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후기

낯섦을 넘어선, 함께 성장하는 기쁨

작성자 김슬해
독일 IBG 23 · RENO/CONS 2012. 08 - 2012. 09 Niederheimbach

Niederheimbach

참가 전 준비와 마음가짐

걱정 반 기대 반으로 기다리던 워크 캠프의 시작 날이 되었다. 처음으로 워크캠프를 개최하는 곳에 지원하게 되어서인지 미팅 포인트에 대한 상세한 설명이 나오지 않아 처음 숙소에 오게 되게 까지 긴장을 많이 하고 있었다. 종이 한 장에 의지하여 숙소에 오니 몇 명의 외국인들이 모여 이야기를 하고 있었는데 이미 찾아 오면서 하게 된 긴장감이 영향을 줘서 인지 그들이 너무 친해 보였다. 일단 들어가서 짐 정리를 하고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을 했다. 친구와 함께 왔기에 그 친구와 함께 있었지만 혼자 왔으면 조금은 당황 했을 것 같다. 처음으로 하게 된 워크캠프, 처음으로 같이 생활하게 될 외국인들, 처음으로 오게 된 유럽, 이렇게 처음이라는 것이 내 눈앞을 가리고 두려움으로 다가 왔던 것 같다. 우리를 마지막으로 12명의 모든 일원이 모이고 주최기관의 분까지 오셔서 다같이 둘러 앉아 공식적으로 워크캠프의 시작을 알리게 되었다. 이 마을에 대한 간단한 소개, 같이 봉사 활동을 하게 될 친구들의 소개, 그리고 우리가 할 일에 대하여 알게 되었고 게임으로 하여금 얼어붙은 분위기가 녹아 내리기 시작하면서 내 마음도 안정감을 찾게 되었고 마음의 문을 조금씩 열게 되었다.
우리의 일정은 이러하였다. 일주일에 평일은 봉사활동을 하고 주말은 휴식을 갖는다. 하루의 일정을 말하자면 아침에 일어나 키친팀이 준비한 아침을 먹는다. 아침 8시부터 1시까지 아침 봉사를 한다. 그 사이에 coffee break를 갖고 간단하게 준비한 샌드위치를 먹으며 쉬는 시간을 갖는다. 그리고 한시에 숙소에 와서 키친팀이 준비한 점심을 먹는다. 두 시까지 봉사할 곳으로 가게 되고 3시 30분까지 점심봉사를 한다. 그렇게 하루 일정을 끝내고 자유시간을 갖고, 8시쯤 키친팀이 준비한 저녁을 먹고 하루 일과가 마무리 된다.
여기서 세 번이나 언급된 키친팀이란 하루 식사를 맡는 두 명의 아이들인데, 남, 여가 팀을 이루어 일주일마다 보통 한번씩 키친팀이 된다. 키친팀은 자발적으로 하고 싶은 날 하고 싶은 파트너와 함께 하게 되는데, 키친팀을 하게 되면 자신의 파트너와 하루 종일 요리를 준비하게 되니 더욱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되고 그러다 보니 더욱 친밀감을 갖게 된다. 여러 나라의 사람들이 모여 있긴 하지만 서로의 관심사나 사소한 다른 점에 대하여 알게 될 기회는 별로 없는데 이렇게 키친팀 제도를 통하여 우리나라와는 다른 문화도 알고 여러 이야기를 나누게 되어 그 친구에 대하서도 더욱 많이 알게 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봉사를 할 때에는 키친팀을 제외한 열명의 아이들이 3그룹으로 나눠져서 일을 하게 되었다. 우리가 한 봉사활동은 마을을 설명하는 표지판을 설치하는 작업이 있었는데, 이것은 시멘트를 이용하고 무거운 표지판을 나르기도 하여서 힘이 센 남자 2~3명을 중심으로 하게 되었다. 그리고 산 쪽으로 가서 집을 만드는 봉사를 하였는데, 먼저 나무와 풀들을 제거하고 땅을 평편하게 만들고 조립식 재료를 이용하여 작은 집을 만드는 것이었다. 