볼리우드라고 그들만의 문화가 있다. 그래서 많은 외국인들은 인도는 매력이 있는 나라라고 생각한다고 본다. 그런데 한국을 생각하니 한국은 그리 특징이 보이지 않는다. 다른 나라와 큰 차이가 보이지 않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게 너무 부러웠다. 학교에서 한 아이가 물었다. “근데 왜 너희들은 한복을 입지 않고 있니?” 그 말이 아직도 뇌리에 박혔다. 그 이후로 경주여행을 갔을 때 한옥으로 만든 이쁜 카페를 보았고 도시전체가 신라유적지인 이 도시를 보며 신비롭다는 생각을 하였다. 그러면서 어디에선가 들었던 ‘가장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인 것이다’라는 것을 인도에서의 풍경과 오버랩 되면서 깨달았다. 워크캠프는 비록 끝났지만 나에게 새로운 시작을 주었다. 어떤 직업을 하게 될진 모르겠지만 외국인을 만나면 당당히 한국의 민간외교관이 되기로 마음먹었다. 이미 내일로로 한국여행을 다녀오고 도서관에서 한국역사책을 빌려 읽고 있고 중국어수업을 수강하고 영어공부도 다시 시작하면서 그렇게 새롭게 준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