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후기
태국 우돈타니, 8명의 특별한 인연
Education/Creative English camp
참가 전 준비와 마음가짐
4년 전 친구의 추천으로 프랑스 워크캠프에 참여하고, 한 국가에서 여러 국적을 가진 친구들을 만나고 사귈 수 있다는 것에 매력을 느껴 언젠가 꼭 다시 한 번 다른 캠프를 참가해보리라 다짐했었다. 그리고 4년 후 드디어 그 두 번 째 발걸음을 하게 된 것이다. 태국의 우돈타니 도시로.
이전에 참가했던 캠프에서는 18명의 인원이 함께 지내느라고 사실은 패가 갈려 놀기도 했고, 두루 사귀지 못했던 아쉬움이 있었는데 이번엔 8명의 소수 인원이 모여 훨씬 가족적이고 끈끈한 정이 있었다. 모두가 아시아계의 친구들이었다는 것에도 한가지 더욱 친근한 공통분모가 있기도 했다.
그렇게 2주간의 짧은 합숙을 시작했다. 다들 고만고만한 영어실력으로 한 시골 초등학교 학생들에게 영어를 가르치는 봉사활동이었는데, 첫 시간부터 선생님들과 학생들의 열렬한 환영과 관심을 듬뿍 받았다. 학생들과의 의사소통은 너무나 힘들었지만 그 와중에도 보람이 있었고, 하루하루 학생들의 수준에 맞추어 머리를 맞대어 수업을 준비하는 것도 참 의미가 있었다.
교육의 봉사활동은 다른 종류의 봉사활동보다 무엇보다 학생들과 커뮤니케이션을 한다는 것, 그리고 그 학생들의 수준 향상을 볼 때 ‘아, 내가 뭔가를 했구나’라는 보람이 있다는 것에 큰 매력이 있다. 아이들과는 정말로 통역 없이는 의사소통이 안될 만큼 시간이 오래 걸리고 다소 번거로웠지만 그래도 학생들이 한가지씩 기억해내고 수업스타일을 이해해 간다는 것에 나와 학생들 서로간에 큰 의미가 있었다고 본다.
그리고 우리의 활동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학교 가까이에 있는 우리들의 숙소는 하교 후에는 바로 학생들의 놀이터가 되었다. 마당부터 마루, 거실까지 마을 학생들이 모두 몰려와 우리 숙소를 장악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2주동안 낮에 쉴 시간이 없었고, 늘 시끄러웠지만 전혀 싫지 않았다. 학생들이 그렇게 우리를 찾아준다는 것에 감사했고, 나중에는 오후에 학생들이 몰려왔을 때의 활동을 미리 준비 해놓고 기다리기도 했다. 수업시간 때 미처 하지 못했던 활동들을 그 오후시간에 하기도 했고, 각 나라의 게임이나 종이접기, 그림그리기 등으로 학생들과 어우러졌다.
우리보다 먼저 그들이 얼마나 우리에게 살갑게 다가왔는지 모른다. 수줍어하면서도 영어를 못하면서도 옆에 있고 싶어하고, Hello, Teacher, How are you 라는 똑 같은 영어라도 계속 우리 주변을 맴돌며 말을 걸고 싶어하기도 했다. 그런 아이들을 위해 언어 없이도 놀이가 가능한 게임이나 공놀이 등을 즐겨했고, 온갖 손짓 발짓을 통해 의사소통을 했다. 그리고 우리가 떠나올 때는 꼭 다시 돌아올 테니 그때는 자유롭게 의사소통하자며 절대 영어공부를 멈추지 말라는 당부도 했다.
우리가 그곳을 떠날 때에는 학생들이 여기저기서 꺾어온 꽃, 집에서 가져온 필통, 머리끈, 인형, 카드 등을 선물로 주었고, 그리고 학교는 울음바다가 되었다. 울고 싶은 것은 나도 마찬가지였다. 사실 학생들에게 꼭 다시 돌아오겠노라 약속했지만 해외여행이 시간적으로 금전적으로 절대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언제 어디에선가 어떤 모습으로 다시 만날지 기약할 수 없는 그 친구들이 벌써부터 그립고 그립다.