이곳도 남자 중심 3~4으로 하지만 나는 이곳에 배정받게 되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근처 유치원에 가서 낡은 울타리를 제거하고 새로운 울타리를 만드는 작업을 하는 것이었는데 이 곳은 많은 힘이 들어가지는 않아 보통 여자일원 3~4으로 구성되었다. 우리에게는 키친팀 제도가 있어서 매일 다른 사람이 키친팀으로 가게 되어야 하기 때문에 봉사활동은 매일 같은 것을 하지 않고 당일의 키친님이 들어간 자리에 전날의 키친팀이 들어가게 되어 봉사활동도 항상 같은 것을 하지 않고 호스트의 지시와 키친팀에 의하여 바뀌게 되어 공평하게 번갈아 가면서 봉사활동을 할 수 있었다.
위에서 말했듯이 내가 주로 한 봉사는 주로 산 쪽으로 가서 집을 짓는 것이었다. 마을 주민이 아침에 우리 숙소 앞에 오면 우리 팀은 그 분의 트렉터를 타고 가게 된다. 10분 정도 근처로 올라가다 보면 우리가 일할 곳에 다다른다. 가는 동안 경운기와 비슷한 트렉터에서 내려다 보며 우리 마을의 정경을 보면 정말 아름답다. 라인강이 흐르고 세계문화유산으로 마을 전체가 지정될 만큼 아름다운 마을에서 일을 하게 된 것은 정말 행운이다. 그리고 답답한 한국의 도시에서 벗어나 뻥 트인 공간 속에 자연과 어우러져 있다 보니 내 마음도 평안해져서 “힐링”을 받을 수 있었다. 맨 처음 그곳에 갔을 때 한일은 우리를 태워주신 맥가이버 처럼 모든 일을 척척 해주시는 주민분과 함께 집을 지을 땅을 만드는 일 이었다. 그분은 주로 전기 톱을 가지고 두꺼운 나무를 베는 일을 하셨고 우리 일원 중 건장한 남자는 기계로 가시덩굴이나 얇은 나무를 자르는 일을 하였다. 나와 다른 일원은 그렇게 잘게 잘라진 나무들을 다른 곳으로 옮기는 작업을 하였다. 이렇게 몇 일 동안 집을 지을 터전을 만들고 땅을 고르게 만들어 지반을 다졌다. 그리고 조립식으로 된 재료를 가지고 하나하나 쌓고 망치질하고 하다 보니 문을 달게 되고 창문을 달게 되고 지붕이 되었다. 집을 완성 후 페인트를 칠하게 되니 하나의 집이 완성되었다. 작은 집이었는데 앞으로 이곳은 화장실로 쓰일 것이라고 하였다. 이렇게 예쁘고 잘 만든 집이 화장실로 쓰인다고 하니 기분이 묘하긴 하였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우리 손으로 만든 것이라고 생각하니 뿌듯하였다. 독일이라는 잘사는 나라에 무슨 봉사가 필요하고 우리가 봉사를 한다고 보람을 느낄까 했었는데, 지역사회를 위하여, 내가 누군가의 편안한 휴식처를 만들었다는 점에서 생각하지 못한 뿌듯함을 느꼈다. 그리고 집을 완성해 가는 과정에서는 성취감을 느꼈다. 아마 다른 친구들도 자신의 활동 속에서 보람을 느꼈을 것이다.
우리는 보통 자유시간에 다같이 활동을 하였다. 다른 볼일이 있으면 개인의 일을 해도 되지만 그렇지 않으면 같이 모여 활동을 하였다. 같이 수영장에 가기도 하고, 근처 강에 가서 물놀이도 하고, 간단한 게임을 하기도 하였다. 남자아이들이 반이상 이어서 근처 공터에 가서 축구도 하고 여자아이들은 같이 가서 응원을 하기도 하였다. 주변마을에서는 축제를 하여 트레인을 타고 근처 마을에 가서 축제를 즐겼다. 이런 기회로 캠프에서 만난 아이들만 교류 것이 아니라, 축제에 가서 독일사람들의 문화를 엿보는 시간도 가질 수 있었다. 호스트 분의 소개로 우리가 봉사하는 마을에 사는 우리나이 대의 친구를 소개받아 그 친구와 그 친구의 친구들이 우리 숙소에 와서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도 갖기도 하였다. 우리 멤버 중에는 독일인이 없어서 독일에서 봉사를 하지만 독일에 대하여 잘 모를 뻔한 것들이 이 친구로 인하여 채워졌다. 또한 친절하신 마을 주민 분은 자신의 집으로 여러 번 초청하여 피자도 만들어 주시고, 소시지도 구어 주시며 독일의 분들과 교류할 기회를 만들어 주셨다. 