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후기
멕시코, 두려움 반 설렘 반 첫걸음
Angels of love 2
참가 전 준비와 마음가짐
미국에서의 교환학생 프로그램이 끝나가던 차에, 이대로 한국에 돌아가기는 아쉬워서 유익한 활동이 없을까를 물색하던 도중, 같이 교환학생 온 언니로부터 국제워크캠프에 대한 정보를 얻게 되었다. 남미에 대한 내 경험과 지식은 아주 적었기에 이것저것 알아볼 것도 많았고 두려움도 없지 않아 있었지만, 단지 미국과 가깝단 이유 하나만으로, 또 가까운 친구들이 함께 한다는 이유로 멕시코로 워크캠프를 가기로 마음 먹었다.
갱들 조직의 무차별 총살과 소매치기. 내가 멕시코에 대해 아는 것은 이 두 가지뿐 이었기에 나와 같이 간 친구들은 멕시코 시티 국제공항에 도달하자마자 벌벌 떨며, 혹시라도 돈을 뺏길까 하는 마음에 공항에서 환전 한 돈을 화장실에서 신발 밑창 아래 숨기고, 속옷에 숨기고, 가방을 안고 잔뜩 긴장하며, 그 와중에도 얼마 하지도 않는 택시비를 아끼겠다고 엄청나게 많은 짐을 끌고 지하철로 향했다. 하지만 이것은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멕시코 생활에서 고작 빙산의 일각에 불과 할 뿐이었다.
지하철은 3페소 (한화로 약 300원)만 내면 목적지가 어디던 상관 하지 않고 모든 역을 갈수 있다. 지하철에 우리나라처럼 에스컬레이터 같은 첨단 시설이 있을 것 이라는 생각을 당연히 하고 있었던 우리는 완전히 경악을 금치 못했다. 에스컬레이터는 커녕, 모두 계단이었고, 주위를 둘러봐도 동양인은 우리 셋뿐, 그 흔한 백인도 찾기 힘들었다. 그리고 주위를 둘러보지 않아도 온 몸으로 느낄 수 있는, 낯선 동양인을 향한 멕시칸들의 무시무시한 시선들은 우리를 공포에 질리게 하기에 충분했다.
큼지막한 3단 이민용 가방과 (거듭 강조하지만 단순 캐리어가 아닌, 이민용 가방. 한 학기 동안의 미국생활을 마치고 뉴욕여행까지 하고 온 상태였기 때문에 나와 친구들의 짐은 상상을 초월했다. ) 침낭과 배낭을 매고, 멕시코 인들의 따가운 시선을 받으며 더운 날씨에 수 많은 계단을 오르락 내리락 하려니 툭 건들면 눈물이 핑 돌 정도로 너무 힘들었다. 그런데 갑자기 어떤 아저씨가 다가 오더니 영어로 내가 도와주겠다며 너네 어디서 왔냐고 묻는 것이 아닌가! 오 하나님, 저희를 완전히 버리지는 않으셨군요. 감사합니다. 마침 내 구세주가 나타난 것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때만큼 영어가 반가웠던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자기는 마야 문명과 관련된 linguistic을 가르치는 대학 교수라면서 자신을 소개하고 친절하게도 지하철에서 멕시코 Tapo 버스터미널까지 우리를 데려다 주었다.
미팅포인트는 san cristobal de las casas내에 있는 나타테 사무실이었는데, 멕시코시티에서 그곳까지 가려면 멕시코시티->툭슬라 공항->산크리스토발로 비행기를 타고 오는 방법이 있고, 멕시코시티 -> 멕시코 tapo버스터미널에서 13시간 가량 버스를타고 산크리스토발로 가는 방법이 있다. 버스표는 약1000페소 가량 들고, 미화로 환산했을 때 75불 가량 든 것으로 기억한다. 버스표가 매진 될 것을 우려해서, 우리는 미국에 있을 때 티켓버스 닷컴을 이용해 미리 예매를 했었는데, 결제 마지막 단계에서 사이트가 다운 되어버리는 바람에 돈만 계좌에서 인출되고, 예약번호나 탑승 정보를 포함한 인포메이션을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상태였다. 말도 안 통하는 멕시코 땅에서 어떻게 이 문제를 해결할지 막막 했었는데, 그 교수님이라는 아저씨에게 우리의 문제를 말하니 선뜻 회사 직원에게 알아봐 주겠다고 했다.
