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후기
페루, 영화처럼 펼쳐진 나의 남미
Making a Better School VI
참가 전 준비와 마음가짐
내가 처음 페루에 워크캠프를 가야겠다고 결심한 계기는 모터싸이클 다이어리라는 영화 때문이다. 그 영화를 보면서 나도 꼭 남미에 가고 싶다고 생각을 했고, 미국에 교환 학생으로 나와 있는 지금이 남미를 갔다 오기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친구에게 추천 받은 국제 워크 캠프 기구 사이트에 들어가서 남미 쪽 워크 캠프 정보에 대해서 알아 보았고, 그 때 국가와 주제 모두 만족시키는 프로그램이 페루가 있었고, 결정하게 되었다. 사실 국제 워크 캠프를 통해서 봉사활동과 여행을 함께 할 수 있다는 부분이 제일 끌렸고, 또한 일반 여행보다 싸게 다녀올 수 있다는 점도 매력적이었다. 하지만 생각만큼 많이 돈을 아낄 수 있다던가 하는 것은 아니었던 것 같다.
페루에 처음 도착했을 때, 남미는 처음이고 스페인어라고는 Hola밖에 몰랐기 때문에 어색하기도 하고, 겁이 조금 나기도 했다. 하지만 페루 리마에 있는 한인 민박에 하루 머물며 주변 관광을 하다 보니 페루와 남미의 매력에 빠져들어 정말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에 사로잡혔다. 리마에서 피우라로 비행기를 타고 이동해서 택시를 타고 집결지로 향하는데,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동네가 훨씬 작았다. 동네의 길은 모래로 이루어져 있었고, 주변의 집들 또한 좋은 상태가 아니어서 그 때부터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주소가 적힌 종이로 택시 기사님께서 그 근처 집에 데려다 주었고, 그 앞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그 때 마을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던 것 같다. 한국에서도 시골 할머니댁이라던지 농촌에 많이 가 봤는데, 그것과는 확실히 달랐다. 우선, 12월 말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덥고 습한 날씨였고, 동네 길이 모래로 이루어져 있어서 먼지도 많았고 주변 집들과 사람들도 너무 어색했다. 피우라라는 지역에는 외국인이 많이 오지 않고, 특히 동양인들은 거의 없어서 현지인들이 한국인을 굉장히 신기하게 쳐다 봤던 것도 인상깊었다. 봉사자들의 숙소는 현지 리의 집이었고, 워크 캠프 참가자들은 한국인 3명, 멕시코인 2명 이렇게 총 5명이었다. 멕시코에서 온 남자 분 한 명 빼고는 4명이 모두 여자였으며, 참가자 리더는 정하지 않았다. 현지 리더가 참가비를 유로나 달러가 아닌 페루 화폐로 걷었다. 그리고 참가자들 중에서 한국인 세 명, 멕시코 인 두 명, 이렇게 두 그룹으로 짜서 요리 당번을 정했고, 매일 돌아가면서 청소 당번을 정했다. 홈스테이를 했던 집에 대해서 얘기를 하자면, 솔직히 그 곳 동네에 도착하면서 숙소라던가 환경이 그렇게 좋을 것이라고 기대를 하지 않았다. 물론 좋은 환경에서 숙식을 하며 봉사 활동을 할 것을 기대하고 간 것은 아니지만, 최소한 기본적으로 우리가 그 곳에서 생활할 수 있을 정도는 되었으면 했다. 우선 집이 작은 편이었고, 거실, 부엌, 화장실, 참가자들 방 이렇게 구분할 수 있다. 