우리 캠프에 참여한 나라는 총 6개의 국가였다. 저녁식사 후에 간혹 international day를 하여 같은 나라의 아이들끼리 모여서 자신의 나라에 대하여 설명하고 질문에 대하여 응답하는 시간을 가졌다. 물론 Korean day도 있었다. 나와 같이 간 내 친구는 불고기를 만들고 미리 준비한 지도들과 카드들을 이용하여 한국을 설명해 주었다. 우리 일원 중에는 일본에서 온 아이들이 2명 있어서 동해와 독도문제로 약간의 실랑이를 벌이긴 하였지만 자랑스러운 우리나라에 대하여 설명하는 시간은 뜻 깊었다. 하지만 아이들이 한국에 대하여 잘 몰라도 samsung에 대하여 더 잘 아는 것을 보니 한편으로는 뿌듯하고 한편으로는 씁쓸하기도 하였다. 이런 기회를 통하여 다른 나라 사람들은 한국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나 하는 궁금증을 해결할 수 있었고, 나 또한 슬로바키아나 벨라루시 같은 나라에 대하여 존재 조차도 몰랐고, 스페인의 일부인 까딸루니아(바르셀로나가 수도)가 독립문제로 스페인과 분쟁 중이라는 사실을 몰랐는데, 이 기회를 통하여 알게 되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 이렇게 첫날에 가졌던 두려움들은 함께하는 활동들 속에서 눈 녹듯 사라졌다. 아마 이번 캠프 뿐만 아니라 내가 사회생활을 할 때에도 처음엔 다 두려울 것이다. 하지만 내가 마음을 열고 다가가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다 사라질 것이라는 자신감을 얻게 되었다.
주중활동 외에 주말활동으로 독일 근처에 있는 룩셈부르크에 갔다. 이렇게 대륙이 붙어있으니 기차만으로도 다른 나라에 갈수 있다니 평소에는 꿈꾸지 못할 일이다. 반도임에도 섬처럼 느껴지는 우리나라의 현실에 대하여 다시 한번 생각하는 기회였다. 친구와 둘이 하는 여행도 재미 있지만 다른 나라 아이들과 함께하는 여행도 또 다른 재미가 있었다. 솔직히 룩셈부르크에 간 것은 별로 기억이 안 나고 이 친구들과 함께한 여행이라는 점이 더 기억에 남는다. 내가 언제 이런 경험을 또 하게 될까? 또 다른 날은 다른 친구들은 근처 큰 마을에 갔지만 나와 내 친구는 세계문화 유산으로 지정된 이 동네를 돌아다니기도 하였다. 동화의 마을이라고 이름 붙여진 이 마을은 이곳 저곳에 동화 속 모습을 묘사한 동상들이 있었다. 그리고 집 하나하나도 우리가 사는 동네의 획일성과는 다르게 각각 개성을 가지고 지어져 있어서 그것 또한 볼거리였다.
이렇게 삼 주의 봉사활동 두 번의 홀리데이를 마치고 나니 우리에게도 이별이 와있었다. 마을에서 마련해준 이별파티에 함께 일했던 분들, 호스트 분들, 우리와 친했던 독일 청년이 오고 그들과 이별을 청했다. 그리고 우리끼리도 서로 안녕을 말해야 했다. 1달도 안 되는 짧다면 짧은 시간, 하지만 눈떠서부터 눈감을 때 까지, 낯선 곳에서 힘든 작업들을 같이 했기에 더욱 정이든 친구들과의 이별은 너무 힘든 순간이다. 페이스북을 통하여 친구들과 연락을 할 수는 있어도 이 멤버들이 이곳에 다시 모이기는 어려울 것이다. 정말 정을 많이 주었기에 이별이 더욱 힘들었다.
첫날 무거운 짐을 들고 어딘지 몰라 헤매면서 온 길을 이제는 익숙한 걸음으로 걸어나간다. 다만 처음에는 나와 같이 온 친구 둘이서 이곳에 오게 되었지만 이번에는 나와 삼 주를 함께한 세계 여러 나라들의 친구들과 함께 나간다. 그리고 이 친구들과 봉사를 하며 느낀 뿌듯함, 새로운 나라와 문화에 대한 이해, 함께하는 삶 속에서의 성장된 나를 발견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