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후기
조드뿌르, 꿈같은 첫 해외 봉사
Jodhpur – Rajasthan
참가 전 준비와 마음가짐
이번 워크캠프를 통해서 처음으로 해외를 나가게 되었고, 특히 ‘봉사활동’ 이라는 약간 의미 있는 시간으로 한달을 보낸 것에 만족한다. 처음 비행기를 탈 때만 해도, 말도 안되고 꿈만 같았고, 너무 설레여서 8시간 걸리는 비행기 내에서도 한숨도 못잤다. 공항을 내리는 순간, 내 폰이 로밍이 되는 순간, 내가 진짜 다른 나라에 왔다는 것을 비로소 실감했었다. 처음 비행기 입수,속 밟는 순간부터 내려서 짐을 찾고 공항을 나서는 순간까지 우왕좌왕하고 무엇을 해야 하며, 어디를 가야 할지 몰랐던 내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우선, 택시를 타고 이동해서 일단 하룻밤을 호텔에서 자고, 다음날 일행을 만나서 ‘조드뿌르’에 가는 기차를 예약하기 위해 빠하르간즈 근처에 델리역으로 가서(처음에 그냥 뉴델리 역으로 데려다 달라고 하면, 엉뚱한 곳으로 간다. 꼭 빠하르간즈 근처라고 얘기하는 것이 좋다.) 외국인전용 기차예매소에서 겨우 8일날 아침에 도착하는 기차를 예약하고 델리에서 하룻밤을 더 묵었다. 델리 근처의 상인들과 노점들을 보며 처음에는 마냥 신기하고 흥미로워서 다른 애들과는 달리, 나는 여러 사람에게 말도 걸어보고, 또 말거는 사람들에게도 일일이 다 대답해주었다. 언제 내가 인도라는 나라에 올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서 더 많은 관심이 갔던 것 같다.
그다음날, 처음으로 SLEEPER 기차를 타보았고, 여러 사람들이 기차 내에서 소매치기나 성추행 등을 조심하라고 해서 자물쇠를 짐과 연결해 받침대에 걸어 잠궜다. 그러자, 주변 인도인들의 따가운 눈초리와 이상하게 쳐다보는 시선을 느낄 수가 있었다. 짐은 그다지 위험하지도 않고, 훔쳐가는 사람들도 많이 없었는데 말이다. 멋모르는 여행객이 주변 정보만 흘러듣고 유별나게 행동한다는 인상을 남긴 것 같아 괜히 우리나라 이미지를 깎은 것 같고, 그 사람들에게도 민폐를 끼친 것 같아 미안했다. 기차를 탈 때에는 조심할 필요는 있지만, 유별날 필요는 없는 것 같다. 장장 10시간을 걸쳐, 드디어 조드뿌르에 도착했고, 특별한 안내방송을 하지 않는 인도기차 때문에, 주변 인도분들에게 도움을 많이 받아 어디서 내려야 하는지도 알게되었다. 지금 다시 떠올려봐도 내게 인도인들은 불편하게 했던 사람들보다 친절한 미소로 기억에 남는 사람들이 더 많다.
그리고 드디어 ‘블루시티’ 조드뿌르에 도착해 현지인 리더인 ‘만쥬’를 만났다. 만쥬는 정말 고마움이 많이 남고 그리움도 많이 남는 친구다. 처음 만났을 때만 해도 수줍음이 많고, 조용한 친구였는데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말도 많아지고 장난도 많고 친근감이 드는 친구다. 나중에는 만쥬의 인도식 발음을 우리가 따라하면서 놀리기도 했다.
그렇게 첫날은, 싱가폴 친구인 PJ도 만나고, 선샤인 게스트하우스에서 짐을 풀고, 주인분이 대접해주시는 저녁을 먹으며 약간의 담소를 나눴던 것 같다. 이튿날, 홍콩친구인 KELSEY가 도착하고 다시한번 통성명하고 우리가 봉사활동 할 학교를 둘러보았다.