그러나 이 아저씨 조금 수상하다. 지하철로 버스터미널 까지 가는 내내 자기가 bankrupt에 빠져서 어딜 가야 하는 데 돈이 없다를 계속 반복하는 것이다. 그 때 까지만 해도 아, 그냥 그런가 보다 라고 생각했다. 어쨌든 터미널에서 30분 동안을 실랑이 한 결과는 참담했다. 예약 정보를 찾을 수 없단다. 돈이 계좌에서 이미 빠져나갔다는 증거로 거래 내역을 프린트한 종이를 들이 밀어도 결과는 똑같았다. 결국 우리는 250불이라는 큰 돈을 버렸고, 새로 버스를 예약해야 했다. 이것까지는 괜찮았는데, 이 교수아저씨, 우리에게 돈을 요구한다. 내가 도와줬으니 돈을 달라는 것이었다. 그 때 우리는 그것마저도 너무 감사한 나머지 저녁까지 대접하려고 했었는데 참 지금 생각해보면 웃음만 나온다. 이 나라, 돈 빼앗는 방법도 갖가지 방법을 쓰는구나. 친구들과 협상 끝에 그래도 도와줬으니 돈은 주자 해서 결국 페소를 드렸다. 자칭 교수 아저씨는 정말 고맙다며 꼭 연락하겠다고 자신의 지메일 주소와 이름, 사는 곳까지 적어서 내게 주었고, 나도 그 분에게 내 이메일 주소를 적어서 줬다. 하지만 워크캠프를 마치고 한국에 돌아온 지금까지도 자칭 교수에게 메일 따윈 오지 않았다. 지하철에서부터 도움이 필요한 순진한 동양인 인걸 알고, 일부러 우리에게 접근해 도와주는 척하고, 돈을 가져간 것이었다. 계산을 해보니 공항에서 택시를 타고 터미널 까지 오는 비용이 아저씨에게 준 돈보다 훨씬 쌌다. 이럴바엔 택시를 타고 올걸 이라고 후회를 했다.
씁쓸한 마음을 뒤로하고 산크리스토발로 향하는 밤 버스에 올랐다. 말이 13시간이지, 자고 깨고를 몇 번이나 반복 했는지 모른다. 저녁 6시에 멕시코 타포를 출발해서 그 다음날 아침 7시가 넘어서야 우리는 산크리스토발에 도착했다.
미팅 날짜까지는 하루가 더 남아있었기에 우리는 지도상 미팅포인트 근처에 있는 로쏘코 호스텔에서 하루를 묵기로 했다. 산크리스토발 터미널 도착하자마자 택시를 타고 호스텔로 오는데, 아담하고 알록달록한 집들이 눈길을 끌었다. 호스텔에 도착해 짐을 풀고 샤워를 하고 ‘아, 이제 다 끝났구나.’ 하는 안도감과 함께 잠에 빠져들었다. 뉴욕에서 멕시코로 올 때 공항에서 밤을 새고, 장시간의 버스 여정으로 인한 피로 때문에, 나의 왼쪽 발목은 퉁퉁 부어있었다. 한 2일 동안 제대로 잠을 못 잔 것 같다. 집에 너무 가고 싶고 가족들도 너무 보고 싶어 눈물이 앞을 가렸지만 이미 온 이상 어쩔 도리가 없었다.
평화로운 로쏘코에서 충분한 휴식을 취한 우리는 날이 밝자 미팅포인트로 가기 위해 다시 짐을 꾸렸다. 제대로 찾아 갈 수 있을지 많이 걱정을 했는데 호스텔에서 1분밖에 걸리지 않았다. 이렇게 허무할 수가. 11시가 좀 넘은 시각에 도착을 했는데 저녁이 되어서 다른 프로그램에 참가하는 유럽인들과 한국인이 모여 같이 저녁을 하고, 우리는 2주동안 우리가 머무를 숙소로 향했다. 내가 참여한 프로그램인 Angels of love의 리더는 Tania. 우리 팀원은 타냐를 합해서 단 네명이였다. 다른 워크캠프 후기를 읽어 보니, 참가자들의 국적이 다양했던 걸로 기억했는데 우리는 단 네 명뿐이어서 실망을 금치 못했다.