거실에 식탁이 있어서 부엌에서 요리를 하고 거실에서 밥을 먹었고, 부엌은 싱크대, 가스레인지 등이 있지만, 가스레인지는 직접 성냥으로 불을 붙여서 이용할 수 있고, 청결 상태가 좋지 않았다. 개미가 정말 많았다는 것이 지금은 추억이 되었지만 그 당시에는 부엌에 있는 개미들이 정말 스트레스였다. 싱크대 쪽에 옷이 닿으면 엄청 많은 개미가 옷에 붙어 있고, 부엌에 음식을 놔두면 (예를 들면, 쌀, 밀가루, 설탕 등등) 음식 안에 개미가 다 들어가서 곤혹스러웠다. 싱크대도 물이 잘 막혔었다. 그리고 부엌 바로 옆에 빨랫줄이 걸어져 있고, 그 옆 작은 세면대에서 손빨래를 해야 했다. 차가운 물만 나왔고, 따뜻한 물은 안 나오고 샤워할 때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날씨가 정말 덥기 때문에, 따뜻한 물은 꼭 필요하지 않다. 하지만 문제는, 물이 차갑고 따뜻하고가 아니라 물이 안나온다는 것이다. 한 두번 그러는 것이 아니라, 자주 물이 끊겨서 샤워하지 못한 적이 많다. 앞에서 계속 말했다 싶이 그 곳 날씨는 덥고 습하기 때문에 하루에 두 세번 씩 샤워를 해야 할 때가 많은데, (특히 일을 하고 들어오면) 물이 안나와서 샤워를 못하기도 하고, 그렇게 물이 끊길 때면 화장실 물도 내려가지 않는다. 그리고 화장실 수압 자체가 약했기 때문에, 가끔 화장실을 갈 때 1.5 리터 짜리 페트병을 들고 가기도 했다. 또 화장실은 깨끗하지 않은 편이며, 캠프의 중후반기에는 화장실 샤워 부스 쪽 하수구가 막히거나 물이 새기도 했다. 참가자들이 자는 방은, 방이라기 보다는 창고 같은 개념에 가까웠던 것 같다. 침낭을 가져가긴 했지만, 바닥이 시멘트로 이루어져 있고, 깨끗하지 않아 침낭 밑에 깔 무언가가 필요했는데, 그 때 박스를 깔고 침낭을 깔았었다. 그렇게 청결한 편은 아니며, 잠을 자거나 일을 끝내고 쉴 때 누울 수 있는 정도였다. 침낭이 보온을 위한 용도라기 보다는 날씨가 덥기 때문에 잘 때 밑에 까는 이불 용도로 쓰였고, 멕시코에서 온 참가자 분이 에어매트리스를 들고 왔는데, 그 분들은 정말 유용하게 잘 쓰셨다. 생활하면서 물론 그 환경에 적응도 했지만, 원래 상황보다 더 상황이 심각해지는 경우도 있어서, (개미, 물 문제) 시설이 만족스럽지는 못했었다.
봉사활동은 처음 초콜라타와 파네통을 나눠주는 학교를 빼고는 모두 가까운 학교에서 이루어졌다. 학교는 집에서 걸어서 5분도 걸리지 않을 만큼 가까이 있고, 학교에서 한 교실에 있는 낡은 책걸상을 고치는 것이 봉사활동이었다. 내가 갔던 시즌이 크리스마스 시즌이었기 때문에, 첫 날은 택시를 타고 먼 학교에 가서 초콜랏타(핫초코)와 파네통, 그리고 장난감을 나눠줬는데, 참가자들의 사전참가비로 그것들을 현장 리더가 미리 사놨고, 우리는 아이들에게 나눠주었다. 그 학교는 가난한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였고, 초등학교 저학년 이하의 아이들을 모아서 나누어 줬다. 그리고 가까운 학교에서는 오전에 3시간 정도는 책걸상을 고치고, 오후에 두시간에서 세시간 정도 간단한 한국어 수업과 게임을 하며 아이들과 놀았다. 처음 일주일 반 정도는 아이들이 많이 오지 않았고, 1명만 온 적도 있었다. 그 때 그 사람은 고등학생이었는데, 일본어를 가르쳐 달라고 해서 당황스러웠던 적도 있었다. 