내가 기억하는 학교의 첫인상은, ‘파란신전’같고 아담하고 예쁜 학교였다. 실제로 그 학교는 예전에 신전을 고쳐 학교로 만들었으며, 처음에는 여학생 4명이 전부였던 소학교라고 했다. 하지만, 점점 교육이 필요한 아이들이 늘어나면서 지금은 꽤 많은 아이들이 학교를 다니고 있었다. 내가 만났던 많은 인도인들처럼, 학교사람들도 역시나 친절하시고 아이들도 매우 활기차서 보기가 좋았다. 그러나 학교건물 구석구석 뿌연 먼지로 가득해서 빗자루질을 하지 않는데도 숨쉬기가 힘들 정도였다. 인도에는 사막도 많고, 물이 귀해서 물걸레질을 하지 않으므로 어찌보면 당연하지만 교육받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는 환경이었다. 바로 다음날부터 학교옥상에 쌓여있던 나뭇가지들을 다 한곳으로 모으고, 잎과 가지를 분리하고, 태우고, 쓸어담아 버리는 작업을 시작했다. 이 청소만 3일이 걸렸고, 그 외에도 우리는 아이들과 놀아주며 소통하고 잠시 아이들을 가르치기도 했다. 그리고 매일 저녁, 미팅에서 우리는 항상 다음날 아이들에게 어떤 놀이를 통해 더 다가갈지를 고민했다. 내가 살면서 한번도 해본 적 없는 고민들이었고 그 순간만큼은 동심으로 돌아가 행복했다.
2주차에 접어들기 시작하면서, 소질은 없었지만 벽화를 위해 밑그림을 그리고 색칠을 시작했다. 처음 울퉁불퉁한 벽에 밑그림을 그릴때는 연필이 계속 부서지고, 쉽지가 않아서 짜증도 많이 나고 그랬었는데, 그럴때마다 아이들과 선생님들이 손수 연필깎이로 깎아주면서, 힘내라고 간식과 홍차(짜이)를 주셔서 힘이 났다. 특히나, 나에게는 잊을 수 없는 사건이 있는데, 그림을 그리기 위해 화분을 옮기다 화분이 깨지면서 손가락을 베인 적이 있다. 당연히 평소처럼 아무렇지 않게 대충 손을 씻고 다시 벽화를 그리려는데, 선생님 한분이 오셔서 손가락에 소독을 해주시며 붕대까지 감아주시고선 괜찮냐고 물어보시는데 괜히 마음이 뭉클해졌고 감사했다. 그런 사소한 친절과 정 때문에 조드뿌르가 다른지역보다 더 그립고 생각이 많이 난다. 벽화를 완성하고 나서는 뿌듯하게 서로의 그림을 보고 칭찬도하고, 아이들 요가수업에도 참여해서, 아이들의 유연함에 감탄사를 연발하기도 했다.
2주동안 웃고 떠들고 장난치며, 때로는 서로에게 서운한 감정도 털어놓기도 하고, 진실되게 사람들을 대했던 순간이었다. 그래서 조드뿌르를 떠나는 내내 아쉽고, 서운했다. 물론, 워크캠프 활동 후에도 인도 여러곳곳을 누비며 여행을 하기는 했지만, 가장 생각나는 곳은 단연 조드뿌르다. 2달이 지난 지금도 그때의 그순간 함께했던 동료들과 사람들을 잊을 수가 없다. 그리고 인도인들에 대해서 ‘항상 내가 그들의 친절을 의심했을 뿐, 그들은 단 한순간도 나를 진심으로 대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고 말하고 싶다. 그만큼 인간미 넘치는 나라에서 봉사활동도 하고, 여행도 할 수 있어 행복했다.
그다음날, 처음으로 SLEEPER 기차를 타보았고, 여러 사람들이 기차 내에서 소매치기나 성추행 등을 조심하라고 해서 자물쇠를 짐과 연결해 받침대에 걸어 잠궜다. 그러자, 주변 인도인들의 따가운 눈초리와 이상하게 쳐다보는 시선을 느낄 수가 있었다. 짐은 그다지 위험하지도 않고, 훔쳐가는 사람들도 많이 없었는데 말이다. 멋모르는 여행객이 주변 정보만 흘러듣고 유별나게 행동한다는 인상을 남긴 것 같아 괜히 우리나라 이미지를 깎은 것 같고, 그 사람들에게도 민폐를 끼친 것 같아 미안했다. 기차를 탈 때에는 조심할 필요는 있지만, 유별날 필요는 없는 것 같다. 장장 10시간을 걸쳐, 드디어 조드뿌르에 도착했고, 특별한 안내방송을 하지 않는 인도기차 때문에, 주변 인도분들에게 도움을 많이 받아 어디서 내려야 하는지도 알게되었다. 지금 다시 떠올려봐도 내게 인도인들은 불편하게 했던 사람들보다 친절한 미소로 기억에 남는 사람들이 더 많다.