우리는 나타테에서 일하는 나디아의 집에서 홈스테이를 했다. 건물에서 미국에서부터 챙겨온 침낭을 펴고 잤다. 첫 미팅 때 만난 한국인들은 재규어라는 프로그램에 참가했었는데, 그들은 빈 병들과 플라스틱 재료를 활용해 집을 짓는, 매우 힘든 일에 배정 되었다. 그 분들은 비가 많이 와도 잠을 아직 미완성된 집에서 비를 다 맞고 잘 수 밖에 없었다고 한다. 그 분 들에 비하면 우리는 아주 운이 좋은 셈이었다.
인포싯에서는 영어가 베이직한 언어라고 적혀 있었지만, 실제로 우리가 맡은 프로그램에서 쓰이는 언어는 스페인어였다. 리더 타냐도 영어를 전혀 하지 못했고, 우리도 에스빠뇰을 전혀 할 줄 몰랐으므로 의사소통에 힘겨운 점이 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무언가를 상의 할 때마다 구글 번역기의 도움을 받아야만 했다.
우리가 주로 하는 일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뉘었는데, 첫 번째는 다소 몸이 불편한 아이들과 수업을 같이 진행하고, 아이들이 원활하게 수업을 할 수 있도록 옆에서 도와 주는 일. 그리고 학교 뜰에 나무를 심거나, 커다란 돌멩이나 나무판자를 가지고 무언가를 수확 할 수 있도록 텃밭을 만드는 일 이었다.
아침 9시에서 9시반 사이에 학교에 도착해, 각자 한 명씩 도와 줄 아이들을 맡아 색칠공부도 도와주고, 음악 수업이 있는 날이면 같이 악기를 연주하면서 노래를 불렀다. 또 혼자서 인형들을 가지고 인형극을 해주시는 유럽인 할머니와 함께 인형극도 하고, 햇빛이 좋은 날이면 밖에서 점심으로 핫도그를 먹기도 했다.
워크캠프가 진행되는 동안에는 거의 대부분 날씨가 흐리고, 비가 오는 날이 많아서, 비가 오지 않는 아침에는 밖에 나가 직접 잡초를 제거하고 텃밭을 일구고, 무거운 연장으로 직접 땅을 파서 나무를 심고 거기다 거름과 물을 주었다. 아이들과 함께하는 시간은 비가 내리기 시작하면 교실로 돌아와 그 때 했다.
오후 2시가 되어 아이들이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면, 우리도 숙소로 돌아와 늦은 점심을 먹었다. 재료비는 현장비용에서 빠져 나갔으므로 우리가 따로 갖고 싶은걸 사거나, 여행을 가지 않는 이상은 돈 쓸일이 전혀 없었다. 타냐와 함께 장을 보고 두 명이서 요리를 하고 두 명이서 설거지를 하는 식으로 역할 분담을 했다.
점심 후에는 2층으로 올라가 휴식을 취하거나, 광장에 나가서 예쁜 수공예품을 구경했다. 그리고 돌아와 저녁을 먹고 대개 12시~1시 사이에 잠을 잤다.
산크리스토발의 날씨는 초여름 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고산지대라는 지형 탓에 저녁이 되면 매우 쌀쌀했다. 긴바지와 긴팔을 챙겨오길 정말 잘 했다는 생각을 했다.
여행은 주말에 총 두 번을 갔다왔는데, 수미대로라는 협곡과 워크캠프가 끝나는 날 고대 마야문명의 피라미드가 있는 빨랭께를 다녀왔다. 수미대로에서 빠른 보트를 타고 1시간 30분동안 거대한 캐년을 관람했는데, 아주 만족스러웠다. 자연의 위대함을 다시 한 번 일깨워 주는 경험이었다.
빨랭께는 산크리스토발에서 5시간 가량 차를 타고 가야하는 먼 곳인데, 가는 내내 길이 8자 인데다가, 전부 비포장 도로여서 울퉁불퉁했다. 멀미 하려고 하는 것을 억지로 잠을 청해가며 간 곳인데, 가자마자 엄청난 양의 비가 쏟아지는 바람에 옷은 다 젖고, 시간도 촉박했을 뿐더러, 정신이 하나도 없어 영어로 통역해주는 가이드의 말은 귀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아주 기억하기 싫은 곳이었다.