그 이후에 점점 아이들이 많이 오기 시작했고, 간단한 한국어 회화를 가르치고, 멕시코 게임을 하고 가끔 한국 게임을 하기도 했다. (얼음땡,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등등) 책걸상을 고치는 일은, 먼저 사포로 책걸상을 밀어서 깔끔하게 정돈해 놓고, 갈색 페인트로 페인트 칠을 하고, 검은색으로 마무리를 했었다. 그리고 남는 시간에는 참가자들끼리 택시나 모토같은 걸 타고 시내로 나가서 크레몰라다(페루 음료수)나 아이스크림을 먹기도 하고, 페루 전통 과자를 사기도 하며 시간을 보냈었다. 그리고 인터넷 문제는, 인포싯에는 이용할 수 있다고 나와있지만 현장 리더가 노트북이 있긴 한데, 그걸 이용하려면 처음에는 돈을 내라고 했고, 또 그 다음에는 그냥 이용할 수 없다고 했었다. 그래서 그 집에서 걸어서 5분 정도 떨어져 있는 집에서 인터넷을 이용하기 위해 한 사람당 10 솔레스 씩을 지불하고 핸드폰으로 와이파이를 이용할 수 있도록 부탁을 드렸다. 하지만 숙소에서는 인터넷을 이용할 수 없었고 그 집 앞에까지 가야했다. 하지만 그 동네에는 아시안들이 없기 때문에 한국인을 굉장히 신기하게 생각하고 모든 사람들이 다 쳐다보면서 지나간다. 또 그냥 핸드폰을 사용하다가 소매치기를 당할 위험도 있으니까 조심하는 것이 좋다. 한 가지 인상 깊던 것은, 모든 사람들은 한국인인지 중국인인지 구분하기 힘드니까 우리가 지나갈 때마다 “치나” 라고 외쳐댄다는 것이다. 치나는 중국인을 말하는 것인데, 사람들이 치나라고 부르면서 휘파람 부는 일이 굉장히 많다. 그리고 그냥 바로 사람 얼굴 앞에까지 와서 얼굴만 빤히 쳐다보고 가는 일도 있다. 또 날씨가 정말 더워서 모기도 정말 많다. 물린디는 필수!
사실 워크캠프 기간동안 행복했다고 하기에는 어렵다. 생활하면 생활할수록 불만이 나왔고, 돈 문제에 관해서도 끝에는 문제가 일어났다. 참가비를 현지 리더, 집 주인이 걷는데 그 돈이 어디에 어떻게 사용되는지 우리는 전혀 알지도 못하고, 참가비를 사용할 때는 항상 현지 리더가 같이 가야 하며, 기본적으로 돈의 사용에 대해서 얼마나 썼는지, 얼마나 남았는지를 알지 못하니 마지막에 현지 리더와 참가자들 사이에 살짝 갈등이 있었다. 이 부분은 꼭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참가자들이 낸 돈이 5명이니까 150만원 정도 되는데, 그 돈을 현지 리더가 아닌 참가자 리더가 관리해야 맞다고 생각한다. 만약 우리의 참가비에서 숙박비 정도가 지불되어야 한다면 그건 우리가 지불을 하고 나머지 돈을 우리가 관리해야지, 현지 리더에게 모두 주고 더군다나 그 내역을 알지 못한다면 결국 갈등이 생길 수 밖에 없는 문제이다. 이 부분을 기구에서 더 확실하게 해주셨으면 한다.
그 당시에는 빨리 시간이 갔으면 좋겠다, 빨리 피우라에서 벗어나고 싶다고 생각을 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 시간도 소중한 추억이되는 것 같다. 특히 아이들과 함께 보내는 시간은 정말 즐거웠고, 그 아이들 때문에 또 피우라를 방문하고 싶은 마음이 생길 정도로 아이들이 너무 순수하고 예뻤다. 이번 봉사 활동에서 좋은 환경에서 생활하지 않았고, 봉사 내용도 그렇게 특별하지 않았다. 그렇게 때문에 아쉬운 점이 굉장히 많았지만, 그 속에서 내가 현재 가지고 있는 것들에 대해 소중함을 간절히 느낄 수 있었고, 페루라는 곳에 대해서 가지고 있던 생각들이 변하거나, 또는 가지고 있지 않았던 생각들이 나타나기도 했다. 분명히 이 워크캠프는 내게 소중한 경험이었다. 그리고 내가 이렇게 봉사활동을 하는 것도 내 평생 추억으로 남을 것이고, 기억 속에 소중히 남을 것 같다.