그리고 드디어 ‘블루시티’ 조드뿌르에 도착해 현지인 리더인 ‘만쥬’를 만났다. 만쥬는 정말 고마움이 많이 남고 그리움도 많이 남는 친구다. 처음 만났을 때만 해도 수줍음이 많고, 조용한 친구였는데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말도 많아지고 장난도 많고 친근감이 드는 친구다. 나중에는 만쥬의 인도식 발음을 우리가 따라하면서 놀리기도 했다.
그렇게 첫날은, 싱가폴 친구인 PJ도 만나고, 선샤인 게스트하우스에서 짐을 풀고, 주인분이 대접해주시는 저녁을 먹으며 약간의 담소를 나눴던 것 같다. 이튿날, 홍콩친구인 KELSEY가 도착하고 다시한번 통성명하고 우리가 봉사활동 할 학교를 둘러보았다.
내가 기억하는 학교의 첫인상은, ‘파란신전’같고 아담하고 예쁜 학교였다. 실제로 그 학교는 예전에 신전을 고쳐 학교로 만들었으며, 처음에는 여학생 4명이 전부였던 소학교라고 했다. 하지만, 점점 교육이 필요한 아이들이 늘어나면서 지금은 꽤 많은 아이들이 학교를 다니고 있었다. 내가 만났던 많은 인도인들처럼, 학교사람들도 역시나 친절하시고 아이들도 매우 활기차서 보기가 좋았다. 그러나 학교건물 구석구석 뿌연 먼지로 가득해서 빗자루질을 하지 않는데도 숨쉬기가 힘들 정도였다. 인도에는 사막도 많고, 물이 귀해서 물걸레질을 하지 않으므로 어찌보면 당연하지만 교육받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는 환경이었다. 바로 다음날부터 학교옥상에 쌓여있던 나뭇가지들을 다 한곳으로 모으고, 잎과 가지를 분리하고, 태우고, 쓸어담아 버리는 작업을 시작했다. 이 청소만 3일이 걸렸고, 그 외에도 우리는 아이들과 놀아주며 소통하고 잠시 아이들을 가르치기도 했다. 그리고 매일 저녁, 미팅에서 우리는 항상 다음날 아이들에게 어떤 놀이를 통해 더 다가갈지를 고민했다. 내가 살면서 한번도 해본 적 없는 고민들이었고 그 순간만큼은 동심으로 돌아가 행복했다.
2주차에 접어들기 시작하면서, 소질은 없었지만 벽화를 위해 밑그림을 그리고 색칠을 시작했다. 처음 울퉁불퉁한 벽에 밑그림을 그릴때는 연필이 계속 부서지고, 쉽지가 않아서 짜증도 많이 나고 그랬었는데, 그럴때마다 아이들과 선생님들이 손수 연필깎이로 깎아주면서, 힘내라고 간식과 홍차(짜이)를 주셔서 힘이 났다. 특히나, 나에게는 잊을 수 없는 사건이 있는데, 그림을 그리기 위해 화분을 옮기다 화분이 깨지면서 손가락을 베인 적이 있다. 당연히 평소처럼 아무렇지 않게 대충 손을 씻고 다시 벽화를 그리려는데, 선생님 한분이 오셔서 손가락에 소독을 해주시며 붕대까지 감아주시고선 괜찮냐고 물어보시는데 괜히 마음이 뭉클해졌고 감사했다. 그런 사소한 친절과 정 때문에 조드뿌르가 다른지역보다 더 그립고 생각이 많이 난다. 벽화를 완성하고 나서는 뿌듯하게 서로의 그림을 보고 칭찬도하고, 아이들 요가수업에도 참여해서, 아이들의 유연함에 감탄사를 연발하기도 했다.
2주동안 웃고 떠들고 장난치며, 때로는 서로에게 서운한 감정도 털어놓기도 하고, 진실되게 사람들을 대했던 순간이었다. 그래서 조드뿌르를 떠나는 내내 아쉽고, 서운했다. 물론, 워크캠프 활동 후에도 인도 여러곳곳을 누비며 여행을 하기는 했지만, 가장 생각나는 곳은 단연 조드뿌르다. 2달이 지난 지금도 그때의 그순간 함께했던 동료들과 사람들을 잊을 수가 없다. 그리고 인도인들에 대해서 ‘항상 내가 그들의 친절을 의심했을 뿐, 그들은 단 한순간도 나를 진심으로 대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고 말하고 싶다. 그만큼 인간미 넘치는 나라에서 봉사활동도 하고, 여행도 할 수 있어 행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