어떻게 보면 참 힘든 경험이었지만, 한국에서는 겪기 힘든 일이기에, 한국에 돌아온지 두달이 지난 지금. 멕시코가 참 그립다.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다른 국가로도 꼭 봉사활동을 가보고 싶다.
갱들 조직의 무차별 총살과 소매치기. 내가 멕시코에 대해 아는 것은 이 두 가지뿐 이었기에 나와 같이 간 친구들은 멕시코 시티 국제공항에 도달하자마자 벌벌 떨며, 혹시라도 돈을 뺏길까 하는 마음에 공항에서 환전 한 돈을 화장실에서 신발 밑창 아래 숨기고, 속옷에 숨기고, 가방을 안고 잔뜩 긴장하며, 그 와중에도 얼마 하지도 않는 택시비를 아끼겠다고 엄청나게 많은 짐을 끌고 지하철로 향했다. 하지만 이것은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멕시코 생활에서 고작 빙산의 일각에 불과 할 뿐이었다.
지하철은 3페소 (한화로 약 300원)만 내면 목적지가 어디던 상관 하지 않고 모든 역을 갈수 있다. 지하철에 우리나라처럼 에스컬레이터 같은 첨단 시설이 있을 것 이라는 생각을 당연히 하고 있었던 우리는 완전히 경악을 금치 못했다. 에스컬레이터는 커녕, 모두 계단이었고, 주위를 둘러봐도 동양인은 우리 셋뿐, 그 흔한 백인도 찾기 힘들었다. 그리고 주위를 둘러보지 않아도 온 몸으로 느낄 수 있는, 낯선 동양인을 향한 멕시칸들의 무시무시한 시선들은 우리를 공포에 질리게 하기에 충분했다.
큼지막한 3단 이민용 가방과 (거듭 강조하지만 단순 캐리어가 아닌, 이민용 가방. 한 학기 동안의 미국생활을 마치고 뉴욕여행까지 하고 온 상태였기 때문에 나와 친구들의 짐은 상상을 초월했다. ) 침낭과 배낭을 매고, 멕시코 인들의 따가운 시선을 받으며 더운 날씨에 수 많은 계단을 오르락 내리락 하려니 툭 건들면 눈물이 핑 돌 정도로 너무 힘들었다. 그런데 갑자기 어떤 아저씨가 다가 오더니 영어로 내가 도와주겠다며 너네 어디서 왔냐고 묻는 것이 아닌가! 오 하나님, 저희를 완전히 버리지는 않으셨군요. 감사합니다. 마침 내 구세주가 나타난 것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때만큼 영어가 반가웠던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자기는 마야 문명과 관련된 linguistic을 가르치는 대학 교수라면서 자신을 소개하고 친절하게도 지하철에서 멕시코 Tapo 버스터미널까지 우리를 데려다 주었다.
미팅포인트는 san cristobal de las casas내에 있는 나타테 사무실이었는데, 멕시코시티에서 그곳까지 가려면 멕시코시티->툭슬라 공항->산크리스토발로 비행기를 타고 오는 방법이 있고, 멕시코시티 -> 멕시코 tapo버스터미널에서 13시간 가량 버스를타고 산크리스토발로 가는 방법이 있다. 버스표는 약1000페소 가량 들고, 미화로 환산했을 때 75불 가량 든 것으로 기억한다. 버스표가 매진 될 것을 우려해서, 우리는 미국에 있을 때 티켓버스 닷컴을 이용해 미리 예매를 했었는데, 결제 마지막 단계에서 사이트가 다운 되어버리는 바람에 돈만 계좌에서 인출되고, 예약번호나 탑승 정보를 포함한 인포메이션을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상태였다. 말도 안 통하는 멕시코 땅에서 어떻게 이 문제를 해결할지 막막 했었는데, 그 교수님이라는 아저씨에게 우리의 문제를 말하니 선뜻 회사 직원에게 알아봐 주겠다고 했다.