페루에 처음 도착했을 때, 남미는 처음이고 스페인어라고는 Hola밖에 몰랐기 때문에 어색하기도 하고, 겁이 조금 나기도 했다. 하지만 페루 리마에 있는 한인 민박에 하루 머물며 주변 관광을 하다 보니 페루와 남미의 매력에 빠져들어 정말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에 사로잡혔다. 리마에서 피우라로 비행기를 타고 이동해서 택시를 타고 집결지로 향하는데,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동네가 훨씬 작았다. 동네의 길은 모래로 이루어져 있었고, 주변의 집들 또한 좋은 상태가 아니어서 그 때부터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주소가 적힌 종이로 택시 기사님께서 그 근처 집에 데려다 주었고, 그 앞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그 때 마을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던 것 같다. 한국에서도 시골 할머니댁이라던지 농촌에 많이 가 봤는데, 그것과는 확실히 달랐다. 우선, 12월 말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덥고 습한 날씨였고, 동네 길이 모래로 이루어져 있어서 먼지도 많았고 주변 집들과 사람들도 너무 어색했다. 피우라라는 지역에는 외국인이 많이 오지 않고, 특히 동양인들은 거의 없어서 현지인들이 한국인을 굉장히 신기하게 쳐다 봤던 것도 인상깊었다. 봉사자들의 숙소는 현지 리의 집이었고, 워크 캠프 참가자들은 한국인 3명, 멕시코인 2명 이렇게 총 5명이었다. 멕시코에서 온 남자 분 한 명 빼고는 4명이 모두 여자였으며, 참가자 리더는 정하지 않았다. 현지 리더가 참가비를 유로나 달러가 아닌 페루 화폐로 걷었다. 그리고 참가자들 중에서 한국인 세 명, 멕시코 인 두 명, 이렇게 두 그룹으로 짜서 요리 당번을 정했고, 매일 돌아가면서 청소 당번을 정했다. 홈스테이를 했던 집에 대해서 얘기를 하자면, 솔직히 그 곳 동네에 도착하면서 숙소라던가 환경이 그렇게 좋을 것이라고 기대를 하지 않았다. 물론 좋은 환경에서 숙식을 하며 봉사 활동을 할 것을 기대하고 간 것은 아니지만, 최소한 기본적으로 우리가 그 곳에서 생활할 수 있을 정도는 되었으면 했다. 우선 집이 작은 편이었고, 거실, 부엌, 화장실, 참가자들 방 이렇게 구분할 수 있다. 거실에 식탁이 있어서 부엌에서 요리를 하고 거실에서 밥을 먹었고, 부엌은 싱크대, 가스레인지 등이 있지만, 가스레인지는 직접 성냥으로 불을 붙여서 이용할 수 있고, 청결 상태가 좋지 않았다. 개미가 정말 많았다는 것이 지금은 추억이 되었지만 그 당시에는 부엌에 있는 개미들이 정말 스트레스였다. 싱크대 쪽에 옷이 닿으면 엄청 많은 개미가 옷에 붙어 있고, 부엌에 음식을 놔두면 (예를 들면, 쌀, 밀가루, 설탕 등등) 음식 안에 개미가 다 들어가서 곤혹스러웠다. 싱크대도 물이 잘 막혔었다. 그리고 부엌 바로 옆에 빨랫줄이 걸어져 있고, 그 옆 작은 세면대에서 손빨래를 해야 했다. 