순수한 웃음으로 우리에게 다가와 주던, 재미있게 수업에 임해주었던 그 학생들과의 추억들과, 그리고 8명의 다국적 가족들의 2주간의 동고동락을 의미 있는 내 젊은 날의 추억으로 절대 잊을 수 없을 것이다. 기회가 된다면 꼭 또 한번 다른 워크캠프에 참여하고 싶다. 내게 언제나 도전과 새로운 경험과 의미를 가져다 주는 워크캠프.!
이전에 참가했던 캠프에서는 18명의 인원이 함께 지내느라고 사실은 패가 갈려 놀기도 했고, 두루 사귀지 못했던 아쉬움이 있었는데 이번엔 8명의 소수 인원이 모여 훨씬 가족적이고 끈끈한 정이 있었다. 모두가 아시아계의 친구들이었다는 것에도 한가지 더욱 친근한 공통분모가 있기도 했다.
그렇게 2주간의 짧은 합숙을 시작했다. 다들 고만고만한 영어실력으로 한 시골 초등학교 학생들에게 영어를 가르치는 봉사활동이었는데, 첫 시간부터 선생님들과 학생들의 열렬한 환영과 관심을 듬뿍 받았다. 학생들과의 의사소통은 너무나 힘들었지만 그 와중에도 보람이 있었고, 하루하루 학생들의 수준에 맞추어 머리를 맞대어 수업을 준비하는 것도 참 의미가 있었다.
교육의 봉사활동은 다른 종류의 봉사활동보다 무엇보다 학생들과 커뮤니케이션을 한다는 것, 그리고 그 학생들의 수준 향상을 볼 때 ‘아, 내가 뭔가를 했구나’라는 보람이 있다는 것에 큰 매력이 있다. 아이들과는 정말로 통역 없이는 의사소통이 안될 만큼 시간이 오래 걸리고 다소 번거로웠지만 그래도 학생들이 한가지씩 기억해내고 수업스타일을 이해해 간다는 것에 나와 학생들 서로간에 큰 의미가 있었다고 본다.
그리고 우리의 활동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학교 가까이에 있는 우리들의 숙소는 하교 후에는 바로 학생들의 놀이터가 되었다. 마당부터 마루, 거실까지 마을 학생들이 모두 몰려와 우리 숙소를 장악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2주동안 낮에 쉴 시간이 없었고, 늘 시끄러웠지만 전혀 싫지 않았다. 학생들이 그렇게 우리를 찾아준다는 것에 감사했고, 나중에는 오후에 학생들이 몰려왔을 때의 활동을 미리 준비 해놓고 기다리기도 했다. 수업시간 때 미처 하지 못했던 활동들을 그 오후시간에 하기도 했고, 각 나라의 게임이나 종이접기, 그림그리기 등으로 학생들과 어우러졌다.
우리보다 먼저 그들이 얼마나 우리에게 살갑게 다가왔는지 모른다. 수줍어하면서도 영어를 못하면서도 옆에 있고 싶어하고, Hello, Teacher, How are you 라는 똑 같은 영어라도 계속 우리 주변을 맴돌며 말을 걸고 싶어하기도 했다. 그런 아이들을 위해 언어 없이도 놀이가 가능한 게임이나 공놀이 등을 즐겨했고, 온갖 손짓 발짓을 통해 의사소통을 했다. 그리고 우리가 떠나올 때는 꼭 다시 돌아올 테니 그때는 자유롭게 의사소통하자며 절대 영어공부를 멈추지 말라는 당부도 했다.
우리가 그곳을 떠날 때에는 학생들이 여기저기서 꺾어온 꽃, 집에서 가져온 필통, 머리끈, 인형, 카드 등을 선물로 주었고, 그리고 학교는 울음바다가 되었다. 울고 싶은 것은 나도 마찬가지였다. 사실 학생들에게 꼭 다시 돌아오겠노라 약속했지만 해외여행이 시간적으로 금전적으로 절대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언제 어디에선가 어떤 모습으로 다시 만날지 기약할 수 없는 그 친구들이 벌써부터 그립고 그립다.
순수한 웃음으로 우리에게 다가와 주던, 재미있게 수업에 임해주었던 그 학생들과의 추억들과, 그리고 8명의 다국적 가족들의 2주간의 동고동락을 의미 있는 내 젊은 날의 추억으로 절대 잊을 수 없을 것이다. 기회가 된다면 꼭 또 한번 다른 워크캠프에 참여하고 싶다. 내게 언제나 도전과 새로운 경험과 의미를 가져다 주는 워크캠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