그러나 이 아저씨 조금 수상하다. 지하철로 버스터미널 까지 가는 내내 자기가 bankrupt에 빠져서 어딜 가야 하는 데 돈이 없다를 계속 반복하는 것이다. 그 때 까지만 해도 아, 그냥 그런가 보다 라고 생각했다. 어쨌든 터미널에서 30분 동안을 실랑이 한 결과는 참담했다. 예약 정보를 찾을 수 없단다. 돈이 계좌에서 이미 빠져나갔다는 증거로 거래 내역을 프린트한 종이를 들이 밀어도 결과는 똑같았다. 결국 우리는 250불이라는 큰 돈을 버렸고, 새로 버스를 예약해야 했다. 이것까지는 괜찮았는데, 이 교수아저씨, 우리에게 돈을 요구한다. 내가 도와줬으니 돈을 달라는 것이었다. 그 때 우리는 그것마저도 너무 감사한 나머지 저녁까지 대접하려고 했었는데 참 지금 생각해보면 웃음만 나온다. 이 나라, 돈 빼앗는 방법도 갖가지 방법을 쓰는구나. 친구들과 협상 끝에 그래도 도와줬으니 돈은 주자 해서 결국 페소를 드렸다. 자칭 교수 아저씨는 정말 고맙다며 꼭 연락하겠다고 자신의 지메일 주소와 이름, 사는 곳까지 적어서 내게 주었고, 나도 그 분에게 내 이메일 주소를 적어서 줬다. 하지만 워크캠프를 마치고 한국에 돌아온 지금까지도 자칭 교수에게 메일 따윈 오지 않았다. 지하철에서부터 도움이 필요한 순진한 동양인 인걸 알고, 일부러 우리에게 접근해 도와주는 척하고, 돈을 가져간 것이었다. 계산을 해보니 공항에서 택시를 타고 터미널 까지 오는 비용이 아저씨에게 준 돈보다 훨씬 쌌다. 이럴바엔 택시를 타고 올걸 이라고 후회를 했다.
씁쓸한 마음을 뒤로하고 산크리스토발로 향하는 밤 버스에 올랐다. 말이 13시간이지, 자고 깨고를 몇 번이나 반복 했는지 모른다. 저녁 6시에 멕시코 타포를 출발해서 그 다음날 아침 7시가 넘어서야 우리는 산크리스토발에 도착했다.
미팅 날짜까지는 하루가 더 남아있었기에 우리는 지도상 미팅포인트 근처에 있는 로쏘코 호스텔에서 하루를 묵기로 했다. 산크리스토발 터미널 도착하자마자 택시를 타고 호스텔로 오는데, 아담하고 알록달록한 집들이 눈길을 끌었다. 호스텔에 도착해 짐을 풀고 샤워를 하고 ‘아, 이제 다 끝났구나.’ 하는 안도감과 함께 잠에 빠져들었다. 뉴욕에서 멕시코로 올 때 공항에서 밤을 새고, 장시간의 버스 여정으로 인한 피로 때문에, 나의 왼쪽 발목은 퉁퉁 부어있었다. 한 2일 동안 제대로 잠을 못 잔 것 같다. 집에 너무 가고 싶고 가족들도 너무 보고 싶어 눈물이 앞을 가렸지만 이미 온 이상 어쩔 도리가 없었다.
평화로운 로쏘코에서 충분한 휴식을 취한 우리는 날이 밝자 미팅포인트로 가기 위해 다시 짐을 꾸렸다. 제대로 찾아 갈 수 있을지 많이 걱정을 했는데 호스텔에서 1분밖에 걸리지 않았다. 이렇게 허무할 수가. 11시가 좀 넘은 시각에 도착을 했는데 저녁이 되어서 다른 프로그램에 참가하는 유럽인들과 한국인이 모여 같이 저녁을 하고, 우리는 2주동안 우리가 머무를 숙소로 향했다. 내가 참여한 프로그램인 Angels of love의 리더는 Tania. 우리 팀원은 타냐를 합해서 단 네명이였다. 다른 워크캠프 후기를 읽어 보니, 참가자들의 국적이 다양했던 걸로 기억했는데 우리는 단 네 명뿐이어서 실망을 금치 못했다.