차가운 물만 나왔고, 따뜻한 물은 안 나오고 샤워할 때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날씨가 정말 덥기 때문에, 따뜻한 물은 꼭 필요하지 않다. 하지만 문제는, 물이 차갑고 따뜻하고가 아니라 물이 안나온다는 것이다. 한 두번 그러는 것이 아니라, 자주 물이 끊겨서 샤워하지 못한 적이 많다. 앞에서 계속 말했다 싶이 그 곳 날씨는 덥고 습하기 때문에 하루에 두 세번 씩 샤워를 해야 할 때가 많은데, (특히 일을 하고 들어오면) 물이 안나와서 샤워를 못하기도 하고, 그렇게 물이 끊길 때면 화장실 물도 내려가지 않는다. 그리고 화장실 수압 자체가 약했기 때문에, 가끔 화장실을 갈 때 1.5 리터 짜리 페트병을 들고 가기도 했다. 또 화장실은 깨끗하지 않은 편이며, 캠프의 중후반기에는 화장실 샤워 부스 쪽 하수구가 막히거나 물이 새기도 했다. 참가자들이 자는 방은, 방이라기 보다는 창고 같은 개념에 가까웠던 것 같다. 침낭을 가져가긴 했지만, 바닥이 시멘트로 이루어져 있고, 깨끗하지 않아 침낭 밑에 깔 무언가가 필요했는데, 그 때 박스를 깔고 침낭을 깔았었다. 그렇게 청결한 편은 아니며, 잠을 자거나 일을 끝내고 쉴 때 누울 수 있는 정도였다. 침낭이 보온을 위한 용도라기 보다는 날씨가 덥기 때문에 잘 때 밑에 까는 이불 용도로 쓰였고, 멕시코에서 온 참가자 분이 에어매트리스를 들고 왔는데, 그 분들은 정말 유용하게 잘 쓰셨다. 생활하면서 물론 그 환경에 적응도 했지만, 원래 상황보다 더 상황이 심각해지는 경우도 있어서, (개미, 물 문제) 시설이 만족스럽지는 못했었다.
봉사활동은 처음 초콜라타와 파네통을 나눠주는 학교를 빼고는 모두 가까운 학교에서 이루어졌다. 학교는 집에서 걸어서 5분도 걸리지 않을 만큼 가까이 있고, 학교에서 한 교실에 있는 낡은 책걸상을 고치는 것이 봉사활동이었다. 내가 갔던 시즌이 크리스마스 시즌이었기 때문에, 첫 날은 택시를 타고 먼 학교에 가서 초콜랏타(핫초코)와 파네통, 그리고 장난감을 나눠줬는데, 참가자들의 사전참가비로 그것들을 현장 리더가 미리 사놨고, 우리는 아이들에게 나눠주었다. 그 학교는 가난한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였고, 초등학교 저학년 이하의 아이들을 모아서 나누어 줬다. 그리고 가까운 학교에서는 오전에 3시간 정도는 책걸상을 고치고, 오후에 두시간에서 세시간 정도 간단한 한국어 수업과 게임을 하며 아이들과 놀았다. 처음 일주일 반 정도는 아이들이 많이 오지 않았고, 1명만 온 적도 있었다. 그 때 그 사람은 고등학생이었는데, 일본어를 가르쳐 달라고 해서 당황스러웠던 적도 있었다. 그 이후에 점점 아이들이 많이 오기 시작했고, 간단한 한국어 회화를 가르치고, 멕시코 게임을 하고 가끔 한국 게임을 하기도 했다. (얼음땡,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등등) 책걸상을 고치는 일은, 먼저 사포로 책걸상을 밀어서 깔끔하게 정돈해 놓고, 갈색 페인트로 페인트 칠을 하고, 검은색으로 마무리를 했었다. 그리고 남는 시간에는 참가자들끼리 택시나 모토같은 걸 타고 시내로 나가서 크레몰라다(페루 음료수)나 아이스크림을 먹기도 하고, 페루 전통 과자를 사기도 하며 시간을 보냈었다. 