우리는 나타테에서 일하는 나디아의 집에서 홈스테이를 했다. 건물에서 미국에서부터 챙겨온 침낭을 펴고 잤다. 첫 미팅 때 만난 한국인들은 재규어라는 프로그램에 참가했었는데, 그들은 빈 병들과 플라스틱 재료를 활용해 집을 짓는, 매우 힘든 일에 배정 되었다. 그 분들은 비가 많이 와도 잠을 아직 미완성된 집에서 비를 다 맞고 잘 수 밖에 없었다고 한다. 그 분 들에 비하면 우리는 아주 운이 좋은 셈이었다.
인포싯에서는 영어가 베이직한 언어라고 적혀 있었지만, 실제로 우리가 맡은 프로그램에서 쓰이는 언어는 스페인어였다. 리더 타냐도 영어를 전혀 하지 못했고, 우리도 에스빠뇰을 전혀 할 줄 몰랐으므로 의사소통에 힘겨운 점이 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무언가를 상의 할 때마다 구글 번역기의 도움을 받아야만 했다.
우리가 주로 하는 일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뉘었는데, 첫 번째는 다소 몸이 불편한 아이들과 수업을 같이 진행하고, 아이들이 원활하게 수업을 할 수 있도록 옆에서 도와 주는 일. 그리고 학교 뜰에 나무를 심거나, 커다란 돌멩이나 나무판자를 가지고 무언가를 수확 할 수 있도록 텃밭을 만드는 일 이었다.
아침 9시에서 9시반 사이에 학교에 도착해, 각자 한 명씩 도와 줄 아이들을 맡아 색칠공부도 도와주고, 음악 수업이 있는 날이면 같이 악기를 연주하면서 노래를 불렀다. 또 혼자서 인형들을 가지고 인형극을 해주시는 유럽인 할머니와 함께 인형극도 하고, 햇빛이 좋은 날이면 밖에서 점심으로 핫도그를 먹기도 했다.
워크캠프가 진행되는 동안에는 거의 대부분 날씨가 흐리고, 비가 오는 날이 많아서, 비가 오지 않는 아침에는 밖에 나가 직접 잡초를 제거하고 텃밭을 일구고, 무거운 연장으로 직접 땅을 파서 나무를 심고 거기다 거름과 물을 주었다. 아이들과 함께하는 시간은 비가 내리기 시작하면 교실로 돌아와 그 때 했다.
오후 2시가 되어 아이들이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면, 우리도 숙소로 돌아와 늦은 점심을 먹었다. 재료비는 현장비용에서 빠져 나갔으므로 우리가 따로 갖고 싶은걸 사거나, 여행을 가지 않는 이상은 돈 쓸일이 전혀 없었다. 타냐와 함께 장을 보고 두 명이서 요리를 하고 두 명이서 설거지를 하는 식으로 역할 분담을 했다.
점심 후에는 2층으로 올라가 휴식을 취하거나, 광장에 나가서 예쁜 수공예품을 구경했다. 그리고 돌아와 저녁을 먹고 대개 12시~1시 사이에 잠을 잤다.
산크리스토발의 날씨는 초여름 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고산지대라는 지형 탓에 저녁이 되면 매우 쌀쌀했다. 긴바지와 긴팔을 챙겨오길 정말 잘 했다는 생각을 했다.
여행은 주말에 총 두 번을 갔다왔는데, 수미대로라는 협곡과 워크캠프가 끝나는 날 고대 마야문명의 피라미드가 있는 빨랭께를 다녀왔다. 수미대로에서 빠른 보트를 타고 1시간 30분동안 거대한 캐년을 관람했는데, 아주 만족스러웠다. 자연의 위대함을 다시 한 번 일깨워 주는 경험이었다.
빨랭께는 산크리스토발에서 5시간 가량 차를 타고 가야하는 먼 곳인데, 가는 내내 길이 8자 인데다가, 전부 비포장 도로여서 울퉁불퉁했다. 멀미 하려고 하는 것을 억지로 잠을 청해가며 간 곳인데, 가자마자 엄청난 양의 비가 쏟아지는 바람에 옷은 다 젖고, 시간도 촉박했을 뿐더러, 정신이 하나도 없어 영어로 통역해주는 가이드의 말은 귀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아주 기억하기 싫은 곳이었다.
어떻게 보면 참 힘든 경험이었지만, 한국에서는 겪기 힘든 일이기에, 한국에 돌아온지 두달이 지난 지금. 멕시코가 참 그립다.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다른 국가로도 꼭 봉사활동을 가보고 싶다.