그리고 인터넷 문제는, 인포싯에는 이용할 수 있다고 나와있지만 현장 리더가 노트북이 있긴 한데, 그걸 이용하려면 처음에는 돈을 내라고 했고, 또 그 다음에는 그냥 이용할 수 없다고 했었다. 그래서 그 집에서 걸어서 5분 정도 떨어져 있는 집에서 인터넷을 이용하기 위해 한 사람당 10 솔레스 씩을 지불하고 핸드폰으로 와이파이를 이용할 수 있도록 부탁을 드렸다. 하지만 숙소에서는 인터넷을 이용할 수 없었고 그 집 앞에까지 가야했다. 하지만 그 동네에는 아시안들이 없기 때문에 한국인을 굉장히 신기하게 생각하고 모든 사람들이 다 쳐다보면서 지나간다. 또 그냥 핸드폰을 사용하다가 소매치기를 당할 위험도 있으니까 조심하는 것이 좋다. 한 가지 인상 깊던 것은, 모든 사람들은 한국인인지 중국인인지 구분하기 힘드니까 우리가 지나갈 때마다 “치나” 라고 외쳐댄다는 것이다. 치나는 중국인을 말하는 것인데, 사람들이 치나라고 부르면서 휘파람 부는 일이 굉장히 많다. 그리고 그냥 바로 사람 얼굴 앞에까지 와서 얼굴만 빤히 쳐다보고 가는 일도 있다. 또 날씨가 정말 더워서 모기도 정말 많다. 물린디는 필수!
사실 워크캠프 기간동안 행복했다고 하기에는 어렵다. 생활하면 생활할수록 불만이 나왔고, 돈 문제에 관해서도 끝에는 문제가 일어났다. 참가비를 현지 리더, 집 주인이 걷는데 그 돈이 어디에 어떻게 사용되는지 우리는 전혀 알지도 못하고, 참가비를 사용할 때는 항상 현지 리더가 같이 가야 하며, 기본적으로 돈의 사용에 대해서 얼마나 썼는지, 얼마나 남았는지를 알지 못하니 마지막에 현지 리더와 참가자들 사이에 살짝 갈등이 있었다. 이 부분은 꼭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참가자들이 낸 돈이 5명이니까 150만원 정도 되는데, 그 돈을 현지 리더가 아닌 참가자 리더가 관리해야 맞다고 생각한다. 만약 우리의 참가비에서 숙박비 정도가 지불되어야 한다면 그건 우리가 지불을 하고 나머지 돈을 우리가 관리해야지, 현지 리더에게 모두 주고 더군다나 그 내역을 알지 못한다면 결국 갈등이 생길 수 밖에 없는 문제이다. 이 부분을 기구에서 더 확실하게 해주셨으면 한다.
그 당시에는 빨리 시간이 갔으면 좋겠다, 빨리 피우라에서 벗어나고 싶다고 생각을 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 시간도 소중한 추억이되는 것 같다. 특히 아이들과 함께 보내는 시간은 정말 즐거웠고, 그 아이들 때문에 또 피우라를 방문하고 싶은 마음이 생길 정도로 아이들이 너무 순수하고 예뻤다. 이번 봉사 활동에서 좋은 환경에서 생활하지 않았고, 봉사 내용도 그렇게 특별하지 않았다. 그렇게 때문에 아쉬운 점이 굉장히 많았지만, 그 속에서 내가 현재 가지고 있는 것들에 대해 소중함을 간절히 느낄 수 있었고, 페루라는 곳에 대해서 가지고 있던 생각들이 변하거나, 또는 가지고 있지 않았던 생각들이 나타나기도 했다. 분명히 이 워크캠프는 내게 소중한 경험이었다. 그리고 내가 이렇게 봉사활동을 하는 것도 내 평생 추억으로 남을 것이고, 기억 속에